#103화 대가가 괜찮은데?
남희찬은 마른 입술로 대가를 밝혔다.
“첫 번째는 이겁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검은색 케이스.
그 안에는 스킬석이 들어있었다.
[쿨타임 감소]
쿨타임 30%를 줄여준다.
선우영은 스킬석을 꺼내 살폈다.
투명화에 쿨타임 제약이 붙어있으니, 제법 쓸만한 스킬석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겠는데요?”
겨우 스킬석 하나.
그걸로 후계자 싸움에 끼어들기엔 수지타산이 안 맞다. 분명 어마어마한 진흙탕 싸움이 될 텐데 말이다.
선우영은 남희찬을 바라봤다.
“R길드 후계자 싸움, 분명 엄청난 진흙탕 싸움이 되겠지요.”
“네.”
“고작 이걸로 저를 끌어들이기엔…….”
“또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선우영이 거절하려 하자 남희찬이 말을 끊고 사무실 책장에서 서류 봉투를 가져왔다.
그는 봉투를 선우영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선우영은 내용물을 보고 미간이 꿈틀거렸다.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중소길드 발전모임]
여러 인물이 찍혀있고, 벽에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선우영은 남희찬을 바라봤다.
“이건……?”
“중소길드도 모임을 가집니다. 저희 아버지가 주도하고 있죠. 대형 길드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반목보단 협력이 중요하니까요.”
“해서요?”
“절 R길드 회장으로 만들어주신다면 중소길드들의 인맥을 이용해 선우영 씨를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선우영은 인중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러 생각이 오갔다.
도깨비 길드가 크루그먼 길드에 스파이를 심지 않았던가.
‘앞으로 다른 길드들의 방해가 사사건건 들어오겠지. 박정철이 있으니 어떻게 잘 넘기겠지만…… 카드는 많을수록 좋을 거야.’
선우영은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남희찬이 준 스킬석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맘에 든다.
“좋습니다. 후계자 싸움 도와드리죠.”
“감사합니다.”
남희찬은 고개를 숙였다.
선우영은 의자에 기대며 작전을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번 주 토요일, 게이트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이요?”
“네.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그 게이트에서 저를…… 제거한다더군요.”
남희찬은 여동생이 자길 죽이려 한단 말을 돌려서 표현했다.
선우영은 그의 맘이 이해 갔다.
남에게 이런 말 하기 굉장히 껄끄럽겠지.
왜 안 그렇겠나.
아버지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동생이 오빠를 죽이려는 상황인데.
선우영은 다리를 꼬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동생분께선 어떤 방식을 쓴다고 합니까?”
“같이 게이트에 들어갈 사람들을 전부 암살자로 바꿨다고 합니다.”
“암살자?”
“네. 저랑 함께 다니던 동료가 모두 그만뒀거든요.”
“아~!”
선우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한꺼번에 동료들이 그만뒀다면 분명 여동생 쪽에서 무슨 수를 썼을 거다.
게다가 게이트는 범죄가 이뤄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보스 몬스터만 해치우면 사라지니까.
거기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게이트가 사라질 때 시체도 없어지고 범행 현장도 없어진다. 범행도구까지 게이트에 버리면 완벽하다.
피해자가 왜 죽었는지 핑계 대기도 쉽다.
몬스터한테 당해서 죽었다고 말하면 사고사로 끝나버린다.
조사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못 한다.
증거도 없지.
사건 현장도 없지.
시체도 없다.
게이트에서 나온 사람의 증언만이 유일한 단서다.
선우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 거참. 이런 방식까지 사용하다니….’
게이트가 사라진 미래에선 각성자가 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만, 현재는 아니다.
당연한 소리다.
범죄를 저질러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되겠나?
몬스터 잡는 게 더 짭짤하다.
마약보다 비싼 물건이 마석이다.
그것도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은 사업이 아닌가.
마석을 파는 게 마약이나 술장사보다 더 많이 벌어들이는데, 누가 범죄에 손을 대겠나.
괜히 범죄에 손을 댔다간 정부 쪽 각성자한테 쫓기기만 한다.
반대로 몬스터를 잡아 마석을 판매하면 돈과 명성을 손에 쥔다.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는다!
그런데 왜 범죄에 가담하겠나.
게이트에서 살인하는 것보다 헌터들과 친하게 지내서 마석 채취하는 게 더 돈이 되는데….
훨씬 안전하고 말이다.
아, 물론 게이트가 갑자기 사라진 이후에는 분위기가 반전됐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헌터들이 범죄에 손대는 세상은 아직 멀었다.
“그렇다면, 뭔가 커다란 대가가 오갔을 가능성이 큰데…….”
선우영은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면 각성자들이 살인할 리 없다.
득보다 실이 크니까.
게다가 암살자들이 오빠를 죽이고 회장이 된 걸 까발리겠다며 여동색 쪽을 협박한다면……. 약속보다 더 많은 대가를 줘야 할지 모른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여동생 쪽이 R길드를 차지하면 멀쩡하게 굴러가긴 글러 보였다.
선우영은 남희찬과 눈을 마주쳤다.
방책이 뭔지 대강 알겠다.
“신분을 숨기고 짐꾼으로 위장해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면 됩니까?”
“네.”
“그리고 그 암살자들을 쓰러뜨리되, 살려둬서 사건의 진위를 R길드 남궁근 회장에게 알리겠다?”
“맞습니다. 암살자들이야말로 완벽한 증인이니까요. 거기다 제가 심어둔 스파이들이 모아둔 증거도 있으니…….”
“증거요?”
“절 제거하겠단 여동생의 녹음 파일이 있습니다.”
녹음 파일과 암살자가 있으면 여동생 쪽의 계략이 전부 까발려질 거다.
선우영은 입술을 오므렸다.
‘이게 밝혀지면 R길드 회장님의 속이 썩어들어가겠네.’
자식들이 유산싸움 하는 것만큼 보기 싫은 장면도 없을 테니까.
남희찬은 재차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선우영 헌터님.”
“저도 잘 부탁합니다.”
선우영은 그가 준 스킬석을 투명화와 융합시켜 쿨타임을 줄였다.
그리고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남희찬이 그의 손을 잡았다.
이로써, 그들은 한배를 타게 됐다.
* * *
토요일이 됐다.
남희찬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게이트로 향했다.
길드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속이 매슥거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앞뒤좌우에 앉은 남자들.
전부 여동생이 고용한 암살자들일 거다.
“후우.”
남희찬은 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선우영의 존재였다.
그는 짐꾼 복장을 한 채, 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정체가 들키지 않게 변장도 했다. 특별히 영화 분장 메이커를 불러 얼굴을 못 알아보게 꾸몄다.
허리춤에 찬 검은 붕대로 둘둘 감았다.
알아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선우영은 암살자들을 유심히 살피며 실력을 파악해봤다.
‘전부 B급이군.’
풍기는 기운이 대략 그랬다.
스킬도 암살에 특화된 쪽으로 배웠을 거다.
‘뭐, 그래도 내 상대는 안 되지.’
전부 자신보다 한 수 아래다.
선우영과 남희찬은 암살자들의 습격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까지 준비했다.
물론 대놓고 카메라를 보여주진 않았다.
볼펜이나 뱃지처럼 생긴 소형 카메라를 사용했다. 잘 꾸며서 숨기니 암살자들도 눈치채지 못했다.
끼이익.
곧이어 차량이 게이트에 도착했다.
남희찬과 선우영 그리고 암살자들이 차량에서 내려 각자 무기를 점검했다.
남희찬은 선우영을 바라봤다.
믿고 있겠단 눈빛이었다.
선우영은 걱정하지 말라고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때였다.
암살자 중 하나가 선우영에게 말을 걸었다.
“짐꾼 나부랭이.”
선우영은 놈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최대한 목소리를 깔아 정체가 들키지 않게 노력했다.
암살자는 선우영을 의심했다.
짐꾼을 고용한 게 이상할 건 없지만, 하필 암살하는 날에 누군가 껴있는 게 맘에 안 들었다.
“너, 남희찬이랑 친하냐?”
“넵. 제가 좀 어려운 환경에 있는데 많이 도와주십니다. 남희찬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골프장 알바 면접 보러 갔다가 인연이 돼서 이렇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너 등급은?”
“F급입니다.”
“다른 길드에선 안 데려갔냐? 아직 젊어 보이는데.”
“몬스터 잡는 게 무서워서…. 길드에 취업했지만 한 달도 못 채우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깨를 좁혔다.
만만히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암살자는 피식거렸다.
경멸과 비아냥이 담긴 눈빛으로 선우영을 노려봤다.
“한심한 새끼.”
놈은 한소리하고 자기 무리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선우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성격 더럽네.’
대놓고 이런 모멸을 준 녀석은 간만이다.
게이트에서 녀석들이 본 모습을 보이면 제대로 상대해줘야겠다.
‘뭐, 살아만 있으면 되잖아?’
눈물이 나올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팰 생각이다.
그렇게 게이트에 들어갔다.
눈앞에 등장한 몬스터는 스켈레톤 기사였다.
녀석들이 말을 타고 돌진했다.
헌터들은 놈들을 상대로 싸웠다.
암살자들도 아직 까지는 자신들의 본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려면 헌터 5명이 필요하다.
암살은 분명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나서 하겠지.
뭐, 해골 기사들은 금방 쓰러졌다.
“허억, 허억.”
남희찬은 숨을 헐떡였다.
반면 암살자들은 별로 지친 기색이 없었다.
선우영은 그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남희찬 보단 암살자들의 실력이 더 높았다.
‘암살자들의 전투 방식은 얼추 알겠군.’
역시나 예상대로 암살에 특화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독을 썼다.
스켈레톤 기사에겐 독이 통하지 않았지만, 말들한테는 통했다.
‘저 독으로 남희찬을 공격하겠다?’
방식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공격이 성공하면, 독 기운에 남희찬이 쓰러질 테니까.
암살자들이 어떻게 싸울지 전부 파악했으니, 남희찬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보호할 수 있겠다.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몬스터 부산물을 챙겼다.
그때였다.
“야! 짐꾼!!”
암살자 하나가 선우영에게 다가왔다.
한 손을 턱 하니 내미는데.
뭘 달라고 하는지 말하질 않았다.
“뭐가 필요하십니까?”
선우영이 최대한 굽신거리며 물었다.
“수건하고 물 내놔!!”
놈은 윽박지르며 한쪽 팔을 올렸다.
한 대 때릴 분위기였다.
선우영은 얼른 가방에서 수건과 얼음물을 그에게 줬다.
“여기 있습니다.”
“쳇, 짐꾼이 눈치가 있어야지. 그딴 식으로 해서 밥벌이나 하겠어?”
“하하, 주의하겠습니다.”
선우영은 허리를 숙이며 굽신거렸다.
암살자는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자기 땀을 닦은 수건을 선우영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너는 나의 아래라는 듯이!
선우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새끼들, 도대체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저딴 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러니까 암살자하고 있겠지.’
선우영은 주먹을 쥐었다.
녀석들이 본 모습을 드러내면 가장 먼저 안면을 날려주겠다.
그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리고 어느덧 보스 몬스터가 있는 장소까지 도착했다.
거기엔 듀라한이 있었다.
챙챙.
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주변에는 사망한 스켈레톤 기사들이 즐비했다.
스걱-!!
남희찬이 듀라한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녀석은 그대로 쓰러져 사망했다.
모든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헉헉헉.”
남희찬이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부우웅.
암살자들이 남희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앵.
남희찬은 그걸 막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암살자들은 히죽였다.
“죽어라, 남희찬!”
“큭!! 여동생이 사주했냐?!”
“알아서 뭐 하게?”
드디어 암살자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놈들의 숫자는 4명.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방심한 순간.
“이 씨X놈들아!!”
강렬한 욕설과 함께 날아든 주먹이 암살자의 아가리를 후려쳤다.
퍼억!!
얻어맞은 녀석이 허공을 붕 날아올라 땅바닥에 떨어졌다. 입에 피거품을 물으면서.
“…….”
남은 암살자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욕설이 들려온 방향을 쳐다봤다.
거기엔 짐꾼이라 무시했던 사내가 있었다.
“너넨 다 뒤졌어.”
선우영이 손가락을 꺾어 몸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