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놈을 낚았다.
선우영은 숲길을 걸었다.
용광검을 들고 조심조심 한 걸음 내디뎠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나무 위로 숨어 최대한 전투를 피했다.
이동 흔적까지 지우며 돌아다녔다.
헌터들이 살아있을 경우를 대비해 가능한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선우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곳에 상처투성이 남자가 있었다.
서류에서 봤던 사람.
게이트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 중 하나였다.
남자는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선우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주 찢어 죽일 기세였다.
“가까이 오지 마.”
놈은 목소리를 한 톤 낮추며 살기를 드러냈다.
흉흉한 낯빛이었다.
선우영은 두 손을 들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구조하러 왔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 여긴 도플갱어도 있는데. 하, 이번엔 유명인으로 변했나?”
놈은 피가 섞인 침을 땅바닥에 뱉었다.
선우영은 가방에서 포션을 꺼내 그에게 던져줬다.
“일단 그걸로 치료하세요.”
“이게 독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저는 도플갱어가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도플갱어는 특정 인물의 외형과 언어를 따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
“반드시 그 인물을 한 번 봐야 한단 거죠. 만약 제가 도플갱어라면 이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요?”
“흥, 만약 선…….”
“조용!!”
선우영은 남자가 말하기 전에 언성을 높였다.
절대 말하지 말라고.
“도플갱어는 제 이름을 모를 겁니다.”
“뭐?”
“제가 밖에서는 유명인이지만, 도플갱어는 처음 보는 사람이죠. 제 이름을 모르거나 틀리는 녀석이 있다면…….”
“그 녀석이 도플갱어라는 건가.”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상처에 포션을 부었다.
상처가 전부 나았다.
“저를 따라오시죠. 한영수 씨.”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R길드에서 헌터들을 구조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번 게이트에 들어간 사람들 프로필도 봤고요.”
“그걸 어떻게 믿지?”
“믿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제 목표는 이곳에 있던 헌터들을 무사히 밖으로 내보내는 거니까요.”
“그래서 어쩔 거냐?”
“게이트 밖으로 이송하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선우영은 게이트 입구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영수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피며 고심했다. 솔직히 도플갱어인지 아닌지 지금도 헷갈린다.
완전히 신용할 순 없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게이트에 갇혀 죽어버릴 거다.
“쳇, 선택지가 없잖아.”
한영수는 선우영과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조심히 따라갔다.
선우영은 그에게 게이트 출입구를 가리켰다.
“가세요.”
“…….”
한영수는 시야에서 선우영을 놓치지 않고 게이트 출입구로 향했다.
뒷걸음질 치며 아주 조심조심 선우영을 주시했다.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한걸음 뛰면 나갈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맙습니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게 되어서야 고맙다고 말했다.
선우영은 팔짱을 꼈다.
한영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경계를 풀지 않았다.
딱히 화나지는 않았다. 그럴 만했으니까.
도플갱어를 만나서 험한 꼴 당했는데, 게이트에서 누굴 믿겠나.
저게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일단 한 명 구했고.’
계속 구조 작업을 해봐야겠다.
보통이라면 생존자는커녕 시체라도 발견되면 다행인 상황이다.
그런데 생존자가 한 명 있지 않았는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헌터들 중 판단력 높은 녀석이 있는 모양이군.’
어쩌면 5명 모두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선우영은 희망을 품었다.
그는 다시 게이트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던 도중.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주세요.”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
누굴까?
게이트에 들어왔던 헌터?
아니면 그들의 모습으로 변신한 도플갱어?
선우영은 수풀을 해치고 동굴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남자가 홀로 있었다.
생각보다 부상도 없고 괜찮은 상태였다. 입고 있던 옷은 찢어져 있었지만 말이다.
“구조하러 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선우영은 그와 일정 거리를 뒀다.
너무 수상쩍다.
도플갱어가 나타난 상황인데, 자신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한영수처럼 자신을 경계해야 정상일 텐데.
“상처가 별로 없으시군요.”
선우영은 그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조심스레 물어봤다.
“가지고 있던 포션으로 치료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이름은 남희찬.
R길드의 후계자.
분명 프로필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읽어봤다.
“남희찬 씨. 무기는 어디 있습니까?”
“싸우던 도중 잃어버렸습니다. 전투 도중에 도플갱어가 느닷없이 나타나 버리는 바람에…….”
“제가 도플갱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선우영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남희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그럴 리가 없죠. 당신은 유명인이잖아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깥세상에서 그렇지, 게이트에선 아닙니다.”
“그래서요?”
“도플갱어가 당신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변신할 수 없습니다. 만약 봤다면, 숨었든 마주쳤든 가까이에 있었단 소리인데….”
“소리인데?”
“당신 정도의 강자가 도플갱어를 놓치거나 발견 못 했을 린 없겠죠.”
이번에 만난 녀석은 좀 머리가 돌아간다.
남희찬은 선우영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들었다.
그리고 땅바닥을 그어 글자를 적었다.
선우영이란 석자였다.
남희찬과 그의 눈빛이 서로 교차했다.
선우영이 자신의 유명세로 도플갱어와 헌터를 판별하고 있단 걸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남희찬은 발바닥으로 땅을 쓸어 바닥에 쓴 글자를 지웠다.
누가 볼세라 아주 행동이 잽쌌다.
“머리가 좋으시군요.”
“제가 R길드의 후계자라서요.”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R길드 회장님께서 헌터들이 살아있을 거라 하더니.
‘전부 이유가 있었군.’
이렇게 머리가 좋은 녀석이 있다면 확실히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남희찬은 현 상황을 보고했다.
“동료들한테 흩어져 숨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서로를 절대 믿지 말고 새롭게 온 구조대를 믿으라 말했고요.”
“아까 만난 한영수 씨는 그러지 않던데요?”
“아, 그 친구는 원래 의심이 많아서 그럽니다. 혹시 무례한 짓을 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어서 게이트에서 나가시죠.”
선우영은 남희찬을 게이트 출입구까지 호위해줬다.
남희찬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얼른 게이트 밖으로 도망쳤다.
이걸로 두 번째 사람도 구했다.
선우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세 번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게이트 내부를 마구 돌아다녔다.
그때였다.
세 번째 사람이 나타났다.
“사, 살려주세요.”
떨리는 목소리.
음색이 굉장히 가냘프다.
여성인가?
선우영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여자가 있었다.
몸에 상처가 없다.
남희찬의 말을 들은 다른 헌터일까?
선우영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상은 없습니까?”
“다행히 전투 당시 후방에 있어서 부상은 없습니다.”
“구조하러 왔습니다, 황시안 씨! 제 이름은 김철수입니다.”
“제 이름은 어떻게?”
“프로필을 확인했습니다.”
선우영은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틀리게 불렀다. 저 사람이 진짜 헌터라면 선우영이 아니냐고 되물어볼 거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김철수 씨.”
선우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여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눈치다.
도플갱어일 가능성이 있다.
그때 그녀가 사태 파악 어렵게 만드는 말을 꺼냈다.
“제가 안면인식 장애가 있어서 혼자 불안했는데, 이렇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길, 안면 인식장애라니.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가 아닌가. 이렇게 되면 그녀가 자길 못 알아봐도 이상할 게 없다.
이런 정보는 프로필에 쓰여있지 않았다. 과연 저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거짓일까?
선우영은 눈살을 찌푸렸다가 돌연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선우영은 그리 말하고 거대한 나무 뒤쪽으로 향했다.
황시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무 뒤에서 잠깐 불꽃이 반짝였다. 선우영은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게이트 출입구까지 안내하겠습니다.”
“나무 뒤쪽에 숨어서 뭐 하신 거예요?”
“별거 아닙니다.”
선우영은 그리 대꾸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황시안은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가능한 한 가깝게 접근하더니, 소매에서 단검을 꺼냈다.
칼날에 반사된 햇빛이 반짝였다.
황시안은 돌연 표정을 바꾸어 비열하고 저열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가, 아니 도플갱어가 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선우영의 허리를 찔러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푸욱.
선우영은 비명을 질렀다.
“컥!!”
황시안으로 변장했던 도플갱어가 피식거렸다.
“멍청이.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으면 쓰나. 그러니까 이렇게 뒤통수 얻어맞지.”
“……훗.”
그런데 선우영은 돌연 비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그의 몸이 발광했다.
“어?!”
도플갱어는 눈살이 움찔했다.
퍼엉.
선우영의 육체가 느닷없이 폭발했다.
“크아아악!!”
도플갱어는 비명을 지르며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이해할 수 없었다.
죽으면 폭발하는 인간이라니?
그게 존재한단 말인가.
놈의 육체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모른 채, 아픈 몸을 간신히 일으켰는데….
“찾았다. 도플갱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소름 돋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틀림없는 선우영이었다.
스걱-!!
가슴이 뚫리는 고통.
도플갱어는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칼날이 가슴을 뚫고 나왔다. 핏물이 칼끝으로 모여 방울방울 떨어져 땅바닥을 적셨다.
“컥!”
도플갱어는 둔갑한 모습이 풀렸다.
카멜레온처럼 생긴 외형.
녀석은 몸을 파르르 떨더니 몸이 축 처졌다.
선우영은 검을 돌려 뺐다.
일부러 상처를 넓혔다. 그리고 확실하게 녀석의 목을 베어 확인 사살했다.
“이 녀석이 함정에 걸려서 다행이네.”
선우영은 씨익 웃었다.
그는 맹화의 분신 능력을 사용했다.
분신은 죽어도 본체에 영향이 없다.
선우영은 융합했던 스킬들을 활용해 조금 특별한 분신을 만들었다.
내부에 화염과 압축된 공기 그리고 기름을 넣었다. 공격당해 죽어버리면 그대로 폭발해버릴 수 있게 말이다.
도플갱어한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나무 뒤에 갔을 때 만들었다.
선우영 본인은 투명화로 모습을 숨겼다.
황시안이 분신을 공격한다면 도플갱어니 즉시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선우영의 책략은 제대로 먹혔다.
도플갱어는 죽었다.
선우영은 미간을 슬며시 찌푸렸다.
‘그나저나 일개 몬스터인 도플갱어가 안면인식 장애를 알고 있다니.’
그게 거슬렸다.
도플갱어는 상대방의 모습으로 변하고 언어를 따라 할 수 있지만, 지식까지는 아니다.
“설마 황시안을 붙잡아서?!”
고문하여 이런저런 지식을 얻어내지 않았을까?
안면인식 장애 같은 핑계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선우영은 혀를 찼다.
이렇게 되면 진짜 황시안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선우영은 도플갱어의 목을 들었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 자신이 도플갱어가 아니란 걸 설명하려면 말보단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를 테니까.
이걸 보면 그들도 인정할 거다.
도플갱어를 죽였단 걸 말이다.
선우영은 빠르게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봤다.
그리고 황시안을 찾아냈다.
그녀는 밧줄에 묶여 있었다.
도플갱어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온몸이 피멍투성이였다.
“죽었나?!”
선우영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코에 손가락을 댔다.
쌔액. 쌔액.
코를 통해 미약한 숨결이 느껴졌다.
선우영은 서둘러 포션을 들이부어 그녀의 부상을 치료했다.
서서히 그녀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심할 순 없다.
부상은 아직도 심각했으니까.
그때였다.
스르륵.
땅을 기어 다니는 소리가 선우영의 귓가에 들려왔다.
선우영은 흠칫했다.
“설마?!”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피히잉.
화살 한 발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선우영은 용광검으로 화살을 쳐내고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하아, 이 새끼들 진짜.”
선우영은 노기를 토해냈다.
한시라도 빨리 황시안을 치료해야 하는데, 빌어먹을 라미아들이 등장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