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유능한 책사.
선우영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의 두뇌로 스파이를 판별하는 건 어렵다.
‘불가능하지.’
자신은 헌터다.
이런 머리 쓰는 작전은 안 어울린다.
하지만 이런 일에 잘 어울리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심지어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선우영은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선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통화음이 수화기로 들렸다.
딸깍.
곧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박정철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우영입니다.”
스파이를 잡아낼 인물.
그건 다름 아닌 박정철이었다.
천부적인 두뇌를 가진 그라면 아주 쉽게 잡아낼 수 있을 테니까.
아마 좋은 방법을 알려줄 거다.
“박정철 씨. 오늘 점심 함께할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한 인적 드문 곳을 찾겠습니다.”
박정철은 그리 말하며 통화를 끊었다.
가능한 인적 드문 곳을 찾겠다라… 왜 만나자고 했는지 밝히지도 않았는데, 비밀 얘기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하여튼 머리 좋은 양반이라니까.”
선우영은 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시침이 12를 가리키는 점심이 되었다.
선우영은 박정철과 만나 밥을 함께 먹었다.
룸식당.
중식을 전문으로 파는 곳.
웨이터는 없었고, 식탁에는 미리 음식이 올라와 있었다.
문도 잠겨있고.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었다.
작게 말하면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거다.
둘이서 조용히 얘기 나누기 딱 좋았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먼저 운을 뗀 건 박정철이었다. 그는 찻잔에 담긴 뜨거운 차를 홀짝였다.
선우영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임원들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파이요?”
“네. 그래서 스파이를 잡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입니다.”
박정철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방법이야 있죠. 그것도 아주 쉬운 방법이요.”
방법이 있단 소리에, 선우영은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게 뭔지 궁금했다.
“스파이를 잡는 법. 간단합니다. 가짜 정보를 주고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네?”
선우영은 이해하기 어렵단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게 말이야 쉽지.
실제로 하려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데…….
박정철은 풀어서 설명해줬다.
“임원을 개별적으로 만나십시오. 그리고 각자 다른 정보를 흘리는 겁니다.”
“다른 정보요?”
“실제로 군대에서 첩자를 잡을 때 쓰는 방식입니다. 스파이라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정보는 주는 거죠. 군대를 서쪽에 더 많이 배치했다. 북쪽에 더 많이 배치했다.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요?”
“적들은 그 정보에 의존해서 병력을 편성할 것이고. 그걸 보고 스파이가 누군지 특정해낼 수 있게 됩니다.”
“아! 의심되는 자에게 각자 다른 정보를 주고, 적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하면 스파이를 잡을 수 있단 거죠?”
“네. 바로 그겁니다.”
박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영은 그런 쉬운 방식이 있을 줄 전혀 몰랐다.
과연, 박정철이다.
골머리 썩히던 문제가 단숨에 해결됐다.
선우영은 목청껏 웃었다.
“이야, 이리 어려운 문제가 한번 이야기한 거로 전부 풀리다니! 역시 대단합니다.”
“칭찬이 과하십니다.”
박정철은 껄껄 웃었다.
그들은 기분이다 싶어서 깐풍기랑 탕수육까지 시켜 과식했다.
* * *
“어우, 너무 먹었나.”
선우영은 배를 두들겼다.
기분이 좋다고 너무 먹었나 보다.
중식 특유의 기름기 많은 음식들 덕분에 속이 약간 부대끼는 기분이다.
선우영은 직원 휴게실로 갔다.
거기서 원두를 내려 드립 커피를 한잔 만들었다.
아주 쓴 에스프레소였다.
이거라도 먹어야 속이 싹 씻길 것 같다.
호로록.
선우영은 뜨뜻한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목구멍에 꼈던 기름이 싹 씻기며 부대끼던 속이 그나마 좀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선우영은 시계를 바라봤다.
현재 시간은 12시 40분.
아직 20분이나 점심시간이 남았다.
선우영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찬바람 맞고 싶었다.
그렇게 옥상에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의외의 사람을 보았다.
옥상 구석에서 통화를 하는 사내.
“네네. 현재 그렇다고 합니다.”
그는 통화를 하다가 선우영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전화를 끊었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통화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뒤를 돌아보았다.
선우영은 그가 구면이었다.
크루그먼 길드에 입사할 때 만났었다. 그는 임원 중 하나였다.
계약서 도장 찍을 때 분명히 봤다.
선우영은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임원이 여기서 뭐 하는 걸까.
누구랑 통화를 하던데.
‘업무는 아닌 듯싶고. 이렇게 숨어서 통화하는 걸 보면 사적인 이야기 같은데.’
선우영은 감이 왔다.
이 녀석이 스파이일지 모른단 촉이 말이다.
선우영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광해 전무님.”
“네. 입사하실 때 이후 처음 뵙네요.”
“하하하, 요새 바쁘지 않았습니까.”
선우영은 머릿속으로 박정철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 의심되는 인물에게 각자 다른 정보를 줘라.
선우영은 연기에 들어갔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이광해의 옆으로 이동했다.
“전무님! 잠깐, 시간이 되시면 고민 상당 한번 해주시겠어요? 요즘 마음이 뒤숭숭하다니깐요.”
“혹시 후계자 경쟁 때문인가요?”
이광해가 뱀처럼 간사한 눈빛을 굴리며 그를 바라봤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둔해 빠져서 그의 표정을 보고도 아무것도 눈치 못한 것처럼!!
“전무님 들어보세요. 솔직히 제가 해온 성과가 얼마나 많습니까. 제 덕분에 크루그먼 길드 주가가 엄청나게 오르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그렇죠.”
“그런데 제가 후계자가 아니라니. 후계자 경쟁을 이겨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선우영 씨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신용한 회장님도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아무 그래도… 제 덕분에 크루그먼 길드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는데.”
선우영은 한숨을 쉬었다.
답답해 미치겠단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선우영은 마지막으로 악에 받쳐 크게 소리쳤다.
“아아-!! 맘에 드는 스킬석도 못 구해서 답답한데. 인생 풀리는 게 없네.”
“스킬석이요?”
옆에서 찬찬히 반응을 살피던 이광해 전무는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선우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솔직히 길드 이직하기 딱 좋은 상황설명이 아닌가.
길드의 방침에 불만은 많고, 자기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다며 투정 부리는 모습.
게다가 스킬석을 필요로 한다.
‘캬~! 삼박자가 딱 맞네. 길드 이직하기 딱 좋은 조건이 말이야.’
이광해는 슬며시 선우영에게 물었다.
“어떤 스킬석을 원하는데 그런가요? 그렇게 구하기 어렵습니까?”
“어렵고 말고요. 무려….”
선우영은 이광해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이 갖고 싶은 스킬석을 말했다.
“분신.”
이광해는 눈을 크게 떴다.
분신이라면 굉장히 비싼 스킬석이었다.
붉은 스킬석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비싸고 희귀한 스킬인 건 확실했다.
선우영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누가 분신 스킬석을 주면….”
“이직이라도 하려고요?”
“…….”
선우영은 대답을 일부러 뜸 들였다.
그는 일부러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그러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풀풀 풍기는 분위기가 진짜 길드 이적할 사람 같았다.
선우영은 이내 크게 웃었다.
“아이고, 제가 너무 푼수를 떨었나요? 마음이 답답해서 별별 소리를 다 한 것 같네요.”
“아닙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이광해는 그리 말했다.
선우영은 그에게 인사하고 다시 자기 부서로 내려왔다.
이광해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이광해입니다. 방금 선우영을 만났는데….”
과연 그는 누구에게 전화하는 걸까?
다른 대형 길드?
아니면 선우영의 상태를 신용한한테 보고하는 걸까.
* * *
선우영은 다른 임원들을 만나 각자 다른 정보들을 가르쳐줬다.
뭐, 다른 길드로 이적한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어쩔 땐, 가족들 문제로 잠깐 헌터를 쉴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리 말하고 며칠이 흘렀다.
선우영은 퇴근하고 잠시 커피숍에 들렀다.
벨지에 와플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달짝지근한 와플과 씁쓸한 커피의 조화가 제법 괜찮았다.
그렇게 느긋하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누군가 가게로 들어왔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딸랑 울렸다.
사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선우영이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드르륵.
그가 의자를 뒤로 끌어 선우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도깨비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도깨비 길드?!”
대형 길드가 자신을 찾아왔다.
선우영은 놀란 척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속으론 반대였지만.
‘그래, 어떤 반응을 보일 거냐?’
도깨비 길드에서 나온 사람은 탁자에 어떤 케이스를 올려뒀다.
그는 씩 웃었다.
“이건 저희 길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선물이요?”
선우영은 케이스를 열어봤다.
거기엔 스킬석이 담겨 있었다.
[분신]
오러로 똑같은 모습의 분신을 만들어낸다.
분신의 전투력은 본체의 10%다.
최대 만들 수 있는 개수는 5개.
선우영은 확신했다.
‘역시 이광해가 스파이였군. 어쩐지 뭔가 좀 수상쩍어 보인다더니.’
선우영은 케이스를 챙겼다.
도깨비 길드에서 나온 사람이 그에게 제안을 던졌다.
“저희 길드로 이직하시면 다른 원하시는 스킬석들을 드리겠습니다.”
“스킬석들을요?”
“네. [분신] 스킬석을 구할 만큼 저희 길드의 자금력과 네트워크는 최고입니다.”
“그렇군요.”
선우영은 다리를 꼬며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러니까 [분신] 스킬석은 자신들한테 별거 아니다, 그 소리가 아닌가?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꼬시겠다?’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크루그먼 길드를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
여긴 능력 위주로 평가한다.
하지만 다른 길드는 실력보단 인맥과 혈연을 중시한다.
실제로 신용한 이외의 길드는 자기 친인척한테 회장직을 줬지, 절대 능력 있는 인물에게 주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국제 길드를 창설하려는 선우영의 계획에 걸림돌이 된다.
그때였다.
선우영의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거대한 덩치.
붉으락푸르락해진 표정.
다름 아닌 신용한이었다.
선우영은 그에게 모든 사실을 전부 알려줬다.
각 임원들한테 어떤 정보를 뿌렸는지까지 상세하게!!
때문에 신용한은 이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연기했었다.
끼이익.
신용한이 선우영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선우영은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신용한테 질문을 던졌다.
“자, 신용한 회장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광해가 배신자라는 건 알았고….”
신용한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도깨비 길드에서 이런 지저분한 수를 쓸지는 몰랐습니다.”
“…….”
도깨비 길드에서 나온 사람은 사색이 되어 침묵을 머금었다.
선우영은 놈을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아, 참고로 저는 크루그먼 길드에서 나갈 생각 없습니다.”
“아니! 스킬석까지 받아놓으시고….”
“아, 이거요? 이거 선물이라면서요. 잘 지내보잔 의미에서 주는 게 아니었나요?”
“…….”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 하실 말씀이 많아 보이니 저는 이만 빠지겠습니다.”
선우영은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곧이어 카페에서 고성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