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응우옌
오전 8시 30분.
김용대는 옥상 난간에 기댔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틱틱.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옆에 있던 신용한은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아, 라이터 또 깜빡했네.”
언제나처럼 김용대가 라이터를 빌려줬다.
“고맙다.”
신용한은 담배를 물며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는 한 모금 깊게 담배를 빨았다.
“후우우.”
입 밖으로 잿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신용한은 김용대를 바라봤다.
“그래, 이번 A급 게이트에서 제일 좋은 활약을 펼친 녀석은 누구야?”
“선우영.”
신용한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선우영? 그 녀석이?”
이제 막 A급이 된 헌터가 제일 큰 공헌을 했다니.
참 놀라웠다.
“아니, 대용아. 그게 진짜야? 아무리 그래도 A급 게이트 처음 들어간 선우영이 1등 공로자라니?”
“진짜야! 보통이 아닐 줄은 알았는데 진짜 대단하더라고.”
“그래? 어디 자세히 좀 얘기해봐.”
김용대는 A급 게이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풀었다.
얘기를 듣던 신용한.
그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야, 대단하구먼.”
“그렇지?”
“아무리 A급이 되었다지만, 처음 A급 게이트에 들어갔을 땐 긴장하고 위축되기 마련인데. 아주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서 싸웠어.”
신용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개인의 무력만 놓고 봤을 때, 선우영이 부장 중에서 제일 앞서 나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강하기만 해선 길드를 이끌 순 없지.’
개인의 무력에만 치중해 순위를 매기면 리더쉽과 인덕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니 부서의 실적도 봐야지.’
앞으로 얼마나 헌터 5팀을 키워나갈지 지켜봐야겠다.
리더쉽이 없으면 후계자로 삼을 수 없으니까.
김용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신용한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나저나 이번 A급 게이트는 후계자 경쟁이 시작되기 전 실력 파악이라 치고…… 진짜 후계자 경쟁은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다음 주. 부장들을 모아두고 정식 공표할 거다.”
신용한은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단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콰르릉.
날벼락이 쳤다.
아주 치열한 경쟁의 시작을 알리듯이!
* * *
선우영은 업무를 마치고 정운과 함께 퇴근했다.
포르쉐를 주차하고.
롯템타워 시그니엘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틱!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우. 힘들다.”
정운은 소파에 드러누우며 골골거렸다.
“많이 힘드냐?”
“네, 아저씨처럼 강해지려면 엄청 훈련해야 하니깐요.”
정운은 허리를 두들기며 대답했다.
C급이었던 정운은 B급 헌터가 되기 위해 맹훈련 중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크루그먼 길드에 와서 단련했다.
최근에 할당된 게이트가 없어서 이렇게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말 죽자 살자 노력했다.
이대로 계속 C급에 머물러 있으면 선우영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을 테니까.
목표는 B급이었다.
선우영은 정운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짜식, 훌륭하다!”
“정말요?”
“그래, 너는 분명 대단한 헌터가 될 거다.”
“아저씨처럼요?”
“그럼!”
우상의 칭찬에 정운은 없던 기운이 솟아났다.
선우영은 정운의 책가방을 뒤져 가정통신문을 살펴보고, 알림장을 확인했다.
“음, 운아.”
“네.”
“너 혹시 최근에 숙제 안 해서 선생님께 혼났니?”
정운의 어깨가 움찔했다.
“글쎄요. 기억에 전혀 없는데요.”
“운아.”
“네.”
“거짓말이 너무 서툴구나.”
“…….”
선우영은 알림장을 덮었다.
그리고 수학 교과서와 영어 교과서를 꺼냈다.
“숙제부터 하자.”
“…….”
정운은 고개를 슬쩍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숙제하기 싫다는 반항이었다.
“운아. 일어나.”
“저 오늘 열심히 훈련해서 힘든데, 숙제는 내일 하면 안 될까요?”
“얼른 일어나!!”
선우영은 정운을 어깨에 들쳐메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너무해요.”
“세상에 숙제시켜서 너무한 어른이 어디 있어?”
“나 힘든데.”
“숙제 끝나면 치킨 시켜줄게.”
“정말요?!”
정운은 눈을 반짝였다.
먹을 거로 이렇게 쉽게 기분이 풀리다니.
역시 아직 꼬맹이다.
선우영은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넌 아저씨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나! 나, 양념치킨 좋아해요.”
“그래, 그래. 양념치킨이든 후라이드 치킨이든 숙제만 끝내면 시켜주마.”
“아저씨, 최고!!”
정운은 신나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은 책상에 앉아 수학 교과서를 펼치고 문제 풀이에 들어갔다.
“흐음….”
정운은 입을 삐쭉이며 몇 번이고 문제를 읽어봤다.
“아저씨.”
“왜? 뭘 모르겠어?”
“네. 이 문제가 이해가 안 돼요.”
정운이 수학 문제를 선우영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선우영은 그 문제를 찬찬히 읽어봤다.
“아, 이 문제는…….”
“아니, 사람이 철로에 서 있는데 기차가 시속 65km로 달려오잖아요. 그럼 빨리 구해야지. 언제 부딪힐지 계산하고 있어요? 미친 거 아니에요?”
“…….”
그거, 참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다.
뭐, 여차여차 숙제를 끝내고.
선우영은 약속대로 치킨을 시켜줬다.
정운은 닭 다리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덕분에 조그마한 볼이 빵빵해졌다.
선우영도 치킨 한 조각을 먹으며 TV를 틀었다.
뉴스가 시작됐다.
벌써 9시인가 보다.
- 곧 황금연휴의 시작이네요.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치면 총 5일 동안 쉴 수 있습니다.
선우영은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은 금요일.
내일부터 장장 5일 동안 휴일이 시작된다.
‘오늘부터 푹 쉬어볼까?’
뭐, 길드 전체가 쉬어버리면 게이트 관리가 힘드니…… 정부가 협상해서 몇몇 길드는 남들 쉴 때 게이트를 닫는다고 한다.
‘크루그먼 길드는 그냥 쉬기로 했지.’
그렇게 치킨을 뜯고 있는데.
띠리리. 띠리리.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왔다.
누군가하고 봤더니.
박인혁이었다.
아니, PS웨펀에서 무기 만드느라 바쁜 양반이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연락했을까?
선우영은 수화기 그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선우영 씨.”
“네. 오래간만에 얘기하네요. 요즘 잘 지내셨어요?”
“새로운 공법이 생각나서…. 이걸 이야기할 사람이 선우영 씨밖에 안 떠올랐거든요.”
“네?”
“그 있잖아요. 선우영 씨가 주셨던 노트!!”
박인혁의 말에 선우영은 그에게 줬던 노트가 생각났다. 사실 그거 미래의 박인혁이 쓴 자서전 내용을 그대로 베껴 넣은 건데.
박인혁은 책상을 탕 쳤다.
“그 노트를 읽다가 순간 엄청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네?”
선우영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되물었다.
박인혁은 잔뜩 흥분해있었다.
“어쩌면 세계 최고의 명검이 탄생할지도 모른다고요!!”
“세계 최고의 명검이요?”
“네. 아마 제 일생에서 단 한 번 만들 수 있는 명검이 될 겁니다.”
“…….”
선우영은 확신했다.
박인혁이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지를.
‘무명검!!’
박인혁이 만들 최고 명검.
세계 No.1 헌터 페일.
그가 가진 명검 <듀란달>
현재까지 어떤 무기도 따라올 수 없는 위대한 검이었다.
미래에서도 박인혁이 만든 무명검만이 듀란달과 동급의 검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게 만들어져봐라.
선우영은 최강의 검을 손에 넣게 된다.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조만간 길드의 후계자 경쟁이 펼쳐질 텐데, 이런 명검을 얻으면 남들보다 한 발자국 앞설 거다.
선우영도 덩달아 흥분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서, 그 명검은 언제쯤 완성됩니까?”
“그게…….”
속사포로 말하던 박인혁이 처음으로 말을 줄였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른 방식이 있긴 한데. 재료를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서요.”
“재료요? 뭐가 필요하신데요?”
“여러 가지 비싼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특히 몬스터 부산물이요.”
“돈이야 얼마가 들든 괜찮습니다. 만들어보세요.”
“그게, 마지막 재료는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마지막 재료가 뭔데요?”
“흑운철.”
선우영은 말문이 턱 막혔다.
세상에나.
흑운철이라면 이 세상에 극히 조금밖에 없는 금속이 아닌가.
그게 필요하다니.
“흑운철만 있으면 그걸 만들 수 있습니까?”
선우영이 진중하게 묻자 박인혁은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주 단호했다.
선우영은 그 한마디에 결심을 굳혔다.
“제가 흑운철을 구해오겠습니다. 그러니 작업 부분에만 신경 쓰세요.”
“정말입니까?”
“네. 대신 반드시 그 명검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선우영은 통화를 끊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파에서 바람이 후 빠져나갔다.
흑운철은 A급 게이트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광물이다.
총무게는 정확히 3.5kg
매우 극소량이다.
딱 검을 하나 만들 수준의 양밖에 없다.
그 이후 다른 게이트에서 흑운철이 발견된 사례는 없다.
그렇기에 흑운철의 연구는 철저하게 진행되었다. 좀 독특한 물질이었는데, 오러를 강제로 흡수해 강도를 높이는 효과를 보였다.
일반인이 만질 땐 아무렇지 않다.
문제는 헌터가 만지면 오러가 쭉쭉 뽑혀 나간단 것이었다.
헌터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오러를 흡수한 만큼 흑운철은 강도가 높아진다. 문제는 그게 어마어마한 양을 필요로 한단 점이다.
그걸 개선만 한다면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높은 쇳덩이였다.
선우영은 혀를 찼다.
“쯧.”
그 흑운철을 어떤 괴짜가 소유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괴짜 부자 응우옌.
이전엔 뛰어난 실력의 A급 헌터였지만, 지금은 주식 천재로 불리는 남자. 그가 투자했다 하면 항상 주가가 대박을 터트렸다.
뭐, 여기까진 천재 주식투자자인데.
문제는 독특한 취미에 있다.
게이트에서 구한 물품 수집가로도 아주 유명했다.
그리고
‘한번 얻은 물품은 절대로 팔지 않지.’
선우영은 손에 들었던 치킨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정말 곰곰이 생각해봤다.
‘무명검의 재료가 흑운철이었을 줄이야.’
미래에선 그걸 어떻게 얻었을까.
수집가로 유명한 응우옌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텐데.
절대 돈으로 움직일 남자가 아니다.
그쪽도 돈이라면 넘쳐난다.
이거, 아무래도…….
‘만나봐야겠는데? 괴짜 부자 응우옌을.’
어째, 이번 휴가도 편하게 즐기긴 글러 보였다.
* * *
선우영은 정운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들은 비행기에 올랐다.
“오오! 또 해외여행이에요?”
정운은 눈을 반짝였다.
새로운 곳에 놀러 간다고 생각하나 보다.
선우영은 손깍지를 뒤통수에 대며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뭐, 상황에 따라서?”
“예?”
정운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우옌과 협상이 잘 되면 나머지 시간은 베트남 관광하다 돌아갈 거고.
그게 힘들어지면, 놀 시간도 없어진다.
‘가능하면 편하게 협상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그 바람이 이뤄지길 빌어야지.
별수 없었다.
한편 베트남의 괴짜 부자 응우옌은 뉴스를 보며 지루하단 표정을 지었다.
최근 매수했던 주식이 오르며 또다시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넣었지만, 매번 있는 일이라서 자극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지루하기만 했던 그의 인생에 꽤나 재미있는 이벤트가 벌어지려 했다.
- 한국의 선우영 헌터가 베트남에 방문한다고 합니다.
따분하단 표정을 짓던 응우옌.
그가 새하얀 건치가 보일 정도로 환히 웃었다.
선우영이라면 스킬 융합이란 사기 능력을 지닌 헌터가 아닌가.
“집사!!”
“네, 응우옌 님.”
“지금 당장 호치민 공항으로 갈 준비하세요. 아주 재미있는 손님을 만나봐야 하겠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