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A급 게이트.
삼일 가량이 흘렀다.
선우영은 길드에 출근했다.
조금 일찍 출근해서 서포트 부서의 부장 김말단을 만났다.
직원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했다.
“선우영 씨,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김말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선우영은 그의 앞에 커피잔을 놓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에이, 저희가 꼭 일이 있어서 보는 사인가요?”
“하하하. 그러긴 하죠.”
“그나저나 요번에 새로 뽑힌 사원은 어때요? 일 좀 합니까?”
“아, 대단하더라고요. 이름이 박정철이라고 하는데, 일 처리가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요?”
“보통은 한 달 정도 배우고 일을 시작하는데, 겨우 반나절에 전부 배워서 이젠 실질 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하네요.”
“아주 복덩이가 들어왔습니다.”
선우영은 커피 향기를 그윽하게 즐기며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박정철이다.
입사 며칠 만에 벌써 인정받다니.
‘하긴 행정이랑 길드 운영에서 박정철을 따라올 사람이 없긴 하지.’
박정철의 상태는 잘 살폈고.
이제, 헌터 5팀의 업무에만 신경 쓰면 되겠다.
커피를 다 마신 선우영과 김말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십시오.”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인사말을 끝내고 그들의 발걸음이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선우영은 헌터 5팀의 문을 열었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5팀의 헌터들이 선우영에게 인사했다.
선우영은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의 자리에는 서류가 하나 있었다.
펄럭.
그걸 살펴보자, 헌터 5팀에게 떨어진 게이트가 보였다.
‘C급 2개. D급 2개,’
숫자는 적다.
뭐, 이제 막 생긴 부서라서 할당된 게이트가 많아도 문제긴 했다.
아직 인원이 부족하니까.
선우영은 회사 메신저로 헌터 5팀 직원들에게 고정 멤버를 구했느냐 물었다.
그러자 착착착 답변이 올라왔다.
같은 등급끼리 5명.
지난 회식 자리에서 전부 정했단다.
선우영은 그들의 등급에 맞게 게이트 할당량을 분배해줬다.
헌터들이 일하러 떠났다.
사무실은 금세 확 비었다.
김철수가 선우영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부장님, 우리가 갈 게이트는 없습니까? 저도 몸이 근질근질한데요.”
“안타깝게도 없네요. 할당된 게이트가 4개라서요.”
“쩝, 그렇습니까.”
김철수는 아쉽단 표정으로 입을 삐쭉였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저는 하루종일 훈련하러 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조용석도 김철수를 따라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B급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만 선우영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선우영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거렸다.
‘나 참, 고생이 많으시네.’
조용석과 김철수라면 아마 이번 달 안으로 B급이 될 거다.
‘재능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잖아.’
조금만 기다려주면 될 거다.
그들에게서 미세하게 풍기는 기운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선우영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영희 씨는요?”
“저는 검술 훈련 교본을 만들어 보려고요.”
“훈련 교본이요?”
“네. 신입사원들이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해서요.”
“아~!”
선우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백영희의 검술이라면 누구든 탐내겠지.
“재능 있어 보이는 사람 있나요?”
“다들 확실히 뛰어난 인재이지만, 안타깝게도 제 쌍검술을 익힐 만한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요?”
“솔직히 몇몇이나 검 하나로 펼치는 삼환검을 익힐 수 있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배우겠죠.”
선우영은 손깍지를 뒤통수에 댔다.
뭐, 퓔른을 모르면 익히기 어려운 검술이 삼환검이긴 하지만.
품세만 제대로 따라 해도 한 사람 몫을 하기엔 충분하다.
그러다 문득 삼환검 도장의 상태가 궁금해졌다.
신입사원들이 가르쳐달라고 했다면, 꽤 많이 유명해졌단 뜻일 텐데.
“백영희 씨, 요즘 검술 도장은 어떠세요?”
“말도 마세요. 검술 배우겠단 사람이 아주 바글바글해요. 이젠 문하생이 500명이나 돼요.”
“500명이요? 이야, 대단하네.”
“그것도 간추리고 간추려서 받았어요. 조만간 경찰대에서 정식 무술 교과목으로 인정받을 예정이라 내년엔 더 바빠질 거예요.”
“그 정도면 대한민국이 최고의 검술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부 선우영 씨 덕분이죠.”
“저요?”
“삼환검을 익힌 선우영의 활약. 그 덕분에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드는 거예요.”
선우영은 엄지로 자길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 제 덕분이네요! 그러니까 오늘 저녁 사세요. 저는 고기 좋아합니다. 특히 꽃등심!!”
“…단둘이서요?”
예상치 못한 백영희의 질문.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선우영은 입만 뻐끔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단둘이 먹긴 하겠지만, 저걸 물어보는 의도 자체가 마치 이거 데이트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 선우영.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느닷없이 스마트폰이 울렸다.
띠리리, 띠리리.
선우영은 움찔하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김용대 부장님 전화였다.
“아, 네. 전화 받았습니다.”
“하하하, 선우영! 자네 일하는 건 이제 익숙해졌나?”
“네, …네. 그럼요.”
김용대는 의뭉이 든단 어투로 물었다.
“무슨 일 있나? 평소랑 조금 다른 분위기 같은데?”
“그럴 리가요!!”
선우영은 확 대답하며, 백영희를 힐끔 쳐다봤다.
김용대는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들쑥날쑥하다는 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각 팀의 부장들 호출이 있네.”
“호출이요?”
“2번 회의실로 지금 당장 오게나.”
“아, 예. 금방 가겠습니다.”
선우영은 서둘러 2번 회의실로 향했다.
단둘이서 식사하느냐… 그러니까, 그거 데이트냐고 물어봤던 백영희는 대답도 하지 않고 떠나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삐쭉였다.
- 정면 대결에서 도망치지 마라.
신입사원들에게 나눠줄 검술 교본.
그걸 작성하는 백영희는 뾰로통한 얼굴로 연신 키보드를 두들겼다.
* * *
선우영은 2번 회의실에 도착했다.
각 부서의 부장들이 착석해 있었다. 그들은 새롭게 부장으로 취임한 선우영을 진중하게 응시했다.
입사한 지 고작 6개월 좀 넘은 경력.
그런데 자신들과 같은 A급.
스킬 융합을 이용한 엄청난 성장 속도!
지금까지 써 내려온 커리어를 나열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다.
선우영은 자리에 앉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뜨겁게 느껴졌다.
선우영의 입사 초기.
그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헌터 2팀의 임주영 부장마저 그를 응시했다.
선우영의 옆자리에 있던 헌터 4팀의 부장 황태석.
“하하하! 선우영 부장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여기까지 올라오시다니!!”
목소리가 활기찼다.
그는 선우영이 입사할 때,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봤던 사람이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저희 팀으로 데려가려 안간힘 썼는데. 부장 자리까지 이렇게 빨리 올라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헌터 3팀의 부장 진태호.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목청껏 이야기하는 황태석에게 투덜거렸다.
“조용히 해주세요. 곧 회의가 시작될 겁니다.”
아무래도 시끄러운 걸 싫어하나 보다.
한 소리 들은 황태석은 말없이 진태호를 응시했다.
어째 분위기가 싸하다.
마치, 한마디 퍼부을 징조 같은데…….
끼이익.
문을 열고 김용대가 도착했다.
“음? 자네들 또 싸우나?”
그의 등장에 황태석과 진태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저희, 사이가 좋습니다.”
김용대는 크루그먼 길드의 모든 부장들을 직접 길러온 양반이다.
그렇기에 직급은 같지만, 사제 관계라는 특수성으로 상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김용대는 피식 웃었다.
“자네들 F급일 때부터 키워온 나야! 자네들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아는데…….”
진태호와 황태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투 스타일.
조직 운영.
성격.
어디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전부 반대 성향이다.
그러니 뭘 하든지 사사건건 부딪쳤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자중하겠습니다.”
황태석과 진태호는 김용대한테 그리 대답했다.
“그래, 이제 막 부장으로 진급한 선우영도 있지 않나. 후배한테 귀감을 보여야지!”
김용대는 껄껄 웃었다.
곧이어 서포트 부서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 서류를 하나씩 전달했다.
선우영은 이게 뭔가 살폈다.
<표지>
서울시 마장동 A급 게이트
선우영은 그 글씨를 보자마자 바로 사태 파악했다.
‘A급 게이트에 들어가나 보군.’
A급 게이트.
그곳을 무사히 닫으려면 각 부서의 부장들이 모두 모여야 했다.
‘그래서 부장들을 모두 모았구나.’
선우영은 서류를 한 페이지 넘겨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확인해봤다.
‘서리 거인?’
꽤 골치 아픈 몬스터다.
신장이 4~5미터나 되는 거대한 놈들이다.
속도와 파괴력은 무시무시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피부는 단단해서 상처도 내기 힘들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종 무기도 능숙하게 다루는 전사다.
지능도 높아서 대형을 이루며 싸우고, 활을 쏘아 원거리 공격까지 해온다.
‘게이트의 배경도 문제지.’
혹한의 겨울.
차갑다 못해 피부를 따갑게 하는 눈바람이 휘몰아친다.
A급 게이트부터는 몬스터만 문제가 아니다. 게이트의 환경 자체가 웬만한 사람은 들어가서 견디기 힘들 정도다.
‘서리 거인, 이 녀석들도 불꽃이 약점이긴 한데…….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는 놈들이지.’
선우영은 슬그머니 황태석과 진태호를 번갈아 봤다.
A급 게이트는 위험하다.
회귀 이전에 선우영조차 들어가 보지 못한 곳이다.
‘황태석과 진태호. 둘의 사이가 안 좋은데. 설마하니 게이트에서 서로의 발목을 잡진 않겠지?’
살짝 걱정됐다.
서류를 살피던 황태석과 진태호가 대화를 나눴다.
“평소처럼 하자.”
“정면은 내가 맞지. 몬스터들을 도발해서 정신없게 만들면, 네가 좌우로 움직여 끝장내는 거다.”
“좀 단순한 싸움법이지만, 너랑 움직일 땐 기본 포메이션이 가장 편하니, 뭐 어쩔 수 없지.”
둘의 대화를 들은 선우영은 안심했다.
성격과 전투 성향이 반대라서, 혹여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인다.
이미 그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약간 티격태격하는 불X친구들을 보는 기분이다.
‘전투 성향이 달라도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보네.’
괜히 A급 헌터는 아니었다.
곧이어 서포트 부서 사람이 프로젝트 빔을 켜며 게이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몬스터의 약점이 뭔지.
위급 상황 시에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심지어 동상에 걸리지 않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세세히 알려줬다.
모두 그걸 귀담아들었다.
“이걸로 정보는 끝입니다.”
서포트 부서 사람이 그리 말하며 프로젝트 빔을 껐다.
김용대는 팔짱을 꼈다.
“쉽지 않겠군.”
“어디 A급 게이트가 쉬웠던 적 있었습니까?”
진태호가 기운 빠지는 목소리를 냈다. 참 한결같이 나른한 양반이다.
황태석은 푸하하 웃었다.
“뭘 그렇게 죽상이냐. 매사에 열정을 보여야지!”
“…내가 너냐?!”
진태호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김용대는 의자를 뒤로 끌며 일어났다.
“자자, 설명도 다 들었겠다. 지체할 시간도 없으니 어서 빨리 게이트가 있는 장소로 가자고.”
임주영은 김용대를 바라보았다.
“김용대 부장님, 이번에 신용한 회장님께선 같이 안 가십니까? A급 게이트에 들어갔을 땐 항상 같이 계셨잖습니까.”
“못 온다고 하시더군. 뭐, 그래도 A급이 5명인데 우리끼리 충분하지 않나.”
“알겠습니다.”
임주영은 알았다고 말했지만,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다른 상황.
이게 뭘 뜻하는지 몰랐다.
김용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 모두 이번 전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왜냐하면.
‘후계자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실시하는 마지막 실력점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