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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스킬융합-88화 (88/200)

#88화 거북이는 수영하고 토끼는 뛰어야지.

박정철은 선우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머리가 좋다고?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 걸까.

물론, 자신의 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다.

공부를 잘하긴 했다.

고등학교 땐,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명문대에 진학할 뻔했다.

고3 때 각성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명문대 나와서 판검사하는 것보다 헌터가 돈을 더 많이 버는 시대.

각성했으면 당연히 헌터를 선택 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부모님도 그걸 원했다.

자신도 그게 맞다 생각했고.

더군다나 헌터가 되면 병역의무에서 제외된다.

사회적 혜택도 많았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헌터가 됐다.

주변에선 부러워했다.

각성한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나 팔자가 확 펴진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박정철은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머리가 좋으니 어떤 문제가 생겨도 잘 헤쳐나갈 줄 알았다.

헌터 업계에서 크게 성공하진 못해도 좋은 머리를 이용하면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헌터가 됐는데도 대형 길드의 스카웃이 안 왔다.

좀 실망했지만, 그래도 중소길드에서 실력을 키워 대형 길드로 가는 사람이 많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형 길드 스카웃터들의 기준이 자기 잠재력을 평가하기 적합하지 않아서 그렇다 믿었다.

그래서 중소길드에 취직했다.

여기서 경력을 쌓아 대형 길드로 이직할 생각이었다.

교육생으로 1년간 훈련받을 때, 성적은 평균보다 조금 낮았지만, 문제라고 안 여겼다.

전투는 판단력과 임기응변도 중요했으니까.

육체 능력만 테스트하는 훈련으로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측정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성적이 좋은 얘들?

실전만 나가면 언제든 앞설 수 있다고 믿었다.

판단력과 임기응변은 두뇌에서 나오니까.

근데 아니었다.

처음 나간 실전에서 아주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를 잡지도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다리만 벌벌 떨다 게이트를 나왔다.

상사들이 처음엔 원래 그렇다며 위로해줘서 모두 다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상냥한 거짓말이란 걸 1시간 만에 깨달았다.

훈련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던 녀석들이 첫 게이트에서도 몬스터를 잡고 위풍당당하게 돌아왔으니까.

걔들은 기대주란 소리를 듣더라.

박정철은 그때 처음으로 좌절감을 맛봤다.

조급해졌다.

남들에게 뒤처졌단 생각.

그게 박정철을 마구 옭아맸다.

무서웠다.

훈련에선 뒤처져도 실전에선 자신이 남들보다 잘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전투력이 부족해도 판단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오판이다.

그날부터 죽어라 훈련했다.

은행 대출로 비싼 스킬석을 구매해 흡수했다.

이 정도 했으면 성과가 나올 법도 했는데.

소용없었다.

성과는 항상 바닥을 달렸다.

그렇게 2년 정도가 흘렀을 때.

성과를 내던 동기들은 자신을 앞질러 승진했고 몇몇은 대형 길드로 이직했다.

자신은 기껏해야 주임이나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또 2년을 노력했다.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능력은 그럭저럭 봐줄 만한 얘들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신입사원들의 직급이 자신과 동급이 됐다.

존댓말 하던 녀석들이 이때부터 말을 놓았다. 뭔가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후배들이 자신을 앞지르며 상급자가 됐다.

처음엔 자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던 녀석들이었는데, 이번엔 자신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리고 8년 차가 되던 해.

처음으로 자신보다 어린 녀석들한테 일 처리 이것밖에 못 하냐는 말을 들었다.

뭔가 이상해서 얘기를 들어보니, 이 새끼들이 지네들 실수를 자신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더라.

열 받아서 조목조목 따져서 반박했더니 상사한테 기어오르느냐며 무논리로 공격했다.

그들의 헌터 등급이 자신보다 높았던 탓일까?

문제는 쟤들이 일으켰는데 오히려 길드 대표가 자신을 혼냈다.

젠장! 길드 대표도 자신이 옳다는 걸 인정했다.

인정은 했는데, 상급자가 혼내면 가만히 있으란다. 이게 말이나 되나?

빌어먹을 놈들.

생각하면 할수록 치가 떨렸다.

암만 머리가 좋아도 상사들이 대놓고 난리 치면 방도가 없더라.

헌터 업계는 등급이 실력이자 권력.

등급 낮은 놈이 당하고 있으란다.

그렇게 10년 차.

길드에서 능력 부족으로 잘렸다.

실제로 이룬 업적도 없었으니, 할 말은 없었다.

이때가 서른.

남은 건 대출금 갚고 남은 수억 원이 전부였다.

그땐, 아직 기회가 있다고 여겼다.

돈도 있고.

시간도 남아돌았으니까.

훈련에 제대로 집중해서 실력을 끌어올리자 맘먹었다.

4년을 훈련했다.

그 4년을 투자해서야 간신히 D급이 됐다.

등급도 올렸으니 재취업에 도전했는데,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25번을 모두 떨어졌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헌터로서 내세울 커리어가 거의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간신히 크루그먼 길드의 면접을 보게 됐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건 선우영.

엄청난 재능으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대형 길드 부장에 오른 사나이.

솔직히 부러웠다.

자신은 왜 저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마음이 부서진다.

좌절의 늪에 빠져들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기, 박정철 씨?”

“네.”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저는 자존감 낮은 사람은 싫습니다.”

“…….”

“떨어지든 붙든 일단 할 말 전부 하세요. 후회 남기지 마시고요. 할 말도 못 하고 끝내면 억울하잖아요?”

박정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 맞다.

하고픈 말조차 못 하고 떨어지면 억울하다.

최선을 다하면 후회도 없다.

이렇게 무력하게 떨어지려고 지금까지 발버둥 친 게 아니다.

“모든 물어보십시오!”

축 처졌던 박정철의 분위기가 순간 바뀌었다.

무릎을 손바닥으로 치며,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이는데, 표정이 살아있었다.

선우영은 그제야 맘에 든단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저래야지!

‘박정철은 똑똑한 인물이야.’

헌터가 되겠단 박정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게 옳았다.

웬만한 직업보다 월급을 훨씬 더 많이 버니까.

그러나,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는 발생한다.

박정철은 전투 재능이 심각할 정도로 없었다. 성격 자체도 싸움에 어울리지 않았다.

근데, 그걸 인정하지 못해서 저렇게 아직도 방황하는 거다.

일종의 자격지심이다.

헌터를 이런 식으로 그만두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것이란 공포.

지금까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게 박정철의 진짜 재능을 갈아먹었다.

그러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무한정 악순환만 반복하게 된 끝에 저렇게 됐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마음속에 들어찬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다.

‘결국,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그 전에!!

떨어진 자신감부터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래서 후회하지 말고 하고픈 말을 전부 내뱉으란 조언까지 해줬다.

‘뭐, 자존감은 회복한 모양이고.’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던져야겠다.

“박정철 씨, 크루그먼 길드가 지금보다 더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간, 박정철의 미간이 꿈틀했다.

“제가 선우영 헌터님의 생각을 유추해봐도 되겠습니까?”

“네.”

선우영은 씨익 웃었다.

박정철은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밝혔다.

“크루그먼 길드를 국제무대에 세우고 싶으신 게 아닙니까?”

선우영은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속으론 무진장 놀랐다.

아무런 속내도 내비치지 않았는데, 단숨에 자신의 목표를 알아챘다.

선우영은 본심을 드러냈다.

“사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간단합니다. 방금 그 질문이 헌터에게 할만한 질문이 아니었으니깐요.”

“…….”

“헌터를 평가할 땐 전투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 몬스터 공략법 등을 묻겠죠. 대놓고 길드가 성과를 더욱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묻지 않을 겁니다.”

“해서요?”

“이걸 헌터에게 물었단 의미는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찾고 있단 소리가 되겠죠. 게다가 이미 국내 1위 자리를 다투는 크루그먼 길드입니다. 더욱 성과를 내려면 해외 진출에도 무게를 실어야겠지요.”

“대단하시군요.”

선우영은 감탄했다. 고작 질문 하나로 자신의 생각을 전부 유추해냈다.

박정철을 대화를 이어갔다.

“해외 진출은 좋은 판단이십니다. 국제 게이트 안전 점수가 낮은 국가들은 항시 위험에 빠져있죠.”

“계속해보세요.”

“한국이나 일본, 미국처럼 게이트 방어 선진국들은 사실 레드오션입니다.”

“레드오션?”

“대형 길드들끼리 경쟁해야 하죠. 중소길드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치열합니다.”

“그래서요?”

“반면 헌터보다 게이트가 숫자가 많은 국가들은 경쟁자가 적습니다. 실력도 별 볼 일 없고요.”

박정철은 아주 계산적으로 이익을 논했다.

“경쟁자가 적으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그 국가에서 세력과 영향력을 넓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활용하여 부가적 수입을 얻을 수 있죠. 예로 들어 PS웨펀의 무기라던가…. 아니면 강력해진 영향력을 이용해 국가적 혜택을 받아낸다던가….”

선우영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박정철, 대단한 인물이다. 단시간만에 여기까지 생각해냈단 말인가.

확실히 머리가 좋다.

역시 이 양반은 헌터를 그만두고 머리 쓰는 일을 해야 한다.

선우영은 슬며시 미소를 보였다.

“제 진의를 알아본 사람은 박정철 씨가 처음입니다.”

“그거 영광입니다.”

“이러니까, 더욱이 박정철 씨란 사람이 궁금해지는군요. 어떤 과거 이력을 가졌습니까?”

박정철은 입을 다물었다.

실패한 과거사를 줄줄 흘렸다간 면접에서 무조건 탈락이다.

단어의 선택.

적절한 변명거리.

어필할 부분들.

그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저는 D급 헌터로서……”

“아니, 아니.”

선우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만하란 뜻이었다.

“너무 머리 굴리지 말고, 진솔하게 말씀해주세요.”

“그건….”

박정철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숨을 내쉬었다.

진솔하게 말했다간 합격하긴 힘들다.

왜 안 그렇겠나.

자신의 경력은 무엇 하나 대단한 게 없는데…….

대형길드 가입은 힘들다.

중소길드보다 수준이 높은 중견 길드도 들어가긴 어렵다.

중소길드.

딱 그 정도 노려볼만한 수준이다.

박정철은 이를 악물었다.

선우영이 자길 헌터로 뽑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절 뽑으실 생각이 없으시군요.”

“왜요? 저 뽑고 싶은데요?”

“……?”

박정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 소리인가 싶다.

선우영은 여기부터가 승부라는 걸 눈치챘다.

“박정철 씨.”

“네.”

“본인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머리가 조금 좋은 편입니다.”

“그겁니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박정철 씨의 두뇌가 탐이 납니다.”

“…….”

박정철은 침묵을 머금었다.

선우영은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박정철 씨의 두뇌는 대단합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회장이 된다면 임원으로 곁에 두고 싶어질 정도거든요.”

“!!”

박정철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자기 머리가 좋다고 칭찬받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선우영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너무 놀라웠을 뿐이다.

‘회장이 된다면 날 임원으로 곁에 두고 싶다고? 저 말뜻은 마치 크루그먼 길드 회장직을 노린단 소리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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