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유탄.
며칠 뒤.
선우영은 화곡동 우장산으로 향했다.
도로를 질주하는 크루그먼 길드 차량.
운전은 서포트 부서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 했다.
“하하하, 선우영 헌터님 드디어 A급 헌터가 되시겠네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에이, 아닙니다. 아직 승급시험을 본 것도 아닌데요.”
“특별시험 영상 보니까 합격하고도 남겠던데요?”
“하하하, 그걸 또 보셨습니까?”
선우영은 껄껄 웃었다.
특별시험에서 다른 헌터들을 무찌른 영향인지, 다들 그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서포트 부서 사람들까지도 그랬다.
물론, 크루그먼 길드의 헌터들도 커피 한잔 건네며 얘기하자고 치근덕댔다.
서포트 부서야 선우영의 활약에 감복해서 그럴 거고.
크루그먼 길드의 헌터들은….
‘내가 부장 자리에 앉을 걸 아니까, 미리 연줄 만들려는 거겠지.’
크루그먼 길드는 오로지 실력으로 평가한다.
‘내가 A급이 되면 틀림없이 새로운 헌터 부서가 창설될 거야.’
그 부서의 수장이 되는 거다.
당연히 새로운 부하직원을 뽑게 될 거고, 다른 부서의 헌터들이 이쪽으로 이동하려 할지 모른다.
‘길드의 세력 구도가 재편성되겠군.’
뭐, 그렇다고 해서 같은 길드 사람들끼리 훼방 놓친 않을 거다.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하는 곳이니까.
‘가만있어보자, 부서가 새로 신설되면 뭐부터 해야 하나?’
일단 기존에 같이 다니던 동료들한테 부서 이동하겠느냐 물어보고….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누굴 뽑을까.
고심이 많다.
끼이익.
어느새 화곡동 우장산에 도착했다.
“선우영 헌터님, 도착했습니다.”
“아. 네.”
선우영은 차량에서 내렸다.
눈앞에 게이트가 보였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서포트 부서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차에서 쉬고 계세요.”
선우영은 게이트에 들어갔다.
* * *
게이트에 들어간 선우영.
좌우를 둘러봐도 온통 나무와 넝쿨이 보인다.
‘거대한 밀림이네.’
나무가 어찌나 높게 솟았는지 햇볕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전부였다.
‘황금 원숭이는 모든 무리를 데리고 움직인다.’
나눠서 싸우는 게 아니라 뭉쳐서 싸우려고 하니, 각개격파는 불가능하다.
정면에서 한꺼번에 쓰러뜨려야지, 아니면 잡는 게 불가능하다.
‘뭐, 나 혼자서도 충분할 거야.’
선우영은 손을 꺾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동안 융합한 스킬석만 몇 개인가. 고작 이런 놈들 잡는 데 애먹을 필요 없다.
스르릉.
그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정면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사박, 사박.
나뭇잎을 밟으며 일부러 소리를 냈다.
몬스터들 좀 나타나라고 밑밥 한번 깔아봤다.
그러자 주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잡지 않았다.
‘정찰병일 게 뻔하잖아.’
선우영은 놈들을 못 본 체했다.
‘빨리빨리 움직여서 너희네 대장한테 말해줘라. 침입자 온다고.’
그래야 황금 원숭이가 모든 무리를 데리고 공격해오지.
그러면 찾는 수고가 덜하지 않은가.
“끼이익, 끼이익!!”
“까꺄약, 꺄아악!!”
저 멀리서 원숭이들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황금 원숭이가 무리를 이끌고 행차했다.
아주 거만하게 말이다.
황금 원숭이는 왕관을 쓴 채 가마에 타고 있었다.
다른 원숭이들은 허리를 숙이며 가마를 들었다.
마치 노예와 왕을 보는 듯했다.
황금 원숭이의 손에는 제법 그럴싸한 검이 들려 있었다.
“꺄가, 꺄가.”
황금 원숭이라 무어라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방패와 창을 들고 진형을 세웠다.
쿵쿵쿵.
원숭이들이 방패를 세우고, 창으로 선우영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육중한 몸매로 쏜살같이 달리자 위압감이 뿜어졌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부하들 선에서 끝을 내겠단 황금 원숭이의 오만함이 엿보였다.
선우영은 화염검기를 드러냈다.
화르륵.
“원숭이 새끼가 주제 파악을 못 하네.”
선우영의 화염.
그 열기에 노출된 원숭이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꺄르아아가!!”
“깍깍깍!!”
돌격해오던 녀석들이 쓰러졌다.
자지러지며 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파 죽겠단 듯이!!
화염검기의 저주 효과로 몸이 난도질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유일하게 황금 원숭이만이 선우영을 노려보았다.
놈은 고통을 버텨내고 있었다.
화르륵.
선우영은 화염을 사방으로 발사했다.
울창한 밀림.
나무만이 있던 그곳에 불이 옮겨붙었다.
선우영은 검을 어깨에 기댔다.
자신은 화염에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는다.
불꽃 내성이 있으니까.
반면, 저쪽에 있는 원숭이 놈들도 그럴까?
화염에 불타 죽겠지.
전투환경이 선우영에게 유리하게 변했다.
“크르륵.”
가마에 타고 있던 황금 원숭이.
녀석이 분에 찬 목소리를 내며 가마에서 뛰어내렸다.
쿵!
거대한 몸뚱이가 땅바닥을 밟자 지면이 발바닥 모양으로 움푹 파였다.
녀석이 선우영에게 검을 겨눴다.
“꺄르아악!!”
황금 원숭이가 괴성을 지르며 선우영을 향해 뛰었다.
녀석의 칼날이 푸른색 빛을 띄웠다.
틀림없는 검기였다.
선우영은 그걸 막았다.
뭐, 괴력 자체는 제법이었지만.
그래 봤자였다.
각종 스킬석으로 강화된 선우영을 이길 순 없었다.
검과 검이 맞대어지며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선우영이 어깨에 힘을 주자, 황금 원숭이가 밀려나다 못해 뒤로 튕겨 날아갔다.
바닥을 데구루루 구르는 황금원숭이.
거대한 몸뚱이가 나무를 몇 그루 부수고 나서야 간신히 멈췄다.
“꺄……?!”
황금 원숭이는 믿을 수 없단 눈빛으로 선우영을 바라봤다.
자기가 힘 싸움에서 패배할 줄 몰랐나 보다.
타닷.
선우영은 낮게 뛰어 녀석에게 쇄도했다.
그가 쌍검을 휘둘렀다.
돌진으로 가속도가 붙은 공격!
위력이 확 증가했다.
황금 원숭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둘러 방어하려 했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스걱!!
선우영의 검이 황금 원숭이의 목을 통과해 나왔다.
녀석의 목에 시뻘건 줄이 그어졌다.
스르륵, 툭.
시뻘건 줄을 따라 목이 비스듬하게 떨어지며 몸과 분리됐다.
‘이걸로 보스 몬스터는 끝!’
선우영은 녀석의 시체를 갈라 마석과 스킬석을 챙겼다.
그리고
화염검기가 가진 저주의 효과로 고통에 울부짖는 원숭이들을 차례차례 죽였다.
아파서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처리하기 쉬웠다.
선우영은 시체에서 마석을 마저 채취한 뒤, 불타는 밀림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 나왔다.
홀로 B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선우영.
서포트 부서 사람은 차량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우영 헌터님. 이제 A급 헌터가 되셨군요!!”
“네. A급이 됐네요,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덕담이 오가는 그때였다.
삐리리, 삐리리.
선우영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군가하고 봤더니 신용한 회장님이었다.
“예, 회장님. 선우영입니다.”
“오, 그래. 자네 승급시험은 무사히 합격했나?”
“예. 합격했습니다.”
“그래, 그래! 자네라면 분명 그럴 줄 알았어. 내일부턴 자네도 A급 헌터군.”
“감사합니다.”
“바로 퇴근해야 하는 사람에게 말하긴 그렇지만, 잠깐 길드 좀 들려줄 수 있겠나?”
“네.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는 길드 차량에 탔다.
서포트 부서 사람이 운전대를 잡았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
뒷좌석에 앉아 있던 선우영은 이참에 황금 원숭이에게 얻은 스킬석을 사용했다.
유탄, 이걸 화염검기와 융합시킬 생각이다.
[유탄]
기름을 구체 형태로 발사한다.
설명만 보면 별거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름과 화염의 조합은 최강이거든.’
광범위한 공격을 해야 할 때, 기름과 불을 사용한다면 공격 범위가 끝내줄 거다.
위력도 대단할 거고.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되겠지.
선우영은 유탄과 화염검기를 융합시켰다.
미끄러운 촉감이 손바닥에 느껴지는 듯싶더니 금방 사라졌다.
스킬 융합이 끝났다.
‘으윽, 미끈거리는 느낌 진짜 안 좋네.’
미끈거리는 촉감이 사라졌지만, 진짜 기름이 묻었던 듯해서 기분이 별로였다.
‘뭐, 이걸로 또 강해졌네.’
이후
서포트 부서 사람에게 게이트에서 있었던 상황을 설명해줬다.
“아휴, 대단하시네요.”
서포트 부서 사람은 감탄사를 내질렀다.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는 바람에 몇 줄 쓸거리도 안 나왔다.
그렇게 몇십 분을 달리자, 크루그먼 길드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선우영은 신용한의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회장님, 선우영입니다.”
“어, 그래. 들어오게.”
선우영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용한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내일부턴 자네도 A급이군.”
“네. 그렇습니다.”
“A급이 됐으니, 이제 자네가 새로운 부서를 슬슬 이끌어보는 게 어떤가.”
선우영은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신용한은 그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헌터 5팀을 신설할 생각이네. 자네가 거기 부장직을 맡아주게나.”
“알겠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를 거야. 자네 혼자만 승승장구하는 게 아니라 아랫사람들도 챙겨야 하니까.”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선우영이 빠릿빠릿하게 대답하자 신용한은 껄껄 웃었다.
대답이 맘에 들었나 보다.
“그럼, 선우영이! 오늘은 이만 퇴근해보게 내일부턴 선우영 부장이라 불러야겠군.”
“듣기 좋은데요! 하하하, 그러면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우영은 신용한의 집무실을 나왔다.
내일부턴 부장님 소리 듣게 생겼다.
선우영은 백영희와 조용석 그리고 김철수에게 커피나 한잔하자고 옥상으로 불렀다.
새로운 부서의 부장이 됐다.
같이 일할 동료.
그들을 자신의 부서로 포섭해야 했다.
선우영은 백영희와 조용석 그리고 김철수한테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오, 마침 쌀쌀해서 따뜻한 게 땅기던 참인데.”
“잘 먹겠습니다.”
“잘 마실게요.”
그들은 커피를 홀짝였다.
반쯤 마셨을 때, 선우영이 본론을 꺼냈다.
“내일 새로운 부서가 생기는데, 제가 공교롭게도 부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이쪽 부서로 오시겠어요?”
“당연하죠.”
“선우영 씨가 가는데 저희가 빠지면 섭섭하죠.”
“저도 가겠습니다.”
다들 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김철수와 조용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을 걸었다.
“그나저나 내일부턴 선우영 부장님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그러게요? 안 그렇습니까, 선우영 부장님?”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다른 사람들 없을 땐 평소처럼 불러요.”
“에이 그럴 수 없죠, 선우영 부장님.”
“맞습니다. 선우영 부장님.”
“아이, 진짜. 크크크.”
그렇게 한참을 노닥거린 그들은 이만 헤어졌다.
김철수와 백영희, 조용석을 다시 일하러 갔다.
선우영은 포르쉐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정운에게 자신의 부서로 올 생각이 있느냐 물었다.
“당연히 가죠!!”
정운은 그걸 말이냐고 하냐는 듯 대번에 대답했다.
선우영 같은 헌터가 되고 싶었던 정운이다. 그와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어디든 쫓아갈 생각이었다.
선우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같이 다니던 동료들을 자신의 부서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새로 뽑을 헌터들이나 부서 이동으로 넘어올 사람들을 관리해야 할 텐데….
뭐 이래저래 바빠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