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승급조건.
듀라한을 무찌르고 사람들을 구한 선우영.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선우영은 제주도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듀라한 잡느라 좀 지쳤다.
길드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하루 정도 더 휴가를 썼다.
신용한 회장님은 즉시 오케이를 외치셨다.
“좋아, 선우영이!! 자네가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준 덕분에 길드의 주가가 또 반등했네. 휴가는 물론이고 보너스로 길드가 보유한 붉은 스킬석도 줄 테니 기대하게.”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는 무슨!! 우리 길드 에이스를 키우는 건데, 푸하하하.”
신용한은 너털웃음을 보였다.
선우영은 통화를 끊었다.
펄럭.
커튼을 젖혀 창문으로 바깥 상황을 살피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팬들과 기자들이 바글바글했다.
“많기도 많다.”
선우영은 혀를 내둘렀다.
다행히 호텔 직원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이번 사건 해결로 인기가 더 늘었네.’
딱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선우영은 듀라한을 무찌르고 얻은 스킬석을 바라보았다.
골든 타임 게이트에서 사람들을 구해주자 본의 아니게 스킬석을 얻었다.
‘이건 보너스로 생각해야지.’
[저주]
상대방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흐음, 나쁘지 않은데?”
이 스킬에 직접 당해본 선우영이었다.
저주 스킬 때문에 고생 좀 해봤으니, 제법 쏠쏠하게 사용해볼 생각이다.
선우영은 저주를 화염검기와 융합시켰다.
이제 화염검기를 쓰기만 해도 적들이 통증에 휩싸여 방어조차 제대로 못 할 거다.
쏴아아아.
스킬석이 빛무리가 되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큭?!”
빌어먹을, 스킬을 융합하는데 통증이 느껴진다.
“후우.”
숨을 고르며 통증을 가라앉혔다.
선우영은 침대에 누워 손깍지를 뒤통수에 댔다.
‘뭐, 당분간은 아무 사건사고도 없을 테니…… 푹 쉬면서 놀아야겠다.’
선우영은 뉴스를 틀었다.
근데, 그런 자신의 바람은 이뤄지기 어려워 보였다.
- 현재, 헌터 협회에서는 승급조건을 채우지 못한 선우영 헌터가 A급 승급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회의를……
뉴스앵커의 발언을 들은 선우영.
리모컨을 침대에 휙 던졌다.
“어떻게 쉬려고 치면 또 일이 생기냐.”
그는 괜스레 투덜거렸다.
* * *
헌터협회.
협회장 홍대호는 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안건은 하나.
아직 승급조건을 채우지 못한 선우영에게 A급 승급시험 자격을 주느냐였다.
협회에 소속된 길드들.
그중에서도 대형길드들만이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
회장이 직접 참석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임원을 보낸 곳도 있었다.
“흐음, 꽤 재미있는 회의로군요.”
디파이 길드.
그곳의 회장 이한성은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S급 탱커로 유명했다.
황금 방패란 이명이 있는 헌터였다.
나이는 4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끔한 회색 양복과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매혹적인 눈매.
도무지 40대라고 보기 힘든 미모였다.
영화배우라 해도 믿을 수준이다.
홍대호는 이한성에게 눈짓을 줬다.
“맘에 안 드십니까?”
“뭐,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었으니까요.”
“헌터 협회 조례에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승급조건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활약상이 있다면 승급시험 자격을 부여한다고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거 만들어졌을 때, 함께 있었으니까요.”
이한성은 빈정거리듯 한쪽 입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홍대호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대놓고 불만족스러운 티를 보였다.
홍대호는 듀라한을 단독으로 해치운 선우영의 활약상을 높이 평가해, A급 승급시험 자격을 주려고 했다.
문제는 다른 길드들의 반응이었다.
크루그먼 길드가 빠르게 성장해 1위의 자리를 가시권에 넣자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용한을 지긋이 쳐다봤다.
‘선우영 덕분에 크루그먼 길드 주가가 엄청나게 높아졌다지?’
‘크루그먼 길드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요주의 인물은 선우영이야.’
그렇기에 다른 길드들이 반대에 나섰다.
“선우영 헌터가 홀로 듀라한을 쓰러뜨린 건 대단하지만, 그게 승급조건을 대체할 정도인지 모르겠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협회장님께서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길드들의 반대.
크루그먼 길드의 회장 신용한은 반박했다.
“그거 섭섭한 말씀이군요. 선우영은 듀라한을 단독으로 쓰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사망자 없이 시민들을 지켜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활약상이라 생각합니다만?”
“허허허, 자기 식구라고 그렇게 감싸는 겁니까?”
이한성이 대뜸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손톱 틈을 이리저리 살피며 건들거리는 태도를 보여줬다.
“……말에 가시가 있군요.”
신용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노로 목소리마저 들쭉날쭉했다.
이한성은 피식거렸다.
“아니, 너무 과민반응 아니오? 이거 무서워서 말을 하겠나.”
“이봐, 이한성!! 우리 사이가 평소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자리에선 예의를 지키게!!”
신용한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한성은 몸이 움츠러드는 연기를 하며 장난기 서린 목소리를 냈다.
“아이쿠, 무서워라.”
그 모습에 신용한이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이한성은 얄밉게 썩은 미소를 보여줬다.
그러자 네오 길드의 임원이 중재하며 대화를 이끌었다.
“그렇게 싸우지 맙시다. 결국, 결론은 이거 아닙니까? 선우영의 실력이 A급 시험을 쳐도 될 정도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네오 길드 임원은 특이한 제안을 던졌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선우영에게 특별 시험을 보게 해서 합격하면, A급 승급시험 자격을 주는 겁니다.”
“그거 명안입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여기저기서 찬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용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공기가 싸늘하다.
사방에서 견제의 눈빛이 느껴진다.
‘이 빌어먹을 놈들!!’
크루그먼 길드가 더욱 성장할까 봐 어떻게든 발목 잡겠단 식으로 나오는데….
그게 얼마나 얄밉던지, 신용한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네오 길드 임원은 계속해서 주둥아리를 나불거렸다.
“B급 헌터 5명과 겨루게 하면 어떻습니까? 특별 시험을 보게 해서, 통과하면 A급 승급시험 자격을 주는 겁니다.”
“그거 좋군요. A급 승급시험이 B급 게이트를 홀로 닫는 게 아닙니까.”
“B급 5명이서 B급 게이트를 닫을 수 있으니…… 나쁜 시험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다른 길드들의 의견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헌터협회장 홍대호는 그 광경이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쯧쯧. 후배가 성장하는데 선배 된 사람들이 도대체 뭣들 하는 건지.’
탐탁지 않지만 어쩌겠나.
다들 저러고 있으니.
게다가 선우영이 B급 5명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진짜로 이번 논의를 뒤로 물려야 했다.
그 정도 실력으론 A급 승급시험을 치를 수 없을 테니까.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홍대호는 그들의 의견을 어쩔 수 없이 수렴했다.
단, 조건을 달았다.
“대신 특별시험을 통과하면 두말없이 선우영에게 A급 승급시험 자격을 주는 겁니다?”
“예. 그렇게 진행되면 저희는 불만 없습니다.”
크루그먼 길드 이외에 다른 녀석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신용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맘에 들지 않지만 다들 저렇게 필사적으로 반대하며 여론을 모으니 도저히 방도가 없었다.
“흥!!”
그는 콧바람을 강하게 불었다.
팔짱을 끼며 다른 길드들을 째려보았다.
‘그래. 다들 그렇게 선우영의 발목을 잡아보라지, 우리 차세대 에이스라면 전부 이겨낼 테니까!!’
* * *
어느덧 밤이 되었다.
씩씩거리며 집으로 퇴근한 신용한.
회의 내용을 선우영에게 전화로 알려주려던 순간.
삐리리, 삐리리.
스마트폰으로 불청객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한성?! 이 자식이 갑자기 전화는 왜??’
화나서 확 무시해버리려다가, 그래도 길드의 회장이니 꾹 참고 통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이고, 화가 단단히 나셨나 봐? 목소리가 벌써 안 좋다.”
신용한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고 싶어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
“좀 참아, 좋은 거 알려주는 거니까. B급 다섯 명이 모여서 선우영과 시합을 펼치잖아? 그거 함정이 좀 있던데….”
“뭐라고?!”
신용한은 목소리가 높아졌다.
함정이 있을 줄 예상한 터라 소식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다만, 그걸 이한성이 가르쳐준단 게 놀라웠지. 자신과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으니까!!
이한성은 혀를 찼다.
“솔직히 난 자네가 싫어. 하지만 선우영은 다르거든?”
“뭐?”
“내 아들이 누군지는 알지?”
신용한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어이없단 웃음을 터뜨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한성의 아들.
그는 다름 아닌 이소율이었다.
이소율이 누군가?!
골렘으로부터 죽을 뻔했을 때, 선우영이 구해줬다.
이소율은 보답하겠다며 신입랭킹전의 함정을 선우영에게 가르쳐줬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맞붙자고 약속했지만….
만용석한테 패배해 크게 다칠 뻔한걸, 선우영이 또다시 구해줬다.
둘의 사이는 돈독했다.
“내 아들의 은인이라서 이번 한 번만 도와주는 거야. 두 번은 없어!!”
이한성이 까탈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신용한은 그가 왜 회의에서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는지 깨달았다.
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공식 석상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격이었으니까.
‘전부 연기였군.’
자신과 대척점에 있단 모습을 보여, 자연스럽게 다른 길드들과 합류해 정보를 빼내 왔다.
함정을 가르쳐 줄 작정이었다니.
‘이건 예상도 못 했군.’
신용한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래서 함정이 뭐지?”
“뭐, 별거 아니더라고. 네오 길드에서 A급 승급시험을 목전에 둔 헌터를 내보내겠대.”
“뭐?”
“선우영이랑 비슷한 실력을 갖춘 헌터 1명을 다른 얘들과 섞어서 출전시킬 생각인가 봐.”
B급 5명을 쓰러뜨리는 게 특별시험 내용.
하지만 실상은 A급 1명과 B급 4명을 쓰러뜨리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함정도 준비했던데?”
“그게 뭐지?”
“특별시험이 끝나기 전까지 스킬석을 얻지 못하게 최대한 방해하겠다던데?”
“뭐야!!”
신용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우영의 폭발적인 성장은 스킬융합 덕분이 아닌가.
비록 특별시험 때까지긴 하지만, 스킬석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 있었다.
이한성은 소리를 지른 신용한에게 신경질을 냈다.
“아이!! 화통을 삶아 먹었어?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귀가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함정은 그게 전부인가?”
“그게 전부야. 그럼 통화 끊자고.”
이한성은 통화를 끊었다.
신용한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함정을 정면 돌파하려면….
‘선우영에게 스킬석을 가능한 한 많이 쥐여줘야 하는데.’
다른 길드가 특별시험 때까지 스킬석 얻는 일을 방해하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가야 할까.
고심하던 신용한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참에 길드가 가지고 있는 붉은 스킬석을 선우영한테 줘버려?”
몇 개 정도면 좋을까.
‘기왕 주는 거면 시원하게 5개 정도 줘볼까?’
만약 5개 전부 사기급으로 좋은 스킬들이 걸린다면….
‘A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헌터가 되겠군.’
이거 아무래도
‘조만간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야겠는데?’
선우영이 이끌 헌터 5팀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