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치사한 남자
소개팅 당일이 됐다.
선우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잠옷 차림에 까치머리.
그는 이빨을 닦으며 수도꼭지를 틀었다.
쏴아아아.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시원하다.
선우영은 이빨을 전부 닦은 뒤, 샤워까지 끝냈다.
탈탈탈.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젖은 물기를 닦아내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렸다.
그다음 헤어젤로 머리를 만졌다.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고.
앉아 있는 곳을 세워서 볼륨감을 줬다.
“머리는 끝났고.”
드레스룸으로 가서 옷을 골랐다.
“뭘 입지?”
그는 주섬주섬 옷을 골랐다.
일단 무난하게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청바지를 골랐다.
선우영은 전신 거울에 섰다.
“흐음.”
자기가 봐도 꽤 잘생겼다.
이 정도면 봐줄 만하니, 소개팅 나가도 책잡히진 않겠다.
선우영은 현관에 섰다.
“운아!! 아저씨, 나갔다 올 테니까 오늘은 혼자 집 지켜라.”
“네~!”
정운은 얼른 대답했다.
끼이익.
선우영은 문을 열고 나가, 자신의 포르쉐에 탔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다.
오후 2시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지금 딱 가면 될 거다.
‘어디 보자. 카페에서 커피 좀 마시고. 얘기 들으면서 멍 때린 다음, 밥 먹고 헤어지면 되겠네.’
선우영은 핸들을 잡았다.
부르릉.
포르쉐가 롯템타워 시그니엘의 주차장을 나와 도로를 달렸다.
* * *
딸랑딸랑.
선우영은 카페에 들어갔다.
굉장히 고급 카페라서 아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었다.
신하윤이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선우영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살폈다.
현재 시각 1시 40분.
약속 시간 2시가 되기 전까지 20분이나 남았다.
선우영은 신하윤의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신하윤 씨죠?”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우영 씨.”
“일찍 나오셨네요?”
“네, 선우영 씨 만나는 게 기대돼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신하윤은 옅은 미소를 보였다.
선우영은 그녀에게 어떤 음료가 마시고 싶냐고 물었다.
“전 초코라떼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선우영은 바리스타에게 가서 초코라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는 쟁반에 음료를 담고, 신하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선우영은 그녀의 앞에 초코라떼를 대령했다.
“감사합니다.”
신하윤은 초코라떼를 곧장 한 모금 마셨다.
선우영은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
‘예쁘긴 하네.’
신용한 회장님이 왜 그렇게 딸 자랑을 했는지 알겠다.
긴 속눈썹.
꽃사슴 같은 눈동자.
얼굴이 주먹만 했다.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청순가련한 문학소녀 같은 느낌?
분위기가 그랬다.
“신하윤 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저는 웹소설을 씁니다. 요즘 방영하는 남편 키우기 드라마가 제 원작이에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선우영은 칭찬하며 빙긋 웃어줬다.
지금까진 분위기가 나쁘진 않다.
“선우영 씨는 북한 수복전에서 활약하셨다는데,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선우영은 북한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신하윤은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집중해서 듣던지, 선우영이 부담감을 느낄 정도였다.
고개를 쭉 빼고 눈을 반짝였으니까.
‘왜 이렇게 관심을 보이지?’
선우영은 머릿속으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웹소설 작가라서 소재를 얻기 위해 저런 행동을 보일지 모른단 생각이 말이다.
선우영은 두 개 중에 뭐가 맞는지 궁금해졌다.
신하윤은 다른 질문도 던졌다.
“스킬 융합 능력을 깨달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죠. 나한테 이렇게 대단한 재능이 있었구나 싶었으니까요.”
“음. 그러셨구나.”
“신하윤 씨는 학창 시절 어땠나요? 대박 난 웹소설 작가라서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하네요.”
“평범했어요. 고3 때 스트레스 풀려고 웹소설 봤고, 대학교 입학했을 때 소설을 썼고…… 지금까지 오는데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대단하시네요.”
선우영은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뭐, 저렇게 대박이 나려면 엄청나게 고생했겠지.
“정말 힘드셨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고…. 정말이지 도 닦는 기분으로 열심히 살아야 성공하니깐요.”
“그래도 저는 그런 게 나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즐거웠거든요.”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선우영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저 자리만큼 올라간 사람이라면 엄청난 고생을 했을 텐데.
그걸 즐겼다니!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다 싶었다.
아무래도 신하윤은 타고난 작가가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로도 둘은 이래저래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몇 시간 정도 얘기하자 말할 것도 떨어졌다.
신하윤은 빨대로 음료를 휘휘 저으며 말없이 컵만 바라봤다.
그리고 5시쯤 됐다.
할 말도 다 떨어져서 뻘쭘하고.
“좀 이르지만, 저녁 어떠세요?”
선우영이 제안했다.
“그거 좋네요.”
“음, 파스타나 스테이크 좋아하세요?”
“아……. 제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아, 그러세요.”
소개팅 나오면 보통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찾기 마련인데, 김치찌개?
선우영은 여기서 대략 감을 잡았다.
‘아, 이 사람 나한테 관심 없구나. 스킬 융합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 소재 연구하고 싶었던 거지.’
어쩐지, 뭔가 느낌이 이상하더라니.
선우영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차에 태우고, 얼큰하게 김치찌개 끓이는 술집으로 향했다.
거기서 소주 몇 병을 깠다.
술이 좀 들어가자 막혀있던 얘기들이 술술 터져 나왔다.
신하윤은 악플 받았던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래서 그 독자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설마?”
“하차합니다. 작가님도 상하차나 하세요.”
“와, 못됐다.”
선우영과 신하윤은 술잔을 부딪쳤다.
이젠 소개팅 분위기고 나발이고, 그냥 술 먹는 자리가 됐다.
“이제 선우영 씨 이야기도 좀 해보세요.”
“저요? 저는…….”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처음엔 돈이 이 세상에 전부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요?”
“살아보니 아니더라고요. 돈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날 지지해주는 동료들을 만났어요. 정말 큰 힘이 됐죠. 그리고 힘들어하는 아이…… 정운도 보였죠. 그 아이도 도와주고, 이러저러한 사건에 얽히다 보니깐…….”
선우영은 술을 한잔 들이켰다.
그는 피식거렸다.
“힘든 사람들, 사건·사고 고쳐보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 같은 생각이요.”
“이야, 좋은 동료들을 얻으셨나 봐요?”
“당연하죠. 그중에는 무진장 예쁜…….”
선우영은 백영희가 떠올라 그녀 얘기를 하려다 순간 아차 싶었다.
술기운이 확 깼다.
“아, 죄송합니다. 소개팅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꺼내다니.”
“괜찮아요. 선우영 씨도 소개팅하고 싶지 않은데, 우리 아빠 부탁으로 끌려왔죠?”
“혹시 신하윤 씨도?”
“뭐, 저는 겸사겸사 그 유명한 선우영 헌터한테 소재 좀 얻어볼 심상이었죠.”
신하윤은 솔직한 본심을 털어놓았다.
그녀도 과거 얘기를 꺼냈다.
“제가 S급 헌터의 딸이잖아요.”
“예.”
“그래서 사람들이 신하윤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더라고요. 뭐만 하면 신용한의 딸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었어요.”
“아, 그러셨군요.”
“남자를 만나도 신하윤라는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신용한의 딸이라서 사귀기도 하고…….”
“…….”
“우리 아빠는 내가 예뻐서 남자들이 줄을 섰다고 착각하시는데, 신용한의 딸이라서 사람들이 줄을 섰거든요.”
꽤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신하윤은 개인으로써 살아간 게 아닌, 신용한의 딸로서 여태까지 살아왔다.
어떤 업적을 세워도 사람들은 그녀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신용한의 딸이 제법 괜찮단 식으로 말했다.
특히나 높으신 분들이 집으로 올 때면 자기 이름보단, ‘신용한의 따님분이시군요.’라며 아버지의 이름부터 꺼내곤 하였다.
그게 어찌나 싫었던지.
그래서 웹소설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자기도 한번 써보고 싶단 생각에 한번 써봤는데….
악플이 주르륵 달리고.
재미있다는 사람들의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처음이었다.
“근데 소설을 쓸 때면 저는 S급 헌터의 딸이 아니라 신하윤 작가로 취급받더라고요.”
“기쁘셨어요?”
“뭐, 웃기긴 하지만. 처음으로 나라고 하는 사람을 인정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소설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고요.”
선우영은 그녀의 빈 잔에 술을 따라줬다.
자신이나 신하윤이나 마음에 상처가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끼리 상처 핥아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여겼다.
그렇게 술자리가 끝나고.
선우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술을 마시느라 운전할 수 없어서 택시를 불렀다.
딸깍.
차 문을 열고 차량에서 내리는 신하윤.
그녀는 뒤돌아 선우영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던졌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앞으론 여자 만나는데, 딴 여자 얘기는 하면 안 돼요?”
“아, 하하하.”
선우영은 머쓱해서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농담을 던졌다.
“설마, 에프터 신청?”
“설마요. 앞으론 예쁘다고 말씀하셨던 여자분 노려봐요.”
“아, 그분은….”
“저 같은 미인을 보고도 그 여자가 생각났다면, 어쩌면 선우영 씨가 그분을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요. 본인 감정을 몰라서 그러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음…… 로맨스 웹소설 작가의 감이랄까요?”
“여자의 감이었다면 믿을 뻔했네요.”
“참, 웃겨.”
신하윤은 키득키득 웃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선우영은 택시를 타고 자신의 포르쉐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해, 대리기사를 불렀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 어쩌면 선우영 씨가 그분을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요.
신하윤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자신이 백영희를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정말 웃기는 소리다.
백영희는 좋은 동료다.
미래의 검제이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헌터다.
동료 이상의 감정은 없다.
‘근데, 왜…….’
어째서 동료를 떠올리는데 그녀가 먼저 떠올랐을까?
‘나도 모르겠다.’
선우영은 집으로 가던 길에, 어느 가게를 발견했다.
“대리기사님. 잠깐 저 가게 좀 들리죠.”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구입했다.
* * *
월요일이 되었다.
선우영은 길드로 출근했다.
그의 손에는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이고, 월요병이야.”
선우영은 의자에 앉으며 옆자리에 있는 백영희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살짝 딱딱했다.
“안녕하세요, 백영희 씨.”
“네, 안녕하세요. 토요일 날 소개팅은 즐거우셨나요?”
백영희는 미소를 지었다.
너무 딱딱한 미소라서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소개팅 에프터는 없네요.”
“차였어요?”
“반반이에요.”
백영희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찼으면 찬 거고, 차였으면 차인 거지. 반반은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백영희 씨, 이거 선물이에요. 토요일 날에 가게가 보여서 한 번 사봤어요.”
“아, 고맙습니다.”
백영희는 선물을 받았다.
그녀는 그러다 토요일, 소개팅이 있었던 때에 선물을 샀단 말에 조금 놀랐다.
이건… 소개팅하면서도 자기 생각이 떠올랐단 소리가 아닌가.
선물은 뭔가 봉투를 열어봤더니.
‘온천 입욕제랑 녹차?’
지난주 금요일, 온천에 가고 싶다고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걸 기억하고 선물을 사 오다니.
백영희는 봉투에서 녹차를 꺼내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고는 딱딱한 미소를 자연스럽게 바꿨다. 빙그레 올라가는 입꼬리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백영희는 자기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말, 치사해.”
이러면 어떤 여자가 그에게 빠져들지 않겠나.
드르륵.
백영희는 뚜껑을 따고 녹차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