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쫄리냐?
신용한과 김용대.
그들은 선우영 일행을 데리고 평안북도 위주군으로 들어갔다.
리치의 영역.
안개에서 싸늘한 기운이 풍겼다.
“으으으.”
정운은 손바닥으로 팔뚝을 문질렀다.
주변이 으스스했다.
김철수와 조용석은 바짝 긴장해 몸이 굳어있는 게 보였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으니까.
백영희와 선우영은 주변을 날카롭게 경계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반면 S급 헌터 신용한과 그의 파트너 김용대.
그들은 긴장감이 덜했다.
A급 몬스터를 여러 번 상대해봐서 무섭진 않았다.
선우영은 이동하면서 보고를 올렸다.
“평안북도 위주군으로 오면서 주변에 있던 몬스터를 전부 정리해 시체까지 훼손시켰습니다. 리치가 시체를 이용해 대군을 이끄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잘 조치했군!”
신용한이 거대한 도끼, 대부를 어깨에 기댔다.
그는 선우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리치를 상대할 땐 주변에 시체가 없게 하는 게 중요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훼손시켜야 했고.
‘참 대단하단 말이야.’
그걸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 해냈다.
상황판단 능력이 제법이다.
‘역시 선우영은 우리 길드에 들어온 복덩이야.’
신용한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휘이익.
신용한을 향해 단검이 날아왔다.
그는 아무렇지 않단 듯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단검을 끼워 막아내고, 날아온 장소로 휙 던졌다.
퍼억!!
날붙이가 살점을 꿰뚫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시체들이 나타났다.
죽은 군인들과 헌터들로 이뤄진 시체 부대.
휘이익.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며 안개가 천천히 걷혀갔다.
그러자 다른 시체들도 보였다.
이곳에 있었던 시민들.
그리고 짐승들.
리치를 따르는 몬스터들까지.
숫자만 따져도 족히 100은 넘어 보였다.
하늘 위에는 리치가 있었다.
김철수는 자신의 주먹을 강철로 바꾸며 침을 삼켰다.
“아따, 숫자 한번 많고만.”
스르릉.
선우영과 백영희는 검을 뽑았다.
신용한은 어깨에 기댄 대부를 양손으로 잡고 우렁차게 소리쳤다.
“전원 전투 준비!! 기본 포메이션으로 싸운다.”
그의 지시는 탁월했다.
함부로 움직이는 게 아닌 합동하여 싸우자는 이야기.
“나는 리치와 싸우겠다! 나머지는 김용대의 지시를 따르도록!!”
“알겠습니다.”
선우영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신용한은 땅바닥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리치를 공격했다.
리치가 손을 뻗어 방어막을 쳤고.
신용한의 대부가 무거운 일격을 날리며 방어벽에 실금을 만들었다.
지상에서는 김용대와 선우영 일행이 시체들과 싸웠다.
채앵.
병장기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시체 중에는 A급 헌터였던 추신오도 있었다.
탱커로 뛰어난 방어력이 장기였다. 그의 상대는 김용대였다.
칼날과 방패가 부딪쳤다.
군인 시체는 총구를 당기며 총을 쏘았다.
정운은 그림자로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 총탄을 모두 방어했다.
철컥, 철컥
군인 시체들이 쏘던 총에서 탄알이 모두 떨어졌다.
“끄어어억!!”
이번엔 날붙이를 든 시체들이 돌격했다.
정운이 그림자를 치웠다.
선우영은 혹시나 동료들이 모를까 봐 시체 잡는 법을 가르쳐줬다.
“머리를 노리세요! 머리가 박살 나면 시체들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다른 곳을 부숴도 놈들은 계속 싸울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김철수는 복싱 자세를 잡았다.
시체들이 탱커인 그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부웅.
김철수는 허리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었다.
그 반동을 이용해 주먹에 원심력을 실어서 때리니, 그야말로 폭풍 같은 난타가 연이어졌다.
복싱의 기술 뎀프시롤이었다.
퍼억, 퍼억.
시체들이 강철 주먹에 얻어맞고 패대기쳐지듯 뒤로 붕붕 날아갔다.
그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이어서!
김철수는 그동안 새롭게 익힌 스킬을 사용했다.
“도발-!”
오러로 상대를 도발시켜 자신을 공격하게 만드는 스킬.
도발은 정신 조작계 스킬이었지만, 탱커들에게 굉장히 유용한 능력이었다.
“크오오오.”
정신 나간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김철수에게 달려드는 시체들.
덕분에 선우영과 백영희는 싸우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 마련되었다.
화르륵.
선우영은 척력으로 강해진 화염검기를 뽐냈다.
칼날의 길이보다 더 길어진 공격 범위! 척력의 밀어내는 힘을 가능한 한 날카롭게 좁혔다.
검을 한번 휘두르자 다섯 마리의 시체가 목이 잘렸고.
두 번 휘두르자 시체 열 개가 땅바닥에 누워 꼼짝 못 했다.
피지컬.
검술이 아닌 오로지 힘으로 시체들을 쓰러뜨려 나갔다.
백영희는 쌍검으로 요리조리 모든 공격을 피하며 시체들의 목을 잘라냈다.
굉장한 노련미가 보이는 검술이었다.
조용석은 깃발을 소환했다.
콰앙.
깃발을 땅바닥에 꽂으며 모두에게 버프를 걸어줬다.
그리고 창을 들어 시체와 싸웠다.
선우영 일행을 막을 수 있는 시체는 없을 것 같았다.
터벅, 터벅.
얼굴에 붕대를 감은 시체가 나타나기 전까진.
뭔가 기묘한 시체.
한쪽 팔에는 창이 들려 있었고, 다른 팔에는 검을 들었다.
게다가 걸어오는 자세부터가 남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절도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척 보기에도 어디선가 훈련을 받아본 헌터 같았다.
선우영은 그 시체를 보고 눈매를 가늘게 떴다.
기도에서 범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타닷.
녀석이 선우영을 쇄도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마치 굽이치는 강물이 바위를 할퀴듯 날카로우면서도 거침없었다.
놈의 창이 선우영을 향해 뻗어나갔다.
채앵.
선우영은 칼등으로 날아드는 창날을 막았다.
“크윽!!”
선우영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그의 육체가 뒤로 날아갔다.
촤아악.
선우영의 신발이 땅바닥을 끌고도 몇 미터를 밀려나서야 멈췄다.
신발의 밑창이 전부 달아서 못쓰게 됐다.
선우영은 혀를 찼다.
“젠장! A급 각성자였냐.”
옷에 김대홍이란 글씨가 쓰여 있는 걸 보아하니, 북한에 있던 A급 각성자 같은데….
선우영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신용한은 리치를 잡느냐 바쁘고.
김용대는 리치에게 조종당하는 A급 헌터 시체와 싸우느라 바쁘다.
다른 동료들은?
도와준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크게 다칠 수 있다.
실력 차가 크니까.
“선우영 씨!!”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다급히 그를 부르는 백영희.
“괜찮습니다. 저 혼자 싸울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선우영은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었다.
그는 검으로 적을 겨눴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흥분하면 안 된다.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오러를 날카롭게 가다듬고.
극한으로 감각을 끌어올려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후우우우.”
선우영은 숨을 내쉬며, 칼날의 화염을 극대화했다.
그에게 다가오는 김대홍의 시체.
녀석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뜀박질로 바뀌었다.
아주 직선적이었다.
선우영은 공격을 받아치지 않고 흘려 넘기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A급과 B급의 차이는 꽤 컸다.
속도와 공격력은 김대홍의 시체가 몇 수 위였다.
‘삼환검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겠네.’
유연한 보법으로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반격도 못 하고 계속 밀렸다.
선우영의 회피 동작에 익숙해졌는지, 김대홍의 공격이 점점 맞기 시작하였다. 선우영의 몸에 작은 상처들이 생겨났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 안 가 치명상이 생길 거다.
선우영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면승부로는 못 이긴다.’
허점.
그걸 노려서 싸워야 한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투명화! 결정적인 순간에 그걸 사용해 김대홍을 쓰러뜨려야 한다.
투명화를 오랫동안 써서 싸우면 분명 놈은 해법을 알아낼 거다, 비록 시체이긴 하지만 어쨌든 A급 각성자니까!!
선우영은 틈을 기다렸다.
휘익, 휘익.
김대홍의 창칼이 실로 날카롭게 움직였다.
그 순간.
녀석이 강력한 일격을 날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동작이 커졌다.
선우영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지금이다!
녀석의 동작이 커진 지금, 빈틈이 생겼다.
선우영은 투명화를 썼다.
그의 신형이 세상에 녹아들며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대홍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선우영은 모든 오러를 칼날에 집중시키고 화염검기를 최대화했다.
타닷.
선우영은 김대홍의 옆으로 이동해 검을 휘둘렀다.
스걱-!!
칼날이 김대홍의 목을 통과해 나왔다.
빙글빙글 돌며 허공을 노닐다 지상으로 떨어진 김대홍의 머리.
녀석의 몸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선우영은 자신의 스킬을 활용해 A급 각성자를 잡아냈다.
“허억, 허억, 허억.”
이 싸움에 전력을 다하느라 체력이 극심히 소모됐다.
정신력도 극한에 이르렀다.
“더럽게 힘드네.”
자연스레 거친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휘이잉.
털썩.
하늘에서 리치가 추락했다.
녀석의 가슴에 신용한의 대부가 꽂혀있었다.
“이걸 끝장내주마!!”
신용한 리치의 가슴에 박힌 대부를 뽑아, 녀석의 머리를 쪼개버렸다.
빠아악.
리치의 몸이 들썩거렸다.
놈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며, 주변을 감싸 안았던 사악한 기운이 사라졌다.
녀석의 몸이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리치가 사망하자….
모든 시체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움직이지 못하는 시체가 됐다.
그렇게 전투가 끝났다.
신용한은 대부를 어깨에 걸치며 선우영에게 다가왔다.
“하하하, 자네 대단하더군.”
“예?”
“보아하니, 저거 A급 같던데. 아직 B급인 자네가 해치우다니.”
“새로 얻은 스킬이 있어서…. 운이 좋았습니다.”
“이 친구, 겸손하기는!!”
신용한은 선우영의 등짝을 쫙 때렸다.
장하단 칭찬이었지만, 정작 그걸 맞은 선우영은 앞으로 굴렀다.
“대표님, 아픕니다.”
선우영이 입을 삐쭉이며 따졌다.
신용한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내가 미안하네.”
그들은 리치로부터 마석을 채취한 뒤, 지긋지긋했던 평안북도 위주군을 떠났다.
선우영은 평양으로 돌아갔다.
신용한 일행도 자신들이 점령한 곳으로 떠났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끝났다.
다른 팀들이 점령을 끝내면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면 됐다.
“아오, 힘들었다!!”
김철수는 오래간만에 돌아온 쉘터에 발 뻗고 누웠다.
무진장 힘든 하루였다.
백영희도 힘들었는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정운과 조용석은 진작 곯아떨어졌다.
선우영도 휴식을 취했다.
이제 북한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지.’
길고 길었던 북한 생활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다음날.
선우영은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평양으로 향했다.
“윽!?”
선우영은 코를 막았다.
몬스터 시체 때문에 고약한 냄새가 사방에 풍겼다.
군인들이 시체를 태우고, 고압 호수로 피를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등 열심히 정리했지만, A급 몬스터들의 시체가 워낙 커서 작업의 진척이 없었다.
아직도 일을 마치려면 한참 남았다.
몬스터로부터 땅은 되찾았지만, 뒤처리가 산더미다.
건물을 다시 세워야 하고.
굶주린 사람들한테 식량도 보급해야 했으며.
게이트도 이 땅에 계속 나타날 테니, 각성자를 키워 막아내야 했다.
‘한동안은 북한 사람들도 고생하겠구나.’
측은지심이 들었다.
자신의 활약으로 리치의 함정에 빠져 죽었어야 할 헌터들을 구하고, 북한 사람들도 보호해줬지만, 북한을 정상화하는데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면 지원금이라도 줘 볼까?’
선우영은 손깍지를 뒤통수에 댔다.
뭐, 돈이야 엄청나게 넘쳐나고 있으니 불쌍한 사람들 도와줘도 괜찮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북한 수복이 끝났으니 귀환하란 국방부의 명령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