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무전이 왔다.
쉘터 밖으로 나온 선우영.
일단 척력과 합쳐진 화염검기부터 사용해봤다.
발바닥에 오러를 모으고 허공을 향해 뛰었다.
척력의 밀어내는 힘.
그걸 이용해 하늘을 뛰어다녔다.
무협지에 나오는 허공답보처럼 허공을 활보하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자신의 아래로 보이는 쉘터와 지상의 모습.
모든 것들이 작게 보였다.
하늘의 구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고, 저 멀리 보이는 저녁노을은 황금처럼 반짝였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은 누런 파도 같았다.
세상은 아리따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은 이렇구나, 싶어 감동이 밀려올 정도였다.
선우영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번엔 검을 뽑았다.
스르릉.
칼날에 화염검기를 휘두르고 척력의 기운을 극대화했다.
정신을 통일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앙-!!
땅바닥에 쪼개지며 일직선의 거대한 금이 생겨났다.
위력이 급격히 상승했다.
척력의 효과로 물리력은 물론이고 화염의 열기마저 높아졌다.
선우영은 화염을 꺼뜨리고 칼을 검집에 넣었다.
‘척력 스킬이 대단하긴 하군.’
미래에서 이게 엄청나단 평가를 받긴 했지만, 실제로 체험해보니 얼마나 사기 스킬인지 알겠다.
‘앞으로 A급까지 한 걸음.’
선우영은 이번 실험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솔직히 말해 이제 공격력은 A급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오러의 총량.
그것만 높이면 자신도 명실상부 A급이다!
선우영은 다른 스킬도 실험해봤다.
투명화.
그걸 사용하자 자신의 신체가 변화했다.
손바닥을 펼쳐 확인해보자, 자신의 육체가 세상에 녹아들듯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게 투명화!!’
맘에 든다.
활용성이 아주 무궁무진해질 거다.
앞으로 다른 스킬들을 투명화에 섞어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
몇몇 개 떠오르는 스킬이 있지만.
뭐, 그건 차차 나중에 구하는 걸로 하자.
선우영은 투명화를 풀었다.
그 순간, 쉘터에 있던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몬스터인가?”
그들은 선우영이 스킬의 위력을 시험하느라 난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백영희가 그를 바라봤다.
“선우영 씨, 땅에 그어진 금은 뭐죠?”
“잠깐, 스킬을 실험해봤습니다.”
“스킬이요?!”
백영희는 땅바닥에 생긴 일직선의 금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이 정도 위력이라니.
놀랍다.
‘땅바닥에 난 흔적을 보면…… 공격의 범위가 더 늘어난 건가?!’
백영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A급에 한없이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겨우 같은 B급이 됐다 싶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차이가 벌어졌다. 아마 선우영은 한 달도 안 돼서 A급이 될 거다.
자신의 감이 그리 말했다.
김철수와 조용석은 입이 턱 벌어졌다.
‘저 정도 위력이라니.’
‘우와, 대단하다.’
그저 감탄 밖에 나오질 않았다.
정운은 허리에 손을 얹으며 가슴을 확 폈다.
‘역시, 선우영 아저씨야!!’
자신의 우상답게 엄청난 실력이다. 저런 사람 옆에서 싸운다는 게 자랑스러워 자꾸만 어깨가 으쓱거렸다.
자신도 언젠가 선우영 아저씨처럼 되고 말 거다!
선우영은 박수로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자자, 이제 쉘터로 들어갑시다.”
슬슬 저녁 시간 때다.
오늘은 밥을 든든히 먹고 푹 쉬어야겠다.
그만큼 고된 하루였으니까.
* * *
다음 날 아침.
쏴아아아.
바닷가에 해군의 소송함이 도착했다.
각종 식량과 무기.
그리고 다양한 방한 도구들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그들은 배에서 내려 짐을 차량에 싣고, 선우영 일행이 있는 쉘터 쪽으로 몰았다.
부르릉.
차량 엔진소리에 선우영 일행이 쉘터에서 나왔다.
군용 차량은 쉘터 앞에서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군인이 차량에서 내리며 선우영에게 인사했다.
“보급품 가지고 왔습니다. 쉘터 옆에 창고를 지을 예정이니, 헌터님들은 쉘터에서 푹 쉬시면 됩니다.”
선우영을 대하는 군인들의 대우는 깍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고 받기로는 평양에 있던 A급 몬스터를 그가 쓰러뜨렸다고 하지 않나!! 그것도 아무 피해 없이, 오로지 자신의 동료들만 데리고서!
군인들은 거기에 감복했다.
위험한 일을 솔선수범하는 선우영이 영웅처럼 우상화됐다.
그러니 깍듯할 수밖에 없었다.
“아, 예. 수고가 많으십니다. 바쁘시면 저희가 도와드릴까요?”
“아닙니다. 이 정도는 저희끼리 가능합니다.”
군인들은 선우영의 도움을 정중히 거절했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헌터들이 싸워야 하니, 최대한 체력을 보존시키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아, 그러십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다시 쉘터로 들어갔다.
군인들은 건설 작업에 나섰다.
기술자들의 지시에 따라 금방 보급창고를 만들어냈다.
전문 기계를 이용해 완성된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이라 금방 창고가 완성됐다.
군인들이 창고로 차곡차곡 군수물자를 집어넣었다.
선우영은 쉘터의 창문으로 그걸 구경했다.
이제 보급품을 잃어버린 다른 팀들에게 물품을 전달해줄 수 있을 거다.
미래와 다르게 말이다.
선우영이 적재적소에 평양을 점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우영은 손깍지를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뭐, 평양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아직 진짜 문제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북한을 점령하는데, 30%나 되는 헌터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건.’
그게 남아있었다.
‘원인 불명. 남아있는 건 오로지 전투의 흔적과 아군의 시체뿐.’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정부에서도 재난이 있었다고만 할 뿐 자세한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
선우영이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심하는 사이, 무전병이 후다닥 쉘터 안으로 달려왔다.
“선우영 헌터님!!”
“예.”
선우영은 그를 응시했다.
무전병은 황급히 방금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평안북도 위주군에서 구조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급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평안북도 위주군이라…. 쯧.”
선우영은 혀를 찼다.
북한 수복에서 헌터들의 30%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
그게 바로 저거였다.
평안북도 위주군의 구조요청.
“다른 팀들은 뭐랍니까? 구조하러 갈 수 있답니까?”
“그게… 아직 자신들의 지역을 점령하지 못해서 구조하기 어렵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첫 번째겠군요. 차라리 잘 됐어.”
“네? 잘못 들었습니다?”
무전병이 놀라서 되묻자 선우영은 손사래를 쳤다.
“아, 별거 아닙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첫 번째로 이 사건에 개입하면 분명 많은 헌터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여기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단 거다.
지금껏 미래 정보를 통해 돌파해온 선우영, 이번만큼은 그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걸 대체할 방법은 있었다.
투명화.
그 스킬을 손에 넣었으니 제대로 활용해봐야 하지 않겠나.
‘은밀히 정찰해서 정보를 얻어내야겠어.’
* * *
누군가 무전기에 대고 구조요청을 보냈다.
“여기는 늑대 하나…… 늑대 하나…… 응답하라. 모든 팀들, 제발 응답하라……”
싸늘한 음성.
처음엔 차분하다 싶더니, 점점 말소리가 빨라져 갔다.
분위기가 무겁게 촥 가라앉았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마라.”
두려움에 가득 찬 애원.
말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다급해져 갔다.
“본부 우리는 살아있다. 지원요청 바란다. 제발 지원요청 바란다.”
이젠 목소리까지 떨렸다.
“여긴 평안북도 위주군…….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구조요청 바란다.”
방탄 헬멧을 쓴 남자.
피투성이가 된 군인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 제발 구조요청 바란다. 제발 우리를 구해달라.”
군인이 있는 곳은 시커먼 동굴.
그곳에 홀로 있었다.
주변엔 스산한 공기만이 맴돌았다.
그때였다.
군인의 무전기에서 연락이 왔다.
“여기는 독수리 둘!! 목표 포인트를 점령했다. 지금 헌터들을 보내 구조하겠다.”
“……고맙다.”
고맙단 군인의 목소리가 싸했다.
그것을 끝으로 무전이 끊어졌다.
구조요청을 한 군인은 시체처럼 조용해졌다.
마치 끈 떨어진 인형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 피가 흥건했다.
동굴에 서식하고 있던 박쥐는 그런 군인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매우 이상했으니까.
군인은 하반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눈도 옹이구멍이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전을 때렸다.
입과 귓구멍에선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건 이미 시체였다.
곧이어 시체를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시커먼 로브를 쓴 존재.
그런데, 땅을 걷지 않았다. 몇 센티 띄워진 상태로 하늘을 날아다녔다.
녀석이 손짓하자 군인 시체가 다시 움직였다.
머리를 움찔하더니.
다시 무전기에 대고 구조요청을 보냈다.
“여기는 늑대 하나…… 여기는 늑대 하나…… 우리를 구해달라.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로브를 쓴 누군가의 손짓에, 시체는 똑같은 짓거리를 반복했다.
딱딱딱.
로브를 쓴 누군가가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그건 비웃음 같기도 했고.
언뜻 재미있어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로브를 쓴 누군가는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왔다.
햇볕에 놈의 모습이 보였다.
새하얀 백골.
눈에서는 시커먼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빨은 거뭇거뭇 썩은 이가 종종 보였고, 손에는 커다란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시체를 조종하는 언데드, 리치.
A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라 불리는 놈이었다.
* * *
선우영 일행은 의료물품과 식량을 싣고 평안북도 위주군으로 향했다.
이번만큼은 임병건을 떼어놓았다.
“아저씨, 쉘터에 각성자가 아예 없으면 위험할 거예요. 이번엔 여기에 남아서 사람들을 보호해주세요.”
“예잇, 나만 빼놓고 가다니!! 치사한 간나새끼!!”
임병건은 투덜거렸지만, 선우영의 지시대로 군인들을 도와 쉘터를 지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말은 참 잘 들었다.
부르릉.
선우영 일행을 태운 차량이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뒤에는 다른 차량들도 쫓아왔다.
구조를 위해 다른 군인들도 함께 가겠다 자원했다.
차량에 탑승해있던 선우영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의 검지로 팔뚝을 툭툭 두들겼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잘 예측이 안 됐다.
아군 시체와 전투 흔적만 잔뜩 있던 평안북도 위주군.
거기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근데 왜 적군의 시체는 없었지?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전투가 있었다면 몬스터 시체가 있던가, 아니면 몬스터들이 그곳에 지냈단 흔적이라도 남아있어야지! 왜 아무것도 없느냐 말이다.
선우영은 발상의 전환을 해보기로 했다.
‘아군끼리 싸웠다?’
무엇 때문에? 왜 구조하러 온 사람과 싸운단 말인가?
‘설마, 구조요청 자체가 함정?’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느낌이 아주 싸하다.
‘함정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건가?’
도대체 누가 말인가?!
팔뚝을 두드리던 선우영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잠깐만.’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다.
시체를 조종하는 리치.
혹여나 그 몬스터가 시체를 조종해서 구조요청을 보내는 거라면?
말이 끼워 맞춰진다.
‘아군 시체로 구조대를 공격하고…… 그렇게 얻은 시체로 군세를 불려 나간다…….’
이게 리치의 전투 방식이다.
북한 수복에 나섰던 헌터들의 30%가 사망한 미스테리.
혹시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리치가 구조요청으로 함정을 파놓고, 헌터들을 죽여 시체 군세를 불려 나갔지만… 뒤늦게 평안북도 위주군에 도착한 다른 헌터들이 목숨 걸고 활약해 리치와 함께 죽었다면?
‘그래. 나중에 도착한 헌터들이 리치와 함께 공멸했다면 앞뒤가 맞아.’
이러면 말이 된다.
리치는 죽으면 잿가루가 되어 사라지니까.
리치를 퇴치하고 전멸한 헌터들은 정보를 남기지 못했을 거고, 리치가 만든 시체 군세는 평범한 시체로 돌아간다.
사태가 종료된 이후 평안북도 위주군에 도착하면, 눈앞에 있는 건 아군의 시체밖에 없다.
‘허, 그렇단 말이지?’
선우영은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리치는 시체가 없는 장소에선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특히나 게이트처럼 자신들이 갇혀있는 곳에서는!!
하지만
놈이 게이트 밖으로 나와 활보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시체를 이용해 싸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될 경우, 리치는 현재 상황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가 되겠네.’
선우영은 운전수한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말씀하세요.”
“좀 돌아서 갑시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가는 길에 몬스터를 잡으면서 가자고요.”
선우영의 뜬금없는 지시에 운전병은 멍 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