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사회생활 잘했음.
쉘터에서의 하룻밤이 지났다.
선우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봤다.
햇볕이 그의 얼굴에 반사됐다.
“헛둘, 헛둘.”
선우영은 국군도수체조로 몸을 풀었다.
그러던 중.
“니 지금 뭐하니?”
임병건이 쉘터에서 나와 선우영을 바라봤다.
“아침 운동이요.”
“아침부터 부지런도 하다.”
선우영은 평양을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곳엔 A급 몬스터 2개체가 있다.
하나는 엔트.
외형이 나무를 닮은 몬스터다.
다행히 번식하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려, 개체 수는 소수였다.
전투력이 상식을 초월했단 게 문제였지.
놈들의 단단한 외피는 포탄으로도 흠집조차 안 난다.
미사일을 쏴야 데미지를 입히는 수준.
엔트는 육체에서 나무 넝쿨을 꺼내 싸우는데, 채찍처럼 사용해 웬만한 물체는 다 부숴버린다.
탱크도 한 방이면 박살이 날 정도로 강력했다.
그나마 A급 몬스터들 중에서는 가장 속도가 느린 녀석으로 통했다.
그리고.
‘또 다른 A급 몬스터는 사이클롭스.’
언뜻 사람을 닮았으나, 눈이 한 개에 거대한 덩치를 지녔다.
키만 따져도 10m는 될 거다.
빠른 스피드와 어마어마한 괴력을 지녀 강철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린다.
이 녀석도 단점이 있었는데.
그건 시력이 나쁘고, 지능이 굉장히 낮다는 점이었다.
또 영토에 대한 욕심이 많아 자기 영역에 침범한 다른 몬스터를 적으로 간주한다.
선우영은 숨을 길게 내쉬며 옆구리 체조에 들어갔다.
‘어차피 내 실력으론 A급 몬스터는 못 잡아. 정면승부 걸었다간 북어포처럼 쫙쫙 찢어져서 잡아먹힐걸??’
남은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몬스터끼리 싸움 붙이는 거지.’
사이클롭스의 경계심.
스피드가 느린 엔트.
선우영의 머릿속에 작전이 하나씩 세워져 나갔다.
엔트를 사이클롭스의 영역으로 유인해, 둘을 싸움 붙이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어떻게 엔트를 유인하느냐인데…….’
휘이잉.
쌀쌀한 가을바람이 선우영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미래에선, 평양에 있던 엔트들한테서 씨앗이 발견됐었지.’
선우영의 머릿속에서 작전이 세워졌다.
엔트의 씨앗.
거기서 아기 엔트가 태어난다.
그걸 훔쳐 사이클롭스의 영역에 가져가면, 분명 놈들끼리 싸움이 붙을 거다.
둘의 전투력은 막상막하.
동귀어진하면 좋고, 한쪽이 승리를 거머쥐어도 심각한 부상을 얻었을 테니 자신이 직접 쓰러뜨리기 쉬울 거다.
선우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걸 본 임병건은 눈썹을 문지르며 슬쩍 그를 떠봤다.
“왕감자, 왜 시답게 웃어?”
“평양에 있는 몬스터를 어떻게 해치울지 고민 중임다.”
“어울리지도 않는 북한말 어미 쓰지 말라우!! 혁명적으로 어색해서 이상하다.”
“나 참, 장난도 못 해요.”
선우영이 입을 삐쭉이자, 임병건은 허연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평양이라…….
몬스터한테 점령당한 뒤,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 땅이다.
‘옛날엔 다들 저길 들어가고 싶어 했지.’
북한 사람들한테 평양이란 굉장히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평양은 당국으로부터 불순분자가 아니라 판명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뭐, 명목상으로 불순분자를 거른다곤 하는데…….
실제로는 달랐다.
특권층들만이 거주하기 위해 저런 규칙이 세워졌다.
다른 지역은 굶고 살아도, 평양사람들은 등 따습고 흰쌀밥을 맘껏 먹었다.
그러니, 북한에서 평양은 어떤 의미였겠나.
절대 넘볼 수 없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경계,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
임병건도 한 때 평양에 가고 싶어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저게 지금의 평양이라니.’
멀리서 보이는 평양의 현재 모습은…… 과거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시절과 너무 많이 달라졌다.
무너져 내려 철근 뼈대가 보이는 건물.
피어오르는 매연.
지금의 평양은 그저 몬스터 소굴이었다.
임병건은 선우영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평양 갈 거냐?”
“네.”
“평양에는 괴물들이 득실거린다.”
“알고 있습니다.”
“너희들만으로는 안 될걸?”
“설마, 따라오시려고요?”
“안 될 게 뭐 있나. 나도 죽기 전에 평양 한번 구경해보자.”
임병건은 콧구멍으로 바람을 흥 불었다.
선우영은 그를 지긋이 바라봤다.
“설마, 제가 걱정돼서 따라오시려는 건 아니죠?”
“머, 뭐?! 이 녀석이-!!”
임병건은 팔짝 뛰며 목청을 높였다.
그는 선우영을 삿대질했다.
“남조선 왕감자가 뭐가 걱정 되갔어!! 착각이 유분수다.”
정곡을 찔린 임병건은 씩씩거렸다.
“하여튼, 젊은 녀석이 말이야-!! 어르신이 말하는데…….”
속내를 감추느라 구시렁구시렁 입을 바삐 놀리는 임병건이었다.
* * *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다.
선우영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
“히야, 오늘은 고기다.”
“아주 그냥 맛나는구먼.”
북한 사람들은 허겁지겁 숟가락을 뜨며 그릇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쇠그릇이 밥풀 하나 없이 아주 반질반질해졌다.
김철수는 호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밥을 든든히 먹었으니 달달한 디저트가 있어야지. 흐흐흐.”
식사가 끝났으니 후식을 먹어야겠단다.
참 대단한 위장이다.
이미, 남들의 3배는 먹은 것 같은데.
북한 사람들은 김철수가 꺼낸 초콜릿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초콜릿?”
“그게 무슨 음식임까?”
김철수는 기막히단 듯이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니, 다들 초콜릿 몰라요? 달달하고 맛있는 간식!!”
“??”
“아이고!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잡숴보쇼. 아주 기막히게 맛있으니까.”
김철수가 그들에게 초콜릿을 건네줬다.
북한 사람들은 초콜릿을 한참 동안 요리조리 살폈다.
이 거뭇거뭇하고 네모난 음식이 그리 맛있나 싶어 호기심이 생겼다. 겉보기엔 나무껍질처럼 생겼는데 말이다.
그들은 초콜릿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
북한 사람들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맛있다.
이렇게 달달한 음식은 처음이다.
“이게, 초코렛?!”
“아따, 맛나다.”
“매일매일 이것만 먹었으면 좋갔슴다.”
북한 사람들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초콜릿의 단맛은 그만큼 자극적이었다.
그들은 김철수한테 손을 벌렸다.
“초콜릿 하나만 더 주시라요.”
“나도, 나도!!”
열화와 같은 반응에 김철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방금 드린 게 전부인데…….”
“아이고. 아쉽다.”
“그러게 말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껴먹을걸.”
북한 사람들은 시무룩해졌다.
조용석은 껄껄 웃으며 그들의 등을 두들겼다.
“좀만 기다리세요, 몬스터들을 전부 몰아내면 초콜릿을 산처럼 쌓아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참말 임까?”
“아따,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슴다.”
북한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식사가 끝났다.
* * *
군인들은 통신 차량을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떠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군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헌터님들.”
“왜 그러세요?”
선우영이 그들을 바라봤다.
군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선우영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입 모양이 보이지 않게 손으로 가렸다.
그걸 본 백영희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입 모양이 보이지 않게 입으로 가렸다?
새어나가면 안 되는 정보란 뜻.
군인들의 표정을 보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 듯싶다.
선우영은 동료들을 바라봤다.
“지금 회의하려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백영희가 대표로 대답했다.
선우영은 동료들과 군인들을 데리고 회의에 들어갔다.
“크흠, 근데 뭔 일이냐?”
임병건이 헛기침을 하며 선우영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도 작전회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선우영은 주변에 다른 북한 사람들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다른 지역에 A급 몬스터들이 나타났답니다. 당분간은 다른 팀의 지원은 불가능할 거랍니다.”
“뭐?!”
“게다가 몇몇 팀들은 몬스터한테 습격당해 군수물자를 상당 부분 훼손당했다고 합니다.”
“그, 그런?!”
김철수는 놀라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다른 지역을 평정하러 간 헌터들은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선우영은 마지막 말을 던졌다.
“정부에서는 물자보급에 차질이 없도록 바닷가 근처에 지어진 쉘터를 반드시 사수하라고 하네요.”
“허허….”
얘기를 듣고 있던 조용석은 헛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백영희가 현재 상황을 중얼거렸다.
“평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지원은 없다. 다른 팀은 물자가 부족하니, 바닷가 근처에 있는 우리 쪽 쉘터를 사수하라….”
책임감이 막중해졌다.
선우영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어서 꽤나 덤덤했다.
실제로 미래에선 평양 점령에 나섰던 첫 번째 팀이 실패하며, 물자보급에 차질이 생겼었다.
S급 헌터들이 자기들 지역을 정리하고 부랴부랴 내려와 평양을 점령해줬지만, 그땐 이미 다른 팀들이 물자보급 문제로 큰 피해를 본 뒤였다.
선우영이 평양 점령에 성공하면 그딴 문제는 단숨에 해결된다.
선우영은 지도를 펼쳤다.
북한의 과거 행정 지역에 따라 줄이 그어진 지도.
그는 평양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우리 쉘터를 지키려면……. 바로 옆에 있는 평양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이 확보돼요.”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평양엔 몬스터가 많을 거예요. 그쪽에서 몬스터 울음소리가 몇 번 들렸던 것 같아요.”
사실, 쉘터에서 지내며 몇 번인가 몬스터 울음소리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헌터들은 뛰어난 청각으로 그 소리를 탐지해냈다.
선우영은 여기서 중요한 제안을 하였다.
“평양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정보가 필요합니다. 제가 단독으로 정찰해서 어떤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선우영은 이미 평양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의 앞에선 모른 척했다.
동료들을 설득해 평양으로 함께 갈 수 있었지만, 단독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상대는 A급 몬스터.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
자신의 작전에 동료들이 함께한다면 분명 성공확률은 팍팍 올라갈 거다.
솔직히 그들을 데리고 평양에 가고 싶다.
혼자보단 여럿이 유리하니까.
그래도…….
‘역시 위험해.’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들을 거짓말로 설득해 평양에 데려가는 건 내키지 않는다.
그들이 자진해서 평양에 가지 않는 한, 억지로 데려가지 않겠다. 그게 선우영이 정해놓은 마지노선이었다.
‘혼자서 엔트와 사이클롭스를 싸움 붙여야지.’
게다가, 엔트들은 불을 무서워한다.
‘비록 B급이지만, 나한텐 화염검기가 있어! 엔트들한테 도망칠 방법이 있으니 실패해도 목숨은 건지겠지.’
선우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였다.
백영희가 아리따운 손을 천천히 들었다.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그녀의 반대의견.
선우영은 손바닥을 보이며 완강하게 나갔다.
“백영희 씨, 정찰은 저 혼자로 충분합니다.”
“위험한 몬스터가 있으면요? 만약에 강력한 몬스터가 있어서 쉽사리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요?”
“그러니까, 혼자 가겠단 겁니다.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순 없지 않습니까.”
백영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나왔다.
“절대로 혼자는 못 보냅니다.”
“그건 저도 찬성.”
김철수가 번쩍 팔을 들며 백영희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아니, 김철수 씨까지?!”
선우영이 미간에 주름을 잡자, 김철수가 울퉁불퉁한 근육질 팔뚝으로 와락 어깨동무를 걸었다.
“아니, 선우영 씨! 위험하니까 혼자 정찰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왜요?”
“이거 섭섭합니다. 위험한 일을 혼자 하게 내버려 둘 정도로 우리 사이가 미적지근했습니까? 막말로 선우영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린 마음 편하겠어요?”
“…….”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일에 탱커가 빠지면 섭섭하지요!!”
그러자 정운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러면 저도…….”
“운아, 너까지 그러면 아저씨 힘들다.”
“그래도…….”
정운은 선우영의 눈치를 슬쩍 보며 슬그머니 웃음기를 보였다.
한 번만 허락해달라는 애교.
“아이고.”
선우영은 입을 삐죽이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조용석은 흐뭇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소리쳤다.
“모두가 가는데, 제가 또 빠질 순 없죠!”
선우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또박또박 경고한다.
“평양에 A급 몬스터가 있을지 몰라요. 어쩌면 탈출 불가능한 상황에 몰릴지도 모르고요. 목숨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백영희는 단아한 미소로 보이며 선우영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같이 가겠단 겁니다.”
“우리가 남이가!!”
김철수가 하늘을 향해 강철 주먹을 뻗으며 시원시원하게 소리쳤다.
그게 얼마나 시끄럽던지…….
옆에 있던 선우영의 귀가 다 울릴 지경이었다.
선우영은 귀를 막으며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평양에 A급 몬스터 있을지 모릅니다. 진짜 죽을 각오로 따라와야 합니다. 정말로 괜찮아요?”
“암요, 괜찮다니깐요-!!”
김철수는 시원스레 웃으며 대답했다.
임병건도 한마디 하였다.
“내도 간다! 따라가는 건 내 맘이다. 말릴 생각 마라.”
임병건도 주먹을 위로 흔들며 자기주장을 폈다.
그들은 선우영에게 끈끈한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위험해도 따르겠단 의지가 담겨있었다.
동료들이 함께한다면 선우영의 작전도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선우영은 코끝이 찡해졌다.
괜스레 콧등을 검지로 문지르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내가 사회생활을 잘했군.”
감동 먹었단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영은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 통신 차량과 쉘터 보호해주세요. 아마 이 주변엔 약한 몬스터 밖에 없을 겁니다. 진짜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쉘터에서 안전하게 대기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동료들과 평양을 향해 걸어갔다.
차를 타고 가면 좋겠지만, 엔진소리 때문에 들킬 수 있어서 두 발로 걸어가야 했다.
“몬스터한테 들키지 않고 운전할 수 있는 차량이 있으면 좋을 텐데.”
선우영이 아쉽단 듯이 중얼거렸다.
“아, 아저씨!”
그때, 정운이 선우영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왜 그러냐?”
“굉장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는데요.”
정운은 발꿈치를 들고 선우영의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선우영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뭐? 그걸 해보겠다고?”
“네.”
선우영은 눈을 껌뻑껌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