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백영희 VS 장주원
채앵, 채앵.
백영희와 장주원이 검을 부딪쳤다.
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장주원은 슬쩍 눈을 돌려 지하 2층을 바라보았다.
싸움으로 시끄러워야 할 곳이 조용하다.
‘저쪽은 이미 상황이 끝났나?’
계단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보스였다면 그대로 줄행랑쳤지, 다시 지하 1층으로 올라올 리가 없다.
‘제기랄, 선우영이 이겼나 보군.’
상황이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위층에는 경찰.’
정면에는 검을 휘두르는 백영희.
‘지하 2층에서 올라오는 선우영.’
빌어먹을, 백영희를 이기는 건 고사하고 도망칠 궁리부터 해야 할 판이다.
놈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백영희가 놈의 어깨를 노렸다.
생각이 많아진 장주원의 움직임은 한발 느려졌다.
녀석도 속으로 아차 싶었다.
스걱-!
장주원이 빠르게 어깨를 뺐지만.
백영희의 검이 한발 빨랐다.
그러나 상처는 얕았다.
백영희의 칼날에 묻은 피도 소량이었다.
“빌어먹을!”
장주원은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타닷.
그걸 보고만 있을 백영희가 아니다.
그녀는 빠르게 쫓았다.
장주원은 이를 악 깨물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놈이 오러를 쏘았다.
원거리 공격형 스킬, 그걸로 백영희가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 속셈이었다.
백영희가 검신으로 그걸 막아내려는 순간.
장주원이 쏜 오러가 강렬한 빛무리를 발산하였다.
마치 섬광탄처럼!!
“큭.”
백영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앞이 새하얗게 멀어버렸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아버리자, 장주원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놈의 움직임이 회피에서 공격으로 돌변했다.
‘빈틈이 생겼다!’
녀석은 빠르게 백영희에게 쇄도했다.
장주원은 한 번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도망치려 했다.
부우웅.
칼날이 바람을 가르며 날카롭게 움직이던 그 순간.
백영희는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장주원의 왼쪽 다리를 노렸다.
“큭!!”
장주원은 또 다른 스킬을 발동시켰다.
[강습]
공격력과 속도가 50% 상승.
오러 소모가 매우 크지만, 공격력과 속도가 급상승한다.
이 스킬을 익히기 위해 야쿠자에 가입했다.
놈이 빠르게 발을 뒤로 뺐다.
부우웅.
백영희의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또다시 장주원의 차례가 됐다.
놈은 승리를 확신했다.
‘끝났다! 어쩌다 운 좋게 한번은 피했을지 몰라도, 두 번은 아닐 거다.’
빌어먹을 백영희를 죽이고, 얼른 탈출하면 된다!!
그래 생각하며 검을 휘둘렀거늘.
부우웅.
녀석의 공격이 또 빗나갔다.
정확히는 장주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백영희가 미리 움직여서 회피했다.
‘뭐야? 두 번째 공격도 피했다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어떻게 내 움직임을 간파했지?!’
인상을 찡그리는 장주원.
백영희의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오러가 흔들렸다.
‘저건 뭐야?!’
놈은 흠칫했다.
‘무슨 스킬 같은 건가……. 아니, 그거랑 뭔가 다른 느낌인데.’
놈의 미간이 좁혀졌다.
‘단순히 오러를 컨트롤해서 움직이는 것뿐이잖아.’
백영희가 사용한 기술.
<지동>
상대방의 움직임을 눈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오러 기술이었다.
선우영이 가르쳐 줬다.
덕분에 그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검술의 재능은 비등했지만, 오러를 다루는 능력은 그녀가 한 수 우위였다.
“칫, 끈질긴 녀석.”
장주원은 신경질이 팍 올라왔다.
옛날부터 그랬다.
백영희의 끈질김은 항상 거슬렸다.
그 옛날, 아직 범죄조직에 몸담기 전에…… 아직 도장의 수제자로 있었을 때도 그랬다.
저 여자의 끈질긴 공세.
그것에 발목을 잡혀 패배할 때가 많았다.
장주원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녀석, 진짜 스킬이 없는 반푼이 헌터 맞아?’
스킬이 없는 백영희.
시간이 좀 걸려도 자신이 이기리라 생각했거늘.
착각이었다.
스킬을 익히지 않은 백영희는, 그러함에도 강했다.
‘전부 선우영 씨 덕분이야.’
백영희는 자신에게 오러의 기술을 가르쳐준 선우영이 떠올랐다.
그가 아니었다면.
‘벌써 치명상을 입었겠지.’
지금처럼 막상막하로 싸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때였다.
터벅, 터벅.
계단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장주원은 어깨가 들썩였다.
오싹함이 엄습했다.
싸늘한 시선이 자신에게 날아와 꽂힌다.
선우영이…….
지하 1층에 도착했다.
하, 오늘이 무슨 날인가? 운수가 참 더럽게 없다.
장주원은 투지를 버렸다.
장딴지의 근육을 부풀리며 도망칠 준비부터 했다.
타닷.
장주원은 지상 1층을 향해 낮게 뛰어올랐다.
‘1층은 아마도 경찰들이 있겠지.’
헌터들이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이곳에 무더기로 왔을 리 없다.
‘이곳에 있는 헌터는 백영희와 선우영이 끝일 거야.’
생존을 향한 장주원의 몸부림.
놈의 몸놀림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빨라졌다.
백영희도 지동으로 느꼈다.
장주원이 도망치고 있단 사실을….
백영희는 경공을 사용했다.
그러나 점점 거리가 벌어진다.
장주원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놈을 여기서 놓칠 순 없다.
‘삼환검을 욕보인 쓰레기!! 절대 놓칠 수 없어!!’
하지만
각오와는 달리,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격차가 늘어나고 있었다.
‘젠장, 여기서 저놈을 놓치면…….’
도장의 불명예를 회복할 수 없다. 저놈이 범죄를 저지를수록 도장은 수렁에 빠진다.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조급함이 그녀를 감싸던 그때.
“발바닥에 오러를 하나의 점처럼 더욱 응축시켜, 폭발시키듯 회전시키세요.”
누군가의 설명이 들렸다.
‘이 목소리는 선우영 씨?’
그라는 걸 깨닫자마자 백영희가 지시에 따랐다.
발바닥에 모인 오러를 작은 점처럼 한곳에 더욱 응축시키고.
파앙!!
폭발시키듯 회전시켰다.
그녀의 몸이 총탄처럼 쏘아지듯 날아갔다.
경공을 뛰어넘는 속도.
발목 주변에 바람이 회오리치듯 뿜어졌다.
땅바닥의 먼지가 휘몰아쳤다.
백영희의 속도가 장주원과 비슷할 정도로…… 아니, 그걸 넘어섰다!
장주원은 급변하는 상황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찌나 놀랐는지, 좌우로 찢어진 실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백영희는 그의 양다리를 베었다.
스걱-!
칼날의 궤적이 초승달을 그리듯 날카로웠다.
“크아아악-!!”
장주원은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다리를 쳐다봤다.
빌어먹을! 상처가 깊다.
‘젠장, 도망도 글렀어.’
가속도가 붙은 장주원은 다리를 쓰지 못하자 멈추지도 못하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녀석의 꼬락서니가 우스웠다.
장주원이 마지막 발악으로 검을 그녀에게 던졌다.
“제발 좀 죽어라-!!”
백영희는 몸을 수그리고 빙글 돌아 공세를 피해냈다.
그녀가 목청을 높였다.
“타하압!!”
움츠러들었던 백영희 육체가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순식간에 치솟았다.
화려한 검술과 함께!
칼날이 장주원의 턱을 가르고 올라갔다.
스걱.
놈의 머리가 좌우로 쪼개졌다.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털썩 널브러져 핏물을 질질 흘리는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탓탓탓.
곧이어, 경찰특공대가 총으로 사주경계를 하며 지하 1층으로 내려왔다.
“지하 1층. 상황 클리어!”
“백영희와 선우영 씨가 적들을 소탕했다.”
“이어서 지하 2층에 돌입하겠다.”
경찰특공대가 이어프로로 상부에 보고했다.
그들은 쓰러져 있는 일당들에게 쇠고랑을 채워 연행했다.
백영희는 긴장이 탁 풀렸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실이 느슨하게 풀어지듯 몸에서 힘이 쫙 빠졌다.
끝났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은 것들이 끝났다.
망할 장주원과의 인연.
삼환검술의 악명.
몬스터 불법 사육장.
모든 게 오늘 하루 만에 끝났다.
백영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이 순간을 만끽했다.
시원함과 통쾌감이 휘몰아쳤다.
악연을 끊어냈다.
가슴 한편에 쌓아둔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다.
단비가 내리듯 상쾌하다.
이런 느낌은 태어나 처음이라, 뭐라 설명할 순 없었지만…….
‘복수는 통쾌한 거구나!’
이건 알겠다.
백영희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선우영에게 다가갔다.
어디 다친 곳 없이 깔끔했다.
“보스를 해치우셨나요?”
“예, 꽤 강한 놈이라서 애먹었네요.”
“애먹은 것치고, 부상이 없으신데요?”
“아이, 엄살 아닙니다.”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백영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장주원과 그녀의 대결.
그녀는 경공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신속.
미래에서 검제의 칭호를 받게 된 백영희가 애용하는 오러 기술이었다.
그걸 벌써 터득하다니.
‘물론 아직 오러가 부족해서 본래 속도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쓸 만하겠어.’
그래도 크나큰 발전이었다.
백영희의 재능이 얼마나 발전할지, 솔직히 선우영도 예측하지 못하겠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 그 순간.
돌연 백영희가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예?”
“선우영 씨 조언이 아니었다면… 아니, 그전에 가르쳐주셨던 기술들이 없었다면…….”
백영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도대체 선우영한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모르겠다.
고맙고 또 감사했다.
백영희의 말에 선우영은 슬며시 웃었다.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밥이나 사요. 어디 보자, 요즘에 초밥 가격이 많이 올랐던데.”
선우영이 농담으로 넘기자 백영희는 씨익 웃었다.
참으로 선우영다웠다.
경찰특공대는 지하 2층까지 다 확인하고 상황종료를 상부에 알렸다.
삐리릭.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지금부터 증거품 수집을 위해 움직이겠다.”
경찰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며 와타베 히로이키가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봉투에 담고 사진을 찍었다.
증거물이 엄청 많았다.
그중에는 ‘붉은 스킬석’도 존재했다.
선우영은 증거물들이 경찰 차량에 오르는 걸 목격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경찰 총경에게 연락을 넣었다.
“총경님.”
“아, 선우영 헌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스를 잡는 큰 활약을 하셨다고요.”
“예,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붉은 스킬석, 그걸 달라는 말씀이죠?”
“예.”
“일단, 증거물이라 수사가 끝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한 일주일 후에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배려 감사드립니다.”
“선우영 씨가 해주신 게 얼마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걸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선우영은 옅은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능력배화]가 내게 된다!!’
[능력배화], 붉은 스킬석들 중에서도 강력한 패시브 스킬로 여겨진다.
‘모든 능력치를 100% 높여주니까.’
심지어 방어력까지도!!
헌터들이라면 누구든 군침을 흘리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저걸 [사자심왕]과 융합한다면?!’
틀림없다.
단숨에 B급으로 확 올라갈 거다.
‘어서 빨리 일주일이 됐으면 좋겠다.’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손깍지를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뭐, 야쿠자들이 복수한다고 염병을 떨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전혀 걱정 안 됐다.
‘야쿠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크루그먼 길드 소속을 건드리겠어? 그랬다간 자기들이 신용한 회장님한테 다 죽어 나갈 텐데.’
야쿠자들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 * *
다음날.
길드로 출근한 선우영.
그에게 김철수가 다가와 엄지를 보였다.
“선우영 씨, 뉴스 봤습니다. 몬스터 불법 사육장을 소탕하셨다면서요? 지금 난리가 났던데요?”
“그래요?”
“이야, 그렇게 큰일을 해놓고 ‘그래요?’라고 하시다니! 시크하고 쿨해서 멋있네요.”
“하하하.”
선우영은 웃었다.
김철수는 그와 어깨동무를 했다.
“나중에 잘 나간다고 모른 체하면 안 됩니다?”
“예이, 제가 그러겠습니까?”
“그런 의미로 오늘 술 한잔 어때요? 괜찮은 곳을 어제 알아봐 뒀는데.”
“저야 좋죠!”
김철수는 옆자리에 있던 백영희에게도 권유했다.
“백영희 씨도 한잔하시죠!”
“이거, 고정멤버끼리 모여서 회식하는 거 같네요.”
“그러면 정운이도 부를까요?”
“술집이라면서요. 어린애가 거길 어떻게 가요.”
“괜찮아요. 고깃집이라서 미성년자 출입 금지는 아니니까요. 거기 와규가 진짜 끝내줍니다.”
김철수는 군침이 싹 돈단 표정을 지었다.
참 먹성도 좋다.
백영희는 그리 느끼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선우영 멤버의 회식이 정해졌다.
김철수는 선우영을 쳐다보며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그나저나 선우영 씨!”
“예.”
“우리 마지막 멤버는 어떻게… 누구로 할지 생각해보셨어요?”
“아니요. 아직은 없네요.”
“그래요? 뭐, 선우영 씨가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탱커는 뽑지 마세요?”
“왜요?”
선우영이 눈썹을 위로 올리며 장난스럽게 묻자, 김철수가 땅땅한 팔뚝 근육을 보여줬다.
“이 멤버에 탱커는 저 혼자면 충분하니까요!!”
선우영은 입가를 올렸다.
하여튼 저놈의 자신감 하나는 대단하다.
김철수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선우영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새로운 인물을 멤버로 데려와야 하는데.’
다섯 번째 멤버는 누구로 할까.
머릿속에서 몇몇 인물들이 떠올랐지만, 이놈이다 싶은 녀석이 없었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 쓸 만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선우영은 짐꾼 천국이란 사이트에 접속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 시체 부산물을 전문으로 채취하는 직업. 그게 짐꾼이다.
선우영은 한 인물의 프로필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