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아지트
선우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앞에 있는 바위와 트럭이 부딪치려 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
선우영은 트럭을 향해 걸어갔다. 저 바위에 부딪히면 충격으로 몬스터들의 구속이 풀린다.
그건 막아야 했다.
‘안 그러면 몬스터들이 탈출해서 인명피해가 나니까.’
그는 트럭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곧바로 멈춰 세우면 트럭이 충격받을 게 뻔해, 요령껏 행동했다.
미끄러지는 트럭의 속도를 천천히 줄여갔다.
땅바닥에 긁히느라 불똥이 튀긴 했지만, 무사히 트럭을 멈춰 세웠다.
선우영의 뒤꿈치가 딱딱한 바위와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트럭 내부에 감금되어 있던 몬스터들이 난동 부리지 않는 걸 보니, 아직 구속이 풀리지 않은 모양새다.
“으윽, 가…감사합니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운전수들이 간신히 트럭에서 빠져나왔다.
한 명은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여자였다.
백영희는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 선우영에게 달려갔다.
“선우영 씨, 괜찮으세요?!”
“네, 저는 괜찮습니다.”
선우영은 운전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꽤 다쳤는지 허리를 짚으며 간신히 걸었다.
“운전수 양반들.”
“네?”
“트럭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예? 그게…….”
운전수들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줄였다.
저기에 뭐가 들었는지 대답할 수 없었으니까!
그들은 서로에게 눈짓을 줬다.
‘우리 구해준 사람이 선우영이잖아? 일이 귀찮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저 자식은 왜 트럭의 내용물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운전수들도 선우영을 알아봤다.
요즘 한창 유명세를 떨치는 인물이니 못 알아보는 게 이상했다.
조용히 지나가는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찰나.
똑똑똑.
선우영은 트럭을 손으로 노크하듯 두들겼다.
“이거 비슷하게 생긴 트럭에서 미노타우르스가 튀어나와서 초등학교를 습격한 사건이 있었는데.”
노크 소리를 들은 걸까?
- 크오오오!!
몬스터의 괴성이 트럭에서 미약하게 들려왔다.
트럭에서 탈출하지 않은 걸 보아하니 구속은 풀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기절시키는 약물에서 깨어난 모양새다.
선우영은 트럭에 귀를 댔다.
괴성이 제법 날카롭다.
그는 운전수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기회를 던져줬다.
“너희 조직 아지트, 어디인지 순순히 말할 생각은 없겠지?”
운전수들의 눈빛이 변했다.
등에 숨겨뒀던 검을 뽑아 선우영에게 달려들었다.
놈들도 각성자였다.
부우웅.
선우영도 응전에 나섰다.
칼날끼리 부딪쳤다.
백영희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흠칫했다.
미숙하지만…….
운전수들의 검술에서 삼환검이 엿보였다.
선우영은 칼날에 화염 검기를 코팅시켰다.
시뻘건 검기가 운전수들의 검을 녹여버리듯 촤악 잘라버렸다.
절단된 칼날이 땅바닥에 떨어져 튕겼다.
“이런, 젠장!”
운전수들이 기겁한 틈을 타, 선우영은 놈들의 다리를 걷어차 부러뜨렸다.
“크으윽!”
“으아악!”
운전수들은 비명을 지르고 엎어져 일어나지도 못했다.
백영희는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이, 이게….”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운전수가 갑자기 선우영을 공격했다.
근데, 놈들이 삼환검을 사용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해가 안 됐다.
선우영은 간단한 설명을 붙여줬다.
“이 녀석들, 그거 같아요. 요즘 시끌시끌한 몬스터 불법 사육장 운영하는 놈들.”
“네?!”
그 말에 백영희는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장주원.
그 빌어먹을 놈의 면상이 떠올랐다.
운전수들의 검술은 틀림없는 삼환검, 장주원이 가르쳐줬을 거다.
‘장주원, 거기에 있었던 거냐!!’
백영희의 아리따운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어금니를 부득 갈았다.
또다시 삼환검술이 범죄에 이용된단 사실에 치가 떨렸다.
덥썩!!
백영희는 운전수들의 멱살을 잡았다.
“너희 아지트가 어디야?”
그녀가 싸늘한 표정으로 묻자 운전수들은 쩔쩔맸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됐다.
선우영은 놈들의 고심을 끝내줄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사고로 몬스터가 트럭에서 탈출할 뻔했잖아? 거기다 나한테 뒷덜미까지 잡히고. 우리한테 무사히 빠져나가도 조직에 들키면……”
선우영은 놈들의 목덜미 옆으로 검을 내리쳐 땅바닥에 꽂았다.
식겁하는 운전자들!
날카로운 칼날이 눈동자에 비치자 오줌을 지릴 뻔하였다.
선우영은 끊어졌던 말을 이었다.
“우리한테 무사히 빠져나가도 조직에서 가만두지 않을 텐데?”
“마, 말하겠습니다.”
운전수 녀석들의 고심은 선우영의 마지막 한마디에서 전부 끝났다.
놈들은 아는 사실을 술술 불었다.
“경기도 쪽에…… 의정부 가능동 홍복산 쪽에 있는 정육 공장이 몬스터 사육장입니다. 거기가 아지트예요.”
“오호, 그래?”
선우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미래에선 의정부가 아니라 인천이 아지트였다. 이놈들이 사고를 치자, 황급히 옮겼던 거겠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역시 잘 캐물었다.
공포에 질린 운전수들은 덜덜 떨며 묻지도 않았던 얘기를 꺼냈다.
“몬스터는, 부산항구로 오는 걸 저희가 직접 운반합니다.”
“음??”
선우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 사육 사건은 워낙 유명해서 선우영도 너튜브로 자주 찾아봤었다.
당시 엄청난 이슈였으니까.
그래서 트럭이 언제, 몇 시에 사고가 날지도 전부 알았다.
하지만
‘부산항구 쪽에서 몬스터를 들여왔다고?’
이상하다.
그런 정보는 미래에서도 얻지 못했다.
설마, 경찰이 알아내지 못한 걸까?
‘이런 중요 단서를? 왜?’
미래와 현재.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본래 미래는, 이 녀석들이 두 달 뒤에 잡히는 거잖아.’
지금과 다르다.
두 달이란 시간이 흐르기 전에 먼저 잡혔다.
‘그 시간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도망치는 두 달 동안 조직원들을 만났고, 경찰에 잡히더라도 부산항구에 관한 이야기는 숨기라고 명령받았나?’
뜻밖의 수확이다.
‘그나저나 부산항구? 국내에 있는 몬스터를 잡은 게 아니라?’
항구에서 몬스터를 데려왔다면, 다른 나라에서 밀수입했단 소리가 아닌가.
“부산항구에서 데려왔다? 어느 나라에서 밀수입했지?”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일개 배달원이라 그런 정보까진 알 수가 없습니다.”
운전수들은 벌벌 떨며 말했다.
아무래도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좋아, 믿어주지.”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검을 갈무리했다.
미래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대뜸 말해준 걸 보면, 두려움에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듯싶었으니까.
백영희가 놈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이 녀석들 어떻게 하죠?”
“민중의 지팡이에 넘겨야죠.”
선우영은 경찰에 연락을 넣었다.
정운을 사이비 종교에서 구출할 때 경찰과 함께하지 않았나.
그때, 경찰 총경과 연줄이 생겼다.
선우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경찰 총경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나쁜 놈들을 봤나!! 저희가 지금 당장 출동하겠습니다.”
“아, 저기요 총경님.”
“네. 말씀하시죠.”
“저도 이번 작전에 협력하겠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저희가 내부에 잠입해보겠습니다. 때가 되면 주변에 매복하고 있다가 습격해주십시오.”
“아!! 선우영 씨…… 또 이렇게 도와주시겠다니!”
경찰 총경은 감격했다.
자신들을 매번 도와주고, 범죄자 퇴치에 앞장서는 선우영!
더군다나 대외적인 이미지도 좋다.
경찰 총경은 선우영이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나이라고 느꼈다.
이런 청년이 있을 줄이야.
‘나중에 한번 [정부 소속 각성자]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봐야겠군.’
길드가 아닌 국가를 위해 일하는 각성자. 그들을 정부 소속 각성자라 부른다.
선우영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곧이어 경찰특공대가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선우영의 작전대로 움직였다.
운전수들을 감옥으로 송치시키고, 유니폼과 모자를 벗겨 선우영과 백영희가 입었다.
“역시 내부 잠입은 위장이 최고지.”
선우영은 그리 여겼다.
경찰특공대가 인간의 피부와 유사한 가면을 건넸다.
“C급 몬스터, 도플갱어의 가죽으로 만든 가면입니다. 인식 저해 효과가 있으니, 웬만한 사람들한텐 통할 겁니다.”
꽤 쓸 만한 도구였다.
선우영과 백영희가 가면을 쓰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보는 사람에게, 익숙한 인물로 느껴지도록 친근감이 풍기는 게 아닌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위화감을 느끼기 어려워 보였다.
경찰특공대는 손가락 크기의 리모컨을 줬다.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 리모컨 버튼을 누르세요. 저희가 곧바로 진입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 없으니, 빨리빨리 움직이죠.”
선우영은 트럭을 몰았다.
부르릉.
차가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도로를 달렸다.
그 뒤를 경찰특공대가 타는 검은색 벤이 조용히 뒤따랐다.
* * *
의정부 가능동 홍복산 쪽의 정육 공장.
그곳은 몬스터 사육장이었다.
겉으로는 돼지를 잡는 곳처럼 되어 있지만, 지하에는 속박된 몬스터들이 득실거렸다.
그곳의 보스는 시커먼 가면을 쓴 채 적막한 침묵을 유지했다.
지하 2층에서 홀로 몬스터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오른팔이자, 조직의 이인자 장주원이 보스의 곁으로 걸어왔다.
“또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
보스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말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기계를 사용했다.
손바닥에 놓인 기계 버튼을 누르자 소리가 나왔다.
딱딱한 기계 음성이었다.
“나는 이곳이 편하다. 이번에 오기로 한 몬스터는 어떻게 됐지.”
“지금 오고 있습니다. 보스.”
“지난번 같은 실수가 또 있어서는 안 된다.”
“운전수가 담배 피우다 일으킨 사고요? 부주의하게 운전하지 못하도록 교육하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젠 문제없을 겁니다.”
“부산항구 쪽은?”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주원이 그리 말했다.
지하에 숨겨진 몬스터들의 종류는 F~D급.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신들이 처리할 수 있는 등급의 몬스터들만 준비해뒀다.
보스는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가면 속 놈의 눈매가 반월을 그렸다.
소름 끼치는 웃음.
몬스터를 사육하고 교배시켜 마석을 얻어내는 게, 놈의 목적이다.
‘한국은 범죄를 저지르기 참 좋아.’
보스는 그리 생각했다.
다른 나라였다면, 진작 잡혔을 거다.
하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
정부 소속 각성자들이 북한에서 밀려오는 몬스터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이트 사태 발발 이후, 북한의 독재정권은 나라를 버리고 도망쳤다. 북한 각성자들은 군벌을 이루고 영주처럼 지냈으며, 게이트를 탐지하는 기계조차 없어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툭하면 터졌다.
그 탓에 대한민국은 골치를 썩었다.
북한 땅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군대가 모조리 38선에 집중됐으니까.
정부 소속 각성자들도 거기에 투입됐다.
그 탓에 자신 같은 범죄자를 잡는데,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뭐, 몬스터 사육장에 문제가 생기면 얼른 다른 나라로 도망치면 그만이지.’
보스는 턱을 치켜들었다.
이미 어디로 갈지 전부 정해놓았다.
계획은 완벽했다.
보스는 지하 1층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정말이지, 보스도 걱정이 많다니까. 몬스터들한테 문제가 없는지 매일 확인하시다니.”
장주원이 짱알거리며 보스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몬스터를 태운 트럭이 정육 공장으로 위장한 이곳에 도착했다.
운전석에는 변장한 선우영이 타고 있었다.
삐, 삐, 삐.
트럭이 후진하며 정육 공장 안으로 주차되었다.
선우영과 백영희는 무기를 들고 차량에서 내렸다.
그걸 본 조직원들이 따가운 눈길을 보냈다.
“이봐, 너희 왜 무기를 들고 있지?”
“네? 아~ 이거요! 혹시나 몬스터가 트럭에서 탈출해 저희를 공격할까 봐 겁이 나서…. 만약의 사태는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러냐.”
조직원들은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내려놓았다.
“너네들! 안전 운전해라.”
“사고 나면…….”
조직원들이 손으로 목을 치는 흉내를 냈다.
그들이 저러는 이유는 하나였다.
‘지난번 운전수 놈들이 사고 치는 바람에 미노타우르스들이 초등학교를 습격했지.’
‘그것 때문에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고.’
똑같은 사건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보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러니 미리 겁줬다.
실수하지 말라고.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실례지만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뭔데?”
“제가 돈이 좀 급해서…… 오늘 일당을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조직원들은 피식거렸다.
우스웠다.
안 그래도 맹하게 생긴 놈이 저리 말하니까 더 없어 보였다.
“알았다. 돈 줄 테니 따라와라.”
조직원들은 선우영과 백영희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선우영은 허리를 굽신굽신하며 주변에 있는 다른 조직원들을 살펴보았다.
얼마나 강한지 대강 눈대중으로 확인해봤다.
‘대다수가 F~E급.’
D급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조차 없었다.
‘고만고만한 놈들이군.’
곧이어 창구에서 들어선 선우영.
순간 책장 뒤에 있는 미묘한 실금을 확인했다.
건물이 오래되어 발생한 금이 아니다.
그러기엔 반듯하다.
‘저기가 지하로 통하는 비밀 입구인가?’
조직원이 거길 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선우영 일행은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몬스터 사육에 필요한 물품과 돈을 관리하는 녀석들이 보였다.
이곳이 지하 1층.
정육 공장의 본래 모습이었다.
조직원들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 돈을 세고, 선우영에게 일당을 줬다.
“자, 받고 빨리 꺼져.”
그때였다.
조직원 중 하나가 선우영과 백영희에게 다가갔다. 뭔가 마음에 걸린단 표정으로!
“음? 좀 이상한데? 얼굴이 좀 다른 것 같단 말이야?”
눈썰미도 좋은 놈이다.
저렇게 의구심을 가지고 쳐다보면 인식 저해 효과가 떨어질 텐데…….
선우영과 백영희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조직원이 눈을 부릅떴다.
“젠장, 운전수들이랑 다른 놈들이잖아!! 너희 누구냐?!”
선우영은 짝다리를 했다.
아무래도 변장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선우영은 변장을 알아챈 조직원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억!!
놈의 육체가 허공으로 붕 뜨더니, 땅바닥을 튕기며 벽에 부딪혔다.
피슛.
코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선우영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다른 조직원들이 움찔거렸다.
“아, 이제 이거 벗어도 되겠지? 생각보다 엄청 답답하네!!”
선우영은 가죽 가면을 벗으며 히죽였다.
그리고
꾸욱.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1층에서 와장창 창문 깨지는 소리와 총성이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