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삼환검
선우영의 이름값이 다시 한번 치솟았다.
왜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유명인이었는데, 이번에 초등학생들 구해줘서 인기가 높아졌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이 급부상했다.
[정운, 최연소 각성자?]
[선우영은 정운의 후견인?]
[크루그먼 길드, 정운 영입 작전에 착수할까?]
다양한 뉴스거리가 쏟아졌다.
최연소 각성자가 된 정운은 기자들에게 질문 세례를 받았다.
피로에서 회복하고 병원을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어느 길드에 들어갈 거죠?”
“최연소 각성자가 된 기분은 어떻습니까?”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 없어요?”
정운은 눈을 껌뻑거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이크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자자, 비켜주세요.”
정운과 함께 있던 선우영이 기자들을 쫓아내며 차에 올라탔다.
철컥.
정운은 옆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부르릉.
선우영은 시동을 걸고 빠르게 차량을 움직였다.
“우리 운이, 유명인사가 다 됐네?”
“…….”
정운은 눈을 껌뻑이며 대답도 못 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자 적응이 안 됐다.
“야, 정운!”
“네? 예?”
정운은 흠칫거리며 선우영을 쳐다봤다.
참말로 웃긴다.
‘인생 참 재미있어.’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핸들을 꺾었다.
그때였다.
스마트폰 벨소리가 들렸다.
“운전 중에 누구야?”
살펴보니 신용한 회장님의 전화였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뭐, 반응이야 뻔하지 않겠나.
정운을 어서 빨리 크루그먼 길드에 편입시키라고 설득하겠지.
선우영은 이어프로를 귀에 끼고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선우영입니다.”
“우리 선우영이!!!”
신용한 회장은 달달한 목소리로 목청을 높였다.
이어프로를 끼고 있던 선우영의 귀가 아플 정도로 엄청난 음량이었다.
선우영은 고개를 움찔하며 미간을 좁혔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참 시끄럽다.
“무슨 일이신가요, 회장님?”
“자네! 다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 떼지 말게.”
“정운이요?”
“그래! 자네가 후견인이니, 우리 길드로 들어오도록 설득해주게나.”
“글쎄요, 그건 정운이의 선택이죠. 제가 어떻게…….”
“그러면 정운이를 데리고 길드로 와주게. 내가 직접 설득할 테니!”
“물론, 저도 곁에 있어야겠죠?”
“당연하지! 후견인이 옆에 없으면 어떻게 길드에 가입할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핸들을 꺾어 크루그먼 길드로 향했다.
* * *
선우영과 정운.
그 둘은 신용한과 함께 협상을 시작했다.
신용한은 높은 계약금과 연봉을 약속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운을 위한 스킬석 제공도 약조하였다.
선우영이 봐도 괜찮은 계약조건이었다.
물론, 자신만큼은 아니었지만.
정운은 의자에 앉아 무릎을 폈다 구부리며 계약서를 봤다.
어려운 말이 많아서 뭔 내용인지도 몰랐다.
선우영 아저씨가 계약조건이 괜찮다고 해줘서 그런가 보다 했다.
정운에게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저기요! 회장 아저씨.”
“무슨 일이니?”
“저도 여기 다니면 선우영 아저씨처럼 될 수 있어요?”
“당연하지.”
“선우영 아저씨랑 게이트 들어갈 수 있나요?”
“열심히 훈련하면 가능하단다.”
정운은 눈을 반짝였다.
선우영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단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우영 아저씨랑 같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니!’
기대된다.
분명, 엄청난 경험이 될 거다.
정운은 환히 웃었다.
선우영 아저씨처럼 훌륭한 헌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오늘 한 걸음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럼, 운아. 계약서에 도장 찍는다.”
“넵!”
선우영은 후견인으로서 정운 대신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정운도 크루그먼 식구가 됐다.
“크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한다.”
신용한은 껄껄 웃으며 정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무슨 보석을 다루는 마냥!
이후, 선우영은 정운을 본격적으로 훈련하자고 맘먹었다.
그동안 삼환검을 훈련한 덕분에 검술에 체계가 아주 제대로 잡혀있었다.
문제는 오러였다.
미약한 오러 때문에 자신의 고유능력도 잘 다루지 못했다.
‘당분간은 오러 훈련만 시켜야겠네.’
뭐,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 자신에겐 오러를 올리는 편법까지 있지 않은가.
선우영은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스킬을 몇 개 익힐 수 있는지 측정해봤는데.
이런 맙소사.
“10개?!”
검사관이 놀라 소리쳤다.
저렇게 많은 스킬을 익힐 수 있었다니!
선우영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어떤 스킬을 습득하게 할까.’
애당초 정운의 고유능력은 강력하다.
그 특징을 살리는 방식으로 스킬을 습득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괜찮은 스킬석을 신용한 회장님한테 구해달라고 해야지.’
정운의 잠재력을 알고 계시니, 투자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실 거다.
선우영은 옅은 미소로 웃었다.
‘그러면 네 번째 멤버까지 영입하게 된 건가?’
게이트는 다섯이서 들어가야 한다.
이제 딱 한 명만 영입하면, 선우영의 고정 팀이 생긴다.
‘나중에 또 한 명 영입해야겠네.’
뭐, 몇몇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떠오르긴 하지만…….
‘이건 나중 일로 미뤄두자.’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몬스터 사육사건.
그걸 일으킨 장본인들을 잡으러 가볼 생각이다.
‘꽤나 위험한 놈들이지.’
몬스터 사육사건은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사육장에서 기르던 몬스터들이 집단으로 탈출해 경기도 의정부 쪽을 완전 작살냈으니까.’
지나가던 헌터들이 사건에 개입해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지만,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인명피해가 어마어마했다.
그때 사망한 민간인만 100명이 넘어갔다.
재산피해만 해도 몇십억을 웃돌았다.
사건이 점점 심각해지자 정부에선 몬스터 사육범죄와 전쟁을 선포하고 전력을 다해 쫓았다.
미래에선 보스의 정체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듣자 하니, 정체를 숨기기 위해 조직에서도 가면을 쓰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또 도망치는 건 얼마나 재빠르던지, 위기에 빠지자 조직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곧바로 도망쳤다.
놈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정확히는 그럴 거라 추정되는 사람이 있었다.
‘이인자, 장주원.’
놈이 조직의 핵심이었다.
미래의 장주원은 극렬한 저항 끝에 사망해버려서, 결국 보스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장주원의 유언도 꽤나 인상 깊었다.
- 보스는 C급 헌터다. 뒷배도 두둑하지. 너희들로는 못 잡아.
조직이 와해하면서 몬스터 사육 또한 멈췄지만, 마무리가 참으로 찝찝하게 끝났다.
‘정작 그 사건을 일으킨 보스는 정체도 안 밝혀졌으니… 잘 먹고 잘살았겠지.’
그런 미래는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벌 받을 놈은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 더군다나 그 새끼들 때문에 우리 운이도 고생했는데!!’
거기다…….
놈들한텐 구미가 당기는 스킬석이 있었다.
* * *
저녁이 되었다.
백영희는 길드를 나서 도장으로 돌아갔다.
부웅, 부웅.
그녀는 곧장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신입랭킹전에서 우승한 덕분에, 도장에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10명.
신입랭킹전에서 우승한 정도로는, 도장에서 범죄자를 배출했단 악명을 씻을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사람 하나 없이 한적했던 도장에 나름 생기가 돌았다.
“합, 합, 합!!”
목검을 휘두르며 터져 나오는 기합 소리가 도장을 메웠다.
백영희는 사범대리로 그들을 지도했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안 좋습니다. 좀 더 허리를 낮추고 유연하게 움직이십시오.”
“알겠습니다.”
백영희는 사람들의 동작을 지적했다.
다들 각성자로 헌터가 되기 위해 검술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모두들 열심히 훈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련생들이 각자 집으로 떠났다.
백영희는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가 노곤한 몸을 풀었다.
따뜻한 물이 근육을 풀어준다.
그녀는 서서히 활기를 되찾아가는 도장을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구나!’
기분이 좋던 그때, 안 좋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장주원.
하필이면 재수 없게 그놈이 떠올랐다.
“…….”
그녀는 몸을 수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주원의 재능은 남달랐다.
솔직히 말해 자신과 비등한 수준이다.
상당한 노력파였고.
출중한 재능이 가난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자, 아버지께서 직접 수제자로 키우셨다.
수강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장학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줬다.
잘되라고 은혜를 베푼 것이다.
장주원은 자신과 함께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다.
1등과 2등을 가리는 결승전에서, 둘은 항상 맞붙으며, 라이벌이자 친구로서 실력을 쌓아갔다.
대회 공식 기록은 20전 10승 10패.
막상막하였다.
백영희는 장주원이 자신과 함께 헌터가 되어 활약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이…….
‘설마 범죄조직에 가담해서 돈을 벌고 있었을 줄이야.’
전혀 몰랐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였다더라.
그것도 삼환검술로!!
덕분에 도장은 온갖 비난을 받으며 쇠락했다.
백영희는 처음엔 뭔가 오해인 줄 알았다. 장주원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살해 장면이 찍힌 CCTV를 보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놈이 뒤에서 그딴 짓을 하고 있었단 사실을!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덕분에 일주일이나 앓아누웠다.
‘친구라고 믿었는데… 라이벌로 여겼었는데….’
뒤통수 거하게 얻어맞았다.
그렇게 감옥에 들어간 장주원은 빌어먹게도 탈옥에 성공했다.
그 이후 소식이 묘연해졌다.
‘만약 장주원이 눈앞에 나타나면, 그때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자신이 나서서 단죄할 거다.
장주원을 죽이고 잃었던 도장의 명예를 단숨에 회복시키겠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검은 머리 짐승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백영희는 목욕탕을 나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수건으로 팡팡 때리며 말렸다.
띠리리.
띠리리.
그때,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왔다.
누군가 싶어서 봤더니, 선우영한테서 왔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네, 선우영 씨. 무슨 일이세요?”
“그게. 혹시 지금 밖으로 나오실 수 있나요?”
“지금이요?”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다.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자신을 부르는 걸까.
“무기도 챙겨서 와주실 수 있나요?”
“무기까지요?”
선우영의 말에 백영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 * *
어느 한적한 공원.
하늘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선우영은 벤치에 앉아 달짝지근한 캔 커피를 홀짝였다.
옆에는 스포츠용 가방이 있었다.
이곳으로 백영희를 불렀다.
선우영은 미래 기억을 세세하게 더듬었다.
‘몬스터를 운반하던 트럭이 이 지점에서 사고가 난다.’
빗길에 미끄러진 게 사고의 원인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재수가 없었다.
‘사고로 뒤집힌 차량은 내 눈앞에 있는 바위를 들이박고 멈추지.’
그게 트럭에 감금되어 있던 몬스터들이 탈출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 충격으로 놈들의 구속이 풀렸으니까.
몬스터의 등장으로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운전하던 놈들은 그 틈에 도망쳤지만, 두 달 정도 뒤에 검거가 되었다.
놈들은 술술 자백했고….
‘덕분에 아주 결정적인 단서를 얻었지.’
아지트가 어디에 있는지 순순히 불어서 경찰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새끼들 못 잡았다면, 미래에선 사건 해결의 실마리조차 건지지 못했을 거다.
‘여기서 사고를 일으킬 놈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선우영은 그리 다짐했다.
물론, 놈들의 아지트에 혼자 쳐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백영희를 불렀다.
그녀와 장주원의 관계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백영희도 피해자야. 장주원에게 뒤통수 맞은 피해자.’
그녀에게도 복수할 권리가 있었다.
사박, 사박.
나뭇잎을 밟으며 백영희가 선우영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시계가 10시 43분 가리키는 그 시점에…….
부르릉.
몬스터를 태운 트럭도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선우영은 캔 커피를 전부 마시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건 발생까지 앞으로 1분.
선우영은 옆에 뒀던 스포츠용 가방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끼이익.
몬스터를 태운 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져 옆으로 넘어지더니, 바닥을 쓸며 선우영이 있는 공원 쪽으로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