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넌, 뒈졌어!
이소율은 구급차로 이송되었다.
선우영은 그가 구급차에 실릴 때까지 곁을 지켰다.
삐용삐용.
이소율은 그렇게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선우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를 저 지경으로 만든 만용석을 용서할 수 없었다.
분통이 터졌다.
결승은 내일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반드시 똑같이 만들어주마!!’
선우영은 복수를 다짐했다.
한편 이소율을 그 지경으로 만든 만용석은 자신의 숙소에 돌아왔다.
놈은 술병을 입에 대고 맥주를 마셨다.
벌컥벌컥.
그리고는 침대에 앉아 땅콩과 마른오징어를 씹었다.
만용석의 곁에 있던 수하들.
놈들이 허리를 숙이며 아부 떨기에 바빴다.
“헤헤헤, 선우영만 쓰러뜨리면 이제 만용석 회장님이 최고 유망주입니다.”
“그럼, 그렇지.”
만용석은 당연하단 듯 굴었다.
부하들 앞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우영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신경 쓰였다.
‘제법 얼얼했는데 말이야.’
만용석을 뺨을 만지작거렸다.
부상을 포션으로 치료했지만 얻어맞았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대회에서 가장 싸워볼 만한 녀석이 아닐까 싶었다.
부하들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아부했다.
“어차피 선우영은 상대도 안 될 테니, 미리 우승 축하드립니다.”
“푸하하하. 아부는 잘하는군.”
만용석을 그리 말하며 땅콩을 한 줌 집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놈의 목표는 하나였다.
블랙 길드의 명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아직 중소규모다.
게이트 토벌권을 따오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만용석이 블랙 길드를 세운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일확천금을 얻겠단 목적 때문이었다.
만용석은 블랙 길드의 길드장이었지만, 경력이 짧아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크흐흐.”
만용석은 손에서 얼음이 생성되었다.
“이 능력만 있으면 신입 헌터들 따윈 내 상대가 안 되지.”
만용석은 얼음을 만들어 조종하는 스킬을 지녔다.
굉장히 귀중한 스킬이었다.
이걸 얻기 위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처분했다.
‘좀만 기다려라. 망할 대형 길드들 따위 금방 재치고 업계 1위가 되어주마!!’
만용석을 그리 생각하며 얼음을 꽉 쥐어 부숴버렸다.
놈의 수하들은 그 모습에 침을 삼켰다.
솔직히 만용석의 밑에서 일하기가 워낙 X같지만, 그의 능력만큼은 확실했다.
‘오랫동안 곁에 있으면 뭐라도 주워 먹을 게 있을 거야.’
수하들의 속내도 음흉했다.
* * *
선우영은 숙소로 돌아와 만용석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보았다.
‘놈은 얼음계열 스킬을 사용해.’
화르륵.
선우영의 손가락에 불꽃이 맺혔다.
‘다행히 나에겐 화염을 다루는 스킬이 있지.’
만용석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소율을 단숨에 쓰러뜨린 걸로 보아하니, C급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얼음 스킬은 위력이 대단해.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그걸 활용하는 만용석의 센스야.’
선우영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만용석이 얼음 스킬로 어떻게 싸우는지 패턴을 알고 있었다.
미래에선 유명했으니까.
‘얼음방벽으로 방어하고, 얼음창을 날려 공격한다.’
원거리 공격에 매우 능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얼음으로 갑옷을 만들어 근접전에도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근접전과 원거리 교전이 동시에 가능한 스킬.
약점 따윈 없었다.
선우영은 힘으로 녀석을 찍어 누르기로 결심했다.
스킬 융합으로 강해진 자신이라면 가능하였다.
* * *
다음날이 되었다.
신입랭킹전의 결승전이 밝았다.
각 팀의 선수들이 대련장에 올랐다.
관중들이 선우영에게 환호성을 보내며 응원하였다.
“꼭 이겨라!!”
“본대를 보여줘, 반드시 만용석을 쓰러뜨리라고.”
반대로 블랙 길드엔 야유를 보냈다.
“야, 이 나쁜 놈아!!”
“어제 시합 보고 네놈 안티가 되기로 했다!”
만용석은 관중들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턱을 꼿꼿이 들었다.
자신감 하나는 대단했다.
시합을 시작하기 전, 심판이 만용석에게 다가가 따로 주의를 줬다.
“시합 종료를 외치면 싸움을 멈춰야 합니다. 어제는 흥분했다 치더라도 오늘도 똑같은 행동을 보이시면 고발조치 들어갈 겁니다.”
“아! 알았다니까.”
만용석을 빨리 꺼지라고 심판에서 손을 휘휘 저었다.
순간 심판은 발끈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녀석에게 저런 취급을 받자 열이 바짝 올랐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심판은 씩씩거리며 대련장을 내려와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뿌우웅.
경적이 울리자 선우영이 바닥을 박찼다.
그는 먼저 만용석과의 대결에서 방해가 될 녀석들부터 쓰러뜨렸다.
“으아악!!”
“커헉.”
만용석의 수하들이 비명을 질렀다.
놈들이 선우영의 목검에 얻어맞고 허공을 붕 날아올랐다.
털썩.
녀석들은 땅바닥에 엎어져 미동도 안 했다.
그대로 기절했다.
만용석은 혼자가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매번 이런 패턴이었으니까.
“덤벼라!!”
만용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철수가 팔을 강철로 만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백영희는 목검으로 놈을 겨눴다.
3 대 1로 싸우려는 순간.
선우영이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선우영 씨?”
“왜 그러세요?”
백영희와 김철수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선우영은 충격 발언을 내뱉었다.
“저 혼자 싸우겠습니다.”
“예?!”
“혼자서요?”
백영희와 김철수는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선우영은 단언한다.
“저 혼자서도 만용석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결의가 담긴 눈동자였다.
백영희와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다름 아닌 선우영이 단언했다.
그가 할 수 있다고 말한 이상, 절대로 그렇게 될 것이다.
백영희와 김철수는 그리 믿었다.
선우영은 놈의 목표가 뭔지 알고 있다.
‘블랙 길드를 대형 길드로 키우는 거겠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복수, 그건 최단 시간 안에 해치워 블랙 길드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이다.
‘거기서 끝나면 아쉽지.’
선우영에게는 또 하나의 작전이 남아있었다.
만용석은 폭소했다.
“크하하하, 겨우 혼자서 날 이길 수 있다고? 완전히 미쳤구나.”
선우영은 수평 베기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구부리고.
자세를 낮추더니.
타닷.
낮게 뛰어올라 만용석과 거리를 좁혔다.
그 속도가 쏜살같았다.
선우영은 검기를 발동해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만용석은 여유로웠다. 그의 검기를 쉽게 막을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 여유는 한순간에 위기감으로 돌변하였다.
화르륵.
선우영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화염검기를 사용했다.
검기가 무시무시한 열기를 띄웠다.
시뻘겋게 발광하는 모습이 섬뜩하다 못해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만용석은 순간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걸 맞았다간 위험하겠군.’
놈은 결승전까지 아껴왔던 자신의 얼음 능력을 사용했다.
쩌저적.
그의 발아래가 얼어버리며 빙판이 생겨나더니, 곧이어 얼음방벽이 치솟았다.
치이익.
선우영의 화염검기가 얼음방벽을 가격했다.
열기와 냉기가 만나자 수증기가 생기며, 공기가 팽창하더니 폭발음이 들렸다.
퍼어엉.
급격한 온도 차이에 의한 폭발.
얼음방벽은 너무나 순식간에 부서져 버렸다.
타닷.
선우영의 돌격은 멈출 줄 몰랐다.
만용석은 신음성을 흘렸다.
“크윽!!”
자신의 얼음방벽이 저렇게 쉽게 부서질 줄은 몰랐다.
선우영이 만용석의 목을 노렸다.
놈은 얼음으로 갑옷을 만들어 전신을 보호했다.
마지막으로 얼음 방패를 생성하였다.
터엉.
얼음방패가 선우영의 공격에 속절없이 썰려 나갔다.
만용석은 식겁하였다.
선우영의 공격 궤도가 조금만 낮았다면 팔목이 잘릴 뻔했다.
“제기랄.”
만용석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뛰어올랐다.
거리를 벌려야 한다.
‘근거리는 승산이 없으니, 원거리로 승부를 봐야겠군!!’
놈은 얼음 창을 수십 개 만들어 쏘았다.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고드름이 쏟아지는 듯하였으니까.
자연재해를 연상시켰다.
선우영도 이에 맞대응하였다.
붉은 스킬석 덕분에 그의 화염검기는 원거리 공격도 가능해졌다.
화르륵.
선우영이 화염을 쏘았다.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하며 얼음 창들을 모조리 녹여버렸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쏘아진 화염은 매서운 궤적을 그리며 만용석을 향해 날아갔다.
“크윽!!”
만용석은 서둘러 회피하려 했다.
발을 한 발자국 뒤로 물리는 순간, 발바닥에 무언가 닿는 감각이 없다.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대련장의 코너에 몰려 있었다.
회피할 수 없는 상태.
“젠장!!”
만용석은 얼음 갑옷의 크기를 극대화하고 화염에 맞섰다.
시뻘건 불꽃이 그를 덮쳤다.
거대한 능구렁이가 먹잇감을 삼켜버리듯이!!
“크오오오.”
만용석은 기합을 내질렀다.
모든 오러를 다 소모하며 방어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결과!
“헉헉헉.”
만용석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녀석의 몸을 보호하던 얼음갑옷이 녹기 시작했다.
물로 변하는 얼음들.
그의 옷은 축축하게 젖어갔다.
만용석은 완전히 지쳐버려 허리를 수그리고 무릎에 손을 얹었다.
이젠 못 움직이겠다.
오러가 고갈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이질 못했다.
사박, 사박.
선우영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화염검기는 거둬들였다.
오러도 못 쓰는 상대에게 저걸 썼다간 살인사건이 될 테니까.
만용석의 머리 위로 선우영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젠장, 죽어라. 선우영!!”
놈이 욕설을 지껄이며 마지막 힘을 쥐어 짜냈다.
이대로 패배할 수 없다.
뭐라고 해볼 생각이었다.
만용석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선우영은 그걸 가뿐하게 피해냈다.
선우영이 피식거렸다.
그래, 이 녀석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제부터는 합법적인 복수의 시간이다.
선우영이 눈을 부릅떴다. 팔뚝에 힘을 잔뜩 주고 목검을 휘둘렀다.
퍼억!
퍽!
퍼퍼퍼퍽
선우영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만용석을 먼지 나게 팼다.
한방 한방에 감정을 담았다.
“이 X새끼야! 너 때문에 이소율이 얼마나 다쳤는지 알아??”
“커억!!”
“너도 한번 당해봐.”
만용석은 반항도 못 하고 두들겨 맞았다.
그때마다 자존심이 깎여나가다 못해 부서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무력하게……’
놈의 의식이 슬슬 흐려질 무렵.
퍼어억!!
선우영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목검이 부러질 정도로 아주 호쾌한 공격이었다.
“크어억.”
만용석이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 눈이 까뒤집혀 엎어졌다.
승부가 났다.
블랙 길드의 모두가 기절하자 심판이 시합 종료를 알렸다.
“승자, 크루그먼 길드!!”
경기의 끝을 알리는 경적이 울렸다.
관중은 환호했다.
“와아아!! 선우영이 이겼다.”
“저 나쁜 놈을 참교육해주니, 속이 다 시원하네.”
“내 말이 그 말이야.”
다들 선우영을 향해 박수를 쳤다.
기절한 만용석을 향해 의료인들이 다가왔다.
선우영은 놈을 일으켜 세워줬다.
의료인들이 데려가기 쉽게 말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였다.
“저럴 수가! 만용석을 챙겨준 거야?”
“상대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신사답게 행동하는구나.”
“멋있어, 반할 것 같아!!”
사람들은 선우영이라는 남자에게 또다시 반했다.
뭐, 겉보기엔 그가 다친 만용석을 챙겨준 듯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선우영은 만용석을 일으켜 세워주는 척하며,
꾸욱.
몰래 혈도를 눌렀다.
혈도란 오러가 통과하는 육체의 지점을 의미한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다양한 부작용이 시작된다. 마비는 물론이고 심한 경우엔 사망하기에 이른다.
선우영이 누른 혈도는 오러 발산을 약화시키는 종류.
쉽게 말해, 성장을 강제로 멈추게 만들었다.
막힌 혈도는 질병이 아니다.
일종의 체질을 변화, 때문에 포션으로도 치료가 안 된다.
선우영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혈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8년 뒤에나 생겨.’
그때 동안 만용석은 성장을 못 한다.
8년이란 긴 시간을 성장이 멈춘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할 거다.
이게 선우영이 주는 두 번째 복수였다.
어차피 힘을 가지면 나쁜 짓거리 할 놈이라서 이렇게 조치하는 게 옳았다.
8년 뒤에 다시 성장하게 된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훨씬 앞서고 있을 테니, 놈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만용석이 바라던 성공의 미래는 완전히 끝나버렸다.
병원에 입원해있던 이소율.
그는 목에 깁스를 한 채 TV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역시, 선우영 씨가 이길 줄 알았어.”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소율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선우영을 향한 존경심과 자신의 복수를 대신해 준 감동이 밀려 들어왔다.
“선우영 씨를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었네.”
그래도 언젠가 자신의 우상처럼 위대한 헌터가 되겠다!!
이소율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선우영 씨, 앞에서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따라잡겠습니다.’
* * *
딸깍.
크루그먼 길드의 회장 신용한.
그는 신입랭킹전을 생중계하던 동영상을 일시 정지시켰다.
“훗, 역시나 우승했군.”
선우영이라면 분명 가능할 줄 알았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세요.”
신용한이 말하자, 서포트 부서의 부장 김말단이 들어왔다.
“저, 회장님.”
“그래. 무슨 일인가?”
“자성 그룹 회장님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
신용한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자성 그룹이 후계자 정수진, 녀석이 신입랭킨전을 습격하여 선우영을 다치게 할 뻔했다.
신용한은 이 문제를 정당하게 따졌다.
그 결과, 자성 그룹의 회장인 정백산이 직접 사과하러 이곳까지 당도했다.
신용한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 자성 그룹에서 왔다고······ 들여보내 주게.”
“알겠습니다.”
김말단은 얼른 정백산을 신용한의 집무실로 안내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정백산은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공손하게 인사하였다.
그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정백산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목청껏 소리쳤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는 제가 아니라 선우영에게 하셔야죠.”
신용한이 콕 짚어 이야기했다.
정백산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봉투가 들려있었다.
신용한이 봉투에 시선을 줬다.
“그건 뭡니까.”
“선우영 씨에게 사과하려고 가져온 선물입니다.”
“선물이요?”
정백산은 자신이 가져온 선물을 신용한에게 말해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신용한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설마, 정백산이 저걸 가져올 줄이야. 선우영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군.’
그러고 보니, 신용한도 선우영에게 보상을 줘야 했다.
‘우승하면 뭐든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