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본선
드디어 본선이 시작되었다.
본선은 3:3 대결로 승부가 이루어진다.
형식은 토너먼트였다.
대진표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정해졌다.
각 팀의 선수들은 각자 무기를 고르고 대련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와아아아!!”
“저기 봐, 헌터들이다.”
대련장에서 대결을 펼치다 보니, 관중석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대회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물론, 대회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 관중석에 특수유리벽이 세워져 있었지만 말이다.
“우와, 사람들 엄청나네.”
김철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쳐다봤다.
선우영은 주섬주섬 대진표를 꺼냈다.
1회전 상대는······.
‘하회탈 길드?’
처음 듣는 길드명이다.
어딘가의 중소 길드가 아닐까 싶었다.
선우영 일행이 대련장에 올라가자, 상대편도 등장했다.
하회탈 길드는 전부 목검을 들었다.
모두 딜러였다.
탱커는 없는 모양새다.
선우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꽤 특이한 조합이네. 탱커가 없으면 싸우기 힘들 텐데.’
그냥 그러고 말려니 했는데······.
녀석들이 백영희를 빤히 바라보며 피식거렸다.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다.
놈들이 말을 꺼내기 전까진 말이다.
“삼환검 도장? 거기에 있는 여자, 삼환검 도장 사람이지?”
백영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습니다만?”
“이야, 거기 아직도 안 망했어? 범죄자가 나온 도장인데 말이야.”
백영희는 울컥했다.
그녀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하회탈 길드 녀석들은 유명 도장 출신이었다.
때문에 삼환검의 소식을 알았다.
놈들의 얼굴에 같잖단 비웃음이 번졌다.
“크크큭, 삼환검이랜다.”
“거기 아직도 안 망했냐?”
“조만간 간판 내려야 할 상황일걸? 제자도 아예 없는 상황이라던데.”
하회탈 길드 녀석이 무례하게 굴며 말을 가리지 않았다.
백영희는 이를 부득 갈았다.
아버지의 도장을 부흥시키겠단 목표가 있는 그녀에게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었다.
선우영은 백영희를 바라봤다.
“어쩌실래요? 저렇게 지껄이는데······ 한번 본때를 보여주시죠.”
“어떻게요?”
“예를 들어, 백영희 씨 혼자서 저놈들을 몽땅 쓰러뜨린다거나? 제가 가르쳐 드린 기술들 이용하면 가능하겠죠.”
선우영은 매우 중요하단 듯이 마지막 말을 낭랑하게 외쳤다.
“그렇게 쓰러뜨리면, 삼환검 도장을 전국에 홍보할 수 있겠죠.”
백영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욕을 제대로 갚으려면 선우영의 말대로 혼자 싸워 이겨야 했다.
승리할 자신이 넘쳤다.
선우영이 가르쳐준 오러 기술들이 있으니까.
“저 혼자서 싸우겠습니다.”
“네? 하지만 혼자서 세 명을 상대하기는 어렵지······.”
김철수가 놀라 반박하려 하자 선우영이 제지했다.
“괜찮아요, 백영희 씨가 얼마나 강한데요. 우린 느긋하게 구경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 크게 다치면 어쩝니까?”
김철수가 끝까지 걱정하자, 백영희는 목검을 꽉 쥐며 단언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녀는 목검 두 자루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회탈 길드 녀석들은 킬킬 웃었다.
“혼자서 우릴 상대하겠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판단력이 저러니, 삼환검 도장도 저 지경이 된 거 아니겠어?”
놈들은 자꾸만 감당 못 할 소리만 해댔다.
선우영은 팔짱을 꼈다.
‘미래의 검제를 자극해서 좋을 거 하나 없을 텐데. 호랑이 코털 건드리는 꼴이라고, 요놈들아.’
하회탈 길드 녀석들은 자꾸 자기 무덤을 팠다.
“쟤네 저러다 반병신 될 텐데.”
선우영이 중얼거렸다.
시합이 점점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삐이잉.
대결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다.
백영희는 경공을 사용해 상대방과 거리를 좁히고, 지동을 써서 녀석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파악했다.
“타하압!!”
두 가지 오러 기술에 뛰어난 검술이 어우러졌다.
백영희가 재빠른 발놀림으로 적들의 공세를 전부 피해내며 매섭게 공격했다.
놈들이 방어 자세를 취해도 소용없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그녀의 목검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빈틈을 기막히게 타격했다.
“커억!!”
“으어어억!”
“크아아악.”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쓰러졌다.
타격이 얼마나 컸는지, 제대로 일어서질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백영희는 녀석들의 목덜미에 목검을 겨누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보시죠. 삼환검이 뭐라고요?”
“······.”
하회탈 녀석들은 겁에 질려,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였다.
심판이 경적을 울리며 소리 질렀다.
“승자, 크루그먼 길드!!”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감동한 눈빛을 보냈다.
특히나 헌터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와아. 대단한데, 저 누나!!”
“아까 삼환검 도장이랬지? 나도 내일부터 거기 다닌다.”
“니 주제에?”
“너 또 시비냐?!”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을 뿐이지만, 그래도 삼환검 도장을 일으킬 초석이 마련되었다.
백영희는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선우영의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축하드려요, 이걸로 삼환검 도장이 더 빠르게 부흥하겠네요.”
“감사합니다.”
“뭐가요?”
“선우영 씨가 오러 기술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이 굴욕을 설욕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럼, 나중에 밥이나 쏴요.”
“우리 도장에 놀러 오시면 밥 한 끼 사드릴게요. 유명한 맛집이 있거든요.”
백영희는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이야기했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회전이 끝났다.
이후에도 대결은 계속해서 펼쳐졌다.
선우영 일행은 너무나 쉽게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상대가 다들 약했다.
솔직히 선우영은 이미 C급 헌터 수준 아닌가.
딴 놈들이 상대가 됐겠나.
그냥 주먹을 휙 휘둘렀더니, 대련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큰 체력소모도 없이 결승까지 왔네.’
선우영은 대련장을 쳐다보며 다른 팀의 대결에 집중했다.
이번 대결에서 이긴 팀이 자신과 겨룬다.
결승전 상대가 결정되는 대결.
이소율은 여기까지 무난하게 올라왔다.
그는 선우영을 바라보았다.
‘결승전에서 뵙겠습니다.’
이소율은 그리 다짐하며 열의에 찬 눈빛을 하였다.
선우영도 엄지를 내보였다.
반드시 이기고 올라오라며 속으로 응원했다.
이소율이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곧이어 그의 상대가 성큼성큼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로브를 쓴 사내들! 로브의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안 보였다. 놈들은 탱커 한 명과 딜러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소율의 일행도 탱커 하나에 딜러 두 명.
조합은 비슷했다.
선우영은 시커먼 로브를 쓴 녀석들이 신경 쓰였다.
‘음? 파티장에 저런 놈들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선우영은 대회 스탭에게 저들이 누구인지 물어봤다.
“디파이 길드, 이소율의 대전 상대는 누굽니까?”
“아, 블랙 길드요? 중소 길드인데, 특별히 이번 신입랭킹전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파티엔 참석하지 않은 좀 특이한 분들이죠.”
대회 스탭은 그리 말하며 자기 갈 길 떠났다.
선우영은 눈 밑이 떨렸다.
“블랙 길드!?”
아주 잘 알고 있는 길드였다.
미래에서는 대형 길드가 되는 곳이었지만 선우영은 거길 싫어했다.
‘이름처럼 블랙 기업 같은 곳이니까.’
쉴 시간도 주지 않고 헌터들을 강제로 게이트에 보내던 곳이다.
꽤 구설수가 많았다.
또한 사회초년생 헌터들을 속여 노예나 다름없는 계약에 도장을 찍게 했다.
길드 회장, 만용석.
놈은 헌터들을 기계처럼 굴려 번 돈을 은닉하고 세탁했다.
정치인들한테 뇌물 먹이다 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리 쉽사리 처벌당하지 않았다.
전부 다 집행유예만 받았다.
그 이유는, 미래의 만용석이 S급 헌터가 되기 때문이다.
선우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만용석은 백영희와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천재였어. 덕분에 빠르게 S급이 됐는데······.”
혹시 저놈들 중에 만용석이 있는 걸까?
얼굴을 보고 싶어도 로브의 모자를 뒤집어써서 보이지 않았다.
선우영이 이소율에게 소리쳤다.
“이소율 씨, 조심하세요. 상대는 강할지도 모릅니다.”
“넵!!”
이소율을 그리 말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검술 자세를 잡았다.
뿌우웅.
경적이 울리며 시합이 시작되었다.
이소율은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탱커가 정면에서 싸우며 시선을 끌면 딜러가 공격을 하는 방식이었다.
아주 교과서적인 포메이션.
그 운영이 결코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블랙 길드 녀석들도 맞서 싸웠다.
하지만, 놈들은 순식간에 두 명이 당해버리고 고작 하나만 남았다.
이소율은 승리를 장담했다.
‘3 대 1이야. 저 녀석만 쓰러뜨리면 우리가 이길 수 있어!!’
타닷.
이소율이 마지막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선우영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안 돼, 기다려!”
그 말을 전하는 게 한발 느렸다.
이소율이 마지막 상대에게 목검을 휘두르던 순간.
타악!!
놈이 창으로 공격을 막았다.
이소율의 공세는 절대로 연약하지 않았다.
상대가 강했다.
휘이잉.
바람이 불며 놈이 쓰고 있던 로브 모자가 벗겨졌다.
선우영은 경악했다.
저 빌어먹을 얼굴은 틀림없는 만용석이다!
“흐음, 이소율. 신인 중에 손꼽힌다더니. 이름값에 비해 실력이 형편없구나.”
만용석이 지껄였다.
놈은 발차기로 이소율의 명치를 가격했다.
선우영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미X?!”
명치는 급소다! 잘못 맞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소율은 비틀거렸다.
“커억.”
만용석은 목검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때렸다.
이소율을 코뼈가 부러져 피가 나왔다.
“이 자식!!”
“그만두지 못해!!”
이소율의 동료들이 핏발을 세우며 덤벼들었지만, 만용석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퍼억.
놈이 목검을 휘두르자 이소율의 동료들이 튕겨 날아갔다.
머리를 아주 깔끔하게 후려쳤다.
이소율의 동료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며 기대로 기절해버렸다.
만용석이 이소율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억!!”
이소율은 숨을 쉬지 못했다.
승패는 결정 났다.
심판도 심각성을 느끼고 경적을 울렸다.
“시합 끝!! 블랙 길드 승리.”
하지만 만용석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놈은 계속 이소율의 목을 조르자 심판이 재차 소리쳤다.
“시합 끝!! 블랙 길드 승리, 그 이상 공격하면 실격입니다. 그만 하세요.”
관중들은 그 광경에 기겁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소리 질렀다.
“그만해, 시합 끝났잖아.”
“얘들이 본다고!”
“그 이상은 그냥 폭력이야!!”
너무나 끔찍한 광경.
타닷.
그때, 대련장으로 빠르게 올라간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선우영이었다.
퍼억
만용석의 안면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힘이 실려 굉장히 묵직했다.
만용석이 뒤로 날아가 건물 외벽에 박혔다.
충격이 상당했는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퉷.”
놈은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선우영은 재빠르게 이소율을 구출해 바닥에 눕혔다.
“컥컥컥.”
이소율은 그제야 간신히 호흡할 수 있었다.
선우영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만용석을 째려보았다.
“이봐, 힘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난 모양인데 어때? 계속 날뛰고 싶으면 내가 상대해줄까?”
“녀석, 제법인데.”
만용석은 중얼거렸다.
한판 붙어보잔 눈빛으로 실실 웃어대는데, 그게 어찌나 징그러운지 모른다.
놈이 선우영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이러면 길드 이미지가 나빠집니다. 참으세요. 게이트 토벌권 얻는 데 영향이 갈 수 있습니다.”
만용석의 동료······ 아니, 부하가 소리쳤다.
“흐음.”
만용석은 아쉽단 표정을 지었다.
선우영은 할 테면 해보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하하, 미안하군. 대결에 흥이 붙어서 조금 흥분한 모양이야.”
만용석은 그렇게 사고를 무마하려 했다.
선우영은 싸늘한 웃음을 보였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기엔 선을 넘지 않았나? 원하면 반대편 얼굴도 작살 내줄 수 있는데.”
“크하하하.”
만용석은 시원하게 웃었다.
그러며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싸우고 싶으면, 좀 있다가 결승에서 붙자고. 너도 손봐주고 싶은 녀석들 중 하나니까.”
만용석이 소름 끼치게 웃으며 대련장을 내려왔다.
선우영은 이빨이 바드득 갈렸다.
‘오냐, 그래!! 소원이라면 결승전에서 묵사발을 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