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너, 이 새끼 건방져!
선우영의 등장으로 기자들의 분위기가 벙쪘다.
“뭐야? 왜 경차를······.”
“저 사람, 선우영 맞지? 요즘 화제의 인물이잖아.”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포르쉐 아니면 람보르기니인데.”
“분홍색 경차? 왜 어울리지 않게 저런 깜찍한 차종을?”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우승 후보를 뽑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선우영이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유명세였다.
그런데 왜 그런 양반이 경차를 타고 왔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값비싼 차종을 타고 다닐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혹시 말이야. 숨은 뜻이 있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 선우영이 괜히 경차를 타고 왔을 리 없잖아. 무슨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어!”
“과도한 자만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정진하겠단 뜻이 담긴 행동 아닐까!! 기존에 유망주들과 다른 이미지로 대중에게 나서려는 걸 거야.”
“오오!!”
기자들은 입을 모아 소설 한 편을 작성했다.
그럴듯한 헛소리가 탄생했다.
선우영은 그냥 세금 아끼겠다고 경차 타고 다닐 뿐이었는데.
뭐, 다른 차를 타고 파티장에 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도 한몫했다.
김철수의 자동차는 고장.
백영희는 소유한 차량 자체가 없었다. 그간 모았던 돈을 몽땅 도장 부흥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다들 선우영의 경차를 타고 왔다.
선우영은 파티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수진이 일으킬 사건을 해결하자. 아, 그 전에······.’
파티를 만끽해볼 생각이다.
즐기라고 판이 짜였는데, 뚱한 표정만 지으면 재미없으니까.
선우영 일행이 문 앞에 서자, 오늘을 위해 고용된 웨이터들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줬다.
끼이이익.
밝은 불빛이 선우영 일행을 비추었다.
그들은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굉장히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맨 처음 시선을 빼앗았고,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두 번째로 보였다.
정면에 마련된 무대에선 악단이 바이올린을 켰다.
웨이터들은 술과 음료를 들고 돌아다니며, 신사와 숙녀들에게 건네주었다.
“우와.”
김철수는 순간 입이 턱 벌어졌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사와 숙녀들이 잔을 부딪치며 와인을 마셨다.
김철수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폈다.
‘어휴, 누나가 정장 입으래서 어쩔 수 없이 입었는데······ 안 입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렇게 격식 있는 파티인 줄 몰랐다.
그냥 청바지에 셔츠 입으려고 했었는데, 누나 말을 들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선우영 일행이 들어오자 시선을 주었다.
“저 사람이 선우영?”
“흐음, 유명세에 비해 옷은 별로군.”
“꾸미지 않는 스타일인가?”
“이번 대회 우승 후보 중 한 명이라던데.”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선우영은 남들이 뭐라든지 신경도 안 썼다.
원래 우승 후보는 이렇게 주목을 받는 법이 아닌가, 괜히 신경 쓰면 정신만 사납다.
선우영은 손을 들고 웨이터를 바라봤다.
그의 손짓을 본 웨이터가 쟁반에 담긴 음료와 함께 걸어왔다.
“네, 부르셨습니까.”
“샴페인 한 잔 주시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선우영은 기다란 잔에 담긴 샴페인을 홀짝이며 여유롭게 굴었다.
몇 모금 마셔보니, 맛이 좀 심심했다.
‘이거 무알콜 샴페인이네? 하긴 당장 내일이 경기인데 진짜 술일 리가 없지.’
선우영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정확히는 어느 정도 강할지 눈대중으로 재봤다.
실력을 본 게 아니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풍겨오는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은가.
‘대다수가 E급 수준.’
간혹 D급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녀석들이 있었지만, 크게 위협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 거기서 거기구만.’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한편 한 남자가 벽에 기대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소율.
E급 게이트에서 골렘한테 죽을 뻔했지만, 선우영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이었다.
그날, 선우영이 아니었다면 요단강을 건넜을 게 분명했다.
과거의 이소율은 거만하였다.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해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우영 같은 진짜 천재를 만나자 자신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 이후 훈련에 매진했다.
선우영과의 만남은 이소율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덕분에 이제는 D급 헌터다.
지금은 사람 자체가 달라졌단 소리를 듣고 다녔다.
“어이, 이소율!!”
그런 그를 향해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망나니 정수진이었다.
이소율은 그를 쳐다보며 은근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재벌 3세라고 뻐기며 온갖 망나니 짓거리를 해온 정수진, 이 녀석과 인연이 있었다.
옛날에 자주 어울려 다녔으니까.
철없던 시절에 말이다.
“잘 지냈냐, 이소율!! 요즘 왜 이렇게 클럽에 얼굴을 안 비쳐?”
놈이 이소율에게 어깨동무했다.
“훈련하느라 바빠서.”
“푸하하하, 노력 따윈 필요 없다던 이소율 어디 갔어? 왜 이렇게 시시한 놈이 된 거냐고? 엉?”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이소율은 그리 말하며, 어깨에 올라온 정수진의 팔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더 이상 정수진과 엮이기 싫었다.
멍청했던 시절이 떠오르니까.
게다가
‘저 녀석, 마약에도 손을 댔단 소문이 있어.’
정수진은 선을 넘었다.
더 이상은 함께할 수 없는······ 상종해선 안 될 인간이었다.
“저 자식, 재미없어졌네.”
정수진은 이소율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다른 관심사를 찾아보던 중 어떤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 거기 너!!”
정수진이 선우영을 검지로 가리켰다.
요즘 핫이슈.
떠오르는 샛별 선우영!
그가 정수진의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같이 술 마시던 놈이 저 자식 조심하라고 계속 충고해서 병원에 보내줬던 참이었다.
그 탓에, 정수진은 선우영이 맘에 안 들었다.
터벅, 터벅.
녀석이 껄렁한 팔자걸음으로 선우영에게 다가갔다.
“야, 그딴 걸 마시니까 좋냐?”
“무슨 일이죠?”
“아니, 그게 말이야. 형씨. 그거 무알콜인데 그딴 거나 마시고···. 참 재미없는 놈 같아서.”
정수진이 놀리듯 목소리 톤을 들쭉날쭉 장난스럽게 바꾸었다.
선우영은 일단 어른스럽게 대처했다.
“내일 시합이 있으니 무알콜도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드는군요.”
“하하하, 술도 못 마시는 찌질이가 아니고? 아니면 내가 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까?”
“괜찮습니다.”
선우영은 끝까지 존댓말을 쓰며 참아줬다.
최대한 어른스럽게 대해줬는데, 정수진은 그걸 다른 식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놈이 히죽였다. 선우영이 쫄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크크크, TV에서 자주 나오길래 뭔가 했더니. 이제 보니, 그냥 겁쟁이 아니야? 제대로 된 말로 받아치지도 못하고.”
“······.”
“아니면 내가 대기업 회장님의 손자라 못 건드리는 건가?”
“······.”
정수진은 선우영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웃음소리를 키웠다.
“크하하하, 진짜인가 보네. 댁도 대기업의 권력은 무서운가 보지? 겁나 웃기네.”
딱 여기까지라면 선우영은 참아줬을 거다.
하지만.
“야, 선우영. 이제부터 내 딱가리해라. 얼른 무릎 꿇어.”
정수진은 선을 넘었다.
선우영은 어이없단 미소로 샴페인이 담긴 술잔을 바라봤다.
그의 대답은 이거였다.
촤아악.
선우영이 놈의 얼굴에 샴페인을 뿌렸다.
“뭐라는 거야? X신 새끼가.”
선우영은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참아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그들의 모습에 파티장 분위기가 확 얼어붙었다.
정수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뭐 하는 짓이야!!”
“뭐긴? 버릇없는 강아지한테 예의범절을 가르쳐주려는 거지.”
“이익!!”
얼굴이 시뻘게진 정수진.
놈이 주먹을 말아 쥐고, 어깨를 뒤로 뺐다.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정수진과 선우영의 사이를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김철수였다.
그가 정수진의 팔목을 붙잡았다.
“넌 또 뭐야?”
정수진이 김철수를 노려봤다.
여차하면 서로 싸울 분위기라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백영희도 이 사태에 가담했다.
“더 이상 무례하게 굴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눈빛에서 차가운 분노가 쏘아졌다.
“하, 이 새끼들 봐라?”
어이없단 듯이 피식 웃는 정수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싸움이 시작되려나 싶은 찰나, 한 사람이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이소율이 정수진의 어깨를 잡았다.
“정수진, 그만해.”
“넌 또 왜 이러는 건데?”
“내일 대회 시작이야, 지금 싸워봐야 시끄럽기만 해. 내일 손 봐줘도 되잖아.”
“······.”
정수진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놈은 김철수한테 붙잡힌 팔목을 뒤로 빼며 거만하게 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네. 좋아, 선우영! 넌 내일 대회에서 상대해주마. 무서워서 오줌 지리지나 마라.”
정수진은 끝까지 무례했다.
놈은 파티장을 떠나 어딘가로 향했다.
이소율은 멋쩍은 표정으로 선우영에게 인사하고, 다급히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김철수는 혀를 찼다.
“쳇, 정수진이라고 했나? 정말 재수 없는 놈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백영희도 동의하며 미간을 좁혔다.
김철수는 이소율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부득 갈았다.
“저 망할 놈. 우리가 골렘한테서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정수진의 편을 들어주다니.”
선우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정수진을 말리고, 자신에게 인사했던 이소율의 표정은······.
‘놈과 같은 편이 아닌 것 같았는데.’
선우영은 혀를 찼다.
“쯧, 모르겠다. 파티고 나발이고 선수 숙소로 가죠.”
“그럽시다. 기분 잡쳐서 도저히 즐길 상황이 아니네요.”
“그러도록 하죠.”
김철수와 백영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선수들 숙소로 돌아갔다.
각자에게 방이 하나씩 주어졌다.
선우영은 침대에 누웠다.
설마, 시작부터 정수진과 갈등이 빚어질 줄은 몰랐다.
“예선전에서 한번 혼쭐을 내줄까.”
각 길드에서 대표로 선발된 3명은 팀으로 함께 싸운다.
신입랭킨전은 예선전과 본선으로 나뉜다.
예선전의 경우, 각 팀에게 배지를 하나씩 주고 거대한 필드에 집어넣는다.
다른 팀을 쓰러뜨려 배지를 5개 모으면 본선 진출이다.
예선에서 정수진을 쓰러뜨리면 본선에 녀석이 올라올 일은 없다.
‘······생각해보니까, 정수진이 마약에 취해 숙소에서 칼부림했을 때가 본선 시작할 즘이었지?’
놈을 예선전에 떨어뜨리면, 그 사건도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을까?
나쁜 계획 같진 않았다.
선우영이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띠리링.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누가 보냈나 확인해봤는데, 발신자 제한이 걸려 이름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무슨 내용이지?”
선우영은 메시지를 열어보고 입술이 아래로 처졌다.
[메시지]
1. 정수진이 다른 길드와 손을 잡고, 크루그먼 길드를 예선에서 떨어뜨리려 한다.
2. 예선전에 나눠주는 배지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다.
3. 정수진은 그걸로 모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4. 첨부파일(1).hwp
메시지에 첨부된 파일을 열자 정수진과 한배에 탄 길드들이 적혀있었다.
신원미상의 누군가가 보낸 정보.
이게 정말 사실일까?
왜 이런 정보를 자신에게 가르쳐준 걸까.
선우영은 의문이 들었다.
‘혹시나 함정인가?’
아니다.
저런 정보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릴 순 없다.
‘도대체 누구지?’
이 의문의 조력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