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미래의 묻지 마 살인범
선우영은 경차를 타고 출근했다.
공방에서 수익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한 달은 걸릴 거란다.
인터넷 판매루트를 뚫어놓고, 공방에서 일할 사람을 더 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심지어 새로운 기계도 마련했다.
잘은 모르겠는데, 철을 퉁퉁퉁 두들기는 기계였다.
또 철을 갈아버리는 기계도 사던데······
‘그냥 모루랑 망치만 있으면 얼추 되는 줄 알았는데, 뭔 놈의 필요한 기계가 그렇게 많아?’
뭐, 박인혁 말로는 그런 기계가 있어야 더 빠르고 정교한 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더라.
‘어휴, 덕분에 추가로 5억이나 더 썼네.’
그래도 아버지가 직장까지 퇴직하시고 도와주신 덕분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허 신청도 끝났다.
열정적으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복권 당첨금이 눈앞에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며 오히려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경영에 힘써주시니 다행이야.’
마음이 든든했다.
공방을 어느 정도 키우면 수출 쪽도 노리겠다고 하셨다.
“좀만 기다리면 나도 돈방석에 앉는구나.”
선우영은 휘파람을 불었다.
들어간 돈이 아깝지만, 관련 업계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마저 이건 성공할 사업이라고 하시니 기분이 좋았다.
“돈이 나오면······.”
뭐부터 할까?
건물 한 채 구매해서 갓물주 노릇 한번 해볼까?
아니면 자동차를 바꿔볼까?
오래간만에 비싼 음식들이 땡기기 시작했다.
미래가 기대됐다.
“흥흥흐흥흐흐흐흥”
얼마나 흥분되던지 콧노래가 다 나왔다.
끼이익.
선우영은 경차를 몰아 길드에 출근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차 문을 열었다.
눈 부신 태양이 그의 머리를 내리쬐었다.
3일 만에 출근.
“어째 3일간 휴가가 아니라 외근 갔다 온 기분이냐.”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차에서 내려 가볍게 몸을 풀었다.
가벼운 스트레칭.
허리를 돌리고 팔을 접었다 폈다.
그러고는 주차장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헌터1팀 부서에 도착했다.
선우영이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오늘따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찐하게 느껴졌다.
다들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혹시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서 뺨을 더듬어 봤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들 이상하네.’
선우영은 그냥 무시해버리자 생각하고 컴퓨터를 켰다.
옆자리에 있는 백영희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어째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선우영 씨!!”
그녀에게 인사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철수가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그는 흥분한 얼굴로 선우영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액정에는 인터넷 기사가 떠 있었다.
“선우영 씨, 이거 진짜입니까? 정말로 손민하랑 사귀세요?”
“예?”
선우영은 뭔 소리냐는 얼굴을 했다.
누가 누구랑 사귀어?
그는 김철수가 보여준 인터넷 기사를 읽어봤다.
“참나.”
선우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부 억측성 기사다.
“이거 전부 거짓말이에요!! 광고 같이 찍으면서 밥 한 끼 먹을 걸로 무슨······ 어이가 없어서.”
그러자 옆에 있던 백영희가 슬그머니 선우영을 쳐다봤다.
화제에 관심을 보였다.
선우영은 억울하단 듯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
“요번에 아는 사람이랑 공방을 차리게 돼서, 홍보차 광고영상 같이 찍은 게 전부예요.”
그러자 백영희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 말 진짜예요?”
“광고 찍어준 거 고마워서······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하니까, 파스타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백영희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일단은 알겠단 반응이었다.
선우영은 김철수를 바라보며 계속 항변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손민하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럼, 누가 스타일인데요?”
김철수가 물었다.
선우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대기업 회장님 외동딸.”
“아, 또 그 농담입니까?”
“농담 아니라니까요.”
김철수는 껄껄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선우영은 고개를 돌려 백영희를 쳐다보았다.
“저기, 백영희 씨.”
“네.”
“표정이 안 좋으시던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어느 순간 백영희의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선우영은 그녀의 기분이 느닷없이 확 풀어지자, 왜 저러나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며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들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오늘 길드에 있는 누나랑 같이 식사하기로 해서요. 둘이서 맛있게 드세요!”
김철수는 그리 말하며 누나가 있는 팀으로 향했다.
손민하와 선우영의 스캔들이 화제라, 다른 팀에서도 기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김철수에게 정보를 알아보라는 누나의 특명이 있었다.
그는 선우영에게 들은 이야기를 누나에게 그대로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니니까.
졸지에 백영희와 단둘이 식사하게 된 선우영, 그는 그녀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평소처럼 순대국밥이나 먹으러 가실래요?”
“파스타.”
“예?”
“저도 파스타가 먹고 싶어요.”
백영희가 그리 말하였다.
* * *
어느덧 퇴근 시간 때가 되었다.
선우영은 홀로 경차를 몰며 퇴근을 하였다.
“오늘은 엄청 피곤하네.”
그는 하품을 했다.
손민하와 스캔들이 생기자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찾아와 넌지시 물었다.
무슨 사이냐고 말이다.
당연히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했다.
역시 그럼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말로는 알았다는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더라.
“어휴, 도대체 어떤 녀석이 사진을 찍은 거야? 귀찮게 시리. 심지어 다른 팀이나 부서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물어보고···.”
선우영은 투덜거렸다.
그의 기분처럼 하늘도 우중충하다.
한바탕 폭우라도 쏟아지려는 걸까.
혹시나 해서 라디오를 틀어봤더니, 게릴라성 호우가 급작스레 쏟아진다고 한다.
‘오늘 빨래 널고 왔는데! 왜 하필이면 지금 비가 오려는 거야.’
이러다 다 젖게 생겼다.
뚝뚝.
기어이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꽉 막힌 도로를 보며 혀를 찼다.
“에잇.”
핸들을 과격하게 꺾어 샛길로 빠졌다.
좀 돌아가는 길이지만, 꽉 막힌 도로가 언제 뚫릴지도 모르는데, 계속 기다릴 순 없었다.
부르릉.
샛길을 달리는데….
저녁이라 그런지 슬슬 어둑어둑해졌다.
지지직.
전봇대에 달린 백열전구가 불빛을 깜빡였다.
분위기가 으스스해졌다.
어째, 주변에 사람도 잘 안 보이고······ 고작 샛길로 빠졌을 뿐인데 이렇게 갑자기 을씨년스러울 수 있나 싶었다.
선우영은 기분전환 삼아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치킨이나 시킬까?’
그래, 치킨 생각하니까 기분 좀 괜찮아졌다.
역시 치킨은 진리다.
‘굽X 치킨으로 할까? 아니면 BBX 치킨으로 할까?’
저녁 메뉴를 고르던 와중, 선우영은 이상한 장면을 포착했다.
“야, 이 새끼야.”
“히익!”
꼬질꼬질한 누더기로 전신을 가린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의 뒤를 누군가가 쫓았다.
시커먼 구두 굽이 다급히 땅을 박차고 있었다.
“뭐야?”
선우영은 차창을 내렸다.
맨발로 도망치는 아이를 깡패들이 뒤쫓고 있었다.
“저 새끼들이!?”
선우영은 일단 경찰에 신고를 넣었다.
그때였다.
깡패들이 도망치던 아이의 팔뚝을 덥석 붙잡았다.
“끄아악!!”
아이는 땟국이 흐르는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골목에 있는 차량을 발견하고 울먹이며 목청껏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납치당했어요, 살려주세요!!”
아주 간절한 외침이었다.
선우영은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대로 그냥 가버렸다간 저 아이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그는 차에서 내렸다.
깡패 새끼들이 눈을 부라렸다.
“어이, 똘마니! 오지랖 떨지 말고 얼른 꺼지지?”
“뒤지고 싶어?!”
선우영은 귓구멍을 후벼 팠다.
그는 새끼손가락에 묻은 귓밥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개가 짖나? 왜 이리 시끄러워?”
깡패들이 이빨을 드러냈다.
스르릉.
발목에 숨겨뒀던 날붙이를 꺼내 선우영을 겨누었다.
“저 새끼가 우리 보고 개라는 거야?!”
“넌 뒤졌어!!”
놈들이 칼을 휘두르며 그에게 덤볐다.
선우영은 공세를 쉽게 피했다.
‘각성자가 아니군.’
칼끝에 날카로움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품세도 엉망이었다.
형편없는 실력에 긴장감조차 들지 않았다.
퍼억!!
선우영이 주먹을 휘둘렀다.
놈들이 죽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힘 조절했다.
그래도 위력은 강력했지만.
깡패들은 제대로 된 반격도 못 하고 홀라당 나자빠졌다.
부러진 젓가락처럼 픽픽 쓰러졌다.
“짜식들, 까불고 있어.”
선우영은 널브러져 있는 깡패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경찰에 인도만 하면 됐다.
“꼬마야, 괜찮니? 조금 있으면 경찰이 올 거니까 안심해라.”
“······.”
아이가 선우영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경기를 일으키듯 소리쳤다.
“경찰이요? 안 돼요. 걔들은 저기 있는 나쁜 아저씨들이랑 같은 편이라고요.”
“뭐?!”
아이는 쓰러져있는 깡패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우영은 눈을 껌뻑거렸다.
저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이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그의 옷소매를 꽉 붙잡았다.
“아저씨, 저 좀 숨겨주시면 안 돼요?”
선우영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선우영은 아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너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은······”
아이가 머뭇거리던 사이, 느닷없이 강풍이 불었다.
휘이잉.
아이가 두르고 있던 누더기가 바람에 휩쓸려 날아갔다.
선우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아이는 잔뜩 위축된 어깨를 좁히며 이름을 밝혔다.
“제 이름은 정운이에요.”
아이의 목에는 태양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선우영은 순간 미래의 사건이 떠올라 어깨를 흠칫거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태양 문신과 정운이라는 이름을!!
앞으로 5년 후, 수백 명의 민간인이 이유 없이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의 이름은 정운.
[그림자]란 고유능력을 지닌 각성자였다.
그 능력으로 그림자를 다뤘는데, 신기하게도 정운이 다루는 그림자는 물리력이 있었다.
사건은 예고 없이 한순간에 터졌다.
평소와 같았던 서울 한복판.
갑자기 정운이 날뛰기 시작하며, 그림자로 사람들을 습격하였다.
그 능력은 실로 강력했다.
그림자가 물리력이 있단 걸 이용해서 때로는 방패로 쓰기도 하고 화살처럼 날리기도 했다.
피해가 막심해지자, 근처에 있던 헌터들이 나서서 놈을 막아섰다.
치열한 전투 끝에 정운은 죽었다.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적 장례가 치러졌다.
그때 분위기가 참 암울했었다.
몇몇 사람들은 정운의 나이가 고작 16살이었단 사실에 경악했고.
또 몇몇은 정운의 목에 그려진 태양 문신에 주목했다.
선우영은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 당시엔 충격받았지.’
새파랗게 어린 16살짜리가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줄 몰랐으니까.
목적도 동기도 불명확했다.
경찰들이 정운의 과거 이력을 면밀히 조사했지만 밝혀진 게 없었다.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었어.’
그런데 이 애가 미래의 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