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광고
다음날이 되었다.
선우영은 야외 세트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의 옆에는 비어있는 의자가 있었다. 아버지의 자리였다.
직장에서 퇴근하시면 곧장 이곳에 오기로 하셨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금발미인이 선우영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하얀 건치를 보였다.
웬만한 남성들이라면 사뭇 마음이 두근거렸으리라.
하지만 선우영은 아니었다.
이번 광고를 성공적으로 찍어야 한단 생각에 손민하의 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매혹적으로 다리를 꼬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골렘한테서 구해주신 은혜를 갚겠다곤 했지만, 설마 같이 광고 찍는 걸로 은혜 갚게 될 줄 몰랐네요.”
손민하는 키득거렸다.
그녀는 실력을 겸비한 미모의 신인 헌터로 인지도가 하늘을 찔렀다.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어 광고도 여러 개 찍었다.
광고 찍는 일은 그녀의 전문이다.
사실, 손민하는 선우영의 연락을 받고 굉장히 놀랐다.
보상으로 같이 광고를 찍자고 할 줄은 상상조차 안 했으니까.
그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자,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금방 광고회사를 구하고, 세트장까지 마련됐다.
그녀의 인맥 덕분에 저렴하지만 세련된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됐다.
“광고 끝나면 같이 식사나 할까요?”
손민하가 선우영에게 제안했다.
“좋습니다. 밥은 제가 사도록 하죠. 순대국밥 좋아하세요?”
“저는 파스타가 먹고 싶은데요?”
손민하가 귀엽게 윙크를 날렸지만, 선우영은 시큰둥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근처 파스타 집에 예약을 걸었다.
선우영의 아버지 선인환.
그는 방금 막 퇴근하고 세트장에 도착한 참이었다.
근데, 자기 자리에 누가 앉아있었다.
누군가하고 봤더니.
요즘 광고에 자주 나오는 유망주 헌터 손민하가 아닌가!
‘뭐야? 둘이 뭔 사이야?’
그는 아들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혹시 둘이 사귀고 있나 묻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손민하가 선인환을 쳐다봤다.
웬 배불뚝이 아저씨가 주변을 서성이자 미간이 슬그머니 찌푸려졌다.
야외 세트장에 팬이 찾아온 줄 알았다.
“지금 광고 촬영 중이라 사인은 안 됩니다. 돌아가 주세요.”
그녀는 무뚝뚝한 어투로 말했다.
손까지 휙휙 저었다.
선인환은 순간 벙쪄서 눈을 하염없이 깜빡거렸다.
그때, 선우영이 나섰다.
“우리 아버지세요.”
“네?!”
“지금 앉아 계신 의자도 저희 아버지 자리에요.”
“······.”
손민하는 순간 식겁했다.
충격을 받은 듯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금세 낯빛을 바꾸며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어머, 아버님 안녕하세요. 손민하라고 합니다.”
손민하는 콧소리를 냈다.
“선우영의 아비, 선인환이라고 합니다.”
“제가 모르고 아버님 의자에 앉았네요. 아버님, 어서 여기 앉으세요.”
“아, 예.”
선인환은 그제야 빼앗겼던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손민하는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 선우영 씨가 누굴 닮아 이렇게 잘생겼나 싶었는데, 아버님을 닮으셨구나.”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선인환은 그리 얘기했지만, 손민하의 첫인상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러면 저는 여자 배우 대기실로 가보겠습니다.”
손민하는 다소곳이 인사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니, 도망쳤단 말이 더 어울렸다.
선인환은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허- 거참.”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광고로 봤을 땐, 성격 괜찮아 보였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갭이 상당했다.
선인환은 아들을 바라봤다.
“우영아, 너 혹시 손민하랑 사귀는 사이냐?”
“네? 제가요?”
“그래, 그 아가씨가 너한테 관심 있어 보이던데.”
“에이,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보니까 너한테 빠져있던데.”
“아니, 쟤 유명인이잖아요. 뭐가 아쉬워서 절 좋아하겠어요.”
선우영이 콧방귀를 꼈다.
아버지가 주책을 떤다고 생각해 그냥 넘겨버렸다.
곧이어 코디네이터가 선우영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코디네이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와, 선우영 씨 진짜 팬이에요. 경매장에서 사람들 구한 이야기 듣고 진짜 감동받았거든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코디네이터의 칭찬에 선우영의 어깨가 위로 올라갔다.
“혹시 싸인 받을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선우영은 코디네이터가 준 싸인지에 멋들어진 글자를 써주었다.
“와, 감사합니다.”
코디네이터는 그리 말하며 싸인 받은 종이를 따로 고이 모셔뒀다.
“그럼 선우영 씨! 이제부터 코디 하겠습니다.”
코디네이터는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굉장히 진지한 얼굴을 했다.
좀 심각한 표정이었다.
“선우영 씨, 얼굴이나 스타일은 괜찮은데······ 꾸미는 법을 모르시네요.”
“예?”
“일단 머리 스타일부터 바꾸죠.”
코디네이터는 헤어젤을 꾹 짜서 손바닥에 비볐다.
그녀는 신중하게 머리카락을 만졌다.
가르마를 잡고.
뻗친 머리를 가능한 한 주저앉혔다.
그다음으로 옷을 정했다.
선우영의 몸매 스타일에 맞추어 검은색 청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혔다.
“자, 거울 한번 보시죠!”
코디네이터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선우영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우와?!”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봐도 정말 잘생겼다.
옷이랑 헤어스타일 좀 만졌다고 이런 외모가 튀어나오다니.
“옷걸이가 괜찮으니 옷이 사네. 나도 앞으로 꾸미고 다닐까?”
선우영이 중얼거렸다.
그의 아버지, 선인환은 아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날 닮아서 잘 생겼어.’
그때, 저 멀리서 카메라 감독이 배우들을 불렀다.
“이제부터 촬영 시작합니다.”
선우영은 얼른 천막으로 만든 대기실에서 나왔다.
그와 동시에 손민하도 등장했다.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헉?! 잘생겼다!’
이렇게 꾸미고 보니, 어마어마한 미남이 아닌가.
손민하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선우영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촬영감독의 요구에 맞추어 움직였다.
멋들어져 보이는 검무를 추기도 했고, 어쩔 땐 대결을 펼치듯 무기를 부딪쳤다.
또 각자 다른 포즈를 취하며 사진까지 찍었다.
촬영감독은 함께 포즈를 잡으란 지시도 하였다.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이 사다리를 타고 벚꽃을 뿌리며 선풍기를 틀었다.
바람에 벚꽃이 휘날리며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나왔다.
선우영와 손민하는 거기서 검술 품세를 잡았다.
감독은 그걸 보며 만족스럽단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광고 찍는 데만 2시간이 흘렀다.
“컷!!”
감독이 소리치며 박수를 쳤다.
“자, 됐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광고 촬영이 드디어 끝났다.
선우영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광고 찍는 게 생각보다 어렵네.”
혼잣말하고 있는데.
“그래도 재미있지 않아요? 저는 재미있던데요?”
손민하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스탭들은 광고 촬영이 끝나자 기자재들을 트렁크에 실었다.
선인환은 광고 감독과 얘기를 나눴다.
계획했던 컨셉대로 영상이 잘 마무리되게 해달란 말을 나눴다.
이후 선인환은 자가용에 탔다.
“아빠는 먼저 들어가마, 우영아,”
부르릉.
선인환의 자가용이 언덕길을 타고 달렸다.
손민하가 선우영의 옆에 섰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 밥 먹으러 갈까요? 저 너무 배고파요.”
“예.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손민하를 데리고 예약한 파스타 집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파스타 집 직원은 선우영과 손민하를 알아봤다.
하지만 아는 척도 못 했다.
유명인이 있단 사실에 심장 떨려서 주문받기조차 어려웠다.
직원은 간신히 식기와 음식을 내오며 후다닥 도망치듯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머, 어머. 둘이 무슨 사이야?”
직원은 주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안 그래도 요즘 핫했던 선우영이었는데, 저런 사진까지 올라오자 게시글에 좋아요가 빠르게 눌렸다.
사람들은 추측성 댓글을 달았다.
[뭐야? 단둘이 식사?]
[둘이 사귀는 건가. 진짜 선남선녀네. 둘 다 예쁘다.]
[씨X. 사랑했다, 손민하!!]
↳[아니, 그냥 식사하러 왔을 수 있잖아. 희망을 버리지 마!]
↳[남녀 단둘이서··· 그것도 분위기 좋은 파스타 집에서 밥 먹는데,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씨X,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순간 SNS가 후끈 달아올랐다.
물론 선우영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손민하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다소곳하게 앉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예쁘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만약 선우영이랑 오지 않았다면 숭늉 먹듯 면발을 흡수했을 거다.
손민하가 식사 도중 말을 걸었다.
“오! 파스타 맛있네요.”
“네, 그러네요.”
선우영은 해물 크림 파스타를 먹으며 답했다.
새우가 통통해서 맛있었다.
손민하는 슬그머니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같이 먹어서 맛있나···.”
일종의 꼬시는 멘트였지만, 선우영은 대번에 반박했다.
“에이, 주방장 솜씨가 좋은 거겠죠.”
손민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포크로 면발을 돌돌 말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던졌다.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돌직구였다.
이렇게 꼬셔도 넘어오지 않자 자존심이 상했다.
선우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같이 활동하시던, 그 쌍검을 휘두르시던 여자분은요?”
“아, 백영희 씨요?”
손민하는 혹시 둘이 사귀고 있어서 안 넘어오나 싶었다.
선우영은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요. 백영희 씨는 동료예요.”
“그렇군요···.”
그 말에 손민하는 더욱 기운이 쳐졌다.
그러니까, 선우영이 안 넘어오는 이유는 순전히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닌가.
아무래도 꼬시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렇게나 철벽을 치다니.’
손민하는 깨작깨작 파스타를 먹었다.
그렇게 선우영의 마지막 휴가 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 * *
쓱쓱.
백영희는 홀로 도장을 청소했다.
간만의 휴가라서 아버지의 도장을 도와드렸다.
걸레로 야무지게 바닥을 닦았다.
“아니, 휴가인데 좀 쉬지 그러니?”
백영희의 아버지, 백화염이 그리 말하며 딸아이를 쳐다봤다.
“괜찮아요. 쉬는 날이라도 이렇게 몸을 움직여줘야 오히려 기분이 편해요.”
백영희는 그리 말하며, 계속 청소했다.
이렇게 도장을 청소하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검술을 연습했다.
자신이 나서서 대련도 했고.
다른 도장과 교류하며 실력을 쌓기도 했다.
그랬던 곳인데.
이제는 제자 하나 없는 텅 빈 곳이 되어버렸다.
백영희는 마음이 허전했다.
삼환검이 명성을 떨쳤던 시절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눈앞의 현실은 정반대였다.
‘내가 반드시 도장을 일으켜 세울 거야.’
백영희는 그리 다짐했다.
그녀는 청소를 마치고 샤워를 하였다.
슬슬 잠이 들 때였다.
수건으로 긴 생머리를 팡팡 두들겨 닦은 뒤, 헤어드라이기로 말렸다.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잠자기 전에 잠깐만 스마트폰을 하기로 했다.
사실 취미가 너튜브 탐방이었다.
재미있는 영상 없나 찾아보던 도중, 실시간 인기 동영상을 발견했다.
“어?!”
그녀는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동영상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선우영과 손민하 열애 중?!]
오늘 올라온 SNS 사진을 바탕으로 누가 얼토당토않은 영상을 올렸다.
불이 꺼진 컴컴한 방안.
파란색 전자파 불빛이 백영희의 얼굴을 싸늘하게 밝혔다.
“······.”
백영희는 동영상을 말없이 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