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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스킬융합-28화 (28/200)

#28화. 박인혁

박인혁은 눈물 콧물을 질질 짰다.

이대로 죽는 걸까?

주마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가난했던 집안.

죽어라 공부했던 학창 시절.

장학금을 위해 한 단계 낮은 대학에 들어갔던 일.

처음 사귀었던 여자친구.

그 여자친구가 부잣집 남자랑 바람피웠던 일.

돈을 많이 벌겠다고 헌터 무기 제작 학과로 전과했던 기억.

하지만 취직이 되질 않아 결국엔 경매장에서 주차 노릇이나 하는 현재까지.

‘X발,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네. 왜 이리 인생 X같냐.’

박인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치겠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인생에 후회만 남을 것 같다.

사랑하는 여자?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돈?

부자들처럼 많이 벌어서 펑펑 써보고 싶다.

이루고 싶은 꿈?

한국 최고의 무기 제작자가 되어 명성을 떨치고 싶었다.

‘뭐 하나 이룬 게 없어.’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원망스러웠다.

이대로 죽으면 한스러워서 눈도 못 감겠다.

‘돈이 없어서··· 취직이 안 돼서··· 자존감이 떨어져서···.’

온갖 이유로 도전을 포기했다.

한국 최고의 무기 제작자가 되고 싶단 꿈을 말이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이 꿈을 버리고 근근이 벌어먹는 삶을 추구하게 된 게?

만약,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러면 그때는 꿈을 향해 달리겠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도전하겠단 말이다!!

‘1년 동안 돈을 바짝 벌어서 공방을 차리고 무기 제작자로 살 거야.’

그는 그리 생각하였다.

선우영은 박인혁을 인질로 잡은 강도를 계속 예의주시했다.

놈에게 남은 동료는 없어 보였다.

‘함부로 접근하면 박인혁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텐데.’

선우영은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그는 강도의 행동거지를 살피던 중 어떠한 모습을 포착했다.

놈의 총구가 살짝 떨리고 있다.

‘이 녀석······ 사람을 죽인 경험이 없군.’

선우영은 그리 판단했다.

그러지 않고선 저리 공황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지.

‘이 강도들 많이 어설퍼.’

돌이켜보니, 한국 경매장에 헌터들이 있는 건 당연한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고작 권총만 들고 침입했지.’

민간인이 헌터를 상대로 싸우려면 권총 정도의 화력으론 부족하다.

하다못해 기관총이라도 구했어야지.

‘범행 계획을 짰지만, 이것저것 허점투성이뿐이야.’

그렇다면 초범?

초범인데 한국 경매장을 털 계획을 세웠다고?

‘간이 큰 녀석들이군.’

선우영은 눈동자를 슬며시 굴려 주변 물품들을 살폈다.

바스락.

자신의 발바닥 아래에 무언가가 밟혔다.

이건 뭘까.

잠깐 빠르게 살폈는데, 깨진 유리거울 조각이 보였다.

‘복도 벽에 걸려있던 유리거울?’

저게 왜 떨어져 깨졌을까.

‘아까 강도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소란을 피웠었지!’

그때 떨어진 모양이다.

선우영은 깨진 유리거울 조각을 이용하기로 맘먹었다.

강도는 윽박질렀다.

“너 꼼짝 말고 있어. 움직이면 이 녀석 목숨은 없는 거야!!”

녀석이 협박하던 그때, 선우영은 바닥에 떨어진 유리거울 조각을 발로 찼다.

타악-!

날카로운 유리거울 조각이 강도의 손에 박혔다.

권총을 들고 있던 손에 말이다.

“크윽!!”

꽤나 깊숙이 박힌 유리거울 조각.

강도는 고통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선우영은 그 틈을 노렸다.

바닥을 박차고 낮게 뛰어올라 강도의 얼굴에 발차기를 작렬시켰다.

“커억!!”

녀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코피가 쏟아져 나왔다.

강도는 다른 동료들처럼 기절했다.

이로써 사태가 완전히 종료됐다.

간신히 살아남은 박인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콧물을 훌쩍이며 선우영을 쳐다봤다.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선우영과 그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 * *

경찰들이 한국 경매장에 도착했다.

그곳을 습격했던 강도들은 빈사 상태로 제압되어 누워있었다. 게거품을 물며 꿈쩍도 못 했다.

“허, 이거야 원.”

“이 바보들은 왜 여길 습격한 거야?”

“여기 방문객 중에 헌터가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나?”

경찰들은 강도들을 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해 일단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방송국 기자들은 사건 터졌단 소식에 취재하러 왔다.

경매장에 방문했던 사람들을 취재하던 중, 자연스레 강도들을 무찌른 선우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기자들은 선우영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선우영 씨 강도들과 싸우실 때 어땠습니까? 한번 말씀해주세요.”

기자들의 질문에 선우영은 짤막하게 답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선우영은 빨리 박인혁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자들의 취재가 성가셨다.

그는 기자들을 뿌리치고 경매장 안으로 휙 들어갔다.

“아니, 저기 한 말씀 더 해주시고······”

기자들은 딱 한 마디하고 떠난 선우영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선우영은 더 이상 얘기할 맘이 없었으니까.

기자들은 공쳤단 표정을 지었다.

“아!! 저렇게만 말하면 기사는 어떻게 쓰라는 거야.”

“어쩌겠어. 그냥 써야지. 뭐.”

기자들은 하는 수 없단 표정으로 선우영의 기사를 올렸다.

인터뷰 발언은 고작 한마디였지만, 구출된 사람들의 발언을 빌어 가능한 한 좋게 포장했다.

덕분이었을까.

인터넷 넷티즌들의 반응은 후끈했다.

[와, 대박!! 강도들을 잡은 게 해야 할 일이라서 했다는데?]

[요즘 헌터들답지 않게 겸손하네. 얼굴도 훤칠하고!]

↳[나 이제부터 선우영 팬 할 거임.]

기자들은 눈을 껌뻑였다.

예상치 못했다. 설마 선우영의 그 한마디에 사람들이 이토록 크게 반응할 줄은!!

인터넷 인기 검색어 순위에 그의 이름이 올라갔다.

뭐, 선우영 본인은 전혀 몰랐지만.

* * *

선우영은 계단에 앉아있던 박인혁에게 다가갔다.

오늘 하루 힘들었는지, 고개를 숙이며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좀 어떠세요?”

선우영이 묻자 박인혁이 고개를 들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그 말만 3번째에요. 아세요?”

선우영이 그리 말하며 박인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박인혁은 그에게 고맙단 인사를 아까부터 연거푸 했었다.

그의 눈빛이 이전과 달라졌다.

처음 만났을 땐, 기운 없고 낙담한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무어라 설명할 순 없는데···.

‘결의가 느껴진다?’

정확한 표현은 모르겠다.

다만, 인질로 잡혀있다 풀려난 사람치고 꽤나 인상이 밝았다.

‘박인혁은 강도에게 살아남고, 무기 제작자가 되기로 맘먹었다고 했어.’

미래에 나온 그의 자서전에서 분명 읽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년간 경매장에서 더 일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말이다.

만약, 자신이 나서서 도와주면 어떻게 될까.

공방을 차릴 자금을 빌려주고, 수익금에 일부를 받아내는 형식이라면?

‘그럼, 돈방석에 앉는 거지.’

무기를 만드는 공방.

구해야 하는 제작 도구부터 광물까지 필요한 게 많았다.

그러니 돈이 필요했다.

선우영이라면 그 금액을 충당해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돈을 써야겠지만.’

뼈아픈 지출이지만, 무명검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낼 의향이 있었다.

선우영인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참 일진이 사나우시네요. 강도들한테 인질로 잡히시고.”

“네. 운수가 정말 나쁜 날이죠. 하지만 덕분에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았어요.”

박인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참 멍청하죠? 죽을 때가 되어서야 꿈에 도전하지 않은 걸 후회하다니.”

“꿈이 뭔데요?”

“무기 제작자요. 지금부터 공방 차릴 돈을 모아보려고요. 유명 공방에 취직해서 기술을 쌓으면 좋겠지만 요즘 취업이 어렵잖아요. 게다가 학벌도 별로라서······”

“그럼, 제가 도와드릴까요? 공방 차리는 일이요.”

“예?!”

박인혁은 선우영의 제안에 화들짝 놀라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공방은 만드는데 꽤나 큰돈이 필요하다.

못해도 수억 원은 깨진다.

박인혁은 쉴 새 없이 일하며 돈을 벌고, 공방에 투자해줄 투자자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래야 초기자금을 모으니까.

그런데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사내가 도와준단다.

이유가 뭘까?

“죄송하지만 도와주시겠단 연유가 뭐죠? 저희는 초면이고, 제 공방이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는데요.”

선우영은 대답을 잠시 머뭇거렸다.

‘미래에 당신이 성공할 걸 알기 때문에 도와주겠단 겁니다.’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적당히 머리를 굴려 변명거리를 찾아봤다.

“눈빛이요.”

“네?”

“성공을 향한 뜨거운 눈빛! 그런 눈빛을 하는 녀석이 꼭 성공하더군요.”

선우영은 설득력을 높이려고 일부러 목소리 톤을 낮추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뭔가 있어 보여서 속아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해봤다.

박인혁은 소름 돋는단 표정으로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감동입니다.”

그의 입술에서 나온 한마디.

선우영은 잘 넘어갔단 생각에 속으로 쾌조를 불렀다.

이게 먹혔다.

박인혁은 오늘 그를 만난 게 운명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 신께서 정해준 만남이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박인혁은 선우영이 천사처럼 보였다.

자기 목숨도 구해주고, 꿈을 이루도록 보탬이 되어주겠다는데, 저게 천사가 아니면 뭔가!!

“앞으로 평생 따르겠습니다.”

박인혁이 그리 말하며 선우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무진장 감격한 눈빛으로!!

선우영은 손을 슬그머니 뒤로 빼며 대화를 이어갔다.

“강도 때문에 경찰 조사받을 텐데······ 조사가 끝나면 같이 공방 지을 장소 물색하러 가죠.”

“알겠습니다.”

박인혁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모습만 보면 주군에게 절대 충성하는 신하였다.

선우영은 그 모습이 워낙 당황스러워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뭐, 어쨌든.

그와 박인혁은 경찰 조사를 받고 바로 다음 날 만났다.

어느 땅에 공방을 지을지 금방 정했다.

경기도 파주 검산동.

그곳에 있는 어느 건물을 구매했다.

50평 정도 되는 크기였다.

미래에서 박인혁이 처음 공방을 세웠을 때, 썼던 건물이기도 했다.

이후 근처 업체에 연락해 공방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들였다.

망치와 모루는 당연하고.

박인혁이 원하는 각종 광물까지 모조리 구해줬다.

덕분에 꽤나 큰 금액이 깨졌다.

선우영은 인터넷 뱅킹에 접속해 남아있는 돈을 확인하고 손을 덜덜 떨었다.

순식간에 4억이 나갔다.

그나마 건물값이 싸서 2억 1,500만 원에 구매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얼마가 깨졌을지 모르겠다.

미래의 박인혁은 처음 공방을 세울 때, 자금이 부족해 이것저것 아꼈다.

자제도 싼 걸 쓰고.

월세로 공방을 마련했었다.

필요한 제작 도구조차 할부로 구매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우영 덕분에 이것저것 원하는 만큼 시설을 꾸밀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우영 씨.”

“하하하”

선우영은 떨떠름한 웃음을 지으며 속마음을 꼭꼭 숨겼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내 돈······.’

큰돈을 벌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슬픔을 애써 삼켰다.

오늘따라 입가에서 쓴맛이 감돌았다.

선우영은 결심했다.

‘반드시 아다만티움을 만들어서 대박을 터트려주마!!’

그의 주먹이 말아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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