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아라크네 토벌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달리는 차량.
선우영은 맨 뒷좌석에 앉았다.
그가 허리춤에 달린 검에 손바닥을 올렸다.
길드에서 대여한 무기도 제법 괜찮지만, 슬슬 더 좋은 무기를 쓰고 싶단 욕심이 들었다.
미래에 명인이 될 박인혁.
그가 내년부터 활동을 시작하니, 그의 걸작 [무명검]을 얻으려면 슬슬 얼굴을 비추는 게 좋을 듯했다.
‘조만간 만나러 가보는 게 좋겠지?’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고 있으니, 순식간에 시간이 지났다.
그들을 태운 차량이 동대문역 1번 출구 근방까지 왔다.
경찰들이 주변을 통제했다.
왜애앵, 왜애앵.
시뻘건 불빛과 함께 퍼져 나오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멈추십시오!!”
경찰들이 붉은 봉을 휘두르며 차량을 멈춰 세웠다.
“민간인 출입 금지입니다. 길드에서 나왔다면 증명서를 보여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길드 서포트 부서 사람이 빳빳한 서류 봉투를 건넸다.
경찰은 봉투에서 증명서를 꺼내 살펴보았다.
“······크루그먼 길드. 어, 맞게 오셨네.”
경찰은 그리 중얼거렸다.
“들어가십시오.”
그가 붉은 봉을 내리며 소리쳤다.
부르릉.
자동차가 동대문역 1번 출구 쪽에 도착했다.
근처엔 사람 그림자도 없었다.
그들은 주변 주차장에 차를 대기시켰다.
차에서 내린 인원들이 마지막으로 무기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가봅시다.”
이번에 게이트가 생긴 장소는 동대문역 1번 출구 쪽에 있는 빌딩이었다.
길게 뻗은 건물 외벽이 시커먼 먼지로 얼룩덜룩했다.
꽤나 오래된 빌딩 같았다.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휘이잉.
10층 건물이라 그런지 제법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사람들의 머리칼이 바람을 따라 너풀거렸다.
“어디 보자, 저기에 있네.”
선우영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후우, 후우.”
창을 들고 있던 헌터가 긴장한 듯 복식호흡을 했다.
그의 이름은 임수림.
선우영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아, 예······.”
대답은 괜찮다고 했지만, 안색이 안 좋다.
선우영은 바로 눈치챘다.
‘이 녀석, 설마 몬스터가 무서운 건가?’
이런 신입들 꽤나 많았다.
몬스터와 싸워보고 겁에 질린 녀석들.
죽을 수도 있단 공포심에 정신적으로 점점 몰리는 부류였다.
‘이런 녀석들이 얼마 안 가 헌터를 그만두지.’
뭐, 존중은 해주겠다.
그 또한 개인의 선택이며,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그럼, 들어갑시다.”
선우영이 소리치며 사람들과 함께 게이트로 들어갔다.
* * *
게이트의 내부는 매우 더러웠다.
“으윽!!”
고약한 냄새가 풍겨와 김철수는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막았다.
썩은 내가 진동했다.
“어휴, 이 고린내는 도대체 뭐야.”
김철수는 투덜거렸다.
생각 없이 벽을 손으로 짚었는데.
“으악, 기분 나빠!!”
미처 보지 못한 끈적끈적한 액체가 손에 묻었다.
냄새에 주의를 뺏겨 일어난 참사였다.
천장 끄트머리 부분에는 잿빛 거미줄들이 줄줄이 겹쳐있었다.
얼마나 겹겹이 처져 있던지 틈이 안 보일 지경이다.
마치 텐트를 보는 듯했다.
선우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왜 저곳에만 거미줄이 많이 처져 있는 걸까?’
거미줄과 천장 끄트머리 사이 공간에 무언가 들어있기 딱 좋아 보였다.
묘한 의구심이 솟구쳤다.
“꾸륵!!”
“꾸르르르.”
무언가 음성이 들린다.
샤샤샥.
다리 움직이는 소리가 제법 빠르다.
선우영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삼환검의 품세를 취했다.
“탱킹은 맡겨주십시오!”
김철수가 팔을 강철로 만들며 소리쳤다.
선우영은 귀를 쫑긋했다.
소리로 예측하건대, 아마도 7마리쯤 되지 않을까 싶다.
샤샤샥.
역시나! 아라크네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8개의 다리를 이용해 천장과 벽을 타고 다가오는데,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게이트 내부는 넓은 복도 형태였다.
아라크네들이 벽면을 이용해 기어 다닐 수 있는 지형.
스윽.
김철수는 방패를 세웠다.
선우영은 검으로 몬스터들을 겨냥했다. 그의 칼날에 오러가 맺혔다.
타앗.
김철수가 먼저 몬스터들한테 달려들었다.
강철 팔과 방패를 이용해 몬스터들의 공격을 적절히 막아내며 시선을 끌었다.
터엉!!
칼날처럼 날카로운 아라크네의 발이 김철수의 팔뚝을 강타했다.
그러나 생채기조차 내놓지 못했다.
그의 방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라크네들이 아직 강철화를 하지 못하는 김철수의 다리를 노리려는 찰나.
이번엔 선우영이 나섰다.
낮게 뛰어오른 그가 검을 휘둘렀다.
스걱.
굽이치는 강물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칼날의 궤적.
도화지에 사선을 그리듯 휘둘러지는 검에 아라크네들이 절단되어 사망했다.
아리따운 품세와 다르게, 그 위력은 흉포했다.
순식간이었다.
7마리의 아라크네가 머리 없는 신세가 된 것은······.
“!!”
김철수는 소름이 돋았다.
솜털이 삐쭉 서는 느낌이 뭔지 오늘 깨달았다.
정말 대단하다.
다른 딜러들이 나설 필요조차 없었다.
모두가 감탄하고 있는 순간.
쩌저적.
천장 끄트머리에 겹겹이 겹쳐있던 거미줄이 갈라졌다.
그곳에서 또 다른 아라크네가 등장했다.
“꾸르륵!”
녀석은 창을 들고 있는 임수림을 노렸다.
본능적으로 임수림이 멤버의 약점인 걸 깨달은 것이다.
순간 선우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왠지 이럴 것 같더라.’
그는 경공까지 사용해 임수림을 덮치려는 아라크네에게 고속으로 접근했다.
한 줄기 화살처럼 날아가는 선우영.
푸욱.
칼날이 아라크네의 머리를 관통했다.
녀석은 경기를 일으키며 꿈틀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선우영은 검을 강하게 휘둘러 날붙이에 꽂혀있던 아라크네 시체를 빼냈다.
“으아아!!”
임수림은 자신이 공격받을 뻔했단 사실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런 기습은 예상치 못했다.
“아라크네는 영리한 몬스터입니다. 다들 사소한 거라도 주의하세요.”
선우영이 경고했다.
김철수는 그 모습에 감탄하였다.
‘저걸 간파했다고?’
자신조차 저런 함정은 알아보지 못했는데.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나랑 똑같은 E급 맞아? 아무리 봐도 베테랑 헌터 같은데.’
김철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또 다른 무리의 아라크네가 나타나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김철수는 완벽한 탱킹을 보여줬다.
선우영도 삼환검의 신묘한 검술로 아라크네들을 쉽게 무찔렀다.
나머지 사람들도 보탬이 되고자 했지만···.
“아니, 뭘 하려고 해도.”
“저 둘이서 다 해버리니 딱히 할 게 없는데.”
그때 또 다른 무리의 아라크네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나름 몬스터들 중에선 똑똑한 편이라서 그런지, 흩어져 공격하지 않고 한꺼번에 덤빌 생각인 듯싶었다.
숫자가 많아지자 자연스레 나머지 사람들도 전투에 참가했다.
임수림도 창을 휘둘렀다.
기다란 무기로 아라크네들의 머리를 찔렀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팀원들의 발목을 잡고 싶진 않았다.
두려움과 공포심을 꾹꾹 억제했다.
그때였다.
조심스레 천장에서 기어 오는 아라크네 한 마리.
녀석이 엉덩이에서 거미줄을 뿜으며 허공으로 조심조심 내려와 임수림을 노렸다.
“크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아라크네의 다리가 임수림의 등을 찔렀다.
그는 창을 놓쳤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려는데, 아라크네의 발에 꼬챙이 신세가 되어 넘어지지도 못했다.
한 명이 쓰러지자 포메이션이 무너지며 전황이 불리하게 흘러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 여파에 휩쓸렸다.
선우영과 김철수는 괜찮았다.
그들은 붉은 스킬석으로 사기급 스킬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크아악!!”
“으아아악!!”
아라크네들한테 끌려가 버렸다.
꽤나 큰 부상을 입은 채로.
선우영과 김철수가 구하려 해봤지만, 그들의 앞을 다른 아라크네들이 가로막았다.
“꾸르르!!”
“꾸륵꾸륵.”
놈들이 작정하고 떼거리로 덤벼들자 헌터들을 구조할 기회조차 없었다.
“젠장, 사소한 거라도 주의하라니까.”
선우영의 속이 타들어 갔다.
10분가량이 흐르자, 그들을 가로막았던 아라크네들이 모두 죽었다.
“쳇, 이걸 어찌한담.”
김철수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5명 중 3명이 끌려갔다.
아라크네는 먹잇감을 1시간 정도 살려두니, 아직 구조할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E랭크 단둘이서 그게 가능할까?
김철수는 불가능하다 여겼다.
그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게이트 공략에 실패했다고 길드에 알려야 했다.
‘젠장, 고작 E급 게이트인데······.’
뭐랄까, 자존심이 쓰렸다.
붉은 스킬석으로 강해졌으니, 웬만한 게이트는 문제없을 거라 여겼다.
‘근데, 아라크네한테 동료들이 잡혀갔어.’
탱커로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물먹은 솜을 올려둔 마냥 어깨가 무거워졌다.
“흐음.”
선우영은 턱에 손을 댔다.
자신의 진짜 실력은 D급이다. 괜찮은 탱커 하나만 있다면 둘이서 E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
선우영이 김철수를 바라봤다.
‘될 거 같은데. 옆에 듬직한 탱커 있잖아.’
김철수와 함께라면 쉽게 클리어할 수 있지 않을까?
잡혀간 사람들도 모두 구출하고 말이다.
선우영이 제안을 던졌다.
“김철수 씨, 시간이 모자랍니다. 길드에서 구출대를 편성해 오려면 1시간도 부족해요.”
실패를 보고하기 위해 길드에 전화하려던 김철수가 멈칫했다.
초록색 수화기 버튼만 누르면 신호가 가는 그 상황에서 말이다.
선우영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길드에서 이곳까지 이동 거리만 어림잡아도 30분 이상 소요될 거다.
게다가 아라크네들이 정확히 1시간을 기다려준단 보장도 없다.
어쩌면 좀 더 일찍 먹잇감을 맛볼지도 모른다.
놈들이 굶주리지 않았다고 어찌 단언할 수 있겠는가.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둘이서 그들을 구출하자니,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김철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단둘이서 모든 몬스터를 해치우고 구출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선우영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단언했다.
김철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심 끝에 선택을 내렸다.
“좋습니다. 우리 한 번 해봅시다.”
김철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은 동료들을 구출하기 위해 게이트 깊숙이 들어갔다.
* * *
“젠장, 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부족해서 그만······.”
임수림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같이 잡혀 온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들은 보스가 있는 방에 갇혀있었다.
미라처럼 거미줄로 온몸이 포박된 상태였다.
얼마나 칭칭 감았는지 손발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얼굴만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상처도 생각보다 깊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랐지만, 그들은 각성자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목숨 줄이 길었다.
임수림 탓에 잡혀 온 다른 헌터들은 겁에 질려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보스 몬스터가 그들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저게 거미여왕이구나.’
‘젠장,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다들 희망을 잃어갔다.
아라크네들은 놀리기라도 하듯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겁줬다.
“히익!!”
임수림의 입에서 가느다란 비명이 튀어나왔다.
‘제발, 누가 도와줘.’
그의 귓등을 타고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무신론자인 임수림이었지만.
이번 한 번 만큼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빌었다.
살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