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탱커
김철수는 의자에 앉았다.
선우영과 대련에서 패배한 뒤, 계속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코뼈 붙이느라고 고생했네.’
김철수는 콧등을 조심스레 만졌다.
그는 씨익 웃었다.
다시 붙은 코뼈는 아주 단단했다.
‘자, 그럼 열심히 일해볼까!!’
퇴원 이후 첫 출근.
김철수는 의욕이 불끈불끈 솟았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
우연히 선우영을 목격했다.
설마, 저 녀석도 자신과 같은 1팀인가?
‘거참, 껄끄러운 놈이랑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다니······ 기분이 좀 그렇구먼.’
김철수는 그리 생각했다.
대련에서 자기 코뼈 부러뜨린 선우영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재수 없으면 저 녀석이랑 게이트 들어가는 거 아니야?’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서먹서먹한 동료와 목숨 걸고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그건 힘들겠지.’
김철수는 아직 함께 다닐 멤버가 없었다.
그렇다면 길드에서 정해주는 인원으로 게이트에 들어갈 텐데, 재수 없으면 선우영과 같이 일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김철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나도 빨리 같이 다닐 멤버 만들어야지.’
그런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면 말이다.
그때, 김용대 부장이 말을 걸어왔다.
“오, 김철수!!”
“안녕하십니까.”
김철수는 얼른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용대는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몸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 건강하다니 다행이구먼.”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김철수는 우렁차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김용대는 시원시원한 대답이 좋았는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좋아. 김철수가 퇴원한 걸 기념해서 오늘 우리 팀 회식을 하도록 하지. 다들 소고기 어떤가? 꽃등심, 좋아하지?”
“좋습니다!!”
헌터들이 얼른 소리쳤다.
간만에 뱃속에 기름칠 좀 하겠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월급이 넉넉해 소고기를 언제든 사 먹을 순 있었지만, 길드에서 공짜로 사준다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업무가 끝나고, 1팀은 회식 장소로 향했다.
길드 근처에 있는 소고깃집이었다.
다들 삼삼오오 불판에 모여앉아 고기와 소주를 시켰다.
김철수는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의 주인공이 아닌가.
옆자리에는 김용대 부장님이 계셨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바로 선우영이었다.
그가 김철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
김철수는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니, 저놈이 왜 맞은편에 앉는단 말인가. 가뜩이나 얼굴 보기 불편한데.
김철수는 그를 다른 자리로 쫓아내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이미 식당은 꽉 찼다.
“크흠.”
김철수는 헛기침을 했다.
이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곧이어 식당 알바생이 와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뭐 드릴까요?”
“꽃등심 3인분이랑 소주, 맥주 각각 한 병 주세요.”
“알겠습니다.”
알바생은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갔다.
곧이어 마블링이 아름다운 꽃등심을 식탁에 올렸다.
탁탁.
알바생은 불을 켰다.
각자의 자리에 소주와 맥주잔을 놓으며 술까지 대령했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선우영이 그리 말하며 소주 마개를 땄다.
일단, 가장 연배가 높으신 김용대 과장님의 잔에 술을 따랐다.
콸콸콸.
그다음 김철수의 비어있는 술잔으로 술병을 옮겼다.
“크흠.”
김철수는 불편한 얼굴로 술잔을 내밀었다.
선우영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그의 술을 따랐다.
김용대가 김철수의 등을 두들겼다.
“이 친구, 왜 이리 표정이 안 좋아? 설마 술을 싫어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먼. 자자, 오늘의 주인공이 일어나서 건배사 하지.”
김철수는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그가 술잔을 들었다.
“오늘 이렇게 퇴원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1팀의 발전을 기원하며, 건배!!”
“건배!!”
사람들이 같이 술잔을 들며 건배하였다.
치이이익.
고기가 불판에 익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어떤 사람은 입가에 맥주 거품을 묻히며 껄껄 웃었고.
어떠한 사람은 고기 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우리도 어서 먹자고.”
김용대 부장이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고기 굽는 역할을 선우영이 맡았다.
집게로 고기를 능숙하게 뒤집으며 육즙이 나가지 않도록 조리했다.
선우영은 김철수의 그릇에 큼지막한 고기를 올려줬다.
“······?”
김철수가 왜 이러냐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제가 고기 좀 구울 줄 압니다. 맛있을 테니까, 한번 드셔보세요.”
선우영이 저리 말하자 빼기도 뭐 했다.
김철수는 한입 먹어봤다.
고기를 씹는 순간!
육즙이 쫘아악 퍼져 나와 혀끝을 감돌았다.
“어, 맛있는······.”
김철수는 감동하여 저도 모르게 맛있단 말이 나올 뻔했다.
“하하하, 맛있나?”
김용대 부장이 김철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껄껄 웃었다.
덕분에, 김철수와 선우영 사이에 곤두서있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
선우영은 비어있는 김철수의 술잔이 보였다.
“술 한잔 받으십시오.”
“아, 예.”
콸콸콸.
술잔에 소주를 부으며 선우영이 말을 이었다.
“코뼈는 좀 괜찮으십니까?”
“뭐, 다행히 잘 붙었습니다.”
“저도 적당히 싸우려고 했는데, 김철수 씨가 너무 강하시니까······ 이기려면 도저히 적당히 할 수 없겠더라고요.”
“······?”
김철수는 저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선우영이 자신을 압도했던 것 같았는데.
김용대는 술잔을 들었다.
“하하하, 보기 좋군. 우리 길드 차세대 탱커 에이스 김철수! 차세대 딜러 에이스 선우영! 너희들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
그가 칭찬하자 김철수의 기분이 좀 풀렸다.
선우영도 공손한 말투로 김철수에게 말한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니 어떻게 계속 꿍해져 있을 수 있겠나.
김철수는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에잇, 그냥 다 잊고 마십시다.”
그가 소리쳤다.
선우영은 옅은 미소와 함께 술잔을 뻗어 건배를 하였다.
“앞으로의 인연을 위하여!!”
김철수가 술잔을 부딪쳤다.
벌컥, 벌컥.
그는 술잔을 수직으로 꺾어 소주를 원샷했다.
‘그래, 계속 꿍해져 있어 봐야 뭐해!! 사나이 김철수, 술 한잔에 다 잊어버리겠다.’
김철수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시원한 소주처럼 원한을 훌훌 털어버렸다.
이후 그들은 수다를 떨었다.
언제 껄끄러웠냐는 듯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계속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였다.
띠리리.
띠리리.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김용대가 재킷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발신인이 [♥마누라♥]였다.
김용대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 지금? 회식 중인데.”
얘기를 듣고 있던 김용대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니, 무슨 소리야. 금방 들어갈게. 회식은 무슨!! 자기가 중요하지. 애정이 식었다니, 그런 거 아니야.”
김용대는 뻘뻘 땀을 흘렸다.
선우영과 김철수는 뭔데 저러나 싶어 멀뚱멀뚱 쳐다봤다.
김용대는 서둘러 재킷을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했다.
“부장님 어디 가세요?”
선우영이 묻자 김용대가 말을 더듬었다.
“그···그게 말이야. 오늘 결혼기념일이었는데······ 까먹고 있었어.”
“!!”
“아이고, 부장님.”
김철수와 선우영은 충격과 공포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김용대도 X됐단 얼굴을 했다.
오늘 들어가면 도대체 얼마나 바가지를 긁어댈지 감도 안 왔다.
“그럼, 나 먼저 들어가겠네.”
김용대는 그리 말하며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나섰다.
단둘이 남은 선우영과 김철수.
그들은 계속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회식을 이어갔다.
술기운이 기분 좋게 올라올 때쯤, 김철수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선우영 씨, 혹시 아라크네 아세요?”
“그 거미 말입니까?”
“예, 제가 내일 아라크네 잡으러 가거든요.”
“오, E급 중에서도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몬스터인데. 그나저나 김철수 씨 아직 F급 아니셨나요?”
“아, 그거요? 실은 퇴원을 그저께 했거든요. 그래서 어제 바로 F급 게이트 클리어하고 E급 헌터가 됐습니다. 하하하, 게이트 클리어한 헌터는 곧장 퇴근이라 길드에 들리지 않고 퇴근했지요.”
김철수는 어깨가 올라갔다.
자신감에 우쭐해 하는 모습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몬스터의 공격을 제일 먼저 받아내야 하는 탱커에게 배짱은 최고의 재능이었다.
선우영이 그에게 충고했다.
“아라크네를 잡으려면 탱커보단 딜러의 영향이 중요한데, 멤버는 다 정했어요?”
“아니요. 아직 한 자리 부족해요.”
김철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선우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 자리라···. 그러면 저랑 같이 가보시는 건 어때요?”
“하하하, 선우영 씨가 있으면 든든하죠. 환영입니다.”
김철수가 맥주 마개를 숟가락으로 따며 대화를 이어갔다.
“자자 선우영 씨, 같이 게이트 들어가는 기념으로 한잔 받으시죠!!”
이번엔 김철수가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콸콸콸.
맥주잔에 새하얀 거품이 올라왔다.
그들은 술을 원샷했다.
선우영은 갈색빛이 감도는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살폈다.
오후 9시 1분
“내일 게이트 들어갈 거면, 너무 과음해도 그럴 것 같은데.”
“그렇죠? 이쯤에서 그만 일어납시다.”
선우영과 김철수가 의자를 뒤로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길드원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또한 내일을 위해 슬슬 회식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헌터들이 크루그먼 길드에 출근했다.
김철수는 책상에 앉아 아라크네에 대한 정보를 컴퓨터로 모으기 시작했다.
“흐음, 먹잇감을 바로 먹지 않고 1시간 정도 살려둔다고.”
정보를 모아보니 아라크네는 제법 독특한 몬스터였다.
이빨과 여덟 개의 다리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탱커들이 싫어한다고 적혀있었다.
게다가 이 녀석들, 함정까지 파놓는단다.
지휘체계도 잡혀있어 싸움도 굉장히 전략적으로 한다고 모니터에 떴다.
‘확실히 만만한 몬스터는 아니네.’
무엇보다 잡아둔 먹잇감을 일부러 살려둬서 구조대가 오도록 유인한단 정보가 맘에 걸렸다.
지능이 엄청 높았다.
구조대까지 사냥해서 잡아먹겠단 의도가 아닌가.
만약, 같이 들어간 딜러가 실수라도 했다간 위험에 빠질지 모르겠다.
‘뭐, 선우영 씨는 괜찮겠지만··· 나머지가 좀 걱정되네.’
김철수는 문서 파일을 열었다.
마우스를 두 번 딸깍이자, 이번에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인원들이 떴다.
‘나랑 선우영 씨 빼면 나머진 별 볼 일 없는데 말이야.’
그는 사진을 쭉 훑어봤다.
시선이 멤버 중 한 명에게 쏠렸다.
창을 주무기로 쓰는 딜러였는데,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음울함이 드러나는 눈동자가 마음에 안 들었다.
‘이 녀석, 괜찮은 거 맞아?’
좀 걱정된다.
‘에잇, 나답지 않게 걱정도 팔자네. 뭐 괜찮겠지.’
김철수는 자신의 감을 무시하며 컴퓨터를 종료했다.
이제 슬슬 출발할 때다.
덜컹.
김철수는 어깨에 둥그런 방패를 매고 길드 밖으로 나갔다.
“김철수 씨!!”
선우영이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밖에는 이번 게이트에 함께 들어갈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부르릉.
그들을 태운 차량이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