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동료2
선우영의 앞에 백영희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선우영이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앞으로 훈련기간 얼마나 남으셨어요?”
“11개월 정도 남았죠.”
“어휴, 실전에 투입되시려면 아직 한참 남았네요.”
선우영이 말하자 백영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예상이 틀릴 것이라는 듯이.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이 슬며시 올라갔다.
풋풋한 20대의 싱그러운 미소가 얼굴에서 살그머니 퍼져나갔다.
선우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백영희에게 무언가 있는 게 느껴졌다.
훈련기간을 단축하고 실전에 투입될 작전이 말이다!!
그러지 않고 저렇게 자신만만하겠나.
“무슨 작전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뭐, 있다면 있고요.”
백영희가 장난을 치듯 그리 말하였다.
선우영은 궁금해졌다.
미래에선, 백영희는 1년간의 훈련을 다 마치고 실전에 투입되었다.
그녀가 S급 헌터가 되었을 때, 백영희의 생애를 다룬 특집방송이 방영되었는데 거기서 분명히 봤다.
‘이상한데?’
본래 미래라면······
‘백영희한테 훈련기간을 단축시킬 방법이 없었을 텐데.’
그녀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선우영은 미래와 현재의 다른 점을 비교하며 꼼꼼히 분석해봤다.
아무리 고심해봐도.
그녀의 삶에 새로이 생긴 인연은 자신밖에 없었다.
‘나랑 관련 있는 건가?’
점점 머릿속 저편에서 스멀스멀 기억이 떠오른다.
김철수와 대련을 펼치던 그때가.
“서, 설마?!”
그는 순간 말을 더듬었다.
백영희는 그게 맞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이고, 백영희는 자신이 한 것처럼 누군가와 대련해 승리하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될 생각이었다.
‘날 따라 하려고 하다니.’
이건 그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녀에게 자신이 영향을 끼치리라고 상상조차 안 해봤거늘.
‘나비효과가 참 재미있게 흘러가네. 에휴.’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미래의 백영희는 차가운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약간 누그러진 기분이다.
미래가 조금 바뀌었다.
뭐, 어쨌든!!
선우영은 그녀에게 계획을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교관님들은 E~D급 헌터로 활동하셨던 분들이세요.”
“설마?”
“네. 그 설마예요. 교관님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제 실력을 선보일 겁니다. 교관님들도 그 정도가 되면 조기에 훈련을 끝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
선우영은 살짝 말문이 막혔다.
좀 당혹스럽긴 한데, 백영희라면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 달 정도 지나면 말이다.
‘지금 당장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뻔하지. 아직 실력이 부족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훈련 교관의 숫자는 세 명.
그 중엔 D급이었던 양반도 있으니, E급인 백영희가 당장 이기긴 어렵다.
좀 더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주일 만에 E급 수준으로 강해졌으니,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D급도 가능할 겁니다.”
백영희는 자신했다.
선우영도 그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조만간 부산 동구 쪽에 나타날 게이트에 들어가야 한다.
그걸 위해 동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은가.
백영희가 훈련생 신분에서 더 빨리 벗어나도록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예로 들어, 하루 만에 D급 헌터 수준에 도달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선우영이 그녀에게 제안한다.
“혹시 그 계획을 좀 더 빠르게 앞당겨 볼 생각 없으신가요?”
“네?”
백영희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의 긴 쌍꺼풀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일단 따라오시죠.”
선우영이 그리 말하며 다른 장소로 향하자, 그녀가 따라갔다.
키 차이 때문인지 둘의 보폭은 조금 달랐다.
선우영이 더 넓었으니까.
한걸음 정도 뒤에 있던 백영희는 속도를 조금 높여, 선우영의 바로 옆에 나란히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훈련생들.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묘하네?”
“선우영 씨랑 백영희 씨가 저렇게 친했나?”
“그러게.”
“백영희 씨 평소에는 싸늘한 이미지였는데, 웃을 땐 저런 느낌이구나.”
“뭐, 저건 저거고!! 우린 다시 훈련하자.”
이내 다들 다시 훈련에 들어가며 훈련장엔 쇠질 하는 육중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선우영은 대련장으로 백영희를 데려왔다.
거기엔 단둘밖에 없었다.
“여긴 왜······?”
백영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우영은 입고 있던 양복 재킷을 벗어 팔에 걸쳤다.
그는 일단 본론을 꺼냈다.
“제가 게이트에 들어갈 믿음직한 동료가 필요한데······ 혹시 1팀으로 와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믿음직한 동료가 필요하시다고요?”
“네.”
그 말에 백영희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았습니다. 제가 도와드리죠.”
백영희가 그리 답했다.
선우영은 주먹을 쥐며 기쁨의 포즈를 취했다.
“일단 빨리 훈련에 들어가죠.”
“대련해주시려고요?”
그녀가 묻자 선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닙니다. 오러를 성장시키는 훈련입니다. 백영희 씨라면 오늘 중으로 D급까지 성장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백영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러를 단숨에 D급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 훈련법이 있다니.
그것도 겨우 하루 만에 말이다.
“그런 걸 함부로 막 알려줘도 돼요? 혹시 거짓말은 아니죠?”
“진짜입니다. 그리고 이거 재능이 없으면 훈련이 불가능한 방식이거든요.”
선우영은 그녀에게 훈련법을 설명해줬다.
“대기 중에 있는 마나를 호흡으로 흡수하여 심장에 자극을 주세요.”
선우영이 김철수와 대련하기 전, 오러를 성장시키기 위해 썼던 방식이었다. 미래에 밝혀진 편법이다.
백영희는 가부좌를 틀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그의 지시대로 행동하였다.
“후으읍.”
숨을 길게 들이켜며 대기 중에 포함된 마나를 흡입했다.
심장을 간질이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와 혈관에서 타오르는 감각을 감지했다.
오묘한 기분이 든다.
곧이어 신체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오러가 마나에 반응했다.
조금씩 오러의 기운이 강대해지기 시작하였다.
“후우우우.”
백영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강대해지는 오러의 기운을 다스리느라 애먹었다.
그녀는 가부좌를 틀었던 다리를 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육체의 변화를 살폈다.
“맙소사.”
정말 단시간 만에 오러의 양이 확 늘었다.
그게 느껴졌다.
“선우영 씨,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세요? 어떻게 이런걸······.”
백영희는 당황했다.
이 방식으로 계속 훈련한다면, 앞으로 오러의 양을 더욱 늘릴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우영은 환상을 깨듯 한마디 던졌다.
“이거 딱 D급까지 성장시켜주는 훈련법입니다. 그 이상은 이 훈련법으론 강해질 수 없어요.”
“아······.”
백영희는 아쉽단 표정을 지었다.
치트키처럼 빠르게 성장하면 삼환검의 명예도 덩달아 짧은 시일 안에 회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인생이 참,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선우영 씨 덕분에 D급까지 빠르게 성장했잖아.’
문득 그녀는 그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이토록 대단한 훈련법을 알고 있을까.
정말로 신비로운 남자다.
선우영은 거기서 훈련을 끝내지 않았다.
백영희는 이제 D급 수준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교관들을 확실하게 이기려면 다른 능력들도 익혀야 했다.
‘미래에 백영희가 검제로서 사용했던 오러 기술들을 가르쳐야지.’
스킬을 전혀 익히지 않았던 미래의 백영희.
그녀는 헌터 생활 동안 검기와 검술만으로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그 결과!!
미래의 그녀는 오러를 이용한 이동기술이나 공격기 등등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스킬석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다양한 오러 기술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검제란 타이틀을 손에 넣게 된다.
‘일단 경공부터 가르쳐볼까.’
경공, 발바닥 끝에 오러를 집중시킨 뒤 회오리처럼 회전시켜 땅을 박차는 기술.
상대방과 거리를 단숨에 좁힐 수 있다.
미래의 백영희는 자신이 개발한 경공을 항상 써먹었다.
근접전투 능력자들이 고민하던, 멀리 있는 적과의 ‘거리’를 좁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으니까.
‘뭐, 저 기술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익힐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미래의 백영희는 천재들만 익힐 수 있는 오러 기술들을 많이 개발했었다.
그걸 터득하지 못하면, 별로 어렵지 않은데 왜 습득 못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선우영은 백영희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녀는 미래의 자신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는 백영희에게 말을 걸었다.
“경공을 익혀봅시다.”
“경공이요? 그게 뭐죠.”
“발바닥 끝에 오러를 집중시키고 회오리처럼 회전시켜 땅을 박차는 기술이죠.”
선우영은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미 사기적인 패시브 스킬을 익힌 그에게 경공 정도는 어려운 기술도 아니었다.
타닷.
대련장 끝에서 끝으로 그가 잽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거의 발이 닿지 않았다.
“저런 방식이······.”
그녀는 단숨에 감을 잡았다.
경공이란 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말이다.
‘저 기술을 삼환검과 연계하면 더욱 강해지겠는데?’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로 경공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떠올랐다.
참으로 기묘했다.
‘어째서 이게 단숨에 떠올랐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선우영이 경공을 멈추고 그녀에게 묻는다.
“할 수 있겠어요?”
백영희는 대답 대신 정신을 집중했다.
발바닥에 오러를 모으고, 경공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에 선우영은 좀 놀랐다.
‘대단하네.’
딱 한 번 보여줬을 뿐인데, 그녀는 경공을 따라 해냈다.
물론 실전에서 쓰려면 아직 좀 더 훈련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선우영과 백영희는 틈틈이 경공을 익히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익숙해지고 더욱 빨라졌다.
삼일이 지난 시점에선 경공과 삼환검을 적절히 섞어 더욱 완벽해진 검술을 펼쳤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실력이었다.
이윽고 나흘째 되던 날.
백영희는 교관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조기에 훈련을 끝내고 싶습니다.”
교관들은 그녀의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 우리들을 쓰러뜨리면 조기에 훈련을 끝낼 수 있도록 해주겠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긴 했었다.
가르치는 사람보다 더 강해졌는데, 훈련기간 1년을 굳이 채울 필요는 없으니까.
절반은 농담으로 한 소리였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판단했었다.
교관들이 한마디씩 했다.
“백영희 씨, 빨리 현장에 투입되고 싶단 열의는 인정하겠습니다.”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부분도 인정하지만······ 아직 E급이 아닙니까.”
“저희들을 모두 쓰러뜨리긴 힘들 겁니다. 교관 중엔 D급 헌터였던 사람도 있다고요.”
교관들은 아직 몰랐다.
선우영에게 가르침을 받은 백영희가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저는 자신 있습니다.”
백영희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교관들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들 중 하나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최근에 선우영이랑 어울리더니 물들었어.”
그 말에 백영희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창문에 서린 서리처럼 말이다.
“무슨 뜻이죠?”
“그냥 혼잣말입니다. 선우영 씨랑 어울리다가 안 좋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아서요.”
백영희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뭐라고요?”
그 말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