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동료
헌터 1팀, 박찬수가 있던 자리.
어제까진 물건이 잔뜩 올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텅텅 비었다.
다들 이런저런 업무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눈길도 주지 않았다.
놈은 결국 사표를 쓰고 길드를 나갔다.
뭐, 다들 언젠간 이리되리라 생각했던 터라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박찬수가 워낙 개차반이었어야지.
능력도 없고 아랫사람 갈구기만 하는데 누가 놈을 인정하겠나.
속 시원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동시에 몇몇 사람들은 선우영을 흘깃흘깃 쳐다봤다.
대부분 연차가 쌓인 상사들이었다.
선우영은 박찬수를 쫓아내는데 꽤나 큰 공헌을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E급 게이트에 들어간 주제에 리더 역할을 맡아 클리어까지 해냈다.
그러니 상사들 눈에 선우영이 어떻게 보이겠나.
‘새끼 호랑이······.’
‘조만간 승진을 두고 맞붙게 되겠군.’
‘친하게 지내며 키웠다간 오히려 승진에 경쟁자가 될지 몰라.’
대부분의 상사들은 경계했다.
선우영이 가진 어마어마한 재능과 능력을!!
그들은 선우영이 곧 미래의 라이벌이 되리라 여겼다.
반면 동기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야, 선우영 덕분에 꼴 보기 싫은 박찬수가 나갔잖아?’
‘속 시원하다~!’
‘심지어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주임으로 승진까지 했어.’
동기들 사이에선 선우영은 우상이었다.
다들 묘한 존경심을 보냈다.
마치, 콘서트장에 나타난 아이돌을 보는 팬들 같았다.
정작 당사자는 앞일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이제 어찌할까나.’
선우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경계하기 바쁘고.
동기들은 꿀 발라놓은 눈동자로 좋다며 쳐다보고 있으니······.
‘냉탕이랑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네.’
아직은 눈에 띌 생각이 없었는데, 상황이 예상 밖으로 흘러가며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능력을 펼쳐 보이되, 상사의 업적엔 위협이 안 되는 수준까지만 활약해야 하거늘. 박찬수 사건으로 그 선을 넘어버렸다.
‘보통이라면 상사들이 견제를 할 텐데······.’
딱 경계하는 수준에서 끝이다.
방해는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전부 김용대 부장님의 스타일 때문이겠지?’
능력 위주의 평가.
그 분위기 때문에 능력 있는 신입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듯싶었다.
철저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뭐, 나한텐 이득이지.’
방해물 따윈 없다. 빠르게 실력을 보여주고 얼른얼른 승진하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주임직급을 달지 않았는가.
더욱 성과를 내면 보너스와 직급이 팍팍 상승할 거다.
‘돌이켜보니 박찬수는 진짜 X신이었네.’
공정한 경쟁, 능력 위주의 평가 분위기가 만연한 사내에서 신입들을 괴롭혔었다니.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언젠간 쫓겨날 놈이었군.’
그리 생각할 때였다.
째각. 째각.
벽에 걸린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용대 부장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 밥들 먹고 하지. 뱃심이 있어야 일도 잘하는 거 아니겠나.”
그가 의자 등받이에 걸어둔 재킷을 입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구내식당에서 한우 스테이크가 나온다는데 기대된다.”
한 젊은 처자가 흥얼거렸다.
말소리에 비음이 들어가 약간 귀엽기도 했다.
그 순간.
모두의 관심이 한 곳에 집중될 사태가 벌어졌다.
“아, 선우영 주임은 나랑 같이 식사하지.”
김용대가 그를 콕 짚어서 말했다.
잠깐이지만 부서에 정적이 흐르고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얼른 대답했다.
시원시원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왜 나랑 단둘이 식사를 하려는 거지?’
분명 무슨 말을 하려는 걸 텐데.
‘뭐, 가보면 알겠지.’
선우영은 김용대를 따라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삼계탕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장이 얼른 인사하고 주문을 받았다.
김용대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익숙하게 주문했다.
“아, 누룽지 삼계탕 하나요.”
“같은 걸로 주세요.”
선우영은 그를 따라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다.
주인장은 고개를 숙였다.
“넵, 주문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삼계탕이 대령했다.
제법 맛있어 보였다.
김용대가 한 수저 뜨자, 선우영도 맛을 보았다.
살코기가 야들야들하니 부드러웠다. 닭고기 안에 있는 고소한 누룽지가 국물의 감칠맛을 한층 높여줬다.
그렇게 배 좀 채우자 김용대가 말을 걸어왔다.
“자네, 같이 게이트에 들어갈 동료는 있는가?”
“동료 말씀입니까?”
“그래, 같이 움직일 고정 멤버 말일세. 뭐, 길드가 인선 관리해서 게이트 들어갈 멤버를 정해주기도 하지만······ 마음이 맞는 헌터들끼리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권장하거든.”
선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없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친한 동료를 사귀었겠나.
이한영와 민영수, 윤동한이랑 게이트에 들어가긴 했지만, 계속 함께할 거란 보장이 없었다.
‘애당초 급조돼서 만났었으니까.’
김용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한데, 부장님. 왜 그걸 물어보십니까?”
“자네가 부산 쪽에 있는 게이트를 노린단 얘기가 들려와서 그러지. 그새 고정 멤버를 만들었나 궁금했을 뿐이야.”
“아······.”
선우영의 머릿속에 김말단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안 보였는데 입이 싸다.
부산 동구에 나타날 게이트를 확보해달라고 했더니 그걸 위에 보고하다니!
김용대 부장은 선우영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헌터가 특정 지역에 나타날 게이트를 확보해달란 소릴 웬만하면 하겠나?
서포트 부서에서 물어다 주는 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지.
그런데 선우영은 그들에게 특정 지역에 나타날 게이트를 확보해달란 괴상한 주문을 했다.
그것도 입사한 지 이제 겨우 한 달도 안 된 놈이 말이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부산 동구 쪽에 생길 게이트를 확보해달라니, 왜 서포트 부서에 그런 부탁을 한 건가?”
“그게······.”
선우영은 빠르게 대가리를 굴렸다.
그럴듯한 변명이 필요했다.
“제가 부산 쪽에 친구들이 있어서······ 혹시나 그곳에 게이트가 생기면 가장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호!?”
김용대는 눈을 반짝였다.
남자들의 우정을 발판삼아 만든 거짓말이 통한 걸까.
선우영은 잘 넘어갔다 느꼈다.
저 표정은 무언가 감탄 받은 듯했으니까.
그러나
“자네, 생각보다 거짓말에 소질이 없구먼.”
“······.”
김용대는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미 첫인상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다 파악했는데, 그딴 변명이 통하겠나.
“내가 본 자네는 절대 순진한 인간이 아니야.”
“······.”
“그렇게 순진한 인간이었으면, 박찬수한테 당했겠지.”
“······.”
대꾸할 말이 없었다.
묘하게 속내가 시커먼 놈이라고 욕하는 것 같아 성질이 났다.
선우영은 반항이라도 하듯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덕지덕지 붙였다.
“부산 동구에 땅을 샀습니다. 게이트 생기면 땅값 떨어지지 않습니까. 게이트 브레이크라도 터지면 똥값 되는 거고요.”
“음, 이제야 바른말을 하는군.”
김용대는 그제야 믿어준단 듯이 표정을 바꿨다.
선우영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도대체 자신의 첫인상이 어땠기에 저 말을 믿겠단 걸까.
하도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용대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맘에 맞는 동료 만들어서 팀을 꾸려.”
“넵.”
“허투루 하는 말 아니야. 맘에 맞는 얘들끼리 함께해야 게이트를 쉽게 클리어할 수 있네. 또 오래 가기도 하고 말이지.”
“알겠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내가 구성원을 조율해줄 순 있지만······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겉도는 거라고 광고하는 것밖에 더 되겠나.”
그 말을 들은 선우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전히 선우영을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었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상사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지금이야 동기들이 동경심을 보내지만.
시간이 흐르면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해 피할 게 뻔했다.
김용대는 그걸 걱정했다.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지녔어도······.’
게이트는 5명이 들어가야 한다.
요컨대, 지금 선우영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동료였다.
그는 김용대의 조언을 명심했다.
‘능력 있는 녀석들을 동료로 만들면 게이트 클리어하기 편할 텐데.’
누굴 꼬셔야 할까.
탓하고 떠오르는 인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한 명이 스멀스멀 무의식 속에서 떠올랐다.
선우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리따운 외모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매를 가진 여성.
쌍검술의 고수.
삼환검을 일으킬 인재.
‘왜 백영희가 떠오르냐, 아직 훈련기간 1년도 못 채운 인간인데.’
선우영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주물렀다.
‘근데, 잠깐만?!’
가만 생각해보면 미래의 검제를 동료로 만들 기회가 아닌가.
재능 출중하고 싸움도 잘해.
나름의 인연도 있으니 꼬시기 쉽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선우영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위로 올라갔다.
* * *
식사를 끝마친 선우영과 김용대.
“부장님, 저는 잠시 들릴 곳이 있어서······.”
“어, 그래. 알겠네.”
김용대는 먼저 헌터 1팀으로 돌아갔다.
선우영은 길드에서 1년간 훈련을 받아야 하는 훈련생들에게 갔다.
다들 식사를 끝마치고 자율 훈련에 들어갔다.
쇠질 하는 놈들도 있고, 오러를 단련한다며 대련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있다면 백영희였다.
그녀가 검기를 발산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교관들은 하나 같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말도 안 돼.”
“벌써부터 검기를 사용하다니.”
“엄청난 재능이야.”
동시에 안타깝단 눈길을 보냈다.
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참, 이제 슬슬 고집을 꺾고 스킬 좀 익히지.”
“그러면 딱인데.”
“스킬만 익히면 지금 당장 실전에 투입시켜도 될걸?”
“패시브 스킬만 익혀도 충분한데 말이지.”
교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참으로 답답하였다.
검술과 오러 운용.
백영희의 재능은 하늘이 내렸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에휴, 스킬만 익히면 선우영인가 뭔가 하는 놈도 쉽게 따돌릴 텐데.”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야, 선우영이 별거냐? 내가 전성기에는 그 녀석보다 날아다녔어.”
교관들이 그리 말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때였다.
“크흠.”
등 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하고 봤더니.
“헉!!”
선우영이 떡하니 서 있었다.
교관들의 분위기가 순간 착 가라앉았다.
‘아까 했던 얘기 다 들었나?’
뒷담화하던 걸 들켰으니, 선우영 성격상 곱게는 못 벗어나겠다 싶었다.
선우영이 교관들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 저기. 선우영 씨······”
“그러니까, 저희 말뜻은 그게 아리나······.”
선우영은 생글생글 웃었다.
전혀 화나지 않았단 얼굴.
교관들은 혹여나 그가 뒷담화를 듣지 못한 게 아닐까, 헛된 희망을 품었다.
“교관님들.”
“네.”
“교관님들도 예전엔 헌터셨죠?”
“예. 엄청 오래전에 은퇴했죠. E급~D급 전전하다 교관 일로 빠졌습니다.”
“이야, 업계 선배님이셨네.”
교관들은 흘러가는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졌다.
느닷없이 저걸 왜 물어볼까.
“저랑 같이 시범 대련을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교육생들한테도 도움이 될 텐데요.”
“······.”
그 말을 들은 교관들은 식겁했다.
유망주 김철수를 쓰러뜨린 걸로 모자라, 붉은 스킬석에서 사기급 스킬을 얻었단 소문이 파다한 선우영.
저 사람이랑 대련하라고?
“선우영 씨, 제안은 흥미롭지만 저희가 지금 바빠서.”
“나중에 하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교관들은 꼬리를 말은 강아지처럼 줄지어 퇴장했다.
선우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싸울 배짱도 없으면서 뒷담화는 참 잘한다.
그는 검기를 수련하는 백영희를 불렀다.
“백영희 씨!”
“······.”
그녀는 특유의 쌀쌀맞은 표정으로 자길 부른 인물을 쳐다봤다.
귀찮게 굴지 말라는 듯이.
하지만.
그 사람이 선우영인걸 확인하자 돌연 낯빛이 바뀌었다.
차가운 표정이 사라졌다.
뭐, 그래도 여전히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백영희가 선우영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걸음걸이 보폭이 평소보다 조금 넓고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