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보상
선우영은 그들을 이끌고 계속 다음 층으로 향했다.
박찬수가 없자 사냥 속도가 빨라졌다.
위험에 빠지는 사태도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선우영의 리더십이 모두를 단단하게 결속했다.
모두가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을 이끄는 능력마저 대단했다.
‘유능한 베테랑 같아.’
다들 그러한 생각을 품었다.
같은 신입인데, 이상하게도 선우영에게 존경심이 생겨났다.
“끼르엑!!”
3층의 가고일을 모두 쓰러뜨린 선우영 일행.
그들은 마지막 4층에 도착했다.
보스방이 눈앞에 보였다.
굳게 닫힌 문에서 기분 나쁜 기운이 흘러나왔다. 처음 게이트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짙었다.
뱀이 살가죽을 기어오르듯 징그러운 감각이 피부로 전해져왔다.
“젠장. 뭐야? 이 감각은······.”
민영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E급 게이트로 들어오자마자 속이 메스꺼웠던 그였다.
더러운 기운에 익숙해져서 구역질이 나오진 않았지만, 기분이 역겨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한영과 윤동한도 마찬가지였다.
역한 기운에 심기가 불편했다.
짝짝짝.
선우영은 박수로 동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자자, 기분들 푸세요. 왜들 그리 인상이 안 좋아요. 잘생긴 얼굴 다 구겨졌네-!!”
그는 쳐져 있는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마지막입니다. 보스만 쓰러뜨리고 같이 회식이나 하죠! 땀 흘려 일했으니 이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선우영이 술을 마시듯 손을 꺾는 동작을 보였다.
그의 농담에 다들 피식거렸다.
“황유치킨에 킨네스 먹읍시다.”
“이야, 드실 줄 아시네요!! 그 꿀조합을 알고 계시다니.”
“크으~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네. 안 그래요?”
다들 그리 말하며 껄껄 웃었다.
분위기가 이쯤 부드러워졌으면 됐다.
이제 끌어올릴 만큼 올렸으니, 지시를 내리는 일만 남았다.
선우영이 동료들에게 충고를 해줬다.
“가고일들의 보스는 빠르게 비행할 수 있습니다. 방어진을 세우고 놈이 다가와 공격하길 기다렸다가 반격하면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민영수와 이한영, 윤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탱커들이 방패를 들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여기까지 왔으니 보스는 확실하게 잡아야죠.”
끼이익.
선우영은 굳게 닫힌 보스방을 열었다.
한층 더 역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들의 기세를 막을 순 없었다.
보스방에 홀로 있던 보스 가고일.
“플라잉 가고일.”
선우영이 놈의 정식 명칭을 중얼거렸다.
다른 가고일들은 덩치에 비해 날개가 작아 비행이 불가능했지만, 저 녀석은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이름이 플라잉 가고일이다.
선우영 일행은 서둘러 보스방 안으로 들어가 대형을 갖추었다.
탱커들이 앞뒤로 방패를 세우고, 딜러들이 중앙에서 보호를 받는 포메이션이었다.
플라잉 가고일은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인간들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석탄처럼 시꺼먼 돌로 이뤄진 송곳니가 종유석을 연상시켰다.
부우웅.
플라잉 가고일이 날개를 펼쳤다.
녀석이 허공을 활보하며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보스방은 웬만한 운동장 크기보다 넓었다.
놈이 날아다니기 좋은 장소였다.
선우영이 모두에게 얼른 소리쳤다.
“날개막이 약점입니다. 녀석이 근접 공격을 해올 때 거길 노리세요.”
“알겠습니다.”
이한영이 그리 말하며 검을 세웠다.
부우웅.
육중한 몸매를 이끌던 플라잉 가고일.
녀석이 하강하며 선우영 일행을 노리기 시작했다.
돌로 이뤄진 몸이라 안 그래도 무거웠는데, 추락하듯 내려오자 공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크리에엑!!”
놈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터엉.
민영수가 방패로 그 공세를 간신히 막아냈다.
“크윽!!”
어찌나 묵직한 공격이던지.
한쪽 무릎이 반쯤 접히며 자세가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선우영이 벼락같이 플라잉 가고일의 날개막을 잘라냈다.
뒤이어 이한영의 검이 반대편도 찢어놓았다.
“크륵?!”
플라잉 가고일의 붉은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날지 못하는 플라잉 가고일은······ 덩치와 괴력이 좀 더 강한 가고일에 불과했다.
“크리에엑!!”
놈은 기겁하며, 생존본능에 몸을 맡기듯 날래게 움직였다.
여기서 거리를 벌리는 건 불가능하니, 빠르게 공세를 이어나가 한 명이라도 더 쓰러뜨려야 했다.
플라잉 가고일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우영부터 노렸다.
녀석이 발톱을 휘둘렀다.
터엉.
선우영의 칼날이 녀석의 공세를 막아 세웠다.
발톱이 돌로 이뤄진 녀석이라, 손이 아니라 둔기를 막아 세운 느낌이었다.
칼날의 진동이 손잡이까지 내려와 그의 손가락을 자극했다.
“타하아압!!”
선우영은 반격에 나섰다.
검기를 한층 더 날카롭게 세우며 공격했다.
스걱-!!
검이 초승달처럼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무거운 일격을 날렸다.
투박하기까지 한 공격.
그러나
그 칼날에 실린 기백만큼은 강철도 잘라낼 기세였다.
“크르에엑!!”
플라잉 가고일이 비명을 토해냈다.
절단된 녀석의 팔에서 붉은 모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한영은 그 틈을 노려 급소에 칼날을 휘둘렀다.
아주 악착같은 공격이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흘러가자 플라잉 가고일은 뒷걸음질을 쳤다.
선우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재차 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녀석의 목을 통과해 나왔다.
플라잉 가고일의 목에 비스듬한 생채기가 생기더니, 그 선을 따라 목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털썩.
놈의 육체가 뒤로 자빠졌다.
“후우우.”
선우영은 숨을 길게 내쉬며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E급 게이트를 완벽히 클리어했다.
“우와아아!! 우리가 해냈다.”
“아싸, 이번 인사고과에서 점수 좀 따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이번 게이트 클리어 최대 공로자를 바라보았다.
“선우영 씨!!”
“이번 게이트 클리어는 전부 선우영 씨 덕분입니다.”
“진짜 최고예요!!”
다들 그를 칭송하기 바빴다.
이번 게이트를 닫는데 제일 공로자는 선우영이었으니까.
모두가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이런 능력자를 또 어디서 뵙겠나.
“자, 챙길 거 챙기고 나갑시다.”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마석을 채취하고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 이후.
길드로 돌아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니까, 박찬수 그 새끼······ 아니, 박찬수 주임님은 성질만 부리고 아무것도 못 하셨다니까요.”
선우영은 서포트 부서에 가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직원에게 말했다.
옆에서 이한영과 민영수 그리고 윤동한도 거들었다.
“박찬수 주임님은 도끼 한번 휘두른 게 전부였어요.”
“아~ 글쎄, 우리끼리 게이트를 닫았다니까요. 4명이서 말입니다.”
“박찬수 주임님은 도움이 안 됐어요.”
직원은 그 내용을 모조리 보고서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타다닥.
타자 두들기는 소리가 따발총처럼 연달아 들려왔다.
선우영 일행은 약속을 지켰다.
게이트에서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서로 남겼다.
서포트 부서가 엔터를 누르자.
삐리릭.
전자문서가 길드 내부에 올라갔다.
그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본 선우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장된 내용 하나 없이 진실만으로 이뤄진 내용.
읽다 보면 박찬수를 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전부 적혀있었다.
“자, 그러면 우린 술이나 한잔하러 갑시다.”
선우영은 동료들과 함께 치킨집으로 회식하러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
시커먼 흑맥주.
그들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마지막 안주로 삼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물론 이야기의 절반은 선우영에 대한 찬양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박찬수의 욕이었다.
* * *
1팀의 부장 김용대.
그는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S급 헌터였던 신용한도 이번 게이트 공략에 함께해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김용대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핏물로 더러워진 옷을 벗고, 깨끗하게 몸을 씻었다.
옆에는 신용한도 함께였다.
그들은 목욕 이후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쭈욱 빨았다.
“크으으, 맛있다.”
“목욕탕에선 단지 모양 바나나 우유지.”
그들은 그리 말하며 목욕탕을 나와 벤츠에 올라탔다.
A급 게이트를 닫은 기념으로 호텔 뷔페에 가서 한 끼 하기로 했다. 물론 돈은 회장님이 쏘는 걸로.
“흐음, 아직 몇몇은 목욕하는 중인가?”
몇몇 인원이 안 보였다.
신용한이 그리 중얼거리자 김용대가 대꾸했다.
“이번 몬스터가 워낙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늦는 모양입니다.”
둘이 친구 사이여도, 지금은 다른 길드원들도 있으니 높임말을 썼다.
김용대는 이참에 오늘 올라온 보고서나 확인하잔 생각이 들었다.
“흐음······.”
타블렛 PC로 오늘 올라온 보고서를 살폈다.
그중에는 선우영 일행이 클리어한 E급 게이트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김용대는 그 보고서를 꼼꼼히 읽었다.
그는 신용한을 곁눈질로 봤다.
‘이 녀석이 선우영을 부장으로 키우고 싶단 이유가 있었구나.’
보고서 내용은 산뜻한 충격을 줬다.
선우영이 리더 역할을 맡아 E급 게이트를 닫았으니까.
이건 신입의 능력이 아니다.
‘이 녀석,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지?’
선우영의 진짜 능력을 확인하고 싶단 욕구가 마구마구 솟구쳤다.
김용대는 신용한의 어깨를 두들기고 타블렛 PC에 올라온 보고서를 보여줬다.
그걸 본 신용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첫 단체 토벌에서 이 정도 공로를 세웠으니······ 그에 걸맞은 직급을 줘야겠군.”
성과에 걸맞은 승진.
그리고 보너스.
길드가 줄 수 있는 보상은 명예와 돈이었다. 선우영은 그걸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나저나, 김용대 부장! 이 박찬수라는 놈은 어찌할 생각인가.”
신용한이 물었다.
김용대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부하가 실수를 저지르면 따끔하게 혼내고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게 자신의 방식이었지만.
이 자식은 도저히 안 되겠다.
‘능력이 없어서 신입들 가르치는 쪽으로 업무를 지시했더니, 하는 짓이라곤 꼰대 짓거리뿐인가.’
이 이상 봐줄 수 없다.
김용대는 박찬수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눈치챘다.
승진의 기회는 좁고.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들의 능력은 뛰어나다.
입사 년 차만 쌓여가는 능력 부족한 사람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가······ 자신보다 나이 어린 녀석이 쭉쭉 치고 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이때 스스로를 잘 다독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결국엔 박찬수처럼 꼰대로 변해버린다.
괜한 트집으로 신입들을 기죽여놓고, 그걸 상사에게 보여 능력을 어필하려는 인간.
‘박찬수, 왜 그렇게 변했냐. 입사 초기엔 열정적이던 놈이······.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됐다.
‘능력이 부족하단 걸 인식했으면 너만의 해결 방안을 찾았어야지. 그딴 식으로 행동할 게 아니라.’
김용대는 타블렛 PC를 껐다.
솔직히 말해 박찬수에게 기회는 줄 만큼 줬다.
이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가 신용한 회장에게 고개 숙이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회장님.”
“능력도 없고 팀워크마저 부족한 헌터는 우리 길드에 필요 없습니다. 제 말뜻 아시죠?”
“네, 알겠습니다.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