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술자리
크루그먼 길드의 회장 신용한.
그는 서포트 부서의 김말단 부장을 불러 한소리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뭡니까?”
“그게 저희도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아쉽게도······.”
“노력이 아니라 결과를 보여야죠.”
신용한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 내려치자, 김말단은 얼른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김말단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와 셔츠가 축축해졌다.
회장에게 불려 나와 문책당하는 게 보통 일인가?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신용한의 질책은 계속 이어졌다.
“영업 실적이 최악입니다. 정부로부터 따온 게이트가 고작 이게 전부입니까!!”
“죄송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A급 게이트를 모조리 아랑길드에게 빼앗겼어요!!”
“면목이 없습니다.”
김말단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서포트 부서는 정부로부터 게이트 토벌권을 따온다.
일종의 영업이랑 비슷했다.
F~B급 게이트는 평소처럼 잘 따왔는데,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A급 게이트들을 한 개도 건지지 못했다.
신용한은 넥타이를 잡아당겨 느슨하게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아랑길드한테 족족 A급 게이트를 빼앗기냐고요.”
“죄송합니다.”
신용한 회장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짜증이 몰려왔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면 정치인들 지지율이 팍 떨어진다.
그 때문에 정부는 대형 길드들에게 좀 더 많은 게이트 토벌권을 부여했다.
대형 길드들이라면 문제없이 게이트를 닫으니까.
이번에도 역시나 대형 길드들에게 A급 게이트 토벌권이 주어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상하게도 죄다 아랑길드가 독차지했다.
물론 아랑길드도 대형길드가 맞긴 하지만······.
편파적이다 싶을 정도로 놈들에게만 A급 게이트 토벌권이 주어졌다.
신용한은 혀를 찼다.
‘젠장, A급 게이트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데, 그걸 아랑길드에게 뺏기다니!’
A급 게이트에는 다양한 신종 몬스터가 득실득실하다.
새로운 몬스터는 일종의 보물창고다.
기업이 연구목적으로 신종 몬스터 시체를 비싼 가격에 구매하기 때문이다.
그게 공업이나 의료분야에 새로운 핵심 소재가 될지 모르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A급 게이트에선 더욱 뛰어난 품질의 마석을 채취할 수 있다.
당연히 그 가격도 만만치 않게 비쌌다.
그러니 모든 길드들이 A급 게이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신용한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는 마지막으로 김말단에게 충고했다.
“다음번엔 반드시 A급 게이트를 확보하세요. 못하면 경위서나 시말서 쓸 각오 하시고요.”
“알겠습니다.”
김말단은 그리 대답하고 신용한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어깨가 무거웠다.
부장 직급을 달고 이렇게까지 질책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회장님한테 단단히 찍혔네.’
A급 게이트를 공무원 녀석들한테서 따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안 보인다. 제기랄!!’
김말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주무르며 서포트 부서로 돌아왔다.
터벅, 터벅.
그는 힘없이 자기 의자에 앉았다.
그때였다.
묘한 인물이 눈에 띄었다.
“아니, 그러니까!! 레드 고블린이 나타났었는데요!!”
목청이 하도 커서 누구인가 쳐다봤더니.
‘저 사람은······ 선우영??’
그가 김말단의 눈에 들어왔다.
* * *
“레드 고블린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어요.”
선우영이 그리 말했다.
보고서를 쓰던 이태식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의 손가락이 타자기를 치느라 빨라졌다.
주변에 있던 다른 서포트 부서 직원들이 선우영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유망주 김철수를 대련에서 때려눕히고 입사한 인물이었으니까.
‘쟤가 걔야? 선우영?’
‘뭐여?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다들 궁금하단 눈빛을 보냈다.
그건 방금 막 자기 자리로 돌아온 김말단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부하직원을 불러 물었다.
“선우영이 왜 우리 부서에 있어? 쟤는 헌터 1팀 소속이잖아.”
“보고서 쓰는 걸 도와주겠다고 저러는데요?”
“뭐?”
“오늘 선우영 헌터님이 F급 게이트 닫으셨거든요.”
“그 보고서 작성 때문에 저런다고?”
부하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말단은 그에게 돌아가서 업무 보라고 손짓했다.
“알았어. 가서 일 봐.”
“넵.”
부하직원은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김말단은 신기하단 표정으로 선우영을 쳐다보았다.
보고서 작성을 도와주겠다니?
있었던 얘기만 들려주고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간혹 콧대 높은 몇몇 헌터들이 귀찮다며 짜증 나게 굴어댄 경우는 봤지만······.’
이렇게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리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참 특이한 놈이다.
어째선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
‘요즘 신입 헌터들 답지 않게 성실하고 착실한 타입인가?’
김말단은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보고서 작성에 비협조적인 헌터들이 있어 골머리 썩어본 적이 많았다.
이 업계에 몸 담그며 별별 이상한 놈들 다 만나봤다.
헌터가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둥, 자신들이 특별하단 식에 개소리는 그나마 양반이다.
서포트 부서 사람을 대놓고 괄시하는 녀석들도 수두룩했다.
밥버러지 쳐다보는 눈길로 볼 때도 많았고, 뭐 하나가 맘에 안 들면 언성부터 높이는 녀석들도 수두룩했다.
선우영처럼 자진해서 보고서 작성을 도와주는 녀석은 없었다.
‘다른 신입들도 저 녀석처럼 착실한 타입이면 좋겠는데······.’
김말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선우영이 입사했을 때 들었던 안 좋은 소문이 떠올랐다.
계약금 5억을 달라고 스카우터한테 갑질해서, 결국 김철수와 대련까지 가게 되었다든가.
회장님께 무례한 태도로 붉은 스킬석을 요구했단 소문도 있었다.
직원 휴게실에 있는 빵과 간식거리로 밥을 때우고 다닌단 얘기도 최근에 들려왔다.
김말단이 보기엔 전부 헛소문인 듯싶었다.
‘저렇게 착실한 녀석이 어떻게 그러겠어? 실력과 인성을 모두 겸비하니까, 시기 질투한 놈들이 저딴 소문을 퍼뜨렸겠지!!’
아마 사건의 전말은 이랬을 거다.
‘스카우터가 선우영의 재능을 알아보고 계약금 더 줄 테니 우리 측 유망주랑 붙어보라고 시켰겠지.’
뭐, 회장님이 선우영에게 붉은 스킬석을 주신 건······
‘뭔가 다른 사정이 있었을 거야.’
김말단은 그리 생각했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곧 오후 6시다.
슬슬 퇴근할 시간이 다 되었다.
‘오늘 와이프가 얘들 데리고 친정 갔었지.’
집에 가서 혼자 밥 먹긴 싫고, 회장님한테 혼나서 기분도 우울했다.
근처 식당에서 술도 한잔할 겸 밥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과장, 이만 퇴근하지. 저번에 괜찮은 식당 봐뒀는데 어떤가?”
“저야 좋죠.”
윤 과장이 대답했다.
그렇게 둘이서 식당으로 향하려는데, 선우영과 이태식이 눈에 밟혔다.
김말단은 그들에게도 식사를 권유했다.
“선우영 씨도 같이 식사 하시겠습니까? 이태식 과장도 함께 어떤가?”
“좋습니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대답했다.
보고서를 도와준단 핑계로 이쪽 부서와 친해지려 했는데······.
‘생각보다 대어가 일찍 관심을 보이는군.’
* * *
선우영 일행은 유명한 소고깃집으로 향했다.
육회와 각종 고기 요리들이 상에 즐비했다.
시원한 동치미도 있었고.
양파와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도 있었다.
선우영은 김말단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자, 받으십시오.”
김말단은 술잔을 기울였다.
벌컥, 벌컥.
술에서 달콤한 과일 맛이 느껴졌다.
목 넘김도 부드러웠다.
한 병에 5만 원이나 하는 술이라 그런지 맛이 남달랐다.
“이야, 이거 물건이네!!”
김말단이 그리 말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김말단 부장님, 잘 드시네요!”
선우영이 박수를 쳤다.
그들은 계속 술잔을 기울였다.
한 잔, 두 잔.
취기가 돌자, 첫 만남의 서먹한 분위기도 확 풀어졌다.
선우영은 슬쩍 김말단을 쳐다봤다.
‘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앞으로가 편해질 텐데.’
그래야 원하는 게이트가 있을 때 얻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선우영에겐 다 속셈이 있었다.
그가 괜히 할 짓이 없어서 남의 비위나 맞추고 있었겠나.
‘한 달 뒤, 부산에 나타날 게이트에서 스킬석을 얻으려면 이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그때, 김말단이 선우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런데 선우영 헌터님께서는 어쩌다가 보고서 작성을 도와주잔 생각을 하셨어요??”
“서포트 부서가 매번 고생하는 걸 알고 있어서, 조금은 도와드리려고요.”
“네?”
“원래 기업의 꽃은 영업이고, 길드의 꽃은 서포트 부서죠. 정부로부터 괜찮은 게이트 토벌권 따오는 게 쉽습니까? 어렵지.”
선우영은 서포트 부서를 치켜세워줬다.
그 말에 감동한 김말단이 울컥하는 마음으로 크게 소리쳤다.
“우리 고생을 알아주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다른 헌터들이랑 이 마인드부터가 다르세요!!”
“맞습니다. 선우영 헌터님은 나중에 큰일 하실 거예요.”
옆에 있던 이태식 과장도 덩달아 소리쳤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다.
이후에도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김말단이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저도 모르게 푸념이 흘렸다.
“하이고, A급 게이트를 얻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랑길드에게만 토벌권이 돌아가는 거 있죠?”
“아, 그렇습니까?!”
선우영이 관심 있는 척 물었다.
김말단은 답답하단 듯이 가슴을 두들겼다.
“네. 완전 미치겠습니다. 아무리 공무원 놈들에게 사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도통 말을 안 들어요.”
김말단은 스트레스를 풀듯 술잔을 또 비웠다.
그는 씩씩거렸다.
“에잇, 망할 공무원 놈들!! 아랑길드가 뭐가 좋다고 그쪽만 특혜를 주는지······.”
선우영은 비어있는 그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콸콸콸.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건이 있었지?’
아랑길드에게만 A급 게이트 토벌권이 돌아가는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쪽 서포트 부서가 뇌물을 뿌렸었지, 아마?’
공무원들 뒷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은 대가였다.
선우영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 사건의 단서를 넌지시 이야기하면, 김말단을 완전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기회가 왔군.’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김말단에게 말을 걸었다.
“그거 이상하네요.”
“그쵸? 보통은 이런 일이 없는데······ 선우영 헌터님이 보셔도 이상하죠?”
“왠지 이탈리아에 [뇌물 게이트] 사건이 떠오르네요.”
“예?!”
선우영의 말에 김말단이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이탈리아의 뇌물 게이트 사건.
게이트 토벌권을 뇌물로 구매한 길드가 이탈리아 헌터협회에 적발된 사건이었다.
뇌물로 게이트 토벌권을 얻었단 정도로 끝났으면 다행인데, 이 새끼들은 능력까지도 없어서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까지 터뜨렸다.
당연히 민심에 불이 붙었고.
길드의 관계자들은 줄줄이 감옥으로 송치되었다.
김말단은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만약 선우영의 말대로 그런 사건이 아랑길드 때문에 벌어졌다면······.
‘해결 방법이 있지.’
그것도 아주 여러 가지가 말이다.
선우영은 김말단의 표정을 보고 그가 잘 해결해나가리라 예감했다.
어째든 서포트 부서 부장님이 아닌가.
괜히 저 자리까지 올라간 건 아닐 거다.
“하하하, 선우영 님의 의견 참고해보겠습니다.”
김말단은 그리 말했다.
선우영 덕분에 문제가 해결된다면, 은혜를 톡톡히 갚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