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협상
황태석 부장.
제4팀을 이끄는 헌터였다.
A급 탱커로 유명했다.
나이는 이제 32살이나 되었을까?
부장이란 직급에 어울리지 않게 생각보다 많이 어렸다.
사실 이상할 건 없었다.
전투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직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높은 직급을 달 수 있다.
각 팀은 부장의 유형에 따라 탱커, 딜러의 조합 비율이 조금씩 달랐다.
대형유지를 위해 탱커의 숫자를 더 늘리는 인물도 있고, 파티인원 절반을 원거리 딜러로 두어 상대가 다가오기도 전에 전멸시키는 인물들도 있었다.
어떤 팀은 딜러 1명에 탱커 4명으로 게이트를 공략하기도 했다.
황태석 부장의 경우 대형유지를 위해 탱커를 중요시했다.
“선우영! 4팀에 들어오도록!! 자네 같은 스타일은 역시 탱커에 어울린다.”
그가 권유하자 이번엔 다른 사람이 일어나 말한다.
“저런 유형의 인물은 탱커보단 딜러로 키워야 빛을 볼 수 있죠.”
반박을 하고 나선 인물은 진태호.
그는 3팀을 이끄는 부장이었다.
딜러에 비중을 두어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스타일이었다.
“선우영, 움직임이 재빠르더군. 3팀에 오면 자네가 가진 딜러의 장점을 성장시켜주지, 어떤가?”
황태석과 진태호는 눈싸움을 했다.
선우영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 누가 데려갈지 벌써부터 의견이 갈렸다.
“대형유지를 위해 탱커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태호 부장님!!”
“무슨 소리, 강력한 딜러가 팀원들의 생존율을 높여주는 법입니다. 선우영은 방어보단 공격 쪽에 더 소질이 있습니다.”
옥신각신 둘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임건희는 그들의 모습에 진땀이 절로 나왔다.
‘이럴 수가! 고작 신입하나 데려가는데, 부장님들이 다투시다니.’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선우영의 재능과 실력을 높이 샀단 이야기였다.
“저기요.”
그때, 선우영이 손을 들었다.
황태석과 진태호는 그를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빛을 했다.
딴 곳으로 빠지지 말고 자기 팀으로 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임건희는 침을 삼켰다.
과연 선우영은 둘 중 누구를 선택할까?
초유의 관심사가 집중된 가운데,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연봉협상 안 해요? 저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안 찍었는데요?”
사람들은 갑자기 진이 쭉 빠졌다.
듣고 보니 그랬다.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안 찍었는데, 어느 팀으로 가느냐로 싸웠다니.
“······.”
“······.”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다.
“자자, 가시죠. 선우영 헌터님.”
민망해하는 둘을 뒤로하고 임건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하자, 선우영이 뒤따랐다.
선우영은 임건희를 지긋이 바라봤다.
‘이 양반 봐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헌터가 아니라 각성자님이라고 부르더니, 실력 좀 보여주니까 명칭을 헌터님으로 바꾸었다.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갔다.
‘계약금 줄이려고 비위를 맞춘다 이거지?’
그런다고 봐줄 맘은 없다.
무조건 5억 이상 뜯어내고, 붉은 스킬석까지 받아낼 셈이다.
구두 협상에서 약속한 거니까.
띵!!
3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그들이 내렸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임건희를 따라간 곳은 회의실이었다.
선우영이 자리에 앉자 곧바로 다른 직원들이 다가와 음료를 가져다줬다.
무슨 음료인가 봤더니 커피다.
“오!”
향기가 좋은 걸 보니, 고급 원두를 쓴 모양이다.
원래 커피는 향으로 마시는 건데, 누군지는 몰라도 제법 신경을 썼나 보다.
‘잠깐만, 내가 커피 좋아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한 거 아니야?’
선우영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건희라면 자신의 입맛을 파악하여 아첨 떨 인물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커피가 쓰게 느껴졌다.
곧이어 회장과 임직원들이 회의실로 들어와 선우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드디어 연봉협상이 시작되었다.
“하하하, 선우영 씨 아까 전 대련은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S급 헌터, 신용한!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
그가 크루그먼 길드의 회장이었다.
신용한의 옆에 있는 임원들은 행정적으로 그를 돕는 인물들 같았다.
그들은 헌터가 아니다.
다만, 길드가 문제에 휘말리지 않게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업계가 몬스터만 잘 잡는다고 끝이 아니라, 정치인들을 포섭하고 언론플레이에 능통해야 했다.
그래야 문제가 안 터지니까.
때로는 적대적인 길드의 모함에 맞서 싸웠으며 길드 내부의 다툼도 중재했다.
헌터들끼리 의견충돌이 꽤 많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진태호와 황태석 부장들이었다.
성격부터 전투 스타일, 부하들 다루는 방식까지 첨예하게 달라서 합동 임무를 맡기면 항상 난리였다.
임원들은 선우영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선우영 씨 실력은 저희도 인정하겠습니다.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될 정도였죠. 그러니, 계약금 10억을 드리겠습니다.”
오우야, 선우영이 제시했던 요구의 2배를 주겠단다.
“하지만 붉은 스킬석을 드리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요놈들이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붉은 스킬석은 주기가 싫다?’
선우영이 의견을 제시했다.
“붉은 스킬석은 꼭 받아야겠는데요? 아, 물론 제가 고른 녀석으로요.”
임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붉은 스킬석이 꽝 아니면 복권당첨식이라······.
협상이 끝나면 선우영도 길드원이 될 텐데, 꽝인 스킬을 얻으면 그것 또한 손해였다.
임원들은 뭐가 되었든 손실이라 판단 내렸다.
반면, 신용한 회장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마치 재미있단 듯이.
그가 질문을 던졌다.
“선우영 씨, 저희가 알아본 바로 스킬을 3개 익히실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요.”
“혹시 보급형 스킬석을 사용하셨습니까?”
뼈를 찌르는 질문이다.
신용한 회장이 아무것도 모르고 물어보는 건 아닐 거다.
알고 있겠지.
구청창구 직원한테 돈 좀 찔러주고 물어봤을 수도 있다. 이미 2개의 스킬석을 사용했단 걸.
“게다가 헌터 시험에서 추가로 하나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용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용하지 않으셨다면,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석은 하나입니다.”
헌터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하고 얻은 스킬석의 사용 여부 따윈 아무도 모른다.
증인이 없으니까.
신용한 회장은 책상을 검지로 툭툭 두들겼다.
“선우영 씨, 그런 상태인데 붉은 스킬석을 사용하겠다고요? 꽝인 스킬을 얻으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안전하게 헌터 시험에서 받으신 오러 증가 스킬석을 사용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그 스킬석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저희 쪽에서 다른 스킬석을 지원해 드리죠.”
선우영의 시선이 신용한 회장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꽂혔다.
‘오호라,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언론에 자주 나오며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있었으니까.
‘호전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지.’
빈민가에서 태어나 노력 하나로 저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욕망과 노력을 주요 가치로 여기는 인물이니, 자신만만하고 도전적인 인물을 좋아할 터.
절대로 수그리거나 물러서면 안 된다.
오히려 강짜를 놓아야 맘에 들어 하는 스타일이다.
선우영이 신용한 회장의 질문에 답하였다.
“제가 경험해보니 꽝인 스킬은 이 세상에 없더군요.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좋은 스킬을 익혀도 제대로 활용 못 하면 말짱 꽝이죠. 김철수처럼 말입니다.”
꽤나 도발적인 대답이었다.
기대주였던 김철수를 걸고넘어지다니······.
임원들의 표정이 붉어졌다.
자칫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 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신용한 회장은 그 점이 맘에 들었다.
“크하하하, 재미있군-!!”
신용한 회장이 너털웃음을 선보였다.
정말 간만이다.
이렇게 패기 있는 녀석은 말이다.
아주 속이 시원했다.
요즘 것들은 패기도 없고, 적당한 자리에 올라 편하게 돈만 벌려고 했다.
그게 맘에 안 들었다.
도전정신이 없으니까!!
반면 눈앞에 있는 선우영을 봐라.
그딴 놈들과 비교가 되겠는가?
그렇기에 신용한 회장은 일부러 말을 더 붙여봤다.
“우리가 계약금으로 10억을 주고 붉은 스킬석도 줘야 하는데······ 본인에게 그럴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당연하죠. 크루그먼 길드를 이끌어갈 차세대 에이스가 될 몸이니까요.”
신용한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쳤다.
아주 맘에 든다.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도전욕구가 강하다.
‘저런 정신이 있어야 성공하지!’
그는 망설임 없이 선우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계약금 10억과 붉은 스킬석 하나를 드리죠.”
그 말에 임원들의 잔털이 삐쭉 섰다.
“하지만 회장님······.”
“아, 됐습니다. 이런 인재를 놓치면 그게 더 손해입니다.”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듯, 신용한 회장이 확실하게 못 박았다.
임원들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내키지 않은 계약서를 작성했다.
선우영이 도장을 꾹 찍으며 계약이 성립되었다.
“앞으로 많은 활약 부탁합니다.”
신용한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우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선우영은 당당하게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였다.
* * *
계약이 끝나자, 신용한은 선우영을 데리고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붉은 스킬석을 받기 위해서였다.
엘리베이터에 탄 선우영은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10억짜리 계약서도 맘에 들지만, 붉은 스킬석 얻는 게 사실 가장 큰 보상이지.’
리스크 따윈 안 무섭다.
‘아무리 꽝이 걸려도 다른 스킬로 약점을 보완하면 되니까.’
자신이 손해 보는 건 없다.
오히려 대박이 걸리면 인생이 단숨에 활짝 피는 거고!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띠잉!
자동문이 열리고, 신용한과 선우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붉은 스킬석이 보관된 창고.
그곳까지 가는 길은 어마어마한 보안장치를 거쳐야 했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먼저, 이곳을 지키는 경비원들에게 검사를 받았다.
이후에도 신용한 회장의 지문으로만 열리는 문을 통과해, 그의 동공을 인식하여 열리는 문을 또 지나왔다.
이번엔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타입에 문이다.
‘하이고, 엄청나게 많네.’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간신히 붉은 스킬석을 모아둔 창고에 들어갔다.
신용한 회장이 들어가자마자 충고했다.
“혹여나 싶어서 말씀드리지만, 한 개만 선택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몰래 빼돌리는 게 있으면 각오하라는 표정이었다.
이글거리는 눈빛이 호전적인 성격과 딱 맞아떨어졌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는 창고에 진열된 붉은 스킬석들을 살폈다.
아주 휘황찬란하다.
마치 값비싼 루비 보석들이 전시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어떤 걸 골라볼까.’
천천히 구경하던 중 유독 커다란 녀석이 눈에 띄었다.
‘오, 이게 좋겠는데?’
그는 곧장 붉은 스킬석을 집어 들고 오러를 불어넣었다.
반짝.
스킬석이 빛으로 변하며 그의 신체로 스며들었다.
익히고 나니, 어떤 스킬을 얻었는지 단숨에 깨달았다.
[컨트롤]이라 불리는 능력.
오러의 운용을 한층 더 높여주는 패시브 계열 능력이다.
언뜻 보기엔 별거 없는 스킬 같지만, 따지고 보면 사기급 능력이었다.
오러 운용이 높아지면 검기의 날카로움이 몇 배는 강력해진다.
뿐만이 아니다.
같은 오러를 쓰더라도 방어와 속도에서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대박이 걸렸군!!’
선우영은 신체의 변화를 느꼈다.
전기로 자극하듯 신경계가 짜릿한 감각을 맛보았다.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스킬 융합으로 패시브 스킬을 강화시키자.’
선우영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패시브 스킬에 컨트롤 스킬을 융합시켰다.
그러자 보이는 세상이 변했다.
무엇하나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지각이 변화하였다.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다.’
모든 물체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오감이 예민해진다.
창고를 가득 메운 공기의 흐름이 촉감으로 느껴지고, 어두운 곳에 쌓인 먼지가 굵은 알갱이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자신의 오러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심장의 박동까지도 감지된다.
“후우.”
선우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긴 시간도 아니다.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신용한 회장.
그의 얼굴에 호전적인 미소가 걸렸다.
S급이나 되는 강자였기에, 선우영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오러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호, 패시브 계열의 사기급 능력을 얻은 건가? 흥미롭군.’
이 양반 성격에 그걸 보고도 그냥 넘어가겠나.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지는데?’
선우영이 모든 감각을 통제하며, 완벽히 적응을 끝내자······.
화아악!!
신용한 회장이 오러를 발산하여 압박했다.
“큭!”
선우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엄청난 격이다.
속이 뒤틀리고 몸이 짓눌린다.
서 있는 것조차 어려웠다.
숨도 못 쉬겠다.
털썩.
선우영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신용한 회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그를 쳐다봤다.
“허허허, 행운의 사나이가 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한번 시험해봐야겠죠?”
그 눈빛이 투기로 물들어 있었다.
“아까 연봉협상에서 하신 말씀은 맘에 들었습니다. 근데, 말로만 지껄이는 녀석들도 많아서요. 한번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차세대 에이스가 될 수 있을지···.”
대항해보라는 명백한 도발.
선우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X발,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