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대련
냠냠냠.
김철수는 초코바를 씹어 먹으며 인터넷으로 점을 쳤다.
가끔 심심풀이로 하는 취미였다.
100번을 보면 99개는 틀리지만 어쩌다 1개가 맞아떨어졌다.
몸을 강철로 바꾸는 스킬.
이것도 점을 치다 운수가 좋단 점괘에 붉은 스킬석을 구매했는데 대박 난 케이스였다.
‘오늘의 운세는 어떠려나?’
맛있는 초코바를 먹고 있으니 재수가 좋다고 나올까?
스윽, 스윽. 스윽.
점괘를 생각 없이 읽어보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날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한 대로 끝날게, 두 대로 늘어날 수 있다?’
무슨 소리인가.
설마 대련에서 자신이 패배하기라도 한단 소리일까?!
그는 콧방귀를 꼈다.
‘에잇, 이번 점괘도 틀린 모양이네.’
김철수는 초코바 폐비닐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나도 슬슬 준비할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돌리며 대련에 나설 채비를 했다.
* * *
선우영은 버스에서 내렸다.
뚜벅뚜벅 길거리를 거닐다 거대한 빌딩 앞에 섰다.
크루그먼 길드의 건물이다.
12층이나 되는 빌딩을 독채로 쓰는 대형 길드.
‘엄청나게 커다라네.’
생각보다 건물 디자인이 모더니즘했다.
회장님 취향인 모양새다.
띠로링.
문 앞에 서자, 자동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데스크 직원이 그를 반겼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테스트 받으려고 왔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선우영입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방문객 카드를 주었다.
“이걸 이용하시면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실 수 있습니다.”
“아, 네.”
선우영은 고개를 옆으로 젖혀 안내데스크 직원 뒤에 있는 개찰구를 바라봤다.
방문객 카드가 없으면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삑.
개찰구에 카드를 가져다 대자 문이 열렸다.
“선우영 각성자님, 오셨습니까.”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임건희가 마중을 나왔다.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대련장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임건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부터 내려오며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사람들이 내리는데, 선우영은 그들 중 어떠한 인물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백영희?!’
그녀를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백영희도 미래에선 크루그먼 길드에서 활약했던지라, 만나는 게 이상하진 않지만···’
이렇게 계속 연속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어?!”
백영희도 놀랐는지 그를 가리켰다.
그녀가 선우영에게 인사했다.
“또 만나네요.”
“아, 예.”
사원증을 목걸이처럼 하고 다니는 백영희, 거기엔 신입사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선우영은 그 모습이 꽤나 재미있었다.
검제로 명성이 자자했던 백영희의 신입사원 모습이라니, 이건 마치 대기업 회장의 신입사원 시절을 구경하는 기분이 아닌가.
그녀가 선우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로 취업하신 건가요?”
“아, 뭐 그렇죠. 어쩌다 보니 계약금 문제를 위해 대련을···.”
“대련이라고요?!”
백영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선우영은 아차 싶었다.
‘맞다, 백영희의 대련 신청을 거절했었지.’
괜한 말을 꺼냈다.
백영희의 눈에 그와 대련해보고 싶단 욕망이 불타올랐다.
선우영은 눈썹이 꿈틀했다.
젠장, 무진장 귀찮게 됐단 느낌이 팍팍 든다.
“뭐, 나중에 뵙죠. 백영희 씨.”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임건희의 등을 밀어 엘리베이터에 탔다.
백영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니까, 잘하면 나도 저 사람이랑 대련할 수 있단 거네.’
그녀는 기대감에 찼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임건희가 지하 1층을 누르며 선우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백영희 씨와 아는 사이입니까?”
“아뇨, 헌터 시험에서 만난 게 전부예요.”
선우영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백영희를 피해 다녀야겠다.
띠잉!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도착했다.
자동문이 지이잉 열리자, 거대한 대련장과 관중석이 보였다.
그리고
‘관중이 엄청나잖아.’
주변에 헌터들이 모여앉아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격투기 시합을 보러 온 관중들 같네.’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그는 임건희를 유치하단 식으로 쳐다봤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를 죽여 계약금 좀 깎아보시겠다?’
아주 발칙한 짓거릴 벌여주셨다.
임건희는 아무것도 모르겠단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그냥,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선우영이 대련장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관중석에 앉은 헌터들이 그를 쳐다봤다.
“야, 쟤가 선우영인가 봐.”
“어떻게 생긴 녀석인가 궁금했는데······.”
“긴장한 기색조차 없다니, 웃기는 녀석일세.”
“냅 둬, 원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잖아.”
헌터들이 그를 얕잡아봤다.
선우영은 악담을 모조리 씹어버리고 대련장에 올랐다.
‘근데, 대련 상대는 어디 있는 거야?’
그리 생각할 무렵.
반대편 입구에서 김철수가 등장하며 힘껏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아!!”
놈은 팔을 강철로 변화시켜 깡깡 두들겼다.
자랑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멋있다, 김철수.”
“가서 한 방에 쓰러뜨려!!”
“너 1팀으로 갔지? 나중이라도 우리 2팀에 지원해라, 형님들이 예뻐해 줄게.”
이 녀석은 선우영과 반대로 인기 만점이었다.
아무래도 자기 식구라고 감싸는 모양새였다, 선우영의 경우엔 아직 계약서도 작성 안 한 남이지 않나.
그러니 다들 김철수를 응원하겠지.
“하하하, 이 몸 등장!!”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시끄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김철수가 대련장으로 휙 뛰어 올라왔다.
어찌나 몸뚱이가 커다랗던지.
키는 2m 가까이 되어 보였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주먹이 솥뚜껑만 했다.
김철수와 선우영이 대련장 한가운데에 서서 서로를 째려봤다.
“야, 체격 차이 심각하네.”
“체격만 그렇겠냐, 김철수는 1년 동안 훈련으로 다져진 몸이야. 저 녀석 근육 좀 보라고.”
“승부가 안 나겠네.”
관중들이 그들의 덩치 차이를 지적하며 낄낄 웃었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도 오래가지 않았다.
“시합 시작!”
땡! 땡! 땡!
시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퍼억.
그와 동시에, 선우영이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 김철수의 턱을 명중시켰다.
힘을 발휘해 때리진 않았다.
급소를 정확히 가격해 파괴력이 분산되지 않게 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미약한 힘이라도 한곳에 집중되면 파괴력은 몇 배가 된다.
“컥!!”
김철수의 턱이 돌아갔다.
녀석은 몸에 힘이 빠져 좌우로 비틀거렸다.
턱을 가격당하면 머리가 크게 흔들려 뇌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한 줄로 줄여서 말하자면
‘뇌진탕을 일으켰지.’
바로 저거였다.
뇌진탕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현기증과 구토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철수는 결국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찍었다.
고작 1초 만에 벌어진 상황.
“큭! 이 자식.”
김철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간신히 일어났다.
선우영은 꽤나 놀랐다.
‘오호, 생각보다 턱이 단단하군. 약했다면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텐데.’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그들의 머릿속에 선우영의 공격이 떠나질 않았다.
풋내기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전, 공격은 초짜의 실력이 결코 아니었다.
“뭐야, 저 녀석······.”
“실력이 보통내기가 아닌데.”
김철수는 상체를 수그리고 가드 자세를 잡았다.
전형적인 복싱 품세.
공격보다 방어에 집중해 한 방을 노리는 전투방식이었다.
제법 괜찮은 전술이었다.
손가락부터 팔뚝까지 강철로 바꾸어, 양쪽 팔로 상체를 가렸다.
그 모습이 방패를 연상시켰다.
선우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느냐, 꼭 그렇게 묻는 표정 같았다.
김철수의 이마에 화딱지가 앉았다.
“이 자식이!!”
부우웅.
놈이 주먹을 성급하게 뻗었다.
오른쪽 스트레이트.
공격 자체는 굉장히 깔끔하고 위력적이다. 자세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야 당연했다.
가장 자신 있는 펀치였으니까.
괜히 1등으로 훈련을 마치진 않은 모양새였지만, 선우영은 그걸 쉽게 피해냈다.
산책을 나서듯 가벼운 움직임으로!!
물론 그 속도가 느리단 뜻은 아니었다. 발놀림부터가 김철수를 아득히 상회했으니까.
관객들은 할 말을 잃었다.
실력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했다.
헌터들의 등급은 오러와 전투 능력을 바탕으로 측정된다.
김철수의 등급은 D급 근처다.
이걸 정확히 따지자면, 아직은 E급이란 소리가 된다.
전투 능력은 D급이 맞았지만, 아직 오러의 양은 E급 수준밖에 안 됐다.
반면 선우영은 어떤가?
편법으로 오러의 양이 D급에 올라섰으며, 패시브 스킬로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된 상태다.
전투 능력은 또 어떻고!! 스킬빨이 강하긴 했지만, 회귀 전엔 B급까지 올라가 본 인물이 아니었던가.
오러의 수준과 전투 능력, 그리고 그걸 활용할 경험까지.
모두 선우영이 아득히 높은 위치에 있었다.
김철수가 이긴다?
그건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헛소리였다.
선우영은 발차기로 김철수의 정강이를 가격했다.
“크윽!!”
김철수의 발이 뒤로 밀리며,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공격도 방어도 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해버렸다.
김철수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선우영의 마지막 공격이 작렬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벼락같은 무릎 차기가 놈의 안면에 적중했다.
콰드득.
마른 장작을 부러뜨린 듯한 소리······ 코뼈가 부러졌다.
선우영은 그걸 확신했다.
무릎으로 느껴지는 타격감이 그 사실을 알려줬으니까.
“커억.”
김철수가 코피를 쏟아내며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질 못했다.
시합이 끝났다.
김철수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야, 김철수!! 얼른 정신 차려. 일어나라고!!”
김영희가 황급히 달려와 동생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반응조차 없었다.
눈이 까뒤집힌 채 미동도 안 보였다.
선우영은 싱겁단 표정을 지으며 도도하게 임건희를 바라보았다.
김철수는 대련 상대조차 안 됐다.
눈앞에 벌어진 비현실적인 장면에 임건희는 심장이 떨렸다.
‘뭐야, 저 녀석!!’
이제 막 헌터 시험 통과한 주제에 저런 힘을 어떻게 얻었단 말인가.
‘어제, 테스트를 제안하고 줄곧 선우영에 대한 정보를 모았어.’
하지만.
‘각성한 지 고작 며칠밖에 안 된 녀석이었는데? 어디 가서 훈련도 안 받아본 놈이라고!!’
임건희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5억?
고작 5억으로 저런 인재를 스카우트하려 했단 건가.
‘천재? 아니지, 그런 느낌이 아니야.’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무언가를 길드에 데려왔단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선우영은 자신이 스카우트한 작품 중 최고가 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터벅, 터벅.
선우영이 대련장에서 내려온 순간.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관람객 중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임건희는 그가 누구인가 살펴보고, 화들짝 놀라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어찌나 놀랐는지, 그 인물의 이름까지 불렀다.
“황태석 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