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
98.
천우는 거의 여섯 시간동안 끊이지 않고 고통을 받았다.
세상에 도대체 그 어떤 사람이 이렇게까지 지독한 고통을 받는지, 그는 동화에서도 이런 고통을 받았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업그레이드가 끝났을 무렵, 천우는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실핏줄이 다 터져 있었고 어금니는 죄다 흔들거리고 있었다.
마샤는 알아서 그의 눈동자와 어금니를 보완해나갔다.
-신체복구 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아마 10초 이내로 주인님의 몸이 완벽하게 복구될 겁니다.
“···빌어먹을, 이번에는 진짜 요단강을 건너는 줄 알았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제법 참을 만하지 않던가요? 제가 보니 고통의 수치가 이전보다 훨씬 더 줄었던데요?
“중간부터는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기는 했지.”
-아마도 엔도르핀과 도파민 등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통각기관까지 아주 살짝 마비를 시킨 것 같아요.
“그래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것은 고통을 받을 때에도 그렇고 슬픔을 겪을 때에도 그랬다.
심적 고통이든 신체적 고통이든 간에 한 번 겪은 고통 위에 새 살이 돋아나듯 굳은살이 생겨나는 것이 인체의 신비라고 할 수 있었다.
천우는 그녀에게 어떤 신체기관이 생겼는지 물었다.
“그래, 이렇게 내가 죽을 고생을 해서 뭘 얻은 거야?”
-나노머신 공장을 얻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이 드시는 영양소를 바탕으로 나노머신이 만들어 질 겁니다. 이제부터는 보통의 인간은 먹지 않는 물건을 드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독극물을 먹어야하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 남들은 엑기스로 잘 먹지 않는 것들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이를 테면 구리가루 같은 것 말입니다.
“제기랄, 중금속은 몸에 안 좋잖아!”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주인님은 다릅니다. 주인님은 중금속이 몸에 쌓이면 쌓일수록 이득입니다. 이제부터는 중금속이 최대한 많이 쌓일 수 있을 만한 식단을 즐기세요.
“···살다보니 별에 별 걸다 하라고 하네.”
-보통은 최상위 포식자의 경우에 중금속이 가장 많이 쌓입니다. 이를 테면 참치나 상어와 같은 것들이죠.
“뭐, 참치는 다들 많이 먹으니까.”
-하지만 필요량을 다 채우려면 주인님은 남들보다 족히 여섯 배는 더 드셔야할 겁니다. 앞으로는 한 끼 식사량을 평소의 여섯 배 정도 더 드셔주세요.
“허어, 그걸 인간이 다 소화 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이제 주인님의 위장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납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이 드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참나···.”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다면 나노머신을 만드는데 필요하지 않은 요소들은 먹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이를 테면 어떤 건데?”
-탄산음료는 특히나 좋지 않고 술은 금물입니다. 나노머신을 만드는 동안 부종을 유발할 것이거든요.
“빌어먹을···. 그럼 맥주는 당분간 마시지 말라는 거야?”
-어지간하면 드시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불어 지나치게 짠 음식을 많이 드시면 좋지 않습니다. 가능한 날것으로 드시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날것으로 먹으라고?”
-육회나 생선회 등이 좋겠네요. 그리고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고기와 생선을 먹을 때 같이 드세요. 대표적으로는 고구마가 있겠죠? 현미도 괜찮고요.
무슨 의사와 건강 상담을 하는 느낌이었지만 그녀는 나노머신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만 나열하고 있었다.
천우는 그녀가 짜 준 그대로 식단을 만들어서 먹기로 했다.
어차피 음식은 오셔필드 가문을 통하면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북극과 가장 가까운 아이슬란드였기 때문에 음식이 좀처럼 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날 아침, 천우는 아내와 함께 밥상머리에 앉았다.
그녀는 천우의 앞에 놓인 육회와 생선회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무슨 회랑 원수를 졌어요?”
“당분간은 어쩔 수 없어요. 말했었죠? 수많은 인질들이 있다고.”
“그, 그렇기는 한데···.”
“그들을 구하자면 어쩔 수 없어요. 내 몸이 성장해야지 그들에게로 흘러가는 통신을 차단할 수 있거든요.”
“으음, 그러니까 몸을 키워서 사람을 구한다, 이거죠?”
“바로 그겁니다.”
미라는 젓가락을 딱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주 진지하고도 결연한 표정으로 천우에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 부부관계는 하지 말아요.”
“···뭐, 뭐라고요?”
“부부관계를 할 때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줄 알아요? 단백질은 물론이고 열량소모도 극심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하루에 다섯 번 이상을 하면 몸이 곯는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그걸 훨씬 넘어서잖아요.”
“그야 우리는 신혼이니까···.”
“아무튼 간에 안 돼요. 일이 해결 될 때까지 당분간은 각방이에요.”
“헉!”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다 있나.
허나 천우는 그녀의 말이 너무 논리적이라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마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가 말했었죠? 그녀는 주인님과 싱크로가 100%라고. 이런 여자를 구하는 건 어딜 가든 불가능할 겁니다.
‘그래, 칭찬 고맙다. 그런데 정말 성관계가 나노머신 만드는 것과 상관이 있는 거야?’
-생각해보세요. 성관계를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소모가 다르잖아요. 그 이후에 사정을 통해 꽤 많은 단백질이 배출된단 말이죠. 그와 함께 수분도 다량 배출될 것이고요. 주인님의 경우엔 그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양을 먹어야하는데, 당연히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껴야지요.
‘끄응.’
-그래도 축복으로 아세요. 남들은 이렇게 몸을 만들자면 수 천 만원을 쏟아 붓는데다 남성력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나는 딱히 몸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운명이라고 생각하세요.
천우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전미라는 정말 마샤의 말처럼 천우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되는 아내였다.
그녀와의 성관계를 끊으니 천우의 나노머신 공장의 가동률이 무려 20% 이상 올랐고 그 덕분에 천우는 입안에서 비린내가 가시지 않을 정도로 먹어야하는 생고기의 섭취를 약간 줄일 수 있었다.
하루에 무려 3억 기나 되는 나노머신을 생산하여 천우의 신체기관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나노머신이 신체기관을 아무리 대체한다고 해도 결국 천우의 인체에 있는 100조 개의 세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허나 나노머신은 굳이 세포를 전부 다 대신 할 필요가 없었다.
나노머신은 신체기관의 중추를 점령한 후, 그곳을 통해서 빠르게 증식해 나가는 형식이기 때문에 나노머신 10억 개 만 있어도 천우는 환골탈태가 가능했다.
그는 무려 3일 만에 10억 개의 나노머신을 만들어 신체의 각 기관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물론, 점령 첫 날에는 그의 외형이 꽤나 징그럽게 변해 있었다.
우선 나노머신은 천우의 피부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부조각이 다 떨어져 나가면서 빠르게 재생해 나가고 있었다.
천우가 묵고 있던 방에는 어느 새 살점이 가득했다.
마치 각질과 같은 살점을 치우던 천우는 불현 듯 이것이 너무 비위가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 우욱···.”
“잠깐 비켜 봐요. 내가 치울게요.”
“미, 미라 씨?”
“당신이 고생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전미라는 천우의 각질까지 사랑하는 정말 진정한 사랑꾼이었다.
그녀는 본인도 징그러워서 꺼리는 일을 정말 능숙하고 완벽하게 해냈다. 심지어 바닥에 있던 살점 조각까지도 남기지 않고 다 치워버렸다.
천우는 세삼 그녀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멋진 여자네.”
“그렇게 멋지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잘 해요.”
그는 이런 여자와 백년가약을 맺어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천우는 골격과 연골, 그리고 내장기관과 혈액까지 전부 나노머신으로 교체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그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전부 나노머신으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에 핵폭탄이 떨어져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되어버렸다.
뇌세포 하나까지도 전부 나노머신이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어떤 충격을 주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 것이었다.
이제는 극한의 지방에서도 옷을 벗고 돌아다닐 수 있었고 용암에서 수영을 해도 멀쩡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렸잖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
-지금은 머리카락 한 올만 뽑아도 한 국가의 통신을 마비시키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런 막강의 신체가 있어야 만 명의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겁니다.
“뭐, 그게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아무튼 간에 이제는 신체기관을 모두 바꾸셨으니 마음대로 생활하셔도 됩니다. 먹는 것과 부부관계도 원상태로 복구시켜도 상관없을 겁니다.
“오오, 드디어?!”
다른 건 몰라도 신혼부부에게 동침을 하지 말라는 건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천우는 그 즉시 그녀가 머물고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러자, 그 안에서 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들어오세요.”
안에서는 뭔가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향기로운 냄새와 자욱한 연기.
헌데 이 연기는 보통의 연기가 아니라 뭔가 미묘한 향기가 가득한 수증기와 같았다.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천우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녀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헌데, 순간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라?”
“왜요? 알몸으로 앞치마를 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어요?”
“······!”
천우의 머리에서 녹색 포자가 펑펑 터지는 것 같았다.
***
브라질 정부는 자꾸만 응축하고 있는 P-1의 군락을 보며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허나 저들에게 취할 수 있는 적당한 조치가 과연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터전에 대한 이해도마저도 채 몇 %가 되지 않는데 저런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연구원들은 그래도 저것에게 뭐라고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완 그란데스는 저것의 색이 변한 것이 뭔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잘 생각해봅시다. 저것이 비를 맞아서 색이 바뀌었잖아요? 그렇다는 것은 성분이 변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잖아요?”
“으음, 확실히 그건 그렇죠. 다만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문제지.”
“일단 폭발하기 전까지는 장벽을 쳐서 저것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것들을 어떻게 가둘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몇 번이라도 시도를 해봐야지요.”
“으음···.”
회의가 한창이던 가운데 이완 그란데스에게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이 도착했다.
콰앙!
회의실 문이 열리며 팀원 중 하나가 그에게 소리쳤다.
“큰일입니다! 가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빌어먹을!”
“지금 움직이면서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있답니다!”
“···뭐?!”
“아예 분자를 와해시켜서 흙으로 만들어버린다고 합니다!”
“허억!”
그야말로 초토화, 이것은 전 세계가 아예 태초의 지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인명피해가 없다는 점 정도일 것이었다.
“사람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만, 건물이 무너지면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건물이 무너진다고?!”
세상에 건물을 무너뜨리는 가스가 존재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류는 이제 자신들이 살아온 터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 9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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