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92화 (192/202)

< 96.(2) >

96(2).

2011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신년이 찾아왔음으로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고 더러는 선물을 주면서 새로운 한해가 돌아왔음을 자축했다.

허나 유독 한 곳이 초상집과 같은 분위기였다.

바로 골드인 그룹이었다.

골드인 그룹이 가진 계열사 중에서 손자회사 50개 이상을 가진 회사 20개가 한 방에 매각되어버린 것이었다.

스위스 경찰과 뉴욕경찰은 이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인터넷 회선들을 죄다 뒤지고 다녔지만 도무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허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FBI에서 마련한 긴급금융범죄대응반에 모인 인원 100명은 대형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골드인에 대한 추가 매도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융전문가들은 만약 저들이 예상한대로 매도가 이뤄졌을 경우엔 골드인 그룹 자체가 와해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만약 골드인 그룹이 와해된다면 손실액이 얼마나 될까요?”

대응반의 팀장 다니엘 글로리슨의 질문에 전문가들은 그 손실액을 추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왜냐하면 골드인 그룹이 지금까지 장외주식시장에 투자한 금액이 1조 달러를 넘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1조 달러에 대한 지분이 공중으로 흩어지게 된다면 그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으음, 그 정도로 대단한 난리가 날 것이라니. 만약 그렇다면 아예 증권거래소 자체를 잠시 폐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미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서킷브레이커 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만, 저들은 기계의 전원을 꺼도 활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조치를 취해도 뭔가 사건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 되겠죠.”

시장 자체적인 대응책으로 아예 거래를 정지시킨다면 아마 주식은 던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게 하자면 주식시장에 가중될 혼란까지 등에 업은 채로 앞으로 나아가야하기 때문에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었다.

이쯤에서 FBI는 차선책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통제가 불가능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차선책을 말씀하신다면 사실상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는 없네요.”

“제기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지금까지 저들이 보인 패턴에 의한다면 회사 자체적으로 주식을 확 털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게 팔려나가는 주식을 과연 어떻게 방어해야 할까요?”

이른 바 ‘그림자 도둑’, 혹은 스톡브레이커라고 불리는 이 ‘대도’의 등장은 주식시장의 판도를 아예 역행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는 전자주식으로 거래하는 것보다 차라리 유가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으로 거래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대도가 시장의 판도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시스템이 전자체계와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었고, 관리비용과 발행비용이 들어가는 유가증권은 하나 둘 정리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입장에서 유가증권으로의 회귀는 자칫 주식시장에 또 다른 혼란을 가지고 올 수도 있었다.

FBI는 긴장된 표정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개장입니다. 제기랄, 내가 태어나서 주식시장의 개장시간을 체크할 날이 올 줄이야.”

“···긴장하세요. 개장이 되자마자 차트를 분석하면서 대기해야합니다. 만약 저쪽에서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당장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소리죠.”

이제 이곳은 대도의 영역에서 뉴욕증시를 구해내기 위한 전쟁터로 변해갈 참이었다.

긴장된 표정의 경찰들과 금융전문가들.

허나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주식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요? 왜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죠?”

“어쩌면 저쪽에서는 우리가 대기 중인 것을 눈치 채고 한 발 빼버린 것은 아닐까요?”

“으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움직여야 한단 말입니까?”

“그야···.”

바로 그때, 대응반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콰앙!

숨을 헐떡이는 FBI요원, 이곳에 있는 99명이 불안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뭐야? 무슨 일이기에···.”

“지금 골드인의 영국법인이 와해되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골드인은 국제적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본사를 스위스에 두면서 세계각지에 거의 본사 급 덩치를 가진 지사를 뿌려 둔 형국이었다.

그 중에서 하나라도 지사가 와해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99명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허나 바로 그때, 그들의 긴장감을 폭발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반장님, 동남아에서 대량의 자금이 모여들고 있답니다!”

“···뭐?”

“잠깐, 지금 태국으로 넘어갔던 소유권이 다시 미국지사로 이관되고 있습니다!”

“허어!”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아주 작정하고 영국계 지분을 미국으로 몰아주려는 모양입니다!”

골드인의 지분구조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사와 지사끼리는 지분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다.

허나 지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가 해킹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미국지사가 영국지사를 자회사로 굴복시키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골드인 본사에서는 뭐래?”

“아직 저들도 뭐가 뭔지 가늠을 못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야?”

전문가들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영국이 미국으로 지분을 몰아준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영향력은 뉴욕증시로 돌아왔다는 것.

“···잘못하면 폭탄이 터질 수도 있겠는데요?”

“폭탄이요?”

이번에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쾅!

문이 벌컥 열리면서 FBI요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왔다.

“반장님!”

“제기랄, 이번엔 또 뭐야?”

“프랑스 지사의 지분이 전량 매각되었는데, 그 소유주가 독일법인이랍니다.”

“···이 새끼들이 장난하나.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스페인 지부의 지분은 오스트리아로 넘어갔고 반대로 오스트리아의 지분은 일본으로 넘어갔답니다!”

“서로 지분을 엇갈리게 보유하고 있는 셈인가? 그렇다면 아예 지분공유가 다 끝난 셈 아닌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응 팀은 자신들이 한 가지 크나큰 실수를 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을 전량 매각한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뉴욕의 증시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놓고 타국의 주식을 서로 엇갈리게 매각하려는 꼼수였던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니 폭탄은 터지지 않을 것이라고 FBI는 생각했다.

“그럼 일단 뉴욕증시는 안전한 걸까요?”

금융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세계의 모든 지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을 일으킨다면 우리도 무사할 수 없습니다.”

“······!”

“저들이 지금 하는 짓을 좀 보세요. 저들은 한마디로 전자세상의 유령과 같은 놈들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주식들 다 털어버리고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모든 경제기반을 한 방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소리라고요.”

인류는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수단, 자유를 표방하지만 결국엔 모든 것이 물질만능주의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강대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수탈의 경제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국가들은 지금도 강대국으로 남아 있고 아마 앞으로 100년이 더 지나도 지금과 비슷한 구도를 갖게 될 것이 분명했다.

허나 대도는 그 모든 것을 한 방에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시인하게 된 셈이었다.

***

시원하게 분탕질을 쳐준 천우는 각 지사를 관장하는 아슈리아 가문의 일원들에게 전부 나노머신을 보내 감청에 들어갔다.

무려 20개나 되는 지사와 그 예하 모든 계열사들이 사분오열되어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다들 하는 말은 다 달라고 그 안의 뜻은 모두 같았다.

-이런 빌어먹을, 네가 감히 우리를 배신해?!

-어떤 개자식이 조직을 배반하려 하고 있다! 그 어떤 세력도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대도라고 불리는 일명 스톡브레이커가 이 집안 어딘가에 반드시 숨어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은 결국 세력을 와해시키는 트리거가 되고 만 것이었다.

천우는 그들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며 아주 만족스럽게 웃었다.

“후후, 그래! 이것이 바로 진정한 카오스지!”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제부터 남은 것은 과연 저들의 연합이 얼마나 하찮고 볼품없는 것인지 스스로 깨닫고 와해되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이진아는 원격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이제 곧 결정타를 날려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남은 것은 최 씨 일가의 지분행사를 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저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차라리 사모님과 부모님들께서는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것이 좋겠네요.”

“제 아내는 이곳에서 계속 지내도록 하고 부모님과 친척들은 영국으로 잠시 피해있으라고 전해두겠습니다.”

오셔필드 가문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강력했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20~30명을 지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다만,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에 그들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천우는 천천히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가족과 친척, 그리고 회사의 관계자들이 피신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났다.

드디어 베를린에서 개최된 골드인 정기모임에 세계 각지에서 범죄조직들의 수장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다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만약 지금 이대로 독일경찰들 동원해서 저들을 잡아들인다면 시간이 금방 해결될 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한다면 언제고 다니 악은 싹을 틔울 것이었다.

천우와 이진아는 아예 골드인이라는 세력 자체를 없애버리고 다시는 저들이 지금까지 빼돌린 재산으로 재기할 수 있는 여지까지 잘라버리려는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과연 골드인이 어떤 범죄조직들을 거느리고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쪽은 바로 렉스테리아였다.

지금까지 렉스테리아는 천우와 꽤나 깊은 연관이 있었고 영국과 미국의 정보조직에게도 상당히 잘 알려진 범죄 집단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등장한 사람들은 바로 영국의 글로 랜드였다.

“글로 랜드···?!”

순간, 천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국계 복지재단이자 세계적인 아동지원법인이 바로 글로 랜드였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아동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획책하다니, 아무래도 골드인은 재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미친놈들이로군. 어떻게 아이들의 목숨을 가지고 이런 짓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 96.(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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