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89화 (189/202)

< 95. >

95.

골드인 그룹은 올해 들어 사상초유의 사태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자회사를 통째로 잃었다는 것이었다.

스위스의 경찰당국이 골드인 그룹을 찾아왔다.

“···거듭 이런 일이 생기게 해드려서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골드인 그룹의 사건사고 담당자이자 이 회사의 보인이사인 베네트 아슈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이 사과할 일은 아니죠.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나쁜 것이지. 만약 이런 범죄를 예방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리 이해해주신다니 너무나도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스위스의 금융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골드인 그룹의 돈을 거치지 않고서 세계의 금융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그만큼 골드인 그룹은 넓고 단단한 유대를 가진 자금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베네트 아슈리아는 경찰들에게 그만 물러가라고 말했다.

“이미 털린 회사를 뭐 어쩌겠습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시고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인터넷 사이트들부터 좀 철저하게 감시해주십시오.”

“예, 이사님. 그럼···.”

스위스 경찰들은 거의 숨도 쉬지 못한 채 골드인 그룹을 나왔다.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죽는 줄 알았네!”

“제기랄, 이런 일은 원래 금융당국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항상 우리만 심각하고 위험한 일에 동원되는 것인지 모르겠네.”

“그래서 형사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

형사들에게도 골드인은 무서운 곳이었다.

차라리 마피아의 소굴로 체포영장을 들고 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골드인은 수수께끼에 쌓인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도 불문율은 존재했다.

골드인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네들, 행여나 골드인에 'G'자도 꺼내지 마.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우리도 잘 알지! 목숨 아까운 건 다들 마찬가지 아니야?”

형사들은 그렇게 경찰서로 돌아갔다.

한 편, 형사들이 돌아가고 난 뒤의 골드인 그룹 보안이사 집무실에는 여유로운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베네트 아슈리아는 분위기 있는 음악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좋군.”

“그나저나 우리 골드인이 언제부터 악의 축이 되어버렸을까요?”

“왜? 악의 축이 그리도 나쁜 건가?”

“엄연히 말해서 좋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후후, 우리에게 악의 축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영광중에 영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악의 축이라는 수식어가 영광이라고요?”

베네트 아슈리아는 부하들에게 골드인이라는 조직을 한 마디로 정의해주었다.

“골드인은 악에서 태어났어. 배신으로 만들어졌고 세계대전에서 사람을 무더기로 죽여 가며 이 자리까지 올라온 셈이지. 그런 우리가 굳이 착한 양의 탈을 쓰고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대외적인 이미지는 기업에게 중요한···.”

“기업?”

베네트 아슈리아는 박장대소하였다.

“푸하하하! 자네들, 지금까지 골드인이 기업이라고 생각한 거야?! 이 친구들, 정말 웃기는 친구들이로군!”

“그, 그게···.”

철컥!

베네트 아슈리아는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는 권총을 부하들의 이마에 겨누며 물었다.

“하하하, 웃기는 군! 자네들,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우리가 거느린 조직이 몇 개이고 휘하 계열사들이 모두 온전히 합법적으로 돌아가는 곳이 있는지.”

“그거야···.”

베네트 아슈리아는 처음 악의 축이라는 단어를 거론한 부하의 이마에 바람구명을 뚫어버렸다.

타앙!

“컥!”

“허, 허억!”

“···인생은 한 번 뿐이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징징거리면서 사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 그래.”

“저, 저희들의 생각이 너무나도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음음, 죄송할 필요 없어. 어차피 죽은 자들은 말이 없는 법이니까.”

“살려주십시오!”

베네트 아슈리아는 지금까지 5년을 넘게 일한 부하들 5명을 차례대로 쏴 죽였다.

탕탕탕탕탕!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에게 마저 총구를 겨누었다.

그는 분명이 덜덜 떨고 있었다. 허나 똑바로 베네트 아슈리아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베네트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었다.

“호오? 왜 자네는 그렇게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어째서?”

“방금도 말씀하셨듯이 골드인은 악의 축입니다. 이런 짐승소굴에서 누군가를 짐승 대하듯 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순!”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네는 스스로를 짐승이라 생각한단 말인가?”

“짐승 밑에서 일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는 중요하지 않죠.”

“짐승 밑에서 인간이 일할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습니다.”

“으음, 정체성을 버렸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방아쇠가 점점 당겨지는 것이 보였다.

허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 아니었을까요?”

베네트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총구를 거두어 들였다.

“···좋아. 정체성을 버린다, 이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려주도록 하지.”

베네트는 그에게 쪽지에 피로 쓴 글씨를 보여주었다.

쪽지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죽여.”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그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제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창의력을 한 번 발휘해봐! 이 세상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 더 많단 말이야!”

“알겠습니다.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네트가 과연 그를 살려줄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살인에 실패한다면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

천우는 이진아에게 베네트 아슈리아라는 이름을 전해 들었다.

그가 가진 회사의 주식, 그리고 그 회사들과 연관된 모든 회사들의 주식을 일거에 매각해버린다면 골드인은 알아서 무너질 것이라, 그녀는 그리 생각했다.

“베네트 아슈리아는 능력이 뛰어난 마피아, 그리고 기업인입니다. 생각보다 비즈니스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일찍이 가문의 중추적인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되었죠. 지금은 회사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고 일종의 자금조달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으음, 그러니까 이 사람을 무너뜨리면 골드인은 알아서 무너질 것이라, 이거죠?”

“네, 그렇습니다. 만약 골드인의 세력이 사분오열 되어버린다면 우리가 골드인 그룹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훨씬 쉬워질 겁니다.”

“한 뭉치의 세력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따로따로 분해해서 상대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런 생각이신 거네요?”

“바로 보였어요. 제가 생각한 게 바로 그거에요.”

이 계획은 천우가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고, 애초에 천우가 없다는 전재 하에서는 절대로 실행조차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천우가 이 계획의 핵심인 것은 골드인 그룹의 지분을 가진 최 씨 일가의 적통성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추모공원을 세우고 조부님의 인정을 받는 등, 최 씨 일가의 수장이 되신 건 정말로 잘 하신 겁니다. 게다가 추종세력들까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게 되신 것도 상당히 큰 몫으로 작용했고요.”

“아무튼 간에 해킹만 성공하면 끝이라 이거죠?”

“절반쯤? 그 이후에는 지겨운 법정공방이 이어지겠지만 결국에는 당신이 승리할 겁니다. 역사적인 증거들이 당신에겐 많이 남아 있잖아요?”

대표적으로는 최 씨 일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서책들에 시료가 많이 남아 있었고, 일부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등, 각 왕실 및 공공도서관에 최 씨 일가의 기록이 있었다.

그들의 시료에는 ‘최가 상단’이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법적으로 지분력을 행사하는데 상당히 명확한 역할을 해줄 것이었다.

천우가 회사를 매각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허나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었다.

“매각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언제가 좋겠어요?”

“일단은 골드인 중앙회의가 열릴 때에 맞추는 것이 좋겠는데요.”

“골드인 중앙회의요?”

“일단은 저들도 사람인지라 모여서 회의 같은 것도 합니다. 다만, 그것이 상당히 비밀스럽게 진행되곤 하는데, 그 장소는 본인들 스스로밖에는 몰라요.”

“으음, 정보공유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제가 듣기론 철저한 오프라인을 통해서 진행 된다고 했는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요.”

“···그렇단 말이죠?”

천우의 생각에도 만약 중앙회의가 열릴 시점에 골드인을 한 방에 흔들어버린다면 어떻게 해서든 효과는 배가 될 것 같기는 했다.

골드인은 애초에 배신으로 탄생한 집단이고 그 집단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은 범죄자에 남의 뒤통수나 치는 치졸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치졸한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과연 뒤통수 한 번 안치고 살 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럴 리가 없지. 뒤통수를 치는 것들은 끝까지 뒤통수를 치며 살게 되어 있어.’

천우는 마샤에게 또 다른 숙제를 내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걸 명령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생각이 곧 마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화회선이나 팩스 등, 유선으로 들어가 정보를 탈취하는 방법이 궁금하셨지요?

‘맞아. 방법이 있을까?’

-물론입니다. 인터넷도 유선으로 연결되어 들어가는데 설마하니 전화회선이라고 불가능할까요? 게다가 요즘은 전화도 거의 대부분 무선 이동통신을 사용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더 하이젝킹 하기가 쉬워졌습니다.

마샤는 천우에게 네 번째 숙제를 내려주었다.

그녀의 숙제는 바로 한국의 국정원 요원 ‘이민석’이라는 사람의 핸드폰 회선을 하이젝킹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왜 하필이면 국정원이야?’

-저 사람들은 핸드폰이 아주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추적이 불가능한 회선이거나 암호화 된 회선을 사용하고 있죠. 물론, 전자회사나 인터넷 세상을 3차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주인님에게는 그저 퍼즐의 조각 맞추기에 불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으음,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소 레벨이 높은 허들을 넘어보라, 이거구나?’

-네, 맞습니다. 그 골드인이라는 것들도 보통의 머리들은 아닐 거잖아요?

‘좋아, 한 번 해보지 뭐.’

천우는 굳이 자리에서 뜨지 않고 나노머신을 움직여서 이민석 요원의 회선을 해킹하기로 했다.

마샤가 제시한 방법은 아래와 같았다.

한국은 CDMA통신을 사용하기 때문에 기지국과 중계기 정도만 해킹해도 충분히 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

CDMA, 즉 코드분할방식은 디지털신호마다 각각 코드를 부여해서 하나의 채널로 보낸 후에 이를 각 코드별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TDMA, 즉 시간분할방식보다 다소 복잡하지만 그건 인간이 회전 안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할 때의 얘기다.

천우는 곧바로 나노머신을 기지국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조각조각 나뉜 신호들이 보였다.

‘자, 그럼 퍼즐 좀 맞춰보자.’

< 9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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