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87화 (187/202)

< 94. >

94.

MI5 소속 전자범죄 추적 팀이 골드인 그룹을 찾아왔다.

전자범죄추적 팀장이자 수석 해커인 멜리사 샤크니스는 생전 처음으로 보는 광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90년도에 처음 이곳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근 20년을 근무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하였고 다양한 범죄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허나 지금의 이 패턴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보통의 범죄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자신만의 심벌을 남기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트레킹을 시도해놓고도 사방팔방에 일부러 내놓은 듯한 한적을 남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으음, 그럼 뭡니까.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인가요?”

“해킹시도 자체는 당연히 사람이 지시했겠죠. 아마도 어떤 집단의 소행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나니머스와 같은 전 세계적 해커집단이 이곳을 공격했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함과 부실함을 공존하게 만드는 이런 기술까지는 구현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의 이 사태를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의 집에 누군가 침투를 했다고 치자고요. 그는 모기 한 마리 지나갈 정도의 틈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벽을 찢은 것도 아니고 그냥 흔적도 없이 빈곤을 노리고 들어온 겁니다. 헌데 이곳에서 정보를 탈취해서 나갔을 때엔 일부러 사방팔방에 흔적을 덕지덕지 남겨두었습니다. 그것도 사람이 집에 떡하니 있는데 말이죠. 깡다구가 아무리 좋아도 그건 불

가능합니다. 이 집의 경우엔 몇 중으로 된 경비장치와 경비견들도 가득했으니까요.”

“···도대체 목적이 뭐지?”

“골드인 그룹은 BIS를 움직이는 중추세력으로 분류됩니다. 아마도 이런 굵직한 사건을 벌여서 주목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무수한 추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 만한 추론은 없었다.

만약 추론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 경우엔 그들을 추적할 수도 없었다.

“신기한 것은 뭐냐면, 인터넷에 접속하면 무릇 접속거점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헌데, 이건 그런 흔적조차 없어요. 뭐랄까, 마치 유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접속거점이 없다고요?”

“보통은 우회IP를 쓰거나 해서 접속이라도 할 거잖아요? 물리적으로 이곳을 뚫어줄 컴퓨터 한 대쯤은 있어야 정상이니까요.”

“헌데 아예 그 주체가 없다는 겁니까?”

“접속 IP를 여기저기 남겨놓았지만 사실은 없는 IP이었습니다.”

“그중에 위장전술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고요?”

“아니요, 실제로 이곳에 들어왔을 때 남았던 기록을 깡그리 훑었습니다. 헌데 그 어떤 접속의 흔적도 없어요. 정보를 빼간 것은 확실한데 사람은 없었다는 거죠.”

한마디로 차가 굴러가 영국일주를 했는데 그 안에 사람은 없었다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제 더 이상 MI5는 어떤 확신도 할 수 없었다.

“신종 해킹수법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으음···.”

“아무튼 간에 보완을 강화하시고 어지간하면 뚫린 서버는 점검을 받으십시오.”

사실, 멜리사 샤크니스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떤 방비를 해도 이 해커를 막을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해킹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인간이 유체이탈을 해서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이상 분명 어딘가에 접속장소가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무선공유기를 사용해도 IP는 남는다. 헌데 이놈은 도대체···.”

MI5는 반드시 접속장소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접속주체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그녀는 본부로 출근해서 서버에 접속했던 사람들의 신상을 다시 훑어보았다.

몇 번이고 같은 행동을 했지만 도저히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녀의 팀원들 역시 벌써 보름 넘게 같은 행동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쳐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팀장님, 정말 접속지점이 없는 건 아닐까요?”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이건 거의 유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혹시 다른 구역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었나?”

“적어도 인터폴에 접수된 사안에 한해선 없었습니다.”

“인터폴이라.”

인터폴은 국제형사기구이지만 CIA와 같은 정보기관의 정보는 잘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조금 더 구체적인 조사를 위해서 CIA를 찾아갔다.

CIA에서는 안 그래도 최근 데이터베이스에 누군가 침입했던 흔적을 뒤늦게 발견했고, 그것을 추적하였지만 실패한 상태였다.

그들은 오히려 골드인보다 더 심각한 일을 겪고 있었다.

“접속한 사람은 있는데 어떤 정보가 사라졌는지, 이 사람이 어디에서 접속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쪽도 사람은 있었는데 그가 접속한 곳은 없는 상황이네요.”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심각하고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되는 일이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 않던가.

바로 그때, 또 다른 곳에서 사건이 터졌다.

“팀장님, 월스트리트에서 어떤 유령들이 마구 날뛰고 있답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지금 증권회사 15개의 서버가 뚫려서 대량의 고객정보와 주식거래 장부가 털렸답니다!”

“허어!”

“헌데 웃긴 건 그 어떤 곳에서도 접속지점을 찾을 수 없답니다. 심지어 도망치는 속도도 빠르고 방화벽도 소용이 없답니다!”

“···말도 안 된다!”

“서버를 아예 다운시키기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계속해서 정보는 유출되고 있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버의 전원을 아예 내려버렸는데도 뭔가가 접속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전자기기에 전원을 끄면 접속이 차단되는 것이 정상이지 않던가.

멜리사 샤크니스는 이것이 마치 사람의 움직임과 같다고 느꼈다.

“···혹시 인터넷에 사람이?”“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피곤해서 헛소리가 다 나오네요.”

만약 인터넷에 맨발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허나 그건 아예 불가능할뿐더러 말이 되는 소리도 아니었다.

‘뇌를 전자화 시킨다면 모를까.’

그녀는 쓸데없는 상상을 뒤로하기로 했다.

아니, 그럴 시간도 없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었다.

“팀장님, 큰일입니다! 누군가 스위스 BIS로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

***

나노머신의 분탕질은 계속되었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인터넷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천우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는 유유자적하게 포커나 치고 있었다.

오늘은 포커대회의 결승이 열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조간신문을 받은 미라는 천우가 벌여놓은 사태에 그야말로 경악하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은 걸까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요. 게다가 내가 건드린 회사들, 전부 남의 고혈이나 짜먹는 것들이에요. 이번 참에 본때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천우는 원래 세상의 물을 흐리는 행동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해도 싼 사람들만 골라서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커대회의 결승이 시작될 시각.

천우 부부는 가볍게 키스를 나눈 후, 대회장으로 향했다.

대회장에는 포커대회의 전년도 챔피언인 에릭 체이스덤이 앉아 있었다.

에릭 체이스덤은 미국계 홍콩인으로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다가 포커선수로 전향한 케이스였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허나 천우는 그의 패턴은 물론이고 그의 생활습관에 성향까지 죄다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거기서 얻은 패턴을 그대로 복사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쌍하지만 여기서 안녕을 고해야겠네.’

다른 우승후보들도 대단한 천재들이었지만 에릭 체이스덤은 돈에 아예 미련이 없는데다 IQ가 무려 140에 육박하는 천재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천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그건 돈으로나, 실력으로나 전부 마찬가지였다.

도박판에 앉은 천우에게 에릭 체이스덤이 물었다.

“허참, 당신 같은 천재에 기업총수가 도대체 뭐가 아쉽다고 포커를 칩니까?”

“포커는 신사의 도박이죠. 저도 이제는 좀 신사답게 행동해보려 합니다.”

다른 우승후보들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차피 천우에겐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감이라는 것을 익히게 된다. 그건 포커라고 해서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포커는 심리학과 확률분석이 뒤섞인 고도의 두뇌게임이었기에 그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이제 이 포커에서 천우가 이기든 말든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다 이루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곳에서 최대한 오래 버틸 필요가 있어졌다.

딩동!

-주인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읽어줘.’

-아이슬란드에서 보낸 메시지입니다. 골드인을 칠 자료들은 모두 모아두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긴 해요. 게다가 아무래도 골드인이 직접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직접 움직인다···?’

-메신저로 전환할까요?

‘그렇게 해줘.’

천우의 명령 한 번에 메신저가 직접 연결되었다.

-지금 어디에요?

‘포커 치고 있죠.’

-솜씨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 두뇌가 있으면 세상을 지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어요.

‘아쉽게도 저는 히틀러가 아니라 서요.’

-아무튼 간에 BIS를 공격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그보다도 저놈들의 파트너들을 하나 둘 찍어서 없앨 필요가 있어요.

‘그들을 법적으로 확 보내버리라는 겁니까?’

-적어도 한 몇 주일 동안은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버리라는 거죠.

‘흐음, 어떻게 하면 될까요?’

-혹시 해킹이 가능하다면 남의 주식들을 몰래 파는 것도 가능해요?

천우는 그에 대해서는 아직 배워본 바가 없었다.

허나 마샤는 천우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이 주인님과 싱크로가 잘 맞네요. 어차피 세 번째 숙제는 인터넷 공간에서 물리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주식의 매각과 같은 것이죠.

‘허어!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숙제는 복합적인 것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지요?

‘그랬지.’

-인터넷에서 스스로를 인증할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킹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한정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해킹을 당하면 한 순간에 카오스가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이죠.

‘으음!’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가장 안정하고 흥미로운 방법은 주인님이 찾아내야 하겠지요.

천우는 굳게 마음먹었다.

어차피 골드인을 깨부수지 않으면 금융범죄는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이진아에게 답을 주었다.

‘한 번 해볼게요.’

< 9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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