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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182화 (18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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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저 전설로만 알려졌던 최 씨 일가의 재산이 먼 이국땅인 스웨덴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보물 위에는 먼지가 자욱했지만 그 영롱한 빛은 힘을 잃지 않고 온 사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게 바로 당신이 말했던 가문의 보물이에요?”

“네, 맞아요!”

보물이 잠들어 있던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한지로 만든 약간 두툼한 편지봉투가 놓여 있었다.

먼 이국땅에서 한지를 본다는 것도 반가웠지만 편지의 겉면에 찍혀 있던 가문의 인장은 훨씬 더 반가웠다.

그건 망망대해를 부유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체, 바로 흰 수염고래를 형상화 한 최가 상단의 직인이었다.

“조상님이 남긴 편지가 있네요.”

“읽어봐요, 어서.”

“내가 이걸 읽어 볼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라···.”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편지를 그 누가 찾을 수 있었겠어요?”

천우는 자신이 최 씨 일가의 명맥을 이었다곤 해도 그것을 함부로 열어볼 수 있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허나 봉인 바로 위에 있던 글귀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 씨 일가의 장손에게]

글씨체가 아주 오래되긴 했지만 분명히 한글로 적혀 있었고 그야말로 일필휘지가 연상되는 명필이었다.

천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보기로 결심했다.

“후우, 그럼 열어볼게요!”

그는 봉인을 뜯고 편지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몇 장의 땅문서와 권리증서 증이 나왔다.

천우는 그것을 손에 쥔 채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나갔다.

나의 후손은 보아라.

과연 몇 대가 흘러 이 보물이 발견될 지는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나조차 가늠할 수 없구나.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아마도 최 씨 일가의 명맥을 이은 적통의 장자라면 언젠가는 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보물들은 가문의 혼이 담겨 있는 재산이다. 이것을 팔아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더 나아가선 우리의 조국을 재건하는데 사용해주기를 바란다.

우리 최가 상단은 조국이 버렸던 집단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동포를 버린다는 것은 이치지 맞지 않는다.

남자가 태어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순간은 나라가 망했을 때, 그리고 내 동포들이 고통에 신음할 때뿐이다.

만약 사내대장부가 고통에 신음하는 동포를 외면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견물생심, 아마도 재물에 욕심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재물만 가지곤 살아갈 수 없음을 명심하여라.

거듭 강조하지만 이 돈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용해다오.

추신 : 화이트 웨일 컴퍼니의 지분을 네게 상속하마. 그 빌어먹을 유리시아 가문을 밟아버리고 골드인을 다시 찾아오너라. 이젠 그들을 막을 때가 되었어.

편지를 모두 읽은 천우는 아내에게도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골드인! 조상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분명 심상치 않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해요!”

“내 생각에도 그래요. 유리시아라는 가문은 도대체 우리 가문에게 어떤 짓을 한 것일까요?”

“화이트 웨일 컴퍼니라는 곳을 찾아가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CIA에서 연락이 오면 움직여보자고요.”

그녀는 천우의 손을 꼭 쥐었다.

확신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

“우리는 반드시 조상님의 유지를 받을 수 있어요!”

“고마워요. 시집을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가문을 생각해주시다니.”

“이제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찌릿한 전기 같은 것이 통했다.

천우는 일단 지하실의 문을 닫기로 했다.

“사랑을 폭발시킨 후에 움직일까요?”

“···제법인데요?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두 부부는 철문을 굳게 닫은 후,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면서 그야말로 한 차례 사랑을 폭발시켰다. 그런 후에도 몇 번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폭발이 있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아주 결연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마침 CIA에서도 전화가 왔다.

-두 사람은 안전한 것 같아. 저들이 찾는 것은 렉스테리아를 쫓던 CIA와 국정원 등, 정보조직의 일원들인 것 같으니.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말씀 고맙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론이었다.

“그나저나 복귀하신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나도 저놈들에게 당할 뻔 했으니 시원하게 복수를 해줘야하지 않겠어?

“저놈들, 겁도 없네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다니요.”

-안 그래도 아주 작살을 내 줄 참이야.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같이 소주 한 잔 하세나.

“좋죠. 제가 영등포에 잘 아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서 나중에 만나시죠.”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이제 아론과 천우는 나이와 국적을 뛰어넘어 진짜 친구가 되었다.

아론의 한 마디에 천우는 움직일 확신을 가졌다.

“가자고요. 아론이 움직여도 괜찮다고 하는군요.”

“좋아요. 마을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움직이자고요.”

불과 몇 가구 남지는 않았지만 이 근방에도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사람들에게 빵을 구워서 파는 집이 있었다.

이제 곧 문을 닫게 생겼지만 그래도 빵을 사먹는데 전혀 문제는 없을 듯했다.

빵과 우유를 사서 먹으니 어제보다 훨씬 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천우는 곧바로 영국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천우에게 오셔필드 가문은 약간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던 참입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허태용님이 위독하시답니다.”

“···집사 할아버지가요?!”이제 마지막 남은 천우의 멘토였다.

비록 조부모보다는 정이 덜했지만 지금까지 천우가 크는 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었다.

그런 허태용이 위독하다는 소리를 들은 천우는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한국으로 날아갔다.

천우는 충의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최충의의 주치의인 임태춘이 설립한 병원으로, 최충의가 죽기 전에 360억 규모의 자금을 출자하여 만들었다.

임태춘은 원래 소화기내과의 권위자였는데, 심장내과를 포함한 각종 내과와 흉부외과 등의 외과에도 인맥이 넓어 많은 실력자를 병원으로 끌어들였다.

병원설립으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지금, 충의종합병원은 대한민국 탑 3에 들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물론, 천우는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설립된 병원에 꾸준히 자금을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의 2대주주이기도 했다.

그가 병원으로 달려오자, 임태춘의 손녀이자 병원의 현 이사장인 임유화가 천우를 맞이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집사 할아버지는···.”

“위독하십니다. 주치의의 말대로라면 아마 오늘을 넘기긴 힘들 것이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천우 부부는 무거운 마음으로 병실을 찾았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중인 허태용은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가까스로 잡고 있었다.

그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서 이제는 불과 몇 년 전의 모습조차 없었다.

허태용은 천우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작은 도련님. 이 누추한 곳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집사 할아버지···.”

금세 촉촉해지는 천우의 눈동자.

허태용은 그런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도련님. 저는 원래 몇 년 전에 죽었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이렇게까지 연명할 수 있게 되었죠. 죽기 전에 도련님을 뵌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천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앞에서는 강건한 최 씨 일가의 수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내 변해버린 천우의 표정을 바라보며 허태용은 흡족한 듯이 말했다.

“그래요.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마십시오. 한 가문의 수장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끝까지 강건하시네요.”

“아무튼 간에 장가를 드시니 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저는 생전에 도련님이 장가를 드는 걸 볼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윽고 아무도 없을 때가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드디어 찾았어요. 집사 할아버지가 완성하셨던 일대기에 나왔던 그 보물이요.”

“···허허, 그걸 정말 찾으셨군요.”

허태용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모두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 말입니다. 저희 두 사람은 작은 도련님이 언제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 가늠해 본 적이 있답니다. 저는 서른 이전에 찾을 것이라고 하였고 회장님께서는 서른 이후에 찾을 것이라고 하셨죠. 결국 제 생각이 맞았네요.”

“그렇다면 할아버지도 보물의 유무는 알고 계셨다는 뜻이네요?”

“그렇지요. 그분도 적장자가 아닙니까?”

“아아!”

“저는 그분을 도와서 보물을 찾는데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보물을 찾는데 거의 40년쯤 걸렸고, 우리 그룹이 자리를 잡을 때쯤에야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죠. 해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10대 때부터 보물을 찾으러 다녀서 환갑이 다 돼서야 보물을 찾아냈으니 아마 어지간한 일반인은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걸 작은 도련님이 태

어나면 물려주자고 말입니다.”

결국 가문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허태용과 최충의는 이것을 건드리지 않고 차라리 그룹을 와해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모른 척 이대로 함구하여 미래를 도모하자고 생각했던 셈이다.

“조상님들께서 그러셨다죠. 언젠가 위기의 순간이 올 때를 대비해서 재산을 남겨두셨다고요. 우리 역시 그렇게 이것을 역사에 묻어버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도 읽어보지 않았지요.”

“편지의 내용은 전 재산을 기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허태용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결정이겠지만 조상님들의 유지에 따라주십시오.”

“물론이죠. 저는 이 집안의 장자이니까요.”

“장하십니다. 역시,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네요.”

회광반조, 아마도 허태용은 지금까지 천우와 얘기를 나누려고 힘을 아껴두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슬슬 그의 눈동자가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도련님, 이제 저는 갑니다.”

“지, 집사 할아버지!”

“제가 없더라도 강건하시고 집안을 잘 건사하십시오···.”

“명심할게요!”

“···이 집안, 그리고 우리 최가 상단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순간, 허태용은 그대로 숨을 놓아버렸다.

삐이-

의료진들은 예상했다는 듯, 조용히 문을 열었다.

주치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5시 12분. 허태용님께서 영면하셨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동은 그제야 병실 안으로 들어와 무거운 고개를 숙였다.

허 씨 형제는 주름진 눈시울을 적시며 천우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주셔서요.”

“제 할 도리를 한 것뿐인걸요.”

천우는 임종 후, 삼일장을 치를 때의 장례행렬에서 허태용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장례식이 거의 다 끝날 무렵.

그는 허 씨 형제와 앞으로 그를 어떻게 안치할지 상의했다.

“집사 할아버지를 어떻게 모시면 좋을까요?”

“저희들은 작은 추모공원에 안치하면 좋겠는데요.”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지금부터 추모공원을 지을 생각입니다. 우리 최가 상단의 기둥이셨으니 최가 상단의 중추세력으로서 그 중앙에 잠드실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으음. 회장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는 허태용의 본관인 안산에 5만 평 부지를 사들이고 그곳에 최가 상단 추모공원을 세우기로 했다.

또한, 그 중앙에 성대한 조각상을 세우고 허태용을 기리겠다고 선언했다.

< 9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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