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79화 (179/202)

< 90. >

90.

이른 아침, 시끄럽게 알람이 울린다.

따르르르릉!

현수는 귀찮다는 듯이 머리맡의 알람을 꺼버렸다.

“끄응···!”

그의 곁에는 쭉 뻗은 늘씬한 8등신의 미녀 기자가 잠들어 있었다.

현수는 그녀의 맨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짜악!

그러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깨어났다.

“···짐승아, 아침부터 그러고 싶니?”

“내가 짐승 아니었으면 이렇게 옆에서 잠이나 자고 있었겠어?”

말이 기자지 정유희는 연예인 뺨치고 갈 미모에 몸매는 거의 슈퍼모델 급이었다.

도대체 이런 여자가 왜 기자로 언론계를 떠돌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현수는 아침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부터 시작했다.

“우웨에엑!”

양치질을 하자마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정유희는 현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어지간히 좀 마셔. 그러다가 간경화 와서 죽으면 그 모진 세월이 너무나도 아깝잖아?”

“···어제 최 의원이 계속 술을 주잖아. 버리는 것도 한 두 잔이지, 주는 술을 어떻게 마다하겠어?”

“쯧, 그놈의 룸보이 짓은 지겹지도 않아?”

“그럼 어째. 비서 2팀이 하는 짓이 다 그런 것들뿐인데.”

유희는 샤워 룸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을 틀었다.

솨아아아···.

그녀는 샤워부스 밖으로 머리를 배꼼 내밀며 말했다.

“이번에 최 의원에게 얼마 줬어?”

“···무슨 소리야?”

“다 알면서 또 그런다. 자기가 그 아재들 돈줄에 여자줄인건 대한민국이 다 아는데 내숭은 무슨.”

대한민국 재계의 대들보라 불리는 명화그룹의 비서실은 기업의 비사를 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 2 비서실에 2팀은 정치인과 고위공무원, 경찰, 검사 등의 로비와 접대를 담당한다.

영화에 보면 정치인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고 가끔은 그들이 시키는 일도 해주는 심부름꾼이 나온다.

흔히 해결사로 비유되는 그들이 바로 현수였던 것이다.

현수가 대기업에 비서로 취직해서 검은돈을 퍼 나르고 하루가 멀다고 그놈들 아랫도리 호강시켜주던 것이 무려 1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붙어먹으면 부스러기 정보라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아마 정유희는 그래서 더 현수에게 붙어 있으려 할 것이었다.

현수는 대답 대신 말을 돌려버렸다.

“우, 우욱!”

“내려가서 콩나물국이라도 좀 사먹어. 그러다가 아주 딱 죽겠어.”

“···그래야지.”

“그나저나 오늘도 그 주짓수인지 주스인지, 그거 할 거야?”

“해야지. 안 하면 나는 이미 죽었다니까.”

겉은 멀쩡한데 속은 다 썩어서 문드러져버렸다.

그나마 오후에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쯤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주짓수 동아리에 다녔었다.

비록 메이저급은 안 되더라도 아마추어 선수 급은 될 것이다.

무려 경력이 15년이었으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나랑 연애나 더 하지 그래?”

“···죽는다니까 그러네.”

“쳇, 재미없는 남자 같으니.”

“언제는 전투적이라서 좋다면서?”

“그야 자기가 파릇파릇한 20대 시절 얘기고. 이제 자기도 30대 중반이잖아?”

“끄응···.”

“아무튼 간에 술 좀 줄여. 자기 어제 술 취해서 하루 종일 헛소리만 하더라. 어휴, 귀 따가워 죽는 줄 알았네.”

현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젠 술버릇까지 바뀌었나?”

“아무튼 간에 출근하자고. 자기도 오늘 스케줄이 있었지?”

“스케줄?”

“어젯밤에 그랬잖아. 오늘 박 의원 만난다고.”

“···내가 그랬다고?”

비서실의 정보는 극비사항이다.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행여나 밖으로 세어나가게 되는 날에는 곧바로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었다.

그런 정보가 바깥으로 새어나왔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김현수를 아냐는 한 마디에 정유희의 입에서 쭉쭉 뻗어 나온 말은 뻔하고, 또한 뜻밖이었다.

“···흑흑, 저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요!”

“당신이 김현수 씨 살인에 연루되었다곤 말한 적 없습니다. 그냥 사실 확인만 하는 것이라고요.”

한 로비스트의 사망, 그리고 그에 이은 국정원 요원의 실종.

이제 CIA는 암암리에 자신들과 정말로 유대감이 깊은 사람들만 추려서 일을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정유희도 CIA가 한국의 정보기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들과 유대감이 깊은 한국의 사법기관이 무서운 것이었다.

그녀가 두려움에 떠는 것은 자신이 김현수에게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특종을 건졌고, 그로 인해서 현수가 죽었을 경우에 돌아올 후폭풍 때문이었다.

“저는 정말로 그가 죽는데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어요! 정말이라고요!”

“그래요, 누가 뭐랍니까?”

김현수가 죽은 것은 거의 확실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거쳐 갔던 항만시설에서 다량의 혈흔이 발견되었고 그 주변에서는 콘크리트가 마구 흩어져 있었다.

CIA와 검찰은 이것이 아마 사람을 어딘가에 암매장하기 위해 썼던 수단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만, 김현수가 고통 없이 편하게 갔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유희는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저는 몰랐어요, 정말이라고요···.”

“정신이 나간 거야, 그런 척을 하는 거야?”

CIA는 일단 그녀를 어디론가 입원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중앙지검 검사들의 생각도 같았다.

“잘 아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그쪽으로 보내는 것이 어떨까요?”

“이 사람도 잘못하면 그들의 표적이 되는 거 아닐까요? 차라리 미국으로 보내시죠.”

“미국이라.”

과연 미국이라고 해서 안전할까. 허나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국정원 요원까지 당한 마당에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미국으로 옮기는 것으로 하고···.”

지이이잉!

바로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네, 모리스 브라운입니다.”

-···나야, 아론 테이트.

“부국장님?”

은퇴한 아론 테이트의 전화,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많이 다운된 것 같았다.

***

영국에서 이번에는 노르웨이로 향하는 천우 부부.

그들은 스코틀랜드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노르웨이 서쪽으로 향한 후, 그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저택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솨아아아···!

대형 SUV의 선루프를 열고 달리는 이 느낌, 상당한 해방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노르웨이가 정말 살기는 좋구나.”

천우의 한 마디에 역사광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이제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되었죠. 하지만 옛날에는 경작할 땅이 없어서 바이킹들이 남하정책을 펼쳤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비옥하고도 척박했던 곳이 바로 이곳 북유럽이 아니었을까요?”

“으음, 그런가요?”

“아무튼 조상님들께서 이곳에 저택을 세워두신 건 분명 뭔가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오셔필드 가문도 전 세계적으로 최 씨 일가의 저택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영국과 유럽 일부에 국한된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할 뿐, 전 세계를 아우르던 집단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곳 노르웨이의 저택은 오셔필드 가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을 피해서 숨어 지냈던 근거지였기에 잘 아는 것뿐이었다.

대략 차로 나흘 정도 달려서 도착한 저택은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아담해보였다.

지상 2층에 넓이는 대략 45평쯤 되는 것 같았고 대지는 넓었지만 죄다 가시덤불에 둘러싸여 영국에 있는 저택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선 뭔가 딱히 경작을 하거나 목축을 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땅값이 매우 싸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아까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습기는 충분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경작을 하기 좋은 환경은 절대로 아니었다.

대기와 수자원의 질은 좋았지만 토양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맹점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곳도 비료나 영양제 등으로 지력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럴 가치가 있나 싶었다.

천우는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현관을 열어보니 따뜻한 양탄자와 벽난로, 그리고 벽면이 온통 동물의 털로 된 아득한 느낌의 거실이 보였다.

“아기자기하네요. 만약 집을 짓는다면 이렇게 짓고 평생 살고 싶어요. 이정도 집 크기면 한 여덟 명은 낳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요.”

모든 것이 아이와 귀결되는 그녀, 천우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저택의 전체적인 느낌은 옛날 1800년대 미국 외곽의 목조주택을 보는 것 같았다.

모던함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실용성으로는 절대 부족함이 없는 그런 집이었던 것이다.

집 곳곳에는 동물의 박재와 사냥장비들이 즐비해 있었다.

“오두막처럼 썼던 것일까요?”

“그러게요.”

오셔필드 가문에 의하면 이곳은 지상보다 지하가 더 넓다고 하였다.

지하에 거대한 서고가 있다고 했는데, 그 넓이가 과연 얼마나 넓을 지는 봐야 안다고 그들은 말했었다.

천우 부부는 석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지하실로 향했다.

드르르륵!

장정 네 명이 밀어도 간신히 밀까 말까 한 석문을 천우는 한손으로 스윽 밀어버렸다.

“석문이 보기보다 가벼운가 봐요?”

“뭐, 그럭저럭?”

일반인은 천우가 힘이 그렇게까지 좋다는 건 사실 잘 모를 것이다.

물론, 그 아내인 미라는 가끔 체험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지하실로 들어서자마자 천우의 어깨를 스윽 쓰다듬었다.

“분위기 좋은데요?”

“···허참, 그렇다면야.”

유혹하는 듯 한 그녀, 하지만 이내 스킬을 시전 했다.

“그건 좀 있다가. 알았죠?”

“역시. 조련에 일가견이 있다니까.”

“나중에 아이들을 키우려면 미리 연습을 해놔야죠. 보통 남자와 아이는 비슷하다고 하니까 나의 조련기술이 어느 정도는 먹히지 않을까요?”

천우는 쓰게 웃을 뿐이었다.

잠시 후, 지하실에 당도한 두 사람은 천장에 있던 형광등을 켰다.

타악!

그러자, 엄청난 광경이 두 사람을 압도해왔다.

“허억! 이게 무슨 서고야?!”

“이건 거의 대도서관 급인데요?”

왕실의 도서관이 과연 이정도로 넓을까.

평수로만 따진다면 거의 천 평도 넘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서고가 지하실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도대체 그 옛날에 이런 지하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이것이 과거에 최 씨 일가의 힘으로만 지은 것이라면 이만한 창고에 금은보화가 묻혀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었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가문의 보물이 있긴 있으되, 당신은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고 살짝 흘렸던 것이 생각나네요.”

“설마하니 이정도 규모의 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저 가정이지만, 사실인 것 같아요.”

마샤는 꾸준히 가상의 보물지도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일말의 단서라도 얻는다면 충분히 그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튼 간에 두 사람은 이런 엄청난 고서적들을 마주해서 너무나도 기뻤다.

특히나 고서적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녀에겐 축복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 좀 읽어볼까요?”

그녀가 튀어나가려다가 잘못해서 작은 선반을 팔꿈치로 건드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몇 권의 책이 쏟아져 내렸다.

“웁쓰···.”

“치우면 되죠. 뭘 그렇게까지.”

두 사람은 합심해서 책을 주워들었다.

헌데 이 책은 다른 서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이건···.”

“일종의 장부 같은데요?”

도서관에 장부가 있다니, 신기해서 그 속을 열어본 두 사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바로 도서관의 책 목록을 총망라해둔 차트였기 때문이었다.

< 90. > 끝

ⓒ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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