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77화 (177/202)

< 89. >

89.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천우 부부는 오셔필드 가문의 수행을 받았다.

그들은 부부를 최 씨 일가 저택으로 데리고 갔다.

저택의 입구에 도착하니 예전에는 없었던 형형색색의 꽃들과 백색 망아지들이 보였다.

“이게 다 뭡니까?”

“사모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꾸며봤습니다. 백마는 고귀한 아들을 상징하는 동물이라서 정성스럽게 기르고 있죠.”

“허어, 설마하니 우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꾸미기 시작하신 겁니까?”

“후계자 생산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중요한 일에 저희 오셔필드 가문이 빠질 수가 없지요.”

아할테케, 투르크메니스탄의 국보로 알려져 있는 이 말은 어지간해선 구할 수고 없는 품종이었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자태가 가히 신비롭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한혈보마라고 불리는 말이죠. 이걸 구하는데 고생 좀 했습니다만, 그래도 고귀한 도련님을 귀해서라면 못 할 것도 없었습니다.”

천우는 이들이 미신을 상당히 좋아하는 가문인 줄은 미처 몰랐다.

허나 그래도 가문에 대한 충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의 마음이 다 든든해졌다.

오셔필드들은 한혈보마에 이름을 붙여달라고 했다.

“이 망아지들은 아직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름이 없습니다. 지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은 뭐라고 부릅니까?”

“그냥 포니라고 부를 뿐이죠.”

“으음, 말의 이름이라.”

천우는 가만히 한혈보마를 바라보았다.

아직 성체가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쭉 뻗은 다리와 거대한 몸집은 말을 모르는 사람도 압도될 정도로 웅장하였다.

그는 고민도 없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말이 두 마리죠?”

“네, 그렇습니다.”

“충식이, 충태로 지을게요.”

“충식이?”

“제가 키우던 개입니다. 우리 가문을 개판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이죠.”

“아아, 그 세인트버나드 말입니까? 도련님께서 아주 많이 아끼셨다고 들었습니다.”

“녀석들은 장수했습니다. 저는 모름지기 장수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이름을 이어받으면 자기들 수명을 넘겨서까지 살 수 있을 지도 모르죠.”

“알겠습니다. 그럼 충식이 형제로 이름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충식이의 이름을 이은 망아지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천우에게 다가왔다.

비록 천우는 말을 다루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나노머신에 각인된 지식들 중에는 말을 다루는 방법도 있었다.

그는 갈기를 쓰다듬으며 망아지와 교감했다.

“상당히 조용하구나.”

“이 힝힝···.”

“한 번 타 봐도 될까?”

아직 망아지이지만 어지간한 훈련은 다 받았기 때문에 사람이 말을 하면 몇 가지는 알아들었다.

천우는 당장 충식이의 등에 올라탔다.

안장도 없었고 고삐도 없었지만 충식과 천우는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오셔필드 가문은 깜짝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허어, 저놈들의 성질이 생각보다 더러웠는데 주인님의 말은 어쩜 저리 잘 들을 수 있나?”

“이랴, 가자!”

충식이는 천우를 태우고 정원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아직 어린 말이었지만 그 힘과 폭발력이 여타 경주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어째서 옛 중국의 황제들이 한혈보마를 그리도 탐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직 저렇게 어린데도 폭발력이···!”

“옛날에 태어났으면 등에 대장군을 얹고 달렸겠군요.”

사람들은 감탄하기 바빴다.

미라는 그런 천우와 충식이의 모습을 핸드폰 동영상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백마 탄 왕자님이 따로 없네.”

이미 눈에 콩깍지가 쓰인 그녀로선 이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는 없었다.

잠시 후, 천우가 정원을 한 바퀴 다 돌고 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충태가 천우에게 다가와 등을 비비적거렸??.

“뭐, 너도 달리자고?”

“이힝힝!”

“그래, 가자!”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충태는 천우를 태우고 마치 번개처럼 대지를 박찼다.

원래 말도 무리생활을 하던 습성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알파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가. 전문가들은 그리 생각했다.

이번에도 미라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동영상을 촬영했다.

“···결혼하길 잘했어!”

“험험, 사이가 참으로 좋으신 것 같습니다.”

“남편이 잘 생겼으니까요.”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천우는 어딜 가서도 주목을 받는 외모였다.

지금까지 천우에게 관심을 보인 여자가 한 둘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전미라가 유일했다.

한마디로 그녀가 천우의 진짜 이상형이라는 소리였다.

잠시 후, 충태가 천우를 태우고 돌아왔다.

“이놈, 힘이 대단하네요. 엉덩이가 다 얼얼해요.”

“안장도 없이 허벅지 힘으로만 그렇게 달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도련님이 더 대단하신 거죠.”

“하하, 별 거 아니었는데요.”

“아무튼 간에 앞으로 이 녀석들은 주인님에게 충성하며 살아가게 될 겁니다. 잘 돌봐주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말의 품종이 워낙 귀해서 감독해주는 사람이 없인 밖으로 나올 수 없었지만, 그래도 오셔필드 가문은 이들이 뛰어노는 시간은 충분히 보장해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천우는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이 녀석들과 놀아주기로 했다.

오셔필드 가문은 두 사람이 신혼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은 저택의 3층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방이 하나 있는데, 오셔필드 가문은 그곳에 딸려 있는 욕실에 통유리를 설치하고 두 사람이 오붓하게 피로를 풀 수 있도록 탕을 준비해두었다.

또한, 정체불명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담긴 탕도 있었다.

“자고로 몸이 가까워야 아이도 빨리 낳는다고 했습니다. 해서 피임기구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으니 이해해주시지요.”

“···배려 감사합니다.”

이제 두 사람에게 거리낄 것은 없었다.

당장 발코니를 열고 탕에 들어가서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다.

서로 엉켜있는 채로 있던 부부는 앞으로의 여행루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는 지역만 정해놓았지 어딜 갈 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잖아요? 미라 씨는 어디를 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생각해 둔 게 있어요.”

“생각해 둔 게 있다고요?”

“네, 그래서 일부러 전용기도 없이 자유여행을 하자고 했던 거고요.”

“어디를 가고 싶었는데요?”

“듣자하니 저택은 이곳 말고도 많다면서요?”

“그렇긴 하죠.”

“이 집안의 귀신이 되기로 한 이상, 일대기를 모두 모아보고 싶어요.”

“아아, 도서관 투어를 하자는 거군요!”

“맞아요!”

이 세상에서 고서적을 제일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자연경관을 즐기면서 고서적을 읽는 것만큼 소중한 시간도 없을 것이었다.

천우는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정말요?!”

“이제 당신도 우리 가문의 일원인데 안 될 거 뭐 있나요?”

“그럼 당장 이 저택부터 시작해볼까요? 어떤 책이 있나 한 번 둘러봐요!”

“그래요. 그럼 식사를 좀 하고···.”

“으음, 순서가 잘못 되었잖아요.”

그녀는 손으로 끈적끈적한 액체가 가득 한 탕을 가리켰다.

천우는 아까부터 저게 도대체 뭐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짐작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2세를 생산해야 할 의무가 있잖아요?”

“···오호, 저게 그런 용도였던가?”

“약간의 윤활제 역할을 하는 도구라고나 할까요?”

그게 뭔지 천우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이 그에겐 중요했다.

부부는 탕으로 들어가 사랑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

그날 밤, 저녁을 든든히 먹은 부부는 지하에 있는 서고로 향했다.

단독 서고는 주로 고서적들 중에서도 지식과 관련된 서적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곳 지하에는 최 씨 일가의 일대기가 모여 있었다.

아직까지 천우도 그 내용을 다 읽어보지 못해서 과연 누구의 일대기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미라가 없었다면 이곳에 들어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두 사람은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번 돈으로 이 저택을 지었다고 되어 있는 거상 최인득에 대한 책을 꺼내들었다.

“존함이 피터 실버라고 되어 있네요?”

“피터 실버라.”

생몰년이 기록된 부분이 손상되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사망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사람이 바로 영국에게 막대한 채권을 사들여 지금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인물에 대한 일대기는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원래 피터 실버는 영국의 정치싸움에 휘말려 감옥에 들어갔다가 광산 노동자로 팔려갔었는데, 그곳으로 끌려갈 때 몰래 챙겨간 금화 두 닢으로 광산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버렸다.

그가 광산을 사들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고리대금이었다.

노예가 무슨 고리대금을 하냐 싶었지만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받아내는 악독함과 잔악함으로 세력을 불려나갔던 것이다.

“악바리 중에서도 악바리셨네요.”

“광산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었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돈 말고는 딱히 권력도 없었을 테니까요.”

광산을 구매한 후, 그는 왕실에서 기득권이 바뀌는 타이밍을 잡아 곧바로 차기 왕에게 줄을 댔다.

하여 그는 광산 하나로 왕실의 돈줄 역할까지 하면서 영국 내 유일한 검은머리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대기에는 그가 영국의 귀족 유리시아 가문과 결혼했다고 되어 있었다.

“유리시아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천우는 곧바로 나노머신에서 유리시아를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대단히도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유리시아 가문은 영국 굴지의 금융기업 ‘골드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BIS의 고위관계자로 알려져 있으며, 골드인의 대주주는 영국계 동양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우는 눈을 번쩍 떴다.

“BIS와 관련된 골드인···?”

“아아! 골드인 그룹! 맞아요, 골드인 그룹이었어요!”

“골드인에 검은 머리 영국인이 대주주로 되어 있다는데, 그게 정말일까요?”

“글쎄요. 그건 차근차근 알아봐야겠죠? 아무튼 간에 영국에 당신의 친척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네요.”

“친척이라.”

그는 늦은 밤이지만 오셔필드의 앤드류에게 골드인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최 씨 일가가 그 회사의 대주주인 것은 확실하지만 워낙 오래전에 출자가 된데다 투자를 특정할 만한 문서가 소실되어 사실상 연이 끊어진 것으로 압니다.”

“아니, 그럼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단 말인가요?”

“증거가 없으니까요.”

“으음, 그런 것이었군.”

“그래서 우리 가문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BIS의 일원이 되었을 당시에도 우리 가문을 압박하기 위해 여러 정책들을 상정한 것으로 압니다.”

다 좋은데 역사적 사료가 없어서 권리를 빼앗겼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다.

천우는 어차피 역사탐방을 하기로 한 김에 그 사실들을 한 번 파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는 남의 가문들을 배불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정작 자신의 가문에 대해선 약간 소홀한 감이 있었다.

‘조상님들을 뵐 때 면목이 있어야하겠지?’

그는 일대기의 내용을 복사한 후, 다른 저택으로 여행하기로 했다.

< 8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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