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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
2011년 봄 1월.
대한민국 정계는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관련 정치인들에게서 국회의원직함을 일거에 회수하는 이른 바 ‘1. 16 피바람’사건이 터졌다.
1월 16일에 대령은 탄핵을 당하는 대신 스스로 하야하였고 관련 국회의원들 역시 같은 수순을 밟았다.
다만, 여야의 유력인사가 나란히 손을 잡고 같이 하야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본다고 딱히 말하기가 힘들었다.
앞으로 온누리당이나 국민의당에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나올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손해를 논하는 것보다는 정치생명을 논해야 할 것이었다.
결국 양당은 해산되었고, 새로운 정당이 수립되는 것을 국민들이 기다려주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시작된 보궐선거에서는 국민들의 독차지하는 거대정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국민통합당이었다.
이른 바 국통당이라 불리는 이 정당은 새로운 정치인 정도환을 앞세워 부정타파, 북괴유착 타도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국통당이 망해버린 양당을 쪼개버린 트리거가 된 만큼 북한을 역이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허나 그가 북한을 이용했다고 해서 그 정치세력이 쪼그라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좌파정권 천하가 되어 빨갱이들을 몰고 오느니 차라리 나라를 뒤엎고 만다는 생각들을 심어주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보궐선거에서는 국통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또한, 그와 함께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도환이 무려 70%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앞으로 국통당을 이길 수 있는 정당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국통당은 대통령이 선출되자마자 곧바로 경제협력기구 구축에 들어갔다.
남미의 경제협력기구, 이른 바 라스타가 설립된 것이었다.
라스타는 라틴아메리카 경제협력기구라는 정식명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줄여서 라스타라고 불렀다.
이들은 한국이 추진하는 기술력 원조와 함께 한중일 공동으로 투자되는 민간자본을 받아 공장을 세우고 서로 자원을 공유한다는 것이 기본 이념이었다.
이미 남미에는 유전을 보유한 나라가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에 원유관련 사업을 시작으로 지하광물과 농, 축산업을 집중공략하기로 했다.
특히나 라스타에서 부각된 것은 1차 산업이었다.
지금까지 1차 산업은 그저 2차 산업과 3차 산업에 밀려 4차 산업이 도래한 지금 이 시대에는 사실상 도태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허나 라스타 연합은 그 생각을 완벽하게 뒤집어버렸다.
지금까지는 대량생산을 지향하는 맹목적인 생산성 향상에 집중했었다면, 이번 연합의 구축으로 양보다는 질을 높이는 연구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었다.
예로부터 프랑스는 유럽의 식량 및 식자재를 책임지는 나라였다.
이들보다 싼 가격이 이들보다 더 좋은 품질의 식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프랑스를 대체할 대안이 없기에 그들은 1차 산업으로도 충분히 세계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라스타 연합은 이 풍토를 그대로 라틴아메리카로 가지고 오기로 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들여온 자본이 라틴아메리카에 녹아들면서 농공연구단지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지금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품종의 과일들과 특산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또한, 황량한 사막에서도 밀림을 만들 수 있는 품종의 나무를 생산한다는 것이 두 번째 목표였다.
사프타가 철저한 공업위주의 정책을 펼친다면 라스타는 자연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발전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이들은 환경오염과는 다소 거리가 먼, 철저히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산업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남극을 연구하는데 최대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고 그곳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선언했다.
보통 남극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라틴아메리카를 가장 많이 선택하는 만큼 남극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세력을 일거에 묵살시키겠다는 뜻이었다.
라스타 연합은 남극으로 가는 거점을 발달시키는 대신 그 주변 해역에 들어오는 선박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열과 까다로운 통관절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주장하고 있는 남극영유권을 한방에 묵살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남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라스타의 영해를 반드시 거쳐야하는데, 만약 영유권을 주장하면 탐사선을 통과시키기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EU는 반발하였다.
허나 EU가 반발하는 대신 미국에서 이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들은 국방산업협회의 지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2월 11일, 천우의 소개로 내려온 록키드마틴 사의 부회장 일리샤 록키드는 라스타 연합의 수장들과 미팅을 가졌다.
록키드 라스타는 혼자서 이곳에 내려왔지만 그녀의 등 뒤에는 미국의 막강 방산재벌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또한, 그들을 아우르는 수장인 천우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녀는 라틴아메리카에게 무기와 전투기 등, 다량의 전략물자를 판매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이곳을 지켜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현재 미국의 국방부에서 이곳으로 함대를 파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오오! 그렇게 된다면 제 아무리 EU라고 해도 우리의 영해를 마음대로 돌파할 수는 없겠군요!”
“물론입니다. 다만, 약속한 만큼의 무기는 반드시 구매를 해주셔야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주 라스타 군이 주둔하는 대신 그 방위비를 분담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방위비 부담이라.”
“미국이 직접 나서는 대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들이 남극으로 가는 길목을 이렇게까지 차단하려는 것은 자원싸움에서 미래지향적인 위치를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아무리 영국이 남극에 깃발을 꼽는다고 설치지만 그것이 20년 후에도 통할 리가 없었다.
아마도 그때는 이곳에 깃발을 꼽는 사람이 임자일 것이고 그 앞 선에 라스타가 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계획의 핵심에는 바로 미국이 있었다.
라스타는 그 계획에서 부담이 되는 방위비 분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가 미군을 끌어오는 대신에 한 가지 약속을 하겠습니다. 앞으로 남극을 개발하게 된다면 그에 대한 지분을 당신들에게 준다고 말입니다.”
“지분이라?”
“우리가 남극에 깃발을 꼽은 후에 개발하고 자원을 퍼내는 비용을 감당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비난까지 감수하는 겁니다.”
남극의 개발은 생각보다 민감한 문제였다.
지구상 거의 유일한 천연의 보고였고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 채 몇 퍼센트 진행되지도 않아서 저 깊은 지하에는 도대체 어떤 광물이 잠자고 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남극의 지하에는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지하광물이 잠자고 있을 것이라는 게 지질학자들의 예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법에 명시되지도 않은 남극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라스타는 그 경쟁에서 자신들이 남극에 가장 가깝다는 점을 이용하여 먼저 깃발을 꼽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계획이 자칫 허황되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꽤 많은 대기업이 이곳에 배팅을 한 상태였다.
허나 그 모든 계획의 중심은 바로 미국, 그들이 없다면 이 계획은 애초에 시작도 못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일리샤 록키드는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신 방위비분담은 비율을 낮추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당신들의 얘기를 듣는 대신 방위비 분담비율을 대폭 인하하는 것으로 하지요.”
“좋습니다. 그리 하시지요.”
“그리고 또 하나 제안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건이 아니고 미국이 라스타에게 제안을 한다는 것이었다.
라스타의 일원들은 도대체 미국이 또 무슨 소리를 할까 싶어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라스타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범위를 확장시킨다고요?”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을 엮는 거죠.”
모임에 나온 각 나라의 수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은 나프타가 있잖습니까?”
“물론, 그렇긴 하죠. 하지만 북쪽과 남쪽의 사정은 완벽하게 다릅니다.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추구하는 이윤의 구조도 모두 다르죠. 그렇기 때문에 이해관계 충돌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우는 미국을 라스타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미국 정부에 로비를 하였고 그 로비가 통하여 얘기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이었다.
헌데 이 판에 미국이 끼어들면 얘기가 많이 변하게 될 것이었다.
지금도 미국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가 많은데, 이 판에 미국까지 끌어들인다면 이들이 탈 미국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군사와 경제는 엄연히 다른 분야였고 라스타는 미군을 끌어들이는 대신 돈을 상납하기로 하고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경제 분야에의 협력은 좀···.”
“대신 환율변동에 대한 제약을 대폭 인하해드리겠습니다.”
“환율변동을 제한하겠다는 뜻입니까?”
“고정환율제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이상 달러화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입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사업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 미국의 금리기조였다.
환율의 변동에 따라서 수출입에서 거두어들이는 수익이 천차만별인데다가 미국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으니, 그들이 입김만 불어도 집안이 홀라당 뒤집어지는 건 당연한 소리였다.
그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이라는 거대집단에게서 도망쳐야만 했다.
‘이게 바로 입지적인 단점이라는 것이구나.’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변에 위협이 될 만한 강대국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당장 한국만 봐도 그걸 잘 알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심지어는 그들과 관련되어 넘어온 영국과 미국이 있었기에 1900년대의 대한제국은 그토록 수난을 당했던 것이었다.
강대국과의 대립은 때론 군사적인 성장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힘 싸움에서 밀리면 그대로 수탈의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었다.
허나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국에게서 독립한 이후,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무럭무럭 성장하여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을 앞질러버렸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남미에도 독립 국가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그들은 한 나라의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들은 하필이면 북쪽에 미국이라는 엄청난 강대국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매번 엄청난 피해를 받고 그 피해가 누적되어 퇴보하는 상황까지 겪는 것이었다.
천우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사프타는 가장 완벽한 입지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간섭을 받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구나.’
그는 자신이 라틴아메리카 연합의 비공식 주축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라스타의 일원들이 원하는 바로 미군을 끌고 왔었다.
허나 이제는 그들로 인한 간섭을 물리칠 차례가 된 것이었다.
그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기로 했다.
< 87.(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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