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71화 (171/202)

< 86. >

86.

미국의 정권이 교체된 지 1년이 지났다.

이제는 2007년의 악몽에서 서서히 깨어나듯 경제규모가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허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극심한 재정적자였다.

일전에 미국은 경제위기와 더불어 무리한 병력증강, 흑해 함대파견 등의 전쟁행위로 엄청난 재정 고를 겪고 있었다.

워낙 벌어들이는 세수원이 많아서 큰 걱정은 하지 않고 2008년을 지냈지만, 이제는 그 후폭풍이 점점 밀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아야했기에 미국정부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공제의 축소를 검토하는 한 편 원정군의 병력감축을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워싱턴DC의 공무원이 15%이상 줄어들 것이고 관공서의 규모는 지금보다 대략 10%정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사회간접자본 역시 대폭 축소되어 사실상의 복지제도의 변화가 확실시 될 것이었다.

정부의 몸집 줄이기는 상, 하원 모두가 지지하는 바였다.

2007년도를 기점으로 미국의 정부는 쓸데없이 몸집이 커진 데다 필요이상으로 재정을 지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축소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황당하게도 이것을 거부하는 유일한 인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대통령 본인이었다.

그는 특히나 복지정책의 축소는 민생을 고달프게 하는 악질적인 제도라면서 근본적인 문제해결방안을 가지고 오라고 내각을 압박하였다.

결국 미국은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셈이었다.

그런 가운데 2010년 8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 41개의 보험사에서 관리하던 자산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FBI는 금융범죄전담팀을 꾸려 조사에 나섰고, 그 사건의 정황이 밝혀졌을 때엔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부촌이 위치한 라스베이거스와 보스턴, 마이애미 등 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은 단 한 명에 의해 생겨났다.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7개의 가명을 쓰며 미국 전역의 부촌을 돌아다니며 자신은 월가의 뛰어난 펀드매니저라고 속였다.

그녀는 자신의 차명을 이용하여 41개 보험사의 자산관리인으로 취직하였고, 그곳에서 대량의 자금을 유출시켜 기독교 종교단체 복지재단인 ‘홀리랜드’를 설립하여 후원기금을 대량으로 유입시켰다.

이미 종교단체를 비롯한 복지재단으로 흘러들어가는 후원금에도 국세청의 감시가 따라붙는 것은 상당히 오래된 일이었지만, 그녀는 법망의 구멍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감시망을 속여 냈다.

우선 후원금의 규모를 조각조각 잘라낸 후, 보험사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통하여 각기 다른 수 만 개의 명의로 입금을 감행한 것이었다.

국세청이 기부에 민감한 것은 과거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차명의 계좌로 돈을 빼돌리기 위해 기부단체를 자주 이용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상 기부금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면 국세청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 구멍을 이용하여 보험사 41개의 재산 60억 달러 이상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FBI지능범죄수사팀장 조이 멕켈린은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인을 추적하기 위해서 인터폴에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요청하였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지문도 없고, 범죄기록도 없고, 심지어 출생기록이나 사회보장 ID같은 것도 아예 없다니.”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겪어보는 황당한 사건이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용의자는 자신의 얼굴을 SNS에 자유롭게 남기며 유명 증권맨 행세를 했고 자신의 신상명세를 파악할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을 뿌리고 다녔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단서는 아예 찾을 수조차 없었다.

조이 멕켈린은 한 달 동안 범인에 대한 단서를 하나도 찾지 못한 채 상부에 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를 받은 FBI수사국은 유감을 표했다.

“···자네, 정말 좌천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캐서 나올 것도 없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콰앙!

수사국장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들은 FBI가 1999년에 당했던 범죄수법에 그대로 당해 당시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미 41개의 보험사 중에서 1/3은 망했고 그 절반은 극심한 소송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마틴 크랭켈 때와 다를 바가 없잖아! 아니, 그때는 손실금액이라도 적었지!”

1999년에 11개 보험사를 도산으로 몰고 간 마틴 프랭켈의 금융사기 역시 지금 이 사건과 맥락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허나 FBI는 그런 사건에 다시 한 번 휘둘린 것이고, 이것은 FBI는 물론이고 미국의 금융당국의 관리 허술 이라는 오명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지가 다분했다.

당시의 피해액 규모는 30억 달러, 지금은 그 두 배가 넘는 금액이 털렸다.

이정도면 금융당국을 아예 통째로 갈아엎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어쩌면 그 여파는 FBI개혁으로 번질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

“자금을 스위스로 빼돌려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습니다.”

“그놈의 스위스로만 들어가면 다 끝이야?! 아무리 스위스라곤 해도 추적할 방법은 있을 거 아니야!”

스위스가 유럽의 금융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조세피난처가 된 것은 BIS의 설립 때문이었다.

BIS는 일본과 같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에 대한 전쟁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국제금융기구로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관이 되었다.

일전에 일본의 버블경제붕괴를 만들어주었던 BIS비율 역시 이곳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수뇌부와 내부사정 등은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져 있으며 그들이 상주하게 된 스위스 퀼른은 자금의 성역처럼 변모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스위스의 엄청난 블로킹을 뚫고 자금추적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최근 심각한 금융범죄에 대해선 일부 자료를 공개하기로 하지만 클라이언트에 대한 정보는 일절 반출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이 멕켈린은 CIA와 접촉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곤 그래도 자국의 정보력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전 세계 어느 집단보다도 정보력이 뛰어난 미국의 중앙정보국이라면 어느 하나 부스러기 정도는 떨어질 수 있다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CIA의 정보본부장 일레이나 슈레이머는 조이 멕켈린의 고교동창이자 앙숙이었다.

허나 대학을 거치면서 서로 약간의 교류를 갖게 되었고, 지금은 암암리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협력자 관계가 되었다.

일레이나는 조이가 가지고 온 사건파일을 읽어보곤 중간에 그것을 탁 내려놓았다.

“···이런 자료로 무슨 수사를 하겠다는 거야? 범죄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잖아?”

“내 말이 그 말이잖아. 제기랄, 윗대가리들은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사람을 잡아 족치기나 하고!”

“그러게 진즉에 CIA로 자리를 옮기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조이는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했었고 경제지식에 상당히 능통했기 때문에 지능형 경제사범을 잡는데 특화가 되어 있었다.

최근 CIA는 그런 그녀의 능력에 주목하고 있었고 엘레이나는 국장에게 추천서를 써서 그녀를 CIA로 데리고 오려 노력했었다.

FBI에서 그녀에 대한 예의를 잘 차리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허나 그 속사정은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CIA의 중추세력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내 전공은 렉스테리아와 같은 국제폭력조직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라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지만 아직도 문은 활짝 열려있단다.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내 자리라도 내어줄 수 있어.”

“됐거든?”

CIA는 렉스테리아와 연계한 범죄들이 속출하고 있었음으로 그들과 관련된 것으로 예상되는 조직들을 잡아들이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는 CIA의 숙원사업이 되어버린 국제사범 청소는 해결하는 사람이 무조건 차기국장이 되는 엄청난 대업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런 일종의 도구로 조이를 끌어오려던 일레이나는 번번이 작업에 실패해서 헛물만 들이켜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레이나는 조이에게 파일을 되돌려주며 말했다.

“정보는 못 주겠다.”

“···정말 이럴 거야?”

“CIA의 식구가 된다면 몰라도.”

“치사하게 정말!”

“다만 힌트는 좀 줄 수 있지.”

“힌트?”

“혹시 너, 슈퍼보이라고 들어봤어?”

슈퍼보이, 8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20대의 나이에 굴지의 HC그룹을 일으킨 희대의 천재였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초인이라고까지 말하곤 했다.

“그를 모르면 간첩이게? 아니, 간첩도 슈퍼보이는 알 거야.”

“그래, 요즘 러시아에서도 아주 핫하지. 그 사람이 지금 네가 당면한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 있어.”

“어어···?!”

“MI6에서 우리에게 공조를 요청하면서 슈퍼보이를 좀 지원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연이 끊어졌던 우리 CIA와 슈퍼보이의 공조가 다시 시작된 셈이지.”

“그럼 슈퍼보이가 다시 CIA의 고문으로 들어오는 거야?”

“그건 장차 그의 심드렁해진 마음이 돌아서야 생각해 볼 문제인 거고. 아무튼 간에 지금은 약간의 공조가 진행 중이니 접촉해보면 뭔가 답을 줄 거야.”

그녀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CIA에서 이번에는 FBI로 대상이 변경되었다.

천우는 다짜고짜 짐을 싸들고 자신을 찾아온 조이 멕켈린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공식 공조요청도 없이 단독으로 저를 찾아온 거라고요?”

“···사정이 좀 급하게 되었어요.”

FBI를 끌어들인다면 수사가 조금 더 수월하긴 하겠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걸 그는 몇 번이고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들의 자금줄만 조사하는 것이지 그 머리통을 후려치기 위한 본격수사는 아니었기에 경찰은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정식으로 공조요청을 하시지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요즘 뉴스도 안 보세요? 잘못하면 FBI가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립 될 운명이란 말이에요.”

“때론 쇄신을 위한 분해도 필요한 법이죠.”

조이 멕켈린은 40대의 유능한 여성이었지만 그동안 요령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아온 외골수이기도 했다.

그녀는 천우의 책상에 ‘大’자로 뻗어버렸다.

“몰라요! 나를 돌돌 말아서 택배로 보내버리던지, 쓰레기통에 버리던지, 알아서 하세요!”

“허참, 이상한 사람이시네.”

“도움만 주신다면 제가 알아서 수사를 다 할게요! 저, 이래 뵈도 유명 프로파일러에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다고요.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마샤는 그녀의 인물도감을 천우에게 출력해주었다.

-인물도감 평점 5.0의 상당히 드문 인물입니다. 다만, 50세의 나이로 절명한다는 것이 약간 아쉬울 뿐이네요.

‘그만큼 능력은 출중하다는 소리지?’

-인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근성도 있고요.

다른 건 몰라도 마샤의 추천이라면 사공을 한 명 더 붙일 필요도 있었다.

“좋아요. 대신, 사건해결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합니다. 아셨죠?”

“물론이죠!”

이로서 천우는 유능한 수사관 한 명을 얻은 셈이었다.

< 8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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