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68화 (168/202)

< 84.(2) >

국민통합당은 스페인이 제 2의 황금시대를 맞이한 것을 두고 자신들 역시 벤치마케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기술력과 풍부한 자금, 그리고 HC라는 엄청난 세력만 있다면 백전불패를 확신한 것이었다.

정도환의 생각은 기본적으로는 옳았다.

남미와의 경제협력으로 한국으로 지하자원 및 남미특산물을 안정적으로 수급함으로서 경제를 크게 성장시키고 개도국 채권 특수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제 2의 도약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미국의 경제위기에서 받았던 타격을 고스란히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었다.

허나 그들이 한 가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우의 성향이었다.

천우는 기본적으로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것을 좋아한다.

만약 자신이 한 수 깔고 들어가는 협상이라면 절대 테이블에 앉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자신이 하나라도 더 가지고 가야 이득인 협상에서 뒤처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천우는 자신이 우위에 있을 수 없는 협상에는 응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의 힘이 약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때엔 협상을 미래를 위한 포석으로 깔아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헌데 지금의 만남은 천우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가 아쉬운 상황도 아니었다.

엄연히 따진다면 지금의 이 정책은 굳이 국민통합당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천우로선 굳이 저들과 손을 잡는 리스크를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소리였다.

“청사진은 아주 잘 들었습니다.”

“어떠십니까? 이정도면 저도 머리 좀 굴렸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정도환은 나름대로 천우에게 기획안을 만들어 건네주었다.

그의 기획안의 내용은 이러했다.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등에서 나오는 석유와 천연자원은 수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칠레의 구리사업이나 베네수엘라의 천연자원 수출은 그 수요의 변동과 달러화의 등락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 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라의 경제도 휘청휘청 거렸다.

이는 경제의 불안뿐만 아니라 나라를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지름길이 되곤 한다.

정도환은 이를 남미의 강력한 경제협력기구를 만들어 내부순환구조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를 테면 지금의 사프타 연합처럼 말이다.

기획안은 천우로서도 그리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막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제안은 또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허나 천우는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얻는 것은요?”

“연합에서의 지위, 그리고 막대한 자본 아니겠습니까?”

“으음, 남미보다는 아프리카가 저에겐 더 좋은 투자처라고 생각됩니다만. 투자한 자본만큼의 이득을 과연 거둘 수 있을까 싶거든요.”

“···그런가요?”

“게다가 저는 대한민국의 정치반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제가 뭘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세계적인 투자기업인 JP모건은 그 수장 일가를 언젠가부터 베일로 감싸기 시작했다.

지금의 JP모건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JP모건은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아왔다.

기업이 이윤을 챙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마찰은 자칫 주변의 원성을 살 수가 있다.

헌데 그것이 경제나 국가의 정세와 관련이 있다면 국민들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회장이 총격위협에 놓이거나 본사로 폭탄이 날아드는 등의 테러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십상이었다.

JP모건은 언젠가부터 경영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버리고 그들을 베일에 숨겨버렸다.

그 일환으로 스위스의 국제결제은행(BIS)의 설립 주도 하고 그 주축이 되었다는 설도 있었다.

BIS는 철저히 베일에 싸인 조직으로서 세계 경제변화에 큰 주축으로 거론되는 은행이었다.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에 그 수뇌부인 JP모건이 어떤 흑막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국민들과의 이해관계에 너무 깊게 얽히면 HC와 같은 기업은 돌팔매질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비단 국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고 기업이나 특정 단체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천우는 자신이 표적이 된다면 가문 전체가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체스터 카렐 센트럴이 지금까지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수뇌부가 저처럼 일간지 전면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HC도 그럴 때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안전보장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면 저희들이···.”

“국가가 보장해줄 수 있는 것에도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설마하니 국정원을 신뢰하지 못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이건 신뢰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설마하니 저희 HC가 한국에서의 위협을 느끼고 외국으로 뜨길 바라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손을 잡기를 거절해도 이해하시겠군요?”

“아예 저희와 손잡을 생각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사프타에서도 천우는 사프타 개발은행의 설립 후, 그 주축으로 빠져 전면에 나서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다.

이미 미국과 영국에서도 CDS협회 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천우는 이제 슬슬 뒤로 빠지고 있었다.

그는 그런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 한국과 손을 놓을 생각은 절대로 아니었다.

천우는 그에게 전면에 나서는 대신 자신은 흑막으로 군림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신이 정권을 잡은 후, 남미와의 협상을 통해서 본격적인 블록을 완성한다면 HC가 그 주축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HC에게 슈퍼보이라는 사람의 후광이 필요한 시점은 이미 지났다.

지금부터는 단단해진 기반을 천우가 어떻게 조종하여 이윤을 지속시키느냐, 그것에 따라 앞으로 HC의 미래가 달린 것이었다.

그는 이번 협상을 통해 그 미래를 확고히 다지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그림자이자 핵심, 당신은 얼굴이자 몸통이 되는 것이죠.”

“으음···.”

정도환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한국의 경제는 여러 가지 압박이 많다.

위로는 중국, 바다 건너에는 미국이 압박하고 있었고 일본과의 관계 역시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이 현재의 소득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앞으로 한국이 조금 더 오래도록 지금의 경제규모를 유지하고 발전시키자면 해외거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동남아시아나 유럽과의 교역에서 큰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최근에는 사프타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면서 향후 20년은 저성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했다.

인간은 언제나 차선책을 마련해둬야 하는 법인데,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카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었다.

‘나에게 거대한 한 방을 제공해주는 대신에 자신은 두뇌 노릇만 하고 돈을 챙기겠다···?’

어찌 보면 상당히 파렴치한 생각과 행동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천우와 붙어서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은 그를 두뇌로 사용하였고 몸통이 큰 성과를 누려왔었다.

큰 욕심만 무리지 않는다면 천우와 함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도환은 천우를 두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으신 분이네요.”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요.”

이로서 천우는 대한민국과 남미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의 흑막이 될 준비를 마치게 된 셈이었다.

***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사프타로 진출하면서 대한민국과 스페인의 건설업체들도 대거 하청수주를 받게 되었다.

또한, 한국의 행운전자가 사프타의 태양광패널 수출업체에 낙점되면서 한국의 주가가 오랜만에 호황을 맞았다.

미국의 경제타격이 최근까지 이어져 오던 가운데 호재가 터지면서 한국은 큰 외화벌이 수단을 취득하게 된 것이었다.

건설자재는 싼 값에 사프타에서 조달받을 수 있었고 주변국가에서 인력을 조달하기도 쉬워 공사에 난항은 없었다.

허나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풍토병이었다.

한수원의 기술자들이 풍토병에 걸려 고생하여 제대로 공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신설된 사프타 내 질병통제센터(SDC)는 한수원의 연구원들에게 질병방어에 특화된 숙소를 제공하며 이제 막 임상실험이 끝난 고가의 예방주사와 치료약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하여 한인 타운이 조성되었고 그 주변의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SDC의 엄청난 지원으로 인하여 한인 타운에는 각종 안전시설과 의료시설, 편의시설이 위치하게 되면서 상권 역시 크게 발달한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해외의 부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인 타운이 새로운 부촌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인 타운 근처의 땅값이 마구 오르기 시작했고, 주택가격은 불과 2개월 만에 3배 이상 오르는 기현상을 빗어냈다.

사실, 사프타에는 부동산거품을 잡을 만한 특별한 법이 재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기과열이 되어도 그것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

태양광패널의 보급으로 민생은 훨씬 더 나아졌는데 부동산거품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채의 증가였다.

일전에 스페인이 그랬듯, 부동산가격이 워낙 크게 오르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원전시설 구축을 위한 한인 타운 근처의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땅 위에 아파트를 지어서 팔면 큰돈을 만질 수 있었는데, 아파트는 공동설비를 통한 안정적인 전기공급과 편의시설 확충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생활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투기를 위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2010년 정기 사프타 회의에서 부동산투기문제가 거론되었다.

2월 초, 사프타 정기회의에 부동산투기가 정식안건으로 상정되었다.

헌데 규제정책을 상정하는데 진통이 있었다.

각 국가의 입장이 전부 다 달랐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프타에 대한 투기를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프타 개발은행이 거의 모든 경제행위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구미의 자본들이 우회하여 부동산을 건드림에 따라서 방어력이 약해졌던 것이다.

아마주 아브라함은 중앙회의에서 총 31개의 부동산규제정책을 받아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정책전문가들은 사프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였지만 부동산정책에 대해선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큰일이로군.”

“의장님, 저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주십시오!”

“끄응.”

회원국 수장들은 자국에 이득이 되는 정책을 상정하자고 난리였다.

그러나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누군가를 기다릴 뿐이었다.

자칫 잘못 행동했다간 다 같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프타 개발은행은 이제 막 사프화를 보급할 예정이었는데, 그에 앞서 개발은행이 환율과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연합 법을 개정한 상태였다.

다음 달이면 개발은행의 명칭도 사프타 중앙은행(SCB)으로 바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민간의 부채가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된다면 곤란했다.

가만히 눈을 감은 아브라함.

바로 그때, 이제 막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돌아온 천우가 회의에 참여하였다.

“정책을 어떻게 하자고요?”

“드디어 오셨군!”

< 8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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