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67화 (167/202)

< 84. >

84.

2009년 겨울, 정말로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제 1 야당의 원내대표가 '빨갱이'설에 휩싸이게 된 것이었다.

세상천지에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현재 남북은 휴전 중인 상태로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교역이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사실상 완벽한 분단, 심지어 저 멀리 아프리카의 국가들보다도 더 수교범위가 적은 집단이 바로 북한이었다.

심지어 북한은 UN과 미국, 서방국가들에게 국가로서 인정을 받지도 못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원유를 퍼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국제 법을 위반하는 일이었다.

또한 국가를 배반하는 일이며 한 순간에 간첩행위로 무기징역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행위였다.

국민의당 당대표 연인재는 한사코 그런 적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만약 연인재의 범법행위가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그들 집안은 꼼짝없이 천하의 역적가문으로 몰리게 될 것이었다.

제 1 야당이었던 국민의당은 사실상 와해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며 당에 속한 모든 의원들이 해당 범죄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만에 하나 소속 의원들 중에서 북한과 약간의 커넥션만 있다고 판단되어도 그들은 즉시 국정원으로 넘어갈 것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살판이 난 것은 여당 온누리당이었다.

최근 온누리당으로 당명을 한 번 더 바꾼 여당은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이미지 쇄신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 입장표명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국민의당이 이렇게 도움을 주니, 온누리당으로선 그야말로 춤을 출 판이었다.

대통령 박이명을 포함한 그 측근들은 전세확장에 주력하였다.

그들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이 아니면 4대강 타격을 회복할 찬스가 영영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야의 첨예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던 가운데 HC로 너무나도 뜻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정도환이었다.

국민통합당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던 천우로서는 상당히 의외였다.

허나 그는 HC에게 자신은 반드시 대통령이 될 것이니 미리 인사를 한다는 식으로 나왔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아, 예. 뭐, 그건 좋습니다만."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나 싶은 것이겠죠?"

천우는 굳이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뭐, 그런 셈이긴 하죠."

4대강 타격을 입었어도 여전히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힘은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의심이 당연하다는 듯, 정도환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래요.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합니다."

"다른 건 잘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판세가 뒤집어 질 이유는 딱히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도대체 이 남자가 무슨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천우로선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도환은 천우에게 아예 모든 것을 오픈하고 나섰다.

"제가 지금의 대통령을 한 방에 묻어버릴 겁니다."

"···묻어버린다고요?"

"현직 대통령의 비자금 스캔들과 현 여당의 신 총풍사건을 한 방에 터뜨려 여론을 탄핵으로 몰고 갈 생각입니다."

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이명의 비자금이야 뒤를 캐면 충분히 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미래에서 온 천우는 그가 어떻게 돈을 꼬불쳤는지 아주 상세하게 알고 있으니 그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허나 문제는 새로운 총풍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총풍사건은 마무리 된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요. 흑금성 사건을 묻어버리면서 이미 무마가 되어버렸죠. 하지만 그게 묻는다고 묻어지겠습니까?"

"정보가 있으신 모양이지요?"

정도환은 빙그레 웃었다.

"있죠. 그것도 아주 확실한 정보 말입니다."

"확실한 정보라."

"아마 이 정보가 공개된다면 북쪽에서도 꽤나 당황하게 될 겁니다. 자신들이 도대체 얼마를 어떻게 받았는지 이리도 상세하게 광고될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자신감이었다.

마샤의 AI는 만장일치로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북한의 고위급 관계자가 이들과 함께 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에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가능할 리가 있죠. 만약 저쪽에서 망명한 고위관계자를 데리고 있다면 아예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잖아요?

'으음.'

이 세상에 0%라는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우는 그 확률에 배팅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뭐, 그래요. 좋습니다. 그 정보가 뭔데 그러십니까?"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말이죠."

결국엔 자신과 손을 잡자는 얘기였다.

정치에도 당연히 세력이 필요한 법이고 HC는 아시아와 유럽, 특히나 싱가포르와 같은 금융계 거물들에게 지대한 영항을 끼치는 사람이다.

"제게 힘을 실어주신다면 당신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보장해드리지요."

"세력을 구축해 달라, 그 말씀이시군요?"

힘이 없는 대통령은 곧 거대야당의 입김에 휘둘리다가 임기를 마친다는 걸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돈이 곧 권력인 시대, 아니 인간은 애초에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많이 가진 이들이 없는 이들을 압박하고 굴복시켜 왔었다.

그 힘의 논리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기 때문에 정도환은 그렇게 권력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천우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국민의당과 함께 대한민국 정계에 알박기를 하시겠다? 허참, 이 양반 웃기는 사람일세.'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완벽하게 뒤바뀔 것이 분명했다.

과연 천우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는 셈이었다.

천우는 일단 답을 미뤄두기로 했다.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죠."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시간끌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요."

정두한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천우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잘 아는 천우로선 그에게 휘둘릴 이유가 정말 손톱만큼도 없었기에 뭘 하든 아주 당당하게 나왔다.

"그럼 멀리 안 나갑니다."

"···성격 참 급하시네요."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시간끌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 역시 보통은 아니시네요."

어차피 저쪽에서도 천우가 그냥은 넘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천우에게 아예 비전을 제시해주기로 했다.

"앞으로 우리 국민의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카드가 있습니다. 그걸 보여드린다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요?"

"장기집권이요?"

"같이 남미를 노립시다."

"남미요?"

***

대한민국 외교부로 사프타의 새로운 의장 아마주 아브라함이 공식 방문일정을 가졌다.

아마주 아브라함은 나이지리아 출신의 정치인으로 원래는 사프타 개발은행의 통화정책국장으로 일하다가 각 국가의 대표들이 공천하여 단일후보로 의장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는 나이지리아의 JP모건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그만큼 공격적이고도 신뢰도가 높은 금융정책을 펼쳐 나라를 위기에서 몇 번이나 구해낸 이력이 있었다.

또한, 최근 사프타 개발은행이 주축이 되어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화폐인 '사프화'를 통용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워 2010년이면 사프화가 발행되어 공급될 것이었다.

기타 여러 가지 공로를 인정받아 아마주 아브라함은 2대 사프타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주 아브라함은 한국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려 찾아왔다.

그들은 아프리카 전역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제휴받기 위해서 한국을 찾은 것이었다.

최근 아프리카는 사프타의 영향으로 상당히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만큼 막대한 에너지 소요를 견디지 못하고 매번 정전사태를 빗어내고 있었다.

2010년대를 눈앞에 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에어컨 하나를 돌리는 것이 버거워 여전히 더위에 시달리는 가구들이 많았다.

또한, 지하수를 파놓고도 펌프를 가동시킬 전지가 없어서 사실상 물을 끌어다 쓰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국가적으로는 자원외교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었지만 그 부가 전부 균일하게 돌아갈 수는 없는 바, 민생이 고달픈 상황에 놓인 셈이었다.

아마주 아브라함은 한국에서 가정 및 관공서 전용 태양광패널을 구매하고 공업과 농업 등에 쓰일 전기를 원자력으로 조달하고자 하였다.

그들이 건립하기로 마음먹은 원전과 태양광패널의 총 공급물량은 한화로 대략 21조원 남짓으로 이는 불과 1차 물량에 불과하였다.

앞으로 아마주 아브라함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남부에 걸쳐 있는 대규모 공장단지에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원전을 짓겠다고 밝혔다.

만약 그 물량까지 합친다면 대략 60조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대공사가 될 것이었다.

다만, 아마주 아브라함은 한국정부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공사비용을 그대로 다 지불하는 대신에 사프타와 국방기술 협약을 맺자는 것이었다.

지식경제부 장관 이용진은 국방기술 협약을 맺는 것은 상당히 민감한 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아무리 원전건설에서 가지고 오는 수익이 많다고는 하지만 국방기술은 좀 다른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당신들 방위산업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앞으로 시행되는 한국형 전투기 생산 및 전차계량에 줄을 좀 대달라는 것뿐입니다."

"지상군과 공군력을 높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으로 우리는 사프타 연합군을 만들 생각이니까요."

순간, 이용진이 흠칫 놀라서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허나 아마주 아브라함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그럼 언제까지 우리가 극단주의 테러분자들에게 테러당할 위험이나 안고 살아야겠습니까? 게다가 아직도 내전이 종식되지 않은 국가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 사프타는 그 내전을 종식시키고 바야흐로 민주주의 이념으로 아프리카 전체에 평화를 가지고 올 생각입니다."

이용진은 순간,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페인 왕가는 사프타의 화폐발행을 주도하였고 나이지리아의 노력으로 사실상 그것이 비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사프타 연합의 추진력으로 연합군까지 갖추게 된다면 저들은 완벽한 블록화를 구축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그 어떤 세력도 사프타를 건드릴 수 없게 된다는 소리였다.

"아, 아니, 그럼 스페인과 모로코 등의 영토분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곳을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지정하고 사프타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허어!"

"역사에 대한 입장 역시 사프타 조항에 따라서 국제 역사학회에서 인정하는 대로 수정하여 공식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분란이 일어날 일은 아마 없겠지요?"

이제 사프타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되어버렸다.

만약 저들의 이념이 공산주의였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이용진은 식은땀을 쏟아낼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이제야 좀 이해가 되었다.

'괜히 한국까지 온 것이 아니다. 이 사업이 추진되는 순간, 사방팔방에서 무기를 팔겠다고 줄을 서겠지. 우리는 그저 시작에 불과한 거야.'

이용진은 아마주 아브라함이 왜 나이지리아의 JP모건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완전한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진짜 장사꾼이었던 것이다.

< 8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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