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66화 (166/202)

< 83.(2) >

미국 하버드대학병원 안.

천우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간부전과 신부전, 당뇨도 있으시고요. 사실, 이정도로 지금까지 사신 것만 해도 꽤나 장수하신 겁니다."

장기의 부전은 특정 암에 걸렸을 때보다도 더 예우가 좋지 않을 수가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장기 두 개가 연달아 망가졌을 경우엔 사실 이식으로도 살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장기이식은 생각보다 오래된 수술요법이었다.

1960년에 간헐적으로 시작되었다가 64년도부터는 그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공식적으로 미국에서 최초로 장기이식을 집도한 곳은 하버드 대학병원이며 이식된 장기는 신장이었다.

대한민국에서도 67년도부터 장기이식을 실시하였으며 그 기술이 점점 축적되어 이제는 심장이식에서도 큰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만큼 장기이식은 보편적인 수술법이 되었지만 새로운 장기를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특히나 건강한 도너를 찾는다고 해도 합법적인 루트로 장기이식 대기 열을 세우자면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환자의 연령이었다.

이미 80세를 훌쩍 넘긴 오금자의 경우엔 사실상 장기이식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고령이라 수술을 집도한다고 해도 과연 수술을 이겨낼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하버드대학병원이 장기이식의 권위자라곤 해도 이런 모험적인 실험을 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면서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만들어드리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에,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네."

"아마 환자 본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꺼려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환자의 보호자인 최호명과 함께 주치의의 설명을 들은 천우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드디어 그의 두 번째 인생 멘토가 떠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서 오금자가 입원 중인 병실로 향했다.

그녀는 중환자실에서 투석에 이뇨제까지 투여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물론, 이는 체스터 카렐 센트럴 경영진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허나 천우는 그걸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할머니를 언제까지 경영일선에 세워둘 수는 없어요."

"할머니의 뜻이다. 경영진의 뜻이기 전에 대주주의 뜻이야. 우리가 어쩔 수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그래도 말년에 이렇게까지 고생하시는 건 제가 못 참겠어요."

천우는 오금자가 입원해 있던 병실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그 안에 있던 체스터 카렐 그룹의 임원들이 보였다.

오금자는 천우가 등장하자마자 깜짝 놀라 눈을 보름달처럼 떴다.

"아, 아가···!"

"할머니, 아프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천우는 송구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뚝 떨구고 말았다.

그녀는 천우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기업의 총수라는 것은 혼자만의 몸이 아니란다. 애초에 이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나는 각오하고 있었어.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된다고 해도 결코 이 자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회사에 남는다는 건 결국 집착일 뿐이잖아요. 증조할아버지도 그건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경영진은 언젠가 천우를 설득해야 할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잘못하면 따귀를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은 회장님께서 퇴진을 하실 수 없습니다."

"···뭐요?"

"우리는 다소 고령이셨던 회장님을 대주주로 추대하는 대신에 주주들에게 이사회 의장 및 대표이사 회장 직위를 유지하는 일종의 임기보장을 약속했습니다."

"임기보장···? 그딴 조항도 있어요?"

"주주들을 설득하자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젠장."

"그래서 앞으로 6개월 동안은 꼼짝없이 회장직을 유지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위반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살다보니 뭐 이런 황당한 경우도 다 있구나 싶었다.

오금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된 것이란다. 내 스스로 족쇄를 채운 꼴이지 뭐니."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의사의 말에 따르자면 앞으로 1년도 보장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아니, 일 년이 뭐야, 당장 한 달도 힘들다고 하잖아요."

천우가 분개하고 있는데 그룹 펀드운영이사 사장 이실로테 버드슨이 말했다.

"투석과 이뇨제만 있어도 앞으로 6개월은 문제없답니다."

"···지금 그게 내 앞에서 할 말입니까?"

"걱정을 하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먹을 꽉 말아 쥔 천우를 최호명이 말렸다.

"진정해라, 아들. 버드슨 사장도 그만 하시죠."

"저는 그저 사실을 말씀드린 건데···."

"아무리 그래도 손자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아이의 마음이 뭐가 되겠습니까?"

이실로테 버드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참, 손자라니요. 잊으셨습니까? 당신들은 체스터 카렐 센트럴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입니다. 그런 대들보가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그래도 사람이···."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뭣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앞으로 더 힘든 일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흔들린다면 가문을 유지할 수나 있겠습니까?"

순간, 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 어느 때건 간에 한 집단을 지배하는 가문은 스스로를 희생해야만 했다.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피지배계층과 그들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을 위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천우는 가까스로 진정이 되었다.

"···그래요, 내가 경솔했네요."

"저도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실로테 버드슨도 바른 말을 잘 하는 성격이라 사람이 좀 까칠해서 그렇지 아주 나쁜 인간성은 아니었다.

그런 그로 인해 천우는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되었다.

"제가 최대한 할머니를 도울게요."

"그래, 고맙구나. 아가."

"당장 제가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요?"

"일단은 우리 집안에 잡혀 있던 혼사를 치렀으면 한단다."

"혼사요···?"

"결혼으로 동맹을 굳건히 하지 않는다면 분명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꾀를 쓰는 사람들이 생길 거야. 네게 산재해 있는 일들이 많겠지만, 우선은 그 동맹을 굳건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지금 병실에는 없지만 전 씨 일가와 브루스도 이 말에 공감하긴 할 것이다.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가 최대한 빨리 결혼을 준비할게요."

"그래, 고맙구나. 괜히 이 할미가 네게 큰 짐을 짊어지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아니에요. 저는 할머니만 건강하실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오금자는 이번에는 약간 다른 부탁을 했다.

허나 그것을 내뱉는 그녀의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다···."

"시키실 일이 더 있으세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이 할미와 함께 네 할아버지 산소에 좀 같이 가자꾸나."

"산소요?"

천우는 적어도 일 년에 열 두 번은 가는 곳이 바로 할아버지의 산소였다.

그곳에 좋아하는 술도 좀 뿌리고 다달이 산소 앞에 놓는 프라모델도 교체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오금자는 그러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남편의 산소를 찾아가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죽을 때까지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 옆에 편안하게 누울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괜찮아졌어."

"하, 할머니···."

"사실 우리 부부도 금술은 꽤 좋은 편이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네 할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더구나. 그저 가슴에 묻고만 살다가 이제는 정말 그 영정사진을 볼 용기가 날 것 같아."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그는 최호명과 함께 오금자의 한국행을 준비했다.

경영진은 그녀가 출장으로 한 달 정도 한국으로 떠난다고 해두기로 했다.

일주일 후.

오금자는 최호명 부자와 함께 새로 만들어진 한양 최 씨의 선산으로 향했다.

사실상 한양 최 씨의 선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행상 도중에 사망하거나 전쟁 통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무덤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천우는 이번 기회에 조상들의 위패라도 모실 요량으로 선산을 확보하였는데, 그 규모가 무려 7만 평이나 되었다.

예전에 한양 최 씨 최초로 벼슬을 받았던 최벽목이 부임했던 충남 공주에 7만 평 부지의 산을 구매하였고 그곳에 한양 최 씨 일가 선산이라는 간판을 세웠다.

선산의 관리업체를 따로 두고 산 전체를 추모공원 형식으로 바꾸어 두었다.

지금은 한국과 영국의 사학자들을 동원하여 가문의 일대기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각 조상마다 일대기를 조성하여 따로 추모 관을 차려놓았다.

천우는 그중에서도 시조와 최충의의 추모 관을 가장 크게 만들었는데, 특히나 최충의의 추모 관에는 그가 살면서 세운 업적과 현보그룹의 모든 발자취가 남아 있었다.

오금자는 한양 최 씨 추모공원을 보곤 깜짝 놀랐다.

"어머나, 뭐 이렇게까지 성대한 공원을 지어놓았니?"

"앞으로 체스터 카렐 가문의 추모공원도 만들 계획이에요. 증조할아버지께서 한국분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오 씨 일가의 추모공원도 만들어야죠. 그 공원에서 앞으로 카렐 학파의 모임이 이뤄질 것이라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사실, 오금자도 천우가 조고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허나 최호명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이지만 누가 뭐래도 천우의 1번은 최충의였던 것이다.

그녀는 아들과 손자의 손을 잡고 최충의 추모 관으로 향했다.

추모 관 정면에는 최충의를 형상화 시킨 동상과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거대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말끔한 정장에 멋스러운 포마드 스타일의 백발까지.

누가보아도 멋이 넘치는 사진이었다.

"···네 할아버지가 60대 중반쯤에 찍은 프로필사진이구나. 무슨 광고에 쓴다고 찍었던 것 같은데, 워낙 마음에 들어 하셨었지."

"그래서 집에도 하나 걸려 있어요."

오금자는 그 앞을 한 5분쯤 서 있다가 추모관 안으로 들어갔다.

추모관 안에는 그의 발자취와 함께 젊은 시절의 오금자도 사진에 담겨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 그 양반과 나도 저렇게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도 할머니는 예뻐요."

"후후, 고맙구나. 하지만 짝을 잃고 나니 그 아름답다는 말도 이제는 소용이 없어졌어."

오금자도 절대로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제는 고령으로 형제들과 친구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드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나이에도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었다.

"인간은 홀로 설 수 없단다. 언젠가 네 할아버지가 말했지? 사람 인 자는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라 완전한 것이라고."

"으음, 분명 그렇게 말씀하긴 하셨죠. 그것도 아주 자주요."

"그 양반이 그리 말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야. 이 할미는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그걸 느낀단다."

오금자는 천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백년해로 하거라. 네 아내를 아껴주고."

"네, 그렇게 할게요."

한희연과 전미라는 추모공원에 오지 않았다.

오금자에게도 집안 어른으로서 며느리와 예비며느리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의 배려는 딱 맞아떨어졌다.

"두 부자가 앞으로 잘 해야 한다. 알겠니?"

"네, 어머니."

"알겠어요, 할머니."

두 부자는 느꼈다.

아마도 이것이 오금자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 83.(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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