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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차례대로 보험사가 생겨났다.
이들은 NIF생명으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 엄청난 양의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는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품들을 팔아대면서 사방팔방에서 돈을 빨아들이고 반대로 퍼주기도 했다.
그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었고 그 짧은 기간 안에 NIF생명은 규모가 10배 이상 성장하였다.
이렇게까지 고속성장을 한다는 것은 보험회사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들이 성공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NIF를 상징하는 나뭇잎요정이 유럽의 젊은 소녀들에게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나뭇잎요정은 미국의 유명 TV쇼에 처음으로 등장하였고 만화영화와 실사 히어로 무비에 카메오로 출현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나뭇잎요정은 깜찍한 외모와는 정반대로 걸걸한 목소리에 특유의 능글맞은 유머로 사람들을 홀렸다.
이른 바 반전매력이 미국전역을 휩쓴 것이었다.
나뭇잎요정은 자신의 고향인 유럽으로 돌아와 광고에 출현하였고 NIF생명의 전속모델로 출발했음을 밝慧?.
柳敾? 등장에 유럽의 소녀들? 열광杉?.
지금까? 보수적인 부모의 억압에 눌려있던 10대들의 반항기를 나뭇잎요정이 능구렁이와 같은 허슬로 한 방에 터뜨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소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TV에 출현하기 시작한 나뭇잎요정 덕분에 NIF의 가입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였다.
불과 2년 만에 영국 내에서 보험사 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과열양상을 빗은 NIF보험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거의 돌풍처럼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휩쓸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꽤나 높은 보장율과 럭셔리한 사은품이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회사들도 제시한 적이 없는 높은 보장에 사은품까지 빵빵하게 챙겨주니 회원들이 미친 듯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NIF보험은 곧바로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시작하였다.
2007년부터 시작되었던 미국의 금융위기는 2년에 걸쳐 엄청난 양의 부실채권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금융생태계를 변화시켜버렸다.
미국정부는 부실채권의 홍수로 인해 망해버린 금융회사를 헐값에 판매하였는데, 그것을 가지고 가는 대신에 인수회사들은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다.
허나 빚을 떠안음과 동시에 지주회사로서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이중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풍토는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여러 상업은행들이 투자은행과 보험사 등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생태계 변화로 인하여 NIF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되었고 산하에 보험사와 금융사 등을 거느린 대기업으로의 진화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타악!
영국 MI6의 해외수사국장 토마스 라모드는 이마를 짚었다.
"···사기금액이 얼마라고?"
"영국에서만 200억 유로입니다."
토마스 라모드는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영국에서만···이라는 소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합치면 금액이 훨씬 더 늘어난다는 소리 아니야?"
부국장 나타샤 해리슨은 손가락을 네 개 펼쳤다.
"정확하게 네 배입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멀쩡한 금융사를 폭파시키고 튈 생각을 하냔 말이야!"
NIF는 대기업으로의 진화를 시작하던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투자금과 신탁예금 등을 빨아들였다.
그들은 CDS는 물론이고 채권까지 동원하여 잔돈 1유로까지 탈탈 털어서 자금을 제 3국으로 흩뿌려냈다.
그런 후, 회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800억 유로, 그러니까 한화로 대략 80조 원이 공중으로 흩어진 것이었다.
액면가는 80조였지만 이것과 연계된 사업과 도산으로 인한 파장까지 생각한다면 피해액은 훨씬 더 커질 터였다.
토마스 라모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제기랄, 도대체 이러는 목적이 뭘까? 800억 유로가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엄청난 사고를 칠 만큼의 돈은 또 아니잖아."
"그렇죠. 차라리 이대로 보험수주만 제대로 돌렸어도 800억 유로는 더 벌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들은 2년 전부터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먹고 튈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프로파일러들의 생각에 따르면 저들은 일종의 과시를 위해서 범죄를 벌인 것으로 보인답니다."
"과시? 그게 무슨 소리야?"
"어쩌다보니 사기금액이 커지긴 했지만 저들은 처음부터 유럽시장에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판을 짜두었다는 소리죠."
"무엇을 위해서?"
"더 큰 판을 짜기 위함이 아닐까, 저들은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800억 유로보다 더한 사기가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 800억 유로쯤 되는 거액이 동원되는 사기는 그냥 사기라고도 부를 수 없었다.
이것은 한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태'로 표현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새끼들이 아주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군 그래!"
"애초에 그런 부분을 노렸겠지요."
"빌어먹을 새끼들···."
충분히 골이 깨질 것 같은 충격이었다.
허나 아직 충격은 끝이 아니었다.
나타냐 해리슨은 머리를 싸매고 앉은 국장에게 이걸 과연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야? 뭐가 또 있어?"
"이놈들이 말입니다, 아무래도 콜롬비아 카르텔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카르텔?!"
"정확하게 어떤 조직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는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만, 비자금을 빼돌려 세탁하는 조직으로 카르텔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치겠네. 이제는 카르텔까지 동원하는 거야?"
최근의 거대범죄에 카르텔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카르텔의 영역이 마약에서 금융범죄로 확장되었다는 소리였다.
단순히 마약만 팔아서 돈을 꼬불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금융에까지 손을 벌여 더 이상 현금을 쥐가 갉아먹을 때까지 쌓아두는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MI6은 지금을 비상사태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국제공조를 동원할 때가 온 것 같아."
"안 그래도 이미 CIA쪽에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쪽도 움찔 한 모양이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번 범죄, 전례가 아주 없는 게 아니잖습니까."
보험회사의 직원으로 가장하여 1인사기로는 최대금액을 털어먹고 잠적한 사건이 미국에서는 이미 90년대에 있었다.
그 선례를 따라 모방범죄가 몇 차례 있었고, 그것은 CIA를 긴장시키기엔 충분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재무부에서도 잔뜩 긴장을 하고 있답니다. 이제 막 채권역류를 정리했는데 나토와 러시아의 분쟁이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하여간 그놈의 러시아가 사람 속을 여럿 썩이는군."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으로 인해 NIF는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릴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평범한 수법으로 계속해서 기업을 경영했다면 절대로 수 백 억 유로의 대규모 참사를 벌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전쟁을 도발한 것은 아니겠지만, 철저히 준비한 고생을 한 방에 보상받을 수 있었던 셈이었다.
"러시아의 삽질로 또 수혜를 입는 놈들이 생겼군 그래."
"관련 주가가 폭등하면서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압니다. 정부에서도 그에 대한 추가범죄를 우려하여 비상근무 태세를 곧 발령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또 나를 들들 볶겠군."
MI6에 근무하면서 집에 자주 들어간다는 것은 아예 출세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허나 요즘은 전례에 없을 정도로 바빠서 토마스 라모드는 자신이 첩보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는 당장 수사국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아무튼 일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한다. 당장 카르텔 관련 자료들 수집하고 NIF의 뒤를 쫓자고."
"슈퍼보이를 섭외할까요?"
"지금 수배가 되나?"
"물론입니다. 그는 이제 절반쯤 영국 쪽 인사 아닙니까."
"연방당이 삽질해서 우리가 득을 다 보는군. 참, 사람 일은 정말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절대 모르는 거야. 그렇지 않아?"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슈퍼보이에게 떡밥을 하나 더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떡밥을 하나 더 던지자고?"
"언제까지 채권이나 부동산 같은 것으로 그를 꼬실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번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자면 그를 확실히 옆구리에 낄 필요가 있을 텐데, 그럼 그에 합당한 보수가 있어야 할 겁니다."
"으음, 도대체 뭘 던져줘야 슈퍼보이가 날뛰어 줄까?"
"중국을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중국?"
***
천우는 MI6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그들은 천우가 NIF사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면 중국에서 들어오는 채권투자에 대한 중개권한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최근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드디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을 밀어내고 두 번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물론, 국내총생산으로는 이미 일본을 멀찌감치 따돌렸지만 1인당 GDP에서 약간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다방면으로 일본을 밀어내고 진짜 세계 지도국의 지위를 거머쥔 것이었다.
러시아의 맹렬한 추격이 있기는 했었지만, 그들은 나토와의 분쟁과 조지아의 송유관 사용 제한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꽤 많이 받은 상태였다.
그런 중국의 채권은 영국의 불도그본드 제재로 자금의 홍수를 막아내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 계는 있었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는 중국의 자본이 상당수 개입해 있었고 어지간한 채권들의 회수권한은 중국 정부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겉으로는 중국의 대기업들이 나섰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자본 자체가 모두 중국의 중앙은행이 지원해 준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은 유럽계 채권들을 모두 관장하는 큰손이 된 셈이었다.
그런 그들의 채권판매를 중개한다면 천우는 지금까지 거머쥐었던 재화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될 것이었다.
허나 한 가지 문제는 있었다.
김영실은 미국과의 관계가 어색해 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외교 전쟁이 끝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만큼이나 썩 좋지가 않습니다. 당장은 좋아도 언제 다시 냉각기류를 탈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소리죠."
"으음."
"게다가 중국 쪽에서도 우리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일전에 HC는 중국 흑사회의 자본을 깡그리 거둬다가 중국을 압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HC의 분석능력이 너무 뛰어난 것 아니냐며 중국 쪽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제안은 천우에게는 그다지 썩 좋지 않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잘못하면 엄청난 손해를 입을 수도 있는 일.
"하긴, 대만 쪽도 생각을 해야 하니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중국은 생각보다 꽤 많은 영토분쟁을 조장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남중국해에 대한 영해권과 대만의 반환주장 등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천우가 보기에 중국은 한 마리의 사나운 개였다.
다루기는 힘들지만 일단 길들이기 시작하면 알아서 사냥을 해주고 집까지 지켜줄 것이었다.
"길들이기 한 번 해보죠 뭐."
"길들이기라니요?"
"개와의 공생, 우리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면 충분히 승산은 있습니다."
개를 부려먹기는 해도 그들 위에 군림하겠다고 설치지만 않으면 굳이 물릴 일은 없다.
영리하게 그들을 좌지우지 할 수만 있다면 그만이었다.
< 82.(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