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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08년 11월, 미국 양원 및 주지사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의 스코어는 다음과 같았다.
상원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이 70표, 연방당이 30표, 무소속이 6표를 가지고 갔다.
또한, 하원의원 선거에서 320대 115로 자유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35대 15로 역시 연방당이 자유당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며 엄청난 스코어보드를 만들어냈다.
이번 선거는 연방당이 얼마나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잘 알려주는 지표와 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415대 123, 선거인단 확보에서 자유당이 압승을 거두며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연이은 경제위기가 얼마나 주변을 괴롭혔는지 대변해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12월 2일, HC는 다시 재무부의 러브콜을 받게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허나 전문가들은 천우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천우는 유럽 내에서 굳건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는 CDS협회장을 맡아 유럽 전역의 CDS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었고 사프타 연합에서는 자금과 재무정책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HC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벌어들인 수익보다 대략 1.8배 정도 많은 수익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를 끊음으로서 HC가 날개를 편 것이었다.
이른 아침, HC의 본사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HC의 향후 거취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기 때문에 이사회 전원은 물론이고 사장단과 계열사 중역들까지 동시에 모이도록 되어 있었다.
무려 85명이나 되는 재계의 유명 인사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다.
이미 여의도에 본사를 세운 HC는 5년 전부터 본사를 새로 건축하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2400평에 달했다.
완공된 본사에는 51층 건물 한 동에 20층 대 빌딩이 네 채였다. 여기에 정규농구경기를 치를 수 있는 강당과 결혼식과 만찬을 동시에 12개나 진행할 수 있는 컨벤션센터까지 갖추고 있었다.
가장 압권인 것은 지하 6층의 주차장과 2500평 규모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2500평 규모의 편의시설에는 헬스장, 무료편의점, 직원식당, 사내카페, 캡슐모텔까지 갖춰져 있었다.
천우는 HC의 직원복지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였는데, 2500평 규모의 시설이 모두 무료로 사용이 가능했다.
게다가 지상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설립되어 있었고 거기에 투입된 인력은 일반 보육시설에 비해 무려 3배 이상의 인력이 투입되어 있었다.
그밖에 응급수술이 가능한 직원병원에 IFBB출신 보디빌더가 상주하는 헬스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중역들은 본사에 당도하자마자 입을 쩍 벌렸다.
"···역시, 우리 회장님께서 돈이 많긴 많으신 모양이네."
"요즘 구골이 대박을 쳐서 인터넷 시장 독식 중이잖습니까? 블루자드 주식은 또 어떻고요?"
미스릴 컴퍼니 산하의 주식은 1990년대에 비해 거의 200배 이상 올랐다.
이건 그저 평균을 얘기하는 것이고 구골이나 블루자드와 같은 메가톤급 대기업의 경우엔 현재 미국에서 브랜드 파워 1위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천우는 사적 재산만 해도 이제는 세계 100대 재벌 안에 당연히 들어갈 정도였다.
앞으로 향후 5년 안에 천우는 30대 재벌 안에 들어갈 것이며 결국 10년 안에 10위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었다.
특히나 구골의 경우엔 천우가 투자한 사설위성 지분이 만들어낸 반사효과로 인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최초의 위성지도이자 로드뷰 시스템인 '구골맵'이 바로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 진 것이었다.
앞으로 이 GPS기술은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것이며 한국과 미국, 일본에 있는 미스릴 컴퍼니의 연구소에서 위성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 10년 안에 미스릴 컴퍼니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었다.
그런 엄청난 저력의 천우가 마음먹고 직원들의 복지를 신경 쓰니, 결과물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85명의 관계자들은 HC본사의 컨벤션센터로 향했다.
컨벤션센터에서는 가벼운 오찬과 함께 회의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전속 요리사들과 사내 패밀리레스토랑의 서비스 관계자들이 정갈한 다과와 함께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안마기능이 장착된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중역들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들이 되었다.
"이야, 회의에 안마의자까지? 정말 스케일을 따라갈 수가 없군 그래."
"세상에 이렇게까지 돈을 잘 쓰는 사람이 또 있었던가요?"
천우는 돈도 잘 벌지만 그걸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 수 있고 그것이 어떻게 하면 충성심으로 연결될지 이미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천우가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오십니다."
관계자들은 천우가 등장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누가 맞춰놓은 것도 아닌데 꼭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한 번에 고개를 숙이니, 이것도 꽤나 장관이었다.
천우는 강단에 오른 후,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격조하는 동안 별 탈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이 모든 것이 회장님의 은덕입니다."
모두가 천우를 우러러 본다.
이는 천우가 의도한 바가 대략 50%정도 섞여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천우는 스스로의 부를 과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부의 배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줌으로서 경외를 이끌어낸다.
이것은 그가 돌리는 사내 보너스로 인하여 진정한 경외로 변하는데, 결국 화려한 힘자랑 이후에 돌리는 돈이 굳히기라는 것을 천우는 오랜 경영으로 익히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천우는 사설 없이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아마도 오늘 이곳에 오면서 앞으로 우리 HC가 과연 미국과 다시 손을 잡을 것인가, 그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들을 많이 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회장님께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실지 기대가 되면서도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걱정이라."
"회장님은 백전불패의 사나이이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이 업계는 생각보다 눈총이 따갑고도 무서운 바닥이다.
사람들의 입방아는 곧 찌라시를 만들어내게 되고 시가총액을 떨어뜨리는 악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천우는 혼자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바깥에서 누굴 자유롭게 만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회사의 주가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아직까지 세계의 패권을 틀어쥐고 있는 미국과 관련이 되어 있다면 어떨까.
천우는 그들의 심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걱정, 십분 이해합니다. 우리는 그 걱정 그대로 미국과 함부로 손을 잡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미국과는 영영 결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는 않죠. 우리는 이득이 된다면 어디든 달려가야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부르면 부르는 대로 달려가는 건 좀···."
천우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냥은 못 가죠. 받을 건 받고 청산할 것은 제대로 청산하고 들어갈 겁니다."
"받을 것이라!"
재무부는 지금까지 삽질만 해왔고 천우는 그들에게 수많은 약점을 잡아두었다.
그 밀린 보너스를 받아야만 천우의 직성이 풀릴 것이고 그게 바로 인지상정이라는 것이었다.
천우는 재무부가 먼저 다가와 무릎을 꿇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마도 무너진 미국의 경제를 재건하자면 필요한 것이 많을 겁니다. 우리는 그 중간에 끼어서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기다리는 거죠."
"으음, 그래요. 이미 막대한 채권을 소유하고 계시니 명분뿐만 아니라 실제 트리거도 회장님께서 쥐고 계신 것이긴 합니다!"
"공은 우리에게로 넘어왔어요. 그동안 당한 설움, 한 방에 보너스까지 얹어서 받을 날이 온 것이죠."
관계자들은 흥분했다.
그동안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찾아와서 남들은 쪽박을 차도 HC만큼은 호황이었다.
그 덕분에 이들은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왔고 그것은 다시 말해서 어지간한 재계인사들 조차도 범접하지 못할 부의 축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천우는 앞으로의 포지션은 이대로 현행수준만 유지하는 일동 '스테이'로 고정하기로 했다.
회의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컨벤션센터의 문이 벌컥 열렸다.
콰앙!
"회장님, 급보입니다!"
"급보?"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로 진격하고 있답니다!"
"허어!"
천우의 예상보다 몇 개월 느린 전개였다.
원래 전쟁은 8월 7일에 발발했어야 정상인데, 미국과 러시아의 정치유착 스캔들로 인하여 동유럽의 정세가 약간 변한 것이었다.
허나 일어날 사건은 기어이 일어나고 말았다.
천우는 이것이 앞으로 어떤 변수를 만들어 낼지 계산했다.
그리고 그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한 가지는 안전자산의 급상승이었고 또 한 가지는 방위산업의 주가상승이었다.
***
2008년 12월 2일에 시작된 조지아와 남오세티야의 전쟁인 다음 날인 3일, 러시아의 개입으로 본격화 되었다.
사실상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은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전력차이를 보였다.
아무리 나토연방이 있다고는 해도 접경지역에 있던 국경수비대만 내려와도 조지아는 그대로 초토화였다.
이런 러시아의 공격으로 인하여 조지아는 12월 8일에 항복을 선언하였다.
허나 무력행위는 끝나지 않았고 러시아는 계속해서 조지아에 머물며 사실상 점령을 시도하였다.
프랑스는 러시아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하였고, 이로서 사태는 종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12월 10일에 미국의 항모전단이 흑해로 진격하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미국은 러시아의 조지아 점령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이를 응징하기 위해 나토군이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긴장감은 미국의 항모전단이 물자를 보급하여 조지아에 지상군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미 평화협정은 채결이 되었지만 미국이 이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위나 다름이 없었다.
사람들은 미국의 이와 같은 행위가 연방당의 마지막 발악이라고들 말했다.
아직 임기가 한 달 남짓 남아있었고 인수인계 기간이라고는 해도 분명 실권은 남아있었기에 다음 중간선거에서 약간의 표심이라도 얻고자 전쟁을 도발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12월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될 지는 장담을 할 수가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긴장감은 유럽 전역에 냉기류를 뿌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영국계 안전자산 시장이 들썩거렸다.
런던의 증시가 들쑥날쑥한 경향을 보이자, 금시장의 큰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도두라진 것은 바로 보험관련 사업들이었다.
전문가들은 보험과 관련된 종목들이 오를 것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진정한 변수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사상 초유의 보험 사기였다.
< 8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