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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연방당의 전쟁스캔들 이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이 무려 21회나 미국 상하원 전체를 떠돌아다녔다.
특히나 대통령 탄핵안 시추에 대한 권한을 가진 하원의원들에게는 하루에도 수 백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그만큼 미국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올해 12월이면 다시 선거가 시작될 것이고, 만약 이대로라면 연방당은 보나마나 여당의 지위와 최대정당의 지위를 한꺼번에 잃게 될 터였다.
연방당은 고민에 빠져버렸다.
이대로 대통령을 내쫓고 분위기 쇄신에 나선다면 적어도 총선에서 참패를 하는 일은 아마 없어질 지도 몰랐다.
허나 문제는 지금 대통령을 스스로 손절해버린다면 기존의 지지자들 중에서 여전히 현직 대통령을 밀어주는 세력들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손절 이전에 대통령이 먼저 측근들을 깡그리 정리해서 아예 사전에 탄핵의 싹을 잘라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도중에 결정적인 한 방이 미국 전역을 강타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미군의 증병정책과 연방당의 오펙 압박, 카트리나 사태의 전말이 모두 담긴 보고서였다.
카트리나 사태에서 연방당은 백인밀집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구호지원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흑인밀집지역에게 돌아갔어야 할 지원까지 모두 중산층 지역에게 돌아간 것이었다.
이미 현직 대통령 일가는 백인우월주의집단의 압도적인 지지와 함께 자금적인 지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대통령 가문의 일원들이 백인의 표심을 끌어내기 위해서 아예 흑인, 히스패닉 등이 사는 유색인종밀집지역의 구호물자를 빼돌려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대통령은 카트리나 사태 이후, 단 한 번도 서민과 취약계층 주거지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모친을 보냈으나 흑인들을 더럽다는 식으로 대한 영상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버린 것이었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극심한 인종차별 및 백인우월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미지 타격이었다.
비록 미국의 유권자 중에서 투표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라고는 하지만 서민들이나 빈민들에게 선거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소 복잡하고 귀찮은 절차, 게다가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 것이 미국의 선거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투표는 할 수 있었다.
이건 생각보다 연방당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원래 계층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가든 간에 피라미드 형식으로 구성이 된다.
재화는 한정이 되어 있지만 그것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상위 0.1%에 불과하고 그 아래 중산계층이 상위 0.1%에게 고용되거나 그들에게 의존하는 사업형태를 띄게 되는 것이다.
이중에서 알부자, 서민부자들이 가끔 나타나지만 그것도 상위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서민들은 보통 상류층이 만들어놓은 기반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데, 결국 그들이 피라미드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게 된다.
자금력만 놓고 본다면 피라미드계층의 재산을 1,000명치를 긁어모아도 상위 0.1%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인원으로 따진다면 아래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사람은 많아지는 셈이다.
이걸 반대로 뒤집어본다면 피라미드 하위계층이 그 상위계층을 먹여 살리는 꼴이 된다.
아무리 차상위계층이 가장 많이 노동하는 계급이라곤 하지만 결국 재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서민들의 노동력과 그들의 소비가 없어진다면 결국 대기업도 없다는 소리다.
그건 투표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른 바 '신 귀족사회'로 이뤄져있지만 옛날과 다른 것은 결국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개념이다.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서민과 차상위계층의 표심을 잃게 된다면 제 아무리 잘난 집안의 백인 도련님이라곤 해도 결국 참패를 면치 못하게 된다는 소리였다.
연방당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했다.
허나 고난의 가시밭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서 군사적 긴장감을 만들어내었고 그 바람에 오일달러가 상당히 뛰어올랐다.
이 과정에서 연방당은 해외유전에 대한 지분과 지배력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러시아와 조지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중국마저도 이용한 것이었다.
러시아와 조지아의 대립으로 인하여 유럽의 분위기는 크게 경색되었고, 그 바람에 조지아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었다.
조지아의 나토 가입으로 인하여 러시아는 점점 더 군사적 긴장감을 증폭시켰고 국제유가는 점점 더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가뜩이나 자원시장이 경색되는 마당에 중국을 압박하여 희토류 반출금지법을 조장하였고, 결국엔 전 세계 전역으로 경제위기를 확산시키는 희대의 삽질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연방당 수뇌부의 배를 불리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게 CIA의 주장이었다.
만약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절대로 해선 안 될 일이었지만 연방당 수뇌부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접촉을 통해서 원자재 가격을 올리는 행위를 한 것이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미국의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이끈 것이었다.
신임 CIA국장 올란도 차스티스는 모든 것이 사익과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밝혔다.
찰칵, 찰칵!
기자회견을 연 CIA는 지금까지의 신비주의 노선을 뒤로하고 대대적인 폭로전에 돌입하였다.
"연방법원에서 저희 CIA에게 현재 언론을 떠돌고 있는 CIA의 내부고발에 대한 증인출석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저희 CIA는 성심성의껏 법원에 출두하여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법 앞에 떳떳이 설 것을 선언합니다."
기자들은 CIA가 직접 정국반전에 끼어든다는 소식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CIA는 정치적인 이유로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허나 법원의 출석요구가 있다면 제 아무리 CIA라도 진실을 고해야하는 것이 바로 연방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행보는 앞으로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낼 것임이 분명했다.
허나 기자들은 CIA의 진심을 의심했다.
"혹시 정치적인 견해 때문에 이러시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CIA는 백악관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먹고 사는 사람들로서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으로 연방당과는 완전히 남남이 되는 것인데, 그것까지도 감수하시는 겁니까?"
"진실 앞에 남남이 대수입니까?"
"항간에서는 자유당 쪽 줄서기라는 말이 있던데요."
"그건 결단코 아닙니다. 만약 법원이 자유당에 대한 심판으로 저희 CIA에게 증언을 요청한다면 당연히 앞장설 것입니다."
이후, 연방법원에서는 CIA의 국장과 부국장을 소환하였고 재판장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었다.
CIA는 내부안건으로 봉인되어 있던 자료들을 대거 방출하였다.
원래 CIA는 국가의 안전과 안보를 위해서 절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토안보부의 자기상관 때리기에 힘입어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내부안건문서는 상당히 일목조연하게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상황을 담은 영상과 사진까지 전부 다 첨부가 되어 있었기에 검찰은 아주 세세하게 그들을 심문해서 연방법원을 자극할 수 있었다.
사상처음으로 CIA가 연방 법원에게 적극적으로 내부안건을 공개한 이례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윽고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은 연방당 상원의원 4인에 대한 무기징역과 연방당 수뇌부의 유죄를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아래와 같이 판결합니다. 연방당 소속 상원의원 로버트 웜우드 등 4인은 국가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했고 그 증거가 명백한 바, 종신형에 처한다. 또한, 검찰이 기소한 연방당 수뇌부 8인에 대한 배임 및 횡령, 국가내란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언하는 바, 공식적인 수사를 허가한다."
탕탕탕!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한 수사가 아닌 정당 전체에 대한 수사는 연방법원의 허가가 있어야만 진행할 수 있다.
또한, 국회가 개회한 이후에는 사법권이 입법권을 침해할 수 없기 때문에 연방법원의 결단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검찰은 이 법안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서 CIA를 움직여 연방법원의 승인을 얻어낸 것이었다.
이제 기소측은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오늘에야 말로 끝장을 내주마!"
***
일본의 소재산업이 극심한 불황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정밀 전자제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자재 80%가 중국의 희토류금속 반출불가 판정으로 인해 연일 계류 중이었던 것이다.
최근 일본 소재산업계는 한국의 기술진보로 인하여 내수물량보다 수출물량이 더 많아진 상태였는데, 특히나 현보전자의 독주 덕분에 하청업체로는 사상 최초로 단일물품 수출이익 120억 엔을 넘기는 회사가 나오기도 했었다.
헌데 중국의 이러한 희토류물량 조절로 인하여 일본 소재산업이 극심한 타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와 함께 한국의 전자업계도 곤란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럭키전자나 선강전자 등, 반도체산업과 디스플레이 산업이 급성장을 거듭하다가 일순간 브레이크가 걸려버린 셈이었으니.
한국으로서는 이것을 외교로 풀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것은 한일관계나 한미, 미일관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미중간의 무역 분쟁 때문에 벌어진 일임으로 한국과 일본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나 이들에게도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그것은 바로 사프타 연합이었다.
최근 사프타 연합은 서유럽권 선진국들을 압도할 정도의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영향권이 사실상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친 러시아 성향을 보였던 국가들은 물론이고 이슬람 극단주의세력을 지원하는 무슬림 국가들까지 전부 사프타로 전향하는 움직임이었다.
심지어 내전 이후, 정치적 혼란을 키워왔던 북, 중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사프타의 가입조건에 나라를 맞추기 위해서 자체적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UN이나 EU가 가졌던 군사적 영향력보다는 사프타의 완전한 자본주의적 동맹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프타는 한국과 일본에게 먼저 러브콜을 보냈다.
아프리카의 막대한 자원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줄 테니 스페인 남부와 모로코 북부 공업단지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사프타가 스페인남부와 모로코 북부에 한일의 자본을 끌어오려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도로와 철도의 증설이었다.
토목, 건설로는 스페인이 사실상 세계 1위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기술과 자본의 규모에서 아프리카를 전부 개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중공업에서 한국이 상당히 발달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기술을 아프리카로 끌고 와서 사프타의 완벽한 중앙집권화를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도로와 기차가 이어짐에 따라서 사프타의 변두리 국가에도 산업기반이 마련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사프타 연합은 아프리카와 유럽남부를 새로운 산업화 국면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프타 연합이 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통신의 발전이었다.
< 8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