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59화 (159/202)

< 80. >

80.

8월 말, 일본의 주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차기총리가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파정권이 당연히 일본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의 단일정당 정치권.

허나 그런 일본의 정계에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올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그것은 바로 정치권 인사들의 비자금 목록과 섹스비디오 스캔들이었다.

일본 주민당 중도우파와 극단주의 우파, 온건우파 등, 세 개의 지류에 속한 정치인들의 술자리가 비디오에 담겼다.

이 비디오에서는 일본의 고급 료칸에 마련된 술자리에 참석한 전원의 신상이 모두 녹화되어 있었다.

중진의원들 8명이 모인 이 술자리에는 일본의 유명 여배우와 아이돌, 심지어는 미성년자 가수까지 끼어 있었다.

술자리의 수위는 차마 입에 담기도 역겨울 정도로 수위가 높았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미성년자를 중년의 남성들이 철저히 유린하며 윤간하는 장면이었다.

이 과정에서 소녀는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고 성기와 장기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어 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술자리가 한 두 번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일본 사회는 격분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NHS 뉴스에서는 피해 아이돌과 그 부모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공개했다.

이 인터뷰에서 피해 아이돌은 '우리 부모님께는 제발 피해가 가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재차 술자리에 나갈게요'라고 말했다.

부모는 피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꿈을 위해 시작했던 연습생 생활부터 지금까지 유린을 당해온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눈물로 호소했다.

"저 썩은 부패정치인들을 감옥에 쳐 넣어주세요!"

이 사건은 일본 열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탄으로 번져나갔다.

주민당의 8월 전당대회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총재이자 일본의 총리 타카키 소이치로는 아무런 말없이 주민당 의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떼기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충격적입니다.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하니 국민들을 보호하고 받들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그 딸들을 유린하고 있었을 줄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새삼스럽게 분란을 조장하고 그러십니까?"

"새삼?!"

타카키 소이치로의 분노가 폭발했다.

콰앙!

그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쳤다.

"대가리에 든 게 있다면 이렇게 행동할 수 없을 겁니다!"

"대, 대가리?"

"당신들은 우경화 정책에 놀아난 그때와 다를 바가 없는 구식들입니다. 일제의 망령이 아직도 당신들을 따라다니고 있단 말입니다."

우경화 노선의 핵심은 일제의 만행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그 만행을 덮는 부끄러움을 아예 파괴시켜버리기로 마음먹은 사람이었다.

극단주의 우파가 들고 일어섰다.

"미쳤군! 조상들을 욕되게 하고도 살아남을 성 싶소?!"

"조상···? 그래, 조상들이지. 하지만 그들이 과연 옳은 짓을 했습니까? 게다가 그 조상들의 부끄럽고 잔악한 실상을 알고도 감추려하는 당신들이야 말로 살아남을 성 싶습니까?"

"허어!"

"그런 망령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쓰레기 같은 습성을 못 버리고 망령 짓거리를 하고 다니니, 내가 할 말이 없군요."

타카키 소이치로는 천우의 말이 조금이라도 틀리기를 바랐다.

허나 지금의 일본정계는 물갈이가 너무나도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그는 충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중의원을 해산하고 주민당을 해체하겠습니다."

"···뭐요?!"

"앞으로 주민당은 세 갈래로 갈라져 첨예하게 갈등해야 할 겁니다."

"이 사람이 미쳤나?! 일본의 근간을 만든 주민당을 해체하겠다고?!"

"미치지 않았으니 하는 행동입니다. 이 나라 정치인들 중에서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 주민당에 입당하지 않는 것 같으니 하는 말입니다."

"허어!"

일본의 정치는 세습이다.

그 세습의 썩은 뿌리를 뽑아버리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주민당을 해체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타카키 소이치로는 생각했던 것이다.

"주민당은 앞으로 역사에서 영원히 그 이름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흥, 누구마음대로!"

"1억 일본 국민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깥에 나가보세요. 주민당을 없애자는 슬로건이 여기저기 박혀 있습니다."

"그야 시간이 지나면···."

"만약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은 앞으로 절대 정계에 발을 담그지 못할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도 현직 총리가 폭탄을 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당대회가 끝난 후, 타카키 소이치로는 대국민 담화를 개최하였다.

이는 생방송으로 전국에 송출되었다.

저녁 7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TV 앞에 모여들 시간이었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대국민 담화가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얘기했다.

"주민당은 해체될 겁니다. 중의원은 해산될 것이며 저는 총리직에서 스스로 내려올 겁니다."

아나운서들은 당황했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서 대국민 담화를 개최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초, 총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의 내각이 가진 권한은 일제히 회수되며 그 자리는 권한대행이 대체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공백이 생겨 나라가 불안정해 질 수도 있잖습니까?"

"아직까지 우리에겐 미국과 한국이라는 우방이 있습니다. 그들을 믿고 저는 정치개혁을 단행할 생각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총리께서 평생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은 역시 정치인들의 편이었다.

아나운서가 당황하자, 타카키 소이치로는 그들에게 버럭 호통을 쳤다.

"정신 차리십시오! 정치혼란? 차라리 정치혼란을 빗는 것이 훨씬 더 이로울 겁니다. 지금처럼 암흑천지인 시절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그야···."

"당신들도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정치권이 개혁되면 아마 방송국들도 지금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험험!"

일본의 방송계가 가진 정치색은 국민들의 사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중립을 지켜야 할 방송가를 한 바탕 뒤집어엎을 것임을 시사했다.

"지금의 정치판을 만든 것은 방송국의 탓도 있습니다."

"설마하니 정치인들의 잘못을 저희 방송인들에게 돌리려는 겁니까?"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그럼 언제까지 회피만 하면서 살 수 있을 줄 아셨습니까?"

그의 이 한마디는 방청객들의 박수를 끌어냈다.

짝짝짝짝!

타카키 소이치로는 국민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쿠웅!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부디 이 나라에서 군국주의의 망령을 몰아내고 썩은 권력이 깃든 음지를 파괴시켜주십시오! 그것을 가능케 할 사람들은 오로지 국민들뿐입니다! 여러분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라의 주인!"

"이 나라의 주인은 왕가도 아니고 정치인들도 아니고 부패한 기업인들도 아닙니다. 그들이 고혈을 빨아먹으면서 짓밟고 있는 바로 여러분들, 국민들이란 말입니다!"

방청객들은 동시에 그 자리에서 기립했다.

그들은 타카키 소이치로의 이름을 연호하였다.

"타카키, 타카키!"

"아닙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합니다! 주민당의 때가 타지 않은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정당,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굳은 심지를 가진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총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썩은 정치인이란 말입니까?"

타카키 소이치로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저도 같은 인간 말 종입니다!"

"허어!"

"다만, 그 사실을 깨닫고 속죄하려는 것뿐입니다. 언제 죄를 지었던 간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진 정치인은 그 순간부터 쓰레기인 겁니다. 아무리 사죄를 한다고 해도 그를 다시는 정계로 들여선 안 됩니다."

"당신은 충분히 속죄를 했잖아요?"

"속죄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저와 같은 정치인들은 장외에서 무일푼으로 국민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메이저에 들어설 기회를 주어선 안 됩니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아예 정치인들이 컴백하는 길목마저 차단시켜버렸다.

시민들은 그를 지지하였다.

"야당인사들을 밀어줍시다!"

"우리의 손으로 개혁을 추진합시다!"

그날 저녁부터 도쿄에 대국민 시위대가 결집하기 시작했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국민들이 도쿄의 시가지로 나와야한다고 말했고, 그의 사비를 털어서 천막과 방석을 제공하였다.

사상최초로 총리대신이 시위대를 지원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그 시위대의 중심에는 차기총재로 거론되었던 와타나베 야시로가 서 있었다.

그는 주민당을 해체시키고 일본의 정계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한다고 외쳤다.

"새로운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옳소!"

"주민당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와아아아!"

사람들은 이 시위를 '타카키의 불꽃'이라고 불렀다.

이제 타카키의 불꽃이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내려는 태동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

한 편, 국토안보부에서는 웜우드 가문을 급습했다.

이들은 웜우드 가문이 러시아의 정치인과 유착하여 전쟁도발에 참여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물적, 정황상 증거까지 모두 갖춘 국토안보부는 웜우드 가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로버트 웜우드는 국가내란죄 및 반역죄로 체포되었다.

"이런 제기랄! 사람 잘못 봤어!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했던 내가 내란죄라고?!"

"그딴 소리는 달나라 가서나 지껄이지?"

"증거조작이다! 이 따위 증거가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어!"

국토안보부의 손에 끌려 나가는 로버트 웜우드의 뒤에는 아론 테이트가 서 있었다.

그는 웃으며 로버트 웜우드에게 말했다.

"아직도 천지분간을 못하는군. 머리가 그렇게도 안 돌아가나?"

"CIA···? 설마하니 중앙정보국에서 나를?!"

도저히 눈과 귀로 보고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CIA의 국장으로 자신의 처남을 꽂아 넣었던 것이다.

헌데 그 처남이 자신을 배신했으니, 로버트 웜우드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말도 안 된다! 처남이 나를 배신했을 리가 없다고!"

"그러니까 인척을 잘 뒀어야지. 그따위 꼭두각시가 뭘 얼마나 충성할 줄 알았나?"

CIA국장은 웜우드 가문이 털린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자신은 한 발 빠져 즉각 자리에서 사퇴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웜우드 가문과 상관이 없다면서 스스로 아론 테이트에게 투항해왔다.

"멍청한 놈, 그러니까 뒤통수나 맞고 다니지. 이 증거들, 대부분은 네 처남이 가지고 온 것이다."

"뭐라···?!"

"아마 조만간 연방법원에 출두해서 증언을 하게 될 텐데, 그때는 이미 사형수가 되어 있는 상태이겠지?"

"야 이 개자식들아!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단 말이다!"

아론 테이트는 슬그머니 웃었다.

"잘못이 없긴. 이제부터가 지옥의 시작이니 기대하고 있으라고."

< 80.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