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58화 (158/202)

< 79.(2) >

79.(2)

2007년 8월, 미국의 슈퍼 301조가 중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관세인상은 물론이고 무역불공정 해소를 위한 물량제한까지 설정하고 나선 것이었다.

사실, 미중 무역마찰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지만 2006년도부터 중국이 미국에게 강력한 불만을 표출함으로서 설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2005년도부터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전면적인 정책변경을 시작하였고 그것은 동맹국들에 대한 엄청난 반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속에는 이제 막 G2로 부상하고 있던 중국도 끼어 있었다.

이미 세계 지도국 반열에 올랐다면서 대대적인 선전에 들어간 중국은 엄청난 군비증강과 역사외곡, 영토분쟁 가속화를 통하여 중화사상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남중국해 분쟁과 타이완 반환 주장, 조어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 한참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와중에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시작되었고 관세장벽과 지하자원 수출입에 대한 문제로 미중 양국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그 대치국면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 명령이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희토류 금속 소비국가임과 동시에 최대 수출국이기도 하다.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절반이 중국에 있으며 시장점유율은 거의 90%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원외교가 가장 치사하면서도 치명적인 카드라는 것은 이미 오일쇼크에서도 검증된 바, 중국은 그것을 외교에 사용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미국은 난색을 표했다.

중국이 희토류 금속의 빗장을 걸어 잠가버리면 관련 산업들이 줄줄이 깡통을 찰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최근 몰리브덴과 코발트 등의 가격이 가파르게 수직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는데, 3차 산업의 발전으로 전자기기와 배터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것이었다.

만약 희토류 반출이 금지된다면 미국의 생산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중국이 90%나 되는 물량을 회수해버린다면 원자재 가격이 지금보다 족히 몇 배는 뛸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세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피를 보는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희토류 수입량은 60% 정도로 세계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이미 70년대부터 몰리브덴을 대량으로 수입해서 쓰고 있던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금속 반출금지법에 제대로 저격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일본은 외교라인을 총동원하여 중국에게서 희토류를 반출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하여 미국에 줄을 댔으나, 그 마저도 한계가 있었음으로 이제 일본은 그나마 바닥으로 내려앉은 생산성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닛케이지수는 불과 이틀 만에 5% 포인트 이상 떨어져버렸고, 만약 중국이 희토류 통제를 장기화 할 경우엔 산업계의 생산성이 25% 이상 감소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이는 일본의 장기불황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되어버렸다.

"더 강한 일본을 위해 나아갑시다!"

"와아아아!"

장기불황이 계속되자, 일본의 표심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온건파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득세했었지만 자금의 흐름에 민감한 기성세대가 경제성장을 장담하는 극단주의 보수주의자들에게 표심을 몰아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본의 차기 총리후보인 주민당 제 2지류의 아소다 케이스케가 일본 기성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여명정책의 선두주자였던 제 1유파의 수장 타카키 소이치로는 그 풍경을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관동에서 저들의 지지율이 얼마나 된다고요?"

"이미 70%를 돌파했답니다."

"···이젠 정말 정권교체가 시작된 것인가?"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관서지방에서 우리의 지지율은 70% 이상이며 특히나 후쿠오카나 북해도 같은 지방 유권자들의 표심은 여전히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으음, 그러니까 아직은 박빙이다?"

"아직까지는 해볼 만합니다. 중국이 장기불황을 만들어내 악재가 계속해서 겹치지만 않는 다면요."

가장 큰 문젯거리였다.

타카키노믹스의 대성공으로 일본은 그야말로 여명정책의 수혜를 입어 고속성장을 거듭하였으나, 그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정부가 경제개입으로 인위적인 저금리시장을 만들어놓았음으로 투기시장은 발달하였고 그만큼 생산성이 저하되었기에 재차 산업타격을 받을 경우엔 자연스럽게 타카키 정권이 질타를 받게 될 수밖에는 없었다.

경제란 원래 파도를 타듯 상승곡선과 하향곡선이 맞물려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인데, 민생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상승하면 지지하고 하락하면 지탄하는 것이 바로 표심이라는 소리였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이제 자신이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쯤 장기집권을 해왔으면 됐지. 더 이상 미련은 없습니다."

"총리···."

"차기 총리주자로 삼을 만한 사람이 우리 유파 중에 누가 있습니까?"

"일단 기업가 출신에 무소속으로 올라왔던 와타나베 야시로가 있습니다."

"아아, 그 젊은 정치인 말입니까?"

와타나베 야시로는 40대 초반의 젊은 정치인으로 보기 드문 끈기와 인내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경제학을 전공한 기업인 출신으로서 쟁쟁한 정치가문의 자제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한 무소속 의원이었다.

최근 와타나베가 타카키 정권으로 전향하면서 정치판이 다시 한 번 반전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자신으로 향하던 표심을 젊은 정치인에게 실어주기로 했다.

"다음 전당대회에서 와타나베 의원을 총재후보로 밀어줍시다."

"그렇다면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죠. 이제 더 이상 고인 물로 썩어가긴 싫습니다."

"으음···!"

"힘들어도 가야 할 길입니다. 모두들 와타나베 의원을 잘 보필해주세요."

타카키 소이치로는 그날 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침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던 천우는 타카키 소이치로의 방문에 약간 놀란 눈치였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한국엔 어쩐 일이십니까?"

"회장님을 한 번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후후,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낄 세월이고 그만큼 격조하면서 지낸 세월이기도 했죠."

가깝지만 먼 나라, 그게 바로 일본이다.

특히나 천우의 경우엔 해외 정치인들과 자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차라리 격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천우에게 술자리를 제안했다.

"소주 한 잔 하시죠."

"소주 좋지요."

천우는 용산 뒷골목의 한 허름한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HC에서 운영하는 술집으로서 평소에는 손님을 잘 받지 않다가 비밀리에 술자리를 갖게 될 때가 되면 문을 여는 비밀술집이었다.

여의도의 화려한 전용 비즈니스 클럽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이지만 가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곰삭은 분위기에서 술잔이 오갔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거죠?"

천우의 질문에 타카키 소이치로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 그래 보입니까?"

"제가 총리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95년도였습니다. 이제는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때도 되었지요."

격조를 하기는 했어도 간간히 얼굴은 보고 살았다.

그런 천우에게 표정을 감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이치로는 드디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의 여명조약이 퇴색되지 시작한 것 같습니다."

"뭐, 그럴 때가 되기는 했죠."

"그래서 저는 이만 정권에서 물러나려 합니다."

"정권을 교체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흐음···."

"다만 후계구도까지 생각해두었습니다. 그러니 완전 퇴진은 아니라는 뜻이죠."

아직은 물러설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허나 천우는 소이치로의 뜻을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차기후보와 다리를 놓아주시지요. 어찌되었건 간에 정권이 교체되는 건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니니까요."

"물론 그렇게 하긴 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에 정권이 교체된다면 일본은 얼마나 타격을 받게 될 까요? 아니, 오히려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이치로가 천우를 찾아온 것은 정권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의 정권이 진정 올바른 정권인가, 그리고 새로운 정권은 진정 가망이 없는 정권인가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든 것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천우는 그에게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좋은 편향과 나쁜 편향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살인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은 좋은 편향이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학살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쁜 편향인 거죠."

"으음···."

"지금의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된다면 정치라는 건 한 쪽으로 편중되었을 때의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겠죠."

"부작용이라!"

"그것은 총리께서 결정하시는 겁니다. 고인 둑을 터뜨려 분위기를 환기시켜 정치권의 건강을 지키느냐, 지금의 보수정권을 끝까지 가지고 가서 일본의 대외평화를 지키느냐. 결국 그것을 결정하셔야 할 겁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총리께서 가지고 계신 편향은 절대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천우는 필요악에 대해 역설한 것이다.

허나 천우가 말했듯 악은 결코 좋은 편향에 속하지 않는 부류였다.

"필요악이 없는 정치적 환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한 가지 도박이 있기는 하죠."

"도박?"

"주민당을 정치판에서 밀어내는 것이죠."

"아아!"

타카키 내각이 과연 어떻게 출범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물이 고이면서 생긴 문제들은 아예 둑을 터뜨려 그 안에 있던 썩은 것들을 다 긁어내면 깔끔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주민당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면 청소할 것들이 꽤 많이 나올 겁니다."

"그렇게 하자면 희생이 뒤따를 텐데요?"

"희생은 곧 쇄신입니다. 적폐가 사라진다는 뜻이니까요."

"으음!"

"우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정치판을 뒤집을 분위기와 묵직한 폭탄 하나, 그리고 대표적 희생양이 하나 필요할 겁니다."

"희생양이라···."

소이치로는 굳이 천우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라는 거대한 산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면 둑은 알아서 터질 것임을 말이다.

다만 그것을 각오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꿀꺽!

씁쓸하고도 알싸한 소주의 향이 소이치로의 뇌리를 탁 치고 지나갔다.

결국 그의 결심이 섰다.

"제가 어떻게 되어도 일본을 버리지 않으실 겁니까?"

"저는 돈을 묶은 나라는 버리지 않습니다."

"그럼 회장님만 믿고 갑니다."

천우는 대답 대신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 79.(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