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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스페인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주택가격이 빠르게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스페인 정부는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이는 모기지론을 대신하여 서민부채비율을 극단적으로 끌어내리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었다.
2007년 1월부터 전자제품 생산업체가 본격적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철강업체들이 속속들이 폐 제철소를 매입하여 정비하기 시작했다.
현재 스페인의 철강 산업은 70년대의 경제도약시기에 비하자면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편이었다.
예전의 철강도시들은 이제 거의 폐허나 다름이 없었고, 그곳을 재생시키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철강의 부흥뿐이었다.
엉뚱하게도 이 철강의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곳은 한국이었다.
지금의 슈팅스타 그룹을 만들어낸 블랙하워드 뱅크가 현보제철을 스페인 남서부지역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슈팅스타는 대량의 하청업체를 만들어 낼 것임을 선포했다.
스페인의 철강업계는 70년대의 공업화 시절에 막대한 해외자본과 맞물려 전 세계 32만 명의 사원들을 거느릴 정도로 막대한 저력을 자랑했었다.
지금도 간간히 대기업 하청으로 철강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체들이 있는데, 그들의 수익률은 밑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이미 강철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수출빈도를 앞지른 지 오래였던 것이다.
헌데 그들에게도 기회가 온 셈이었다.
이미 천우는 스페인 정부에게 철강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받았고, 그것이 이미 작년부터 법안으로 본격 발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철강업체는 스페인 왕가의 지원을 받으며 현보철강의 하청업체로 빠르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또한, 현보에서 만든 기술학교를 야간으로 수료하면서 기술을 배워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있었다.
2007년 2월, 스페인 철강의 내수시장 공략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수입하여 들여온 철강제품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무역수지적자가 내수시장을 압도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 지표가 점점 반전될 발판이 마련된 셈이었다.
스페인 철강의 내수시장 공략은 아프리카 중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의 난민들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자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투입할 것을 약속받았다.
그 약속은 곧장 수출산업 투입으로 직결되었다.
광산의 생산시스템 전반이 거의 모두 기계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은 여전히 필요하였고, 기피대상으로 일컬어지는 광산업에 난민들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1차 원자재 제품화 공장이 대량으로 세워지면서 40%를 육박하던 실업률이 30%까지 내려갔다.
모로코는 이 기세를 이어 중앙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과 손을 잡고 스페인, 모로코 2대 무역 노선에 그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30%의 실업률은 중앙아프리카와 손을 잡자마자 20%까지 내려갔다.
고속도로를 재정비하고 확장하는데 들어가는 인력을 내수시장에서 보충하였고 무역에 들어가는 인력 역시 소정의 교육을 통해 대거 확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나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와의 수교를 통하여 자원과 장비를 지원받아 스페인과 교역루트를 연결했다.
이는 다시 말해서 나이지리아가 동아시아의 기술 강국들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역설하는 일이었다.
나이지리아는 스페인과의 교역을 통해서 남부 공업단지에 자국의 업체들을 입점 시키고 현보전자나 독일의 보쉬스 등의 하청업체로 자국의 중소기업을 대거 입점 시켰다.
스페인 남부에 들어가는 자금의 규모는 점점 커져서 이제는 스페인 수출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였다.
단 1년 만에 성장한 규모라고 하기엔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도약이었다.
허나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만큼 스페인의 수출경기가 썩 좋지 않다고도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건설이나 설비 등으로 수많은 외자를 끌어왔으나, 결국 제조업이 쇠락함으로서 국가경쟁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은 이 기세를 포르투갈로 확장하였다.
지금까지 포르투갈은 3개국 무역동맹에서 거점지역 역할만 해왔으나, HC가 대량의 자본을 투자하면서 변화를 겪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들어오는 원자재의 60%정도를 포르투갈로 끌어오는 대신 남부지역의 항만설비들을 지금의 여섯 배까지 확충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항만설비확충에 스페인 왕가와 중앙정부의 자금이 15%정도 투자될 예정이었고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신흥국들이 10%정도를 출자하기로 했다.
그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미국과 영국, 일본, 한국 등의 무역통상업체들이 입점하여 채워나갈 예정이었다.
이 모든 자금유동에 대한 중개권한이 HC로 모였다.
포르투갈 정부는 천우에게 자금중개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대신 국가재무구조개혁 본부의 선임고문으로 추대하였다.
이는 포르투갈이 HC를 등에 업고 유럽의 비주류 무역국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HC는 미국의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제 4의 신용평가기관으로 불렸었는데, 지금은 연방당이 그들을 밀어내기는 했어도 그 지위는 여전했다.
천우가 찍는 업체는 반드시 흥했고 그가 밀어주는 주식은 흥행보증수표처럼 여겨졌다.
그건 국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및 지지를 통해서 기업의 신용도를 올려놓았는데, 이는 구미의 핫머니들을 몰려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3자 무역동맹은 유럽, 아프리카 무역동맹으로 개명되었는데, HC를 그 협회고문으로 하는 정식 무역기구가 출범하였다.
약칭 'SAFETA'가 결성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자본가들은 사프타가 나프타의 짝퉁 쯤 되는 것 아니냐며 비꼬기도 했지만, 이들이 가진 경쟁력은 오히려 나프타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프리카의 엄청난 지하자원과 인력, 그리고 스페인을 통해 들어오는 전 세계의 핫머니의 규모는 오히려 북미를 찍어 눌러버렸다.
사프타의 공식 금융기관임과 동시에 경제자문으로 취임한 천우는 2007년 3월을 기점으로 새로운 동맹법안을 건의했다.
그것은 바로 사프타 개발은행의 건립이었다.
천우는 사프타라는 무역기구가 더욱 발전해서 본격적인 경제협력기구로 발돋움하기를 원했다.
현재 HC가 사실상 그 중앙은행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이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던 것이다.
사프타 회담이 열렸고, 그 중앙회의에 25명의 회원국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천우는 그들에게 사프타 개발은행의 건립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스페인과 모로코 등의 채권이 HC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변종기축통화처럼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죠."
무역에서 사용되는 화폐는 달러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기축통화가 무역의 보증수표로 사용되는 셈이다.
허나 사프타는 사정이 약간 달랐다.
초기에는 달러화로 무역을 했었으나, 달러화를 마련하기 위해서 재정적자를 감수해야하니 차라리 적자폭을 줄일 겸 스페인과 모로코 등의 채권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사프타의 무역 블록화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재정적자를 조금 더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어떨까, 천우는 그리 생각한 것이었다.
"사프타 개발은행은 사프타 협정기구에서 운영되는 중앙은행으로 건립될 겁니다. 현재 우리 사프타에 가입한 각 국가들은 협정기구에 일정 기금을 기부하고 있으며 무역에 부과되는 세금의 일부가 기금조성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죠. 그 기금들을 중앙은행에 몰아주고 무역에 필요한, 이를 테면 기축통화를 찍어내도록 하는 겁니다."
"무역협정기구에서 기축통화를···?"
"지금도 채권이 기축통화처럼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일종의 가상화폐를 만드는 거죠."
"이를 테면 IMF의 SDR처럼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으음!"
"다른 국가들과의 거래에서라면 몰라도 우리끼리 거래를 할 때엔 달러화나 유로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선에서 통용될 기축통화가 생긴다면 훨씬 이득이 되지 않겠어요?"
"영국이나 미국이 썩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
친미성향의 국가들은 최대 우방국인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는 없다.
그들이 최대 구매고객임과 동시에 거의 모든 물건을 들여오는 루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허나 천우는 모든 것은 실리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U와 나토연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합니다."
"나토연방이라."
"지금 러시아와 나토연방의 갈등국면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조지아와 러시아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죠."
"그런 형국이라면 우리가 이득을 취할 수도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과거 아프리카 남부의 일부 국가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반미성향의 국가들이 꽤 있는데, 그 점을 사프타가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그렇다면야···!"
나토연방을 만든 것은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헌데 그 상대방인 러시아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스페인과 모로코 등은 여전히 미국을 지지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친러 성향의 국가들이 포진한 아프리카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그걸 사프타가 대신해 줄 수 있을 터였다.
천우는 미국이 사프타 개발은행과 기축통화 발행을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친러국가들을 끌어들이는 것보다야 차라리 무역의 불록화가 그들에겐 나은 선택이 될 겁니다. 그 이후에 사프타를 압박하게 된다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EU에 가입되어 있는 것을 빌미로 유럽연합을 방패막이로 세울 수 있을 테죠."
"이것이 바로 실리외교!"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린다. 아주 간단한 원리죠."
천우는 곧바로 표결을 요청했다.
사프타는 100%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구였다.
"최천우 고문의 사프타 개발은행의 건립에 찬성하는 회원들께서는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결과는 25명 만장일치.
표결이 통과되자마자 사프타 중앙협의회는 '사프타 중앙회'로 기구의 명칭을 개정한 이후에 ST개발은행을 발족시켰다.
또한, 천우가 제시했던 그대로 사프타의 무역개발기금을 전부 ST개발은행으로 몰아주어 엄청난 영향력을 실어주었다.
은행이 개설되자마자 은행 수뇌부가 결성되었고 총재로 스페인 왕가의 종친인 베아트리체 가르시아가 내정되었다.
베아트리체 가르시아는 전대국왕의 여동생인 레베카 공주의 둘 째 딸로서, 국왕의 고종사촌이었다.
그녀는 IMF에서의 근무경력을 가진 ECB중역 출신으로서, 자국에 외자유치 법안 개정에 적극 참여하여 스페인의 경제위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가 있었다.
"이정도면 구색은 다 갖춘 셈이로군."
사실, 꽤 많은 총재후보들이 있었다.
허나 천우는 그녀가 ECB의 중역 출신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중역이었다는 것은 유럽의 각 국가들의 재무수장들과 막역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천우는 그녀의 인맥을 동원해서 사프타 개발은행의 건립의의를 조금 더 견고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심지어 천하의 미국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 7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