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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정부는 왕가를 통해서 들어온 남부 공업지대 입점 후보기업들에 대한 심사를 시작하였고, 그 중에서 대략 10곳을 먼저 선별하여 시범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헌데 이 10개의 기업이 받는 특혜가 엄청났기 때문에 사방에서 로비가 쏟아져 들어왔다.
모로코의 천연자원을 유럽 남부로 들여오는데 필요한 관세와 세금을 거의 절반 이하로 할인한 것에 이어 그것을 기업에까지 적용시키기로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곳에서 장사를 하게 된다면 세금으로 인한 역마진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는 소리였다.
세금은 언제나 기업들을 애먹이는 가장 큰 요소 중에 하나로 거론되곤 한다.
그런 요소를 아예 국가에서 치워버리니 너나 할 것 없이 스페인 남부로 들어오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것이었다.
이들 열 개 기업이 스페인에 들어온 후, 한 달이 지났다.
2006년 10월.
스페인에 입점한 열 개 기업은 기존의 스페인 남부의 건물에 생산라인만 갖춰서 부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그 부품을 영국과 프랑스로 보내어 완성품 조립에 나섰다.
그 결과, 불과 한 달 만에 순수익 비율이 40% 이상 올라간 것이었다.
우선 원자재에 들어가는 가격이 거의 절반 이하로 내려 간데다 세금이 대폭 인하되면서 마진율이 급등한 것이었다.
스페인 경제는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부동산과 금융에 집중되었던 자금들이 하나 둘 기업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는 부동산으로 몰렸던 자금들이 하나 둘 이동 기조를 보였다.
부동산을 처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모기지 채권을 이용한 상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스페인은 모기지론을 이용한 주택구입이 많았었고 저금리로 인한 채권투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다.
이 상태가 제조업의 육성으로 인하여 점점 바뀌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바람직한 움직임은 스페인 정부의 안정적인 금리인상에도 도움을 주었다.
아직은 금리가 0%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 슬슬 1%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의 재정확대로 인한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해외 10개 기업을 들여오는데 상당한 재정적 이득을 보았고 모로코와의 교역에서 얻은 이득과 미래수익이 평년의 세 배 이상 되었기 때문에 단기간에도 꽤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천우는 스페인 정부의 자금 확충을 위해서 영국과 프랑스의 거대자본들을 대거 유치시켰다.
세금면제 등으로 투자자들은 돈을 벌어서 좋고 스페인은 시장에 대한 개입이 가능해질 만큼 자금적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이 상황에서 스페인정부는 추가 금리인상에 돌입했다.
금리인상으로 인해 부동산에 몰려들었던 자금이 점점 금융권으로 몰려가고 있었고 부동산투기과열은 서서히 안정권에 안착해나갔다.
대신, 부동산 가격이 워낙 폭락했기 때문에 서민들의 생활권 안정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부채비율이 워낙 높아서 잘못하면 곧바로 서민경기가 파탄지경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에 소비시장의 경색까지 거론되는 시점이었다.
허나 스페인 정부가 시기적절하게 개입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적었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정부의 채권회수가 진행되었는데, 공채비율을 높여 서민들의 대출을 국가의 채권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기존 대출과 비슷한 비율의 이자를 적용하였고, 원금상환에 대한 부담을 대폭 낮춰주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보급했다.
초기에 투입된 자금이 워낙 많아서 재정악화가 걱정되긴 했지만 남부의 추가개발로 인해 그런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2006년 12월, 현보그룹이 스페인 남부를 찾아왔다.
한국에서의 자체평가를 모두 마친 후, HC에게 금융자문까지 받은 그들이 드디어 유럽으로 손을 뻗은 것이었다.
현재 현보전자의 반도체 기술은 세계 2위이며 가전과 컴퓨터 부문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기업이 되었다.
특히나 CPU와 메인보드 등, 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은 모두 세계 1위의 판매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CPU시장에서 3위를 기록하고 있던 현보는 가장 먼저 '듀얼코어'를 개발함으로 단숨에 하이엔드 시장에서의 1위를 기록했다.
헌데 이 하이엔드 시장이라는 장벽이 2005년부터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컴퓨터게임의 발전으로 인해 일반인은 물론이고 PC방에서도 고사양 PC를 구매하는 동향이 정점을 찍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하이엔드 CPU 열풍이 불었고 현보전자는 세계 유일의 듀얼코어 CPU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점점 후발주자들과의 기술격차를 벌여나가고 있었다.
또한 GPU부문과 메인보드부문에서는 이미 세계 1위를 차지한 지가 오래 전이었고 MPU는 사실상 시장독점 중이었다.
이런 기술들이 집약되어 현보전자는 핸드폰 시장에서도 세계 2위의 기술력을 보유한 사실상 괴물로 자라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 제조업체가 되어 버린 현보는 미스릴 컴퍼니와 함께 스페인을 찾았다.
미스릴 컴퍼니는 콘솔게임기 플레이그라운드와 함께 PMP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미스릴 컴퍼니는 2년 전 일본의 게임기 제조회사인 만텐도를 인수하였다.
만텐도 컴퍼니는 '게임보이어드벤처' 시리즈로 80~90년대 가정용 콘솔게임시장을 장악하였고 미니게임기 어드벤스 시리즈를 출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였었다.
허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콘솔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전자기기 시장의 침체와 함께 만텐도의 적자비율은 한해에만 무려 120% 이상으로 뛰어올랐던 것이다.
이런 골칫거리의 회사를 인수한 곳이 바로 미스릴이었다.
이 회사를 인수하자고 제안한 것은 플레이그라운드 개발팀이었다.
그들은 미니게임기의 하이엔드 화를 위하여 기술을 모아나가는 과정에서 만텐도의 노하우가 결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3년 전에 본격적으로 인수되었던 만텐도는 플레이그라운드와 완벽하게 융화되어 PMP게임기인 '블랙쿠퍼'를 출시하였다.
블랙쿠퍼는 출시되자마자 시장을 휩쓸기 시작하였다.
멀티플레이는 물론이고 동영상재생, MP3기능, 심지어 저장 기능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2006년 당시에는 혁신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현보전자의 압도적인 기술력을 차관하여 만들어낸 PMP 블랙쿠퍼는 일본과 미국의 후발주자들을 한 방에 눌러버릴 정도의 판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미 현보전자의 기술을 독점으로 공급받기로 계약한 블랙쿠퍼를 따라올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게임 업계의 큰 손들은 전부 미스릴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타이틀 판매량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타이틀을 즐기기 위해서 블랙쿠퍼를 구매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판매량 1위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천우는 블랙쿠퍼를 비롯한 미스릴의 생산 공장을 짓는 계약을 채결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와 접촉했다.
이번 계약은 현보전자의 플랜트 구성까지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상당히 신중한 모습이었다.
공장설립에는 현재 건설부문 세계 1위 기업인 스페인의 ACI그룹이 선정되었다.
ACI그룹은 세계 최고의 건설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고 압도적인 수처리 기술을 가진 플랜트 건설업체인 IMO토목의 3대주주이기도 했다.
ACI그룹은 여전히 IMO토목의 플랜트 기술개발에 꽤 많은 자금을 투자해주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완성도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반이기도 했다.
천우는 ACI그룹에게 공사를 맡기기로 하고 자재는 아프리카에서 받아다 쓰기로 했다.
모든 것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대신 건축절차의 간소화, 등기의 간소화 등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런 절차만 간소화 시켜도 건축금액은 상당히 많이 빠진다.
만약 천우가 이런 선례를 만들면 현보는 조금 더 많은 이득을 가질 수 있을 터였다.
스페인 정부는 천우에게 흔쾌히 승인도장을 찍어주었다.
콰앙!
"이제부터는 편하게 공사하시죠."
"감사합니다."
"다만, 현보그룹에게 부탁을 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현보그룹이요?"
"원래는 슈팅스타와 접촉을 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이런 일에는 한 다리 걸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철을 좀 만들어주셨으면 해서요."
천우는 고개를 절로 갸웃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스페인도 철을 성형해서 파는 나라다.
90년대부터 추락하긴 했어도 여전히 유럽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수출비율이 12%나 될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허나 한 번 주저앉은 생산력은 향상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건 남부의 공업단지에서 생산성이 향상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의 구조조정 이후에도 철강 산업의 적자는 끝이 없습니다. 지금은 18억 유로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죠. 수출을 하는 것보다 수입을 해오는 폭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죠."
"으음."
철강 산업이라는 것은 비단 철광석만 가져다가 성형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쓰임새에 따라서 제조공정이 다 다른 법인데, 스페인의 철강 산업이 쇠락하면서 사업부문 철수가 이어져 기술의 퇴보로 직결된 것이었다.
천우는 이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슈팅스타에서 철강업체를 끌어오면 일이 끝나는 건 아니잖습니까?"
"압니다. 그러나 언제 중국이나 한국에서 철을 끌어다 남부의 물량을 다 조달하겠습니까?"
"그야···."
맞는 말이긴 했다.
철을 찍어내고 싶어도 공장이 없는 이 마당에 철을 아시아로 보내서 성형을 해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해봐야 룩셈부르크 정도가 될 텐데, 사실 이마저도 스페인에겐 엄청난 역마진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해외의 유명한 철강업체를 대거 들여와서 국내생산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었다.
천우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허나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좋습니다. 현보철강을 끌어오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이야 얼마든지 맞춰드리지요."
"현보철강과의 기술제휴를 통한 생산라인 구축에 국비를 좀 지원해주시지요."
"···국비를 지원해달라고요? 지금의 이 조건으로도 모자라다는 겁니까?"
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에겐 지원이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제가 말하는 건 스페인 내부의 기업들에 대한 것이잖아요."
"스페인 내부요?"
"한 번 주저앉았다고 철강을 포기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담당자인 페르난도 곤잘레스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허참, 그걸 누가 모릅니까? 지금의 적자를 해결하자면 그보다는···."
"멀리 보세요. 국내총생산량이 늘면 당장의 손해는 상충됩니다. 아니, 5년 후엔 스페인이 아프리카의 철강업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아프리카!"
천우는 페르난도 곤잘레스와 같은 사람들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무사안일주의, 그것은 국가를 병 들이는 역병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 77.(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