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51화 (151/202)

< 76. >

76.

스페인 왕세자의 결혼식이 열렸다.

이 결혼식에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물론이고 우호관계에 있는 아시아, 아메리카의 국가들에서도 사절단을 보내왔다.

천우는 스페인 왕가와의 인연을 통하여 관련 사업들과 첨예하게 엮여 있었기 때문에 귀빈으로 초대되어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는 오늘 결혼식에서 스페인 재무장관 및 차관 등을 만나기로 했다.

성대한 결혼식이 끝난 후, 왕가에서 개최한 오찬에 참석한 천우는 재무관계자들에게 공장단지 설립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미 HC쪽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냈음으로 초석은 다져져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스페인은 생산성 향상에 반은 긍정, 반은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지금까지 스페인은 제조공업이 없이도 잘 살아왔다는 사람들과 이대로는 선진국 반열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것이었다.

스페인은 사실상 유럽의 재정부실국가로 낙인이 찍혀 있었지만, 수뇌부는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었다.

다만, 현 총리는 스페인의 본격적인 공업화를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라서 어느 정도 타협이 된 듯했다.

천우는 굳이 스페인의 재정문제를 들먹이지 않았다.

이 세상 누구보다 스페인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외교관계만 해결해주신다면 자본은 제가 끌어오겠습니다."

"으음, 외교관계의 해결이라."

"영유권분쟁을 잠시 멈추고 본격적인 수교를 시행하는 거죠."

"하지만 그건 외교관계자들이 처리해야 할 문제인 것 같은데요."

"전면적인 외교전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할 겁니다. 그건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 봐도 잘 알 수 있죠."

"으음···!"

모로코와 스페인의 관계가 아무리 파탄지경이라곤 해도 아예 왕래가 없는 건 아니었다.

거리가 가까운데다 유럽대륙으로 건너가는 최단거리의 스페인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었던 것이다.

천우는 이점을 좀 이용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재무관계자들끼리 접촉해서 돈과 이익의 상충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

"바로 그건 거죠. 이미 모로코에 포석을 깔아뒀습니다. 재무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HC에서 로비를 하고 있죠. 모로코의 자원과 인력, 난민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스페인에 공업단지를 설치하고 자원혜택을 주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뭐가 있겠습니까?"

"관세를 일부 면제해주고 수출입 절차를 간소화 하는 것이겠죠."

"무역특별대우를 해주면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우르르 몰려들 텐데요?"

"그럼 더 좋고요."

자원이 몰리면 제조공업이 흥하고 그건 다시 말해서 외자가 집중된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이 자원과 인력을 팔겠다고 몰려들면 스페인은 그야말로 해외자본의 홍수로 한 차례 수혜를 입게 될 것이었다.

"금융, 그중에서도 채권과 외환관리만 잘한다면 스페인은 유럽남부와 아프리카 북부의 큰손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오호!"

"그러니 이제 여러분들이 뭘 어떻게 하면 다시 예전의 패권을 가지고 올 수 있을지 잘 아시겠죠?"

스페인은 여러 가지 강점을 가진 나라다.

73년도 이후 스페인은 전형적인 신흥공업국가의 길을 걸어왔고 그 결과, 세계 최고의 건설사와 유럽최대의 은행, 통신회사, 석유회사 등이 세워졌다.

항공, 자동차 기술도 수준급이었고 특히나 철도회사는 세계에서 4번째로 고속철도를 만들어낸 저력이 있었다.

다만 부동산규제 완화와 이민자의 급증으로 인해 경기가 한 차례 호황을 맞았고, 그로 인해 가계부채비율이 급증하는 사태를 보였다.

이미 모기지론으로 인해 부동산가격이 200%이상 뛰었고 현재는 310%에 달할 정도로 부채가 많았다.

부동산의 호황과 함께 공업구조에 변화가 생겨버렸고, 이는 일본의 전처를 밟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1~2년 내에 구제 금융을 받아야 하는 디폴트 사태가 터질 것이 분명했다.

GDP순위로는 상위권에 기록되어 있지만 산업구조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좋은 구조는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천우는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제조업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제조업은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국가의 체력을 기르는 필수요건 중에 하나가 바로 제조업이고 스페인은 이 구조를 조금만 개혁해도 충분히 구제 금융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천우는 재무관계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우리가 모로코의 정치인들을 로비하면서 공통적으로 한 가지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게 뭡니까?"

"스페인의 수처리 기술과 에너지기술을 들여와 플랜트 산업을 육성해달라는 겁니다."

"으음, 그러니까 자체적 에너지수급이 조금 더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들에게 지원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그 영역을 대폭 늘려달라는 거죠. 아마 이번에 그들과 계약을 맺게 된다면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자원을 싸들고 스페인을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스페인은 금융이 상당히 잘 발달된 국가다.

만약 자원만 제대로 돌아준다면 지금의 금융위기 쯤은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무관계자들은 천우에게 요청사항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후,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스페인은 유럽의 신흥공업국가로서 저력을 지닌 만큼 추진력도 좋았다.

천우는 그 추진력을 믿고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

국정원에서 사진을 가지고 간 지 보름 후.

드디어 연락이 왔다.

-찾았습니다. 강원도 영월 출생의 이진아라는 사람이랍니다.

"이진아라."

-어려서 절간에 버려졌는데, 주지스님이 그녀를 거둬서 10년 전까지 키웠답니다.

"그럼 지금은요?"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실종신고를 했는데, 그게 지금 10년째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아예 행방을 찾을 수가 없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이미 주민등록은 말소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실종자 처리가 되어 사실상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니."

-일단 인터폴에 의뢰는 해뒀습니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주민등록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문을 확보하고 있거든요. 그걸 보내두었으니, 만약 범죄기록에서 일치하는 지문이 발견된다면 연락이 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조만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청와대에서 기다리는 것 같던데, 찾아주시면 좋겠네요.

아무래도 스페인과의 협력을 통해서 제조 산업체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리가 한국정부에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천우는 일부러 제조 산업체를 모집하고 있다며 소문을 흘리고 다녔다.

대외적으로는 한 번도 광고를 한 적이 없었지만, 이미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 스페인 진출에 욕심을 내고 있음이 밝혀졌다.

특히나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고생하고 있던 제조사들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수지악화가 계속되는 기업들의 경우엔 아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스페인의 부동산에 뿌리를 박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우는 며칠 후, 청와대를 찾아갔다.

청와대에서는 스페인으로 보낼 기업들에게 장려금 차원에서 세금혜택을 주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 중이라고 하였다.

재정경제부에서는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그들에게 절세혜택을 주는 청사진을 공개하였다.

그중에는 현보그룹도 있었다.

현보는 이미 전자, 건설, 조선, 자동차 등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해 나가고 있는 기업이었다.

정부는 이들을 필두로 스페인 원정대를 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 동안 동원될 자금에 대해 세금혜택과 관세혜택 등을 부과할 것이며 절차를 대폭 완화할 생각입니다."

"으음, 나쁘지 않은 청사진이네요."

"헌데 저쪽 부동산이 말썽이라고 하던데 우리가 공장을 세워도 상관은 없을까요?"

재정기획부는 천우에게 원정대를 맡기면서도 내심 스페인 부동산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허나 천우는 그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시아의 핫머니가 몰려들면서 제조업이 흥하게 될 겁니다. 덩달아 금융도 뜰 것이고 급격한 외자도입으로 인해 약간의 금리상승기조가 시작될 테죠."

"잘못하면 부동산 거품이 꺼져서···."

"금융위기가 올 수도 있지만 외자도입이 상당하기 때문에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공장단지설립에만 노동자들이 엄청 투입될 것이며 공장이 세워지면서 생겨날 일자리는 무궁무진합니다. 경제위기는 아예 찾아오지도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해외에서의 사업실패는 엄청난 타격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허나 천우는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이처럼 호언장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것이 새로운 분기점이 되어 한국이 또 한 번 외자수입을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우리가 아프리카에게서 혜택을 받아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유럽시장을 집중공략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고요."

"으음,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로 일부 집중되었던 세력들은 어쩝니까?"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90년대에 부채를 정리하고 출자구조를 단순화 하는데 성공하였고, 그와 더불어 해외에 중구남방으로 흩어져 있던 계열사와 공장들을 일제히 정리해버렸다.

그러다가 98년도를 기점으로 서서히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 공장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저임금, 정부의 폭발적인 지원으로 기업들이 중앙집권화를 갖추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천우는 이를 더블타이틀이라고 정리했다.

"이미 영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리를 잡았으니 그쪽에 기반은 내버려두시고 스페인과 모로코의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는 겁니다. 자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뭐, 그건 그렇죠."

"이제 스페인을 통해 자원이 들어와 부품이 완성될 테니, 그것을 영국과 프랑스로 옮겨 조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생산성이 올라갈 수도 있겠군요."

"중부와 남부의 업무분산으로 생산성이 올라가면 수익도 증가할 테니, 기업에게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좋군요. 그럼 기업총수들을 모아서 다시 한 번 청사진을 제출받고 조율할 때 이를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정부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이미 러시아에서 천연자원의 수혜를 맛보았기에 아프리카 북부의 천연자원이 가져다 줄 이익이 얼마나 될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7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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