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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148화 (14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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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

로이 조로스의 말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놈들은 스펀지 같아. 이 세상의 모든 범죄를 모방하고 그것을 진화시키거든."

"그러니까, 지금까지 일어났던 금융범죄들은 렉스테리아 상부조직의 끝도 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연구의 산물인 것이네요?"

"그런 셈이지."

세상천지 그 어떤 미친놈들이 금융범죄를 일으키기 위해 연구를 한단 말인가.

놈들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연구소까지 차린 모양이었다.

"나도 건너 듣기만 했어. 놈들의 연구소가 모처에 있다고 말이야."

"연구소!"

"미친놈들이지? 범죄에 대비하는 범죄연구소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범죄를 연구하는 범죄연구소라니 말이야."

그렇다면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로이 조로스가 관련되어 있느냐, 아니냐,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 조직에 가담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런 미친놈으로 보여?"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너처럼 의심이 많은 놈도 참으로 살기 힘들겠어."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요."

로이 조로스는 범죄가담 사실에 대해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천우가 그를 구제해주던 말던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는 말이 된다.

"···CIA로 끌려가겠다는 건 아니시죠?"

"가야한다면 가야겠지. 물론, 그놈들보다 렉스테리아가 먼저 도착하지 않기만을 바라야겠지만."

"CIA에 끌려가면 그냥은 못 나옵니다."

"렉스테리아에게 끌려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어. 그보다는 낫지 않겠어?"

"분명 다른 방법이···."

그는 고개를 저었다.

"MI5에서 나를 찾았다는 건 CIA도 대충 냄새를 맡았다는 거고, 그놈들이 알 정도면 렉스테리아에선 벌써 눈치를 채고도 남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놈들이 정보조직은 아니잖아요?"

"때론 뒷골목 소식통이 MI5를 능가할 때도 있는 법이야."

로이 조로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간 술에 취해있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은색 위스키포켓을 꺼낸 그는 바틀 안에 있던 술을 넘치기 직전까지 담았다.

족히 200lm쯤은 들어 간 것 같았다.

"이정도면 산을 내려갈 때까지 마실 수 있으려나."

"당장 떠나시게요?"

"잡을 테면 잡아도 좋아. 뭐, 그래봤자 너만 손해겠지만."

로이 조로스는 그렇게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천우도 이제 그만 이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가야겠습니다."

"술도 한 잔 했는데 자고 가지 그래요?"

"괜찮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으니까요."

천우는 산 입구에 차를 대놓고 이곳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다.

마을의 어지간한 물건들이 전부 케이블카로 올라올 정도로 케이블카는 크고 넓었다.

허나 그는 당장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한 시간 정도 밖에서 산의 정취를 즐겼다.

로이 조로스가 그리도 떠나고 싶다면 그냥 이대로 보내주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로이 조로스는 그렇게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분명 아까운 인물이긴 해.'

이 세상에서 강대국의 권력자가 아니고서야 단순 투기만으로 천우를 무너뜨릴 뻔 한 사람은 이제까지 단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나노머신을 탑재한 천우를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로이 조로스가 천재라는 뜻이었다.

천우와 차이가 있다면 그는 선천적인 천재고 천우는 만들어진 천재라는 것 정도일까.

아무튼 두 사람은 그렇게 기약도 없이 헤어졌다.

잠시 후, 천우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휘이이잉!

약간 싸늘한 바람이 들어오다가 이내 문이 닫혔다.

헌데 문 바로 앞에 테이프에 붙은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뭔가 싶어서 떼어보니 마샤의 인물도감에도 나와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SNS가 출범되기 전에 죽었거나 아예 인터넷 상에 정보가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어느 나라건 출생신고는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그 법을 지키지 않거나 못 지키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아예 정체도 모르는 사람인 거네?"

-그런 셈이죠.

사진 속에는 파란색 눈동자에 까만 머리를 한 동양인 소녀가 들어 있었다.

분명 이목구비는 동아시아권의 것인데 눈동자만 파래서 약간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신기하게 생긴 소녀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면 가끔 저런 눈동자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소녀이긴 해."

-이게 과연 누구일까요?

천우는 혹시나 해서 사진을 뒤적거렸지만 사진을 찍은 날짜 이외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사진을 찍은 장소가 약간 특이한 것 같기는 했다.

"암자···. 암자 아닌가?"

-그런 것 같습니다. 후보지역으로는 총 71개가 있습니다.

암자의 기둥에 단청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문제는 저런 기둥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천우는 사진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서 케이블카 관리소를 찾아갔다.

산비탈 아래에서 케이블카를 조종하는 중앙통제실이 있다고 푯말에 쓰여 있었는데, 비상시에는 인터폰을 사용하라고 나와 있었다.

"아마도 사람이 있겠지."

똑똑.

천우는 일단 통제실문에 기척을 냈다.

그가 케이블카 관리실의 문을 두드리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시죠?"

"누가 사진을 놓고 간 것 같아서요."

남자는 사진을 보자마자 단박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아아, 그거요? 아까 자기를 로이라고 칭하던 사람이 동양인 남자가 혹시 사진을 들고 오면 선물이라고 말해주라고 하던데요?"

"선물이요?"

로이 조로스가 괜히 헛수고를 할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천우는 사진을 주머니 속에 잘 갈무리했다.

남자는 그런 그를 보며 실소했다.

"그나저나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세요?"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평소에는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지만 사람이 없을 때는 마샤와 직접 육성으로 대화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천우의 버릇이 무심결에 튀어나왔고, 그것이 남자의 귀에는 들렸던 모양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도 있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내가 이런 사소한 걸 놓치다니!'

천우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긁적였다.

"험험, 그냥 좀···."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늦기 전에 병원에 가보세요. 우리 엄마도 그러다가 중증으로 도져서 격리병동에 있거든요."

"···말씀 고맙습니다."

천우는 상당히 민망한 마음에 후다닥 관리소를 빠져나가려 했다.

허나 이대로 그냥 가기엔 흑역사가 고스란히 남을 것 같아서 약간 불안했다.

"혹시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좀 살 수 있을까요?"

"이걸 사시겠다고요?"

"···자다가 이불을 걷어 찰 것 같아서요."

청년은 웃으며 테이프를 빼내어 천우에게 내밀었다.

"1유로만 줘요. 테이프를 새로 사서 갈아야하니까요."

"고맙습니다."

2010년대에는 이른 바 인터넷의 흑역사를 지워주는 탐정들도 있었던 만큼 인간에게 흔적이란 중요한 것이었다.

천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테이프를 챙겼다.

이제 자동차를 타고 산을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헌데 그가 떠나기도 전에 길이 막히고 말았다.

산 입구에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나?"

차를 끌고 내려가 보니 경찰이 천우를 잡았다.

그들은 천우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해외에서 오셨다면 여권이나 비자 등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천우는 경찰의 요구에 따라서 여권을 건네주었고, 그들은 천우의 차량을 돌면서 이상한 점이 있나 확인해보았다.

트렁크에 뒷좌석까지 확인한 경찰은 그에게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당부했다.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어지간하면 이곳에서 1박을 하고 가시던가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방금 전에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고요?"

순간, 천우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방금 전에 이 마을에서 내려온 사람이라곤 자신과 로이 조로스뿐이었기 때문이다.

"호, 혹시 그 남자, 술에 취해있지 않았어요?"

"네, 맞습니다만."

"허어!"

"혹시 아는 사람인가요?"

"한 시간 전까지 저와 술을 마셨던 사람인 것 같은데요?"

순간, 경찰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천우에게 증언을 요구했다.

"···일단 감식반이 올 때까지 어디 들어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습니까?"

"그러시죠."

"마침 이곳에 통제실이 있는 것 같던데, 그곳으로 갈까요?"

천우는 경찰들과 함께 케이블카 중앙통제실로 들어갔다.

그는 경찰들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노크를 해보았다.

똑똑똑!

"저기요, 계십니까? 잠깐 실례 좀···."

경찰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십니까? 여긴 무인 통제실이란 말입니다. 케이블카를 조종하는 곳은 산비탈 아래에 있다고요."

"···네? 아까 분명 여기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있었다고요?"

"네, 이것 좀 봐요. 제가 혼잣말을 지껄이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게 녹음된 테이프라면서 1유로 받고 저에게 팔았단 말입니다."

순간, 경찰과 천우 모두에게 감이 왔다.

권총을 꺼내든 경찰은 돌입할 준비를 했다.

"저희들 뒤로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윽고 경찰들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콰앙!

"경찰이다! 손들어!"

허나 이미 통제실에는 사람이 들어있지 않았다.

천우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기랄, 그럼 그 사람은 뭐였지?"

"수상합니다. 그 사람의 인상착의에 대해서 혹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연필과 종이를 주신다면 몽타주를 그려드릴 수 있어요."

천우의 그림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예 눈으로 본 것을 프린트 할 수 있을 정도이니, 그걸 보는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슥슥슥.

거침없이 그려나가는 천우를 보면서 경찰들은 입을 떡 벌렸다.

"직업이 화가이신가요?"

"아니요. 그냥 미술에 취미가 좀 있습니다."

"···이건 취미 수준이 아닌데?"

천우는 불과 5분도 안 되어 그림을 완성했다.

비록 간단한 스케치형식이었지만 거의 증명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정도면 몽타주를 만들어 뿌릴 수도 있을 정도네요."

"그런데 망자의 사인은 뭡니까?"

"총격에 의한 후두부 파열입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보이네요."

"죽은 지는 얼마나···."

"글쎄요. 한 40~50분 정도 되었으려나?"

"젠장! 나름대로 배려해준다고 혼자 내려가도록 내버려 둔 것인데!"

경찰들은 천우의 증언에 따라서 펜션에 연락해보았고, 천우를 보았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로서 천우는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작정하고 총을 들고 와 쏜 놈들입니다. 당신이 함께 있었다면 아마 피해자가 둘로 늘어났겠죠."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뭐, 아무튼 간에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혹시 또 뭔가 제보해주실 것이 있다면 연락해 주시고요."

"저야말로 뭔가 나온다면 연락 좀 부탁합니다."

천우가 명함을 건네자, 경찰들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였다.

명함에는 HC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천우···?"

"그럼 연락 좀 부탁드릴게요."

거듭 부탁을 하고 차로 돌아가려는데 통제실 문으로 한 여자가 들어왔다.

"당연히 연락드려야지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데요."

그녀의 가슴에는 바네사 야코브라는 이름과 함께 경감 계급장이 박힌 신분증이 달려 있었다.

< 7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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